[제목] 무엇이 사마리아인을 구원받게 했는가?(눅17:11~19) [일시] 2018년 10월 28일(주일) 오전9시,11시 [찬송] 찬44장 지난 이레 동안에, 찬 588장 공중나는 새를 보라, 찬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PW: 구원, MIW: 반응하는 T.S: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알고 그것에 반응하는 것이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감사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사람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보통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믿는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내가 입술로 “믿습니다”고 고백하면 되는 것입니까?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영국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은 믿음과 구원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은 1743년에서 1647년까지 약 5년간 영국의 웨스티민스터에서 개최된 회의기간 중에 제정된 전문 33장의 칼빈주의적인 장로교 신앙고백서입니다.
“제14장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에 관하여] 1. 믿음의 은사는 그들의 마음속에서 활동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성령)의 역사이다(고후4:13, 엡1:1719, 2:8). 그것(성령의 역사)으로 말미암아 선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영혼이 구원에 이르도록 믿을 수 있게 된다(히10:39)....3. 이 신앙은 약할 때도 있고 강할 때도 있다(히5:1314, 롬4:1920, 마6:30, 8:10). 때로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공격을 당하여 약하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승리를 얻는다(눅 22:3132, 엡6:16, 요일5:45).”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믿음도 하나님이 주셔야 하며,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받은 자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갖게 되어 구원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에 의해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믿음도 함부로 가질 수 없다는 뜻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만약, 하나님께서 주셔야 얻는 믿음이라면 아마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으며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과연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으며 진리의 지식에 이르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능력이 부족해서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지옥에 보내시기로 이미 예정해놓았기 때문에 그가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까? 만약 이것이 맞다면 하나님은 무지막지한 조폭수준의 신입니다. 믿지 못하도록 미리 정해놓고 지옥에 보내는 무서운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 그러한 분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20장의 포도원품군의 비유에 잘 나와 있습니다. 저는 지난주 금요일 새벽기도와 금요일 저녁기도회 때에 이 부분에 관하여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결코 하나님은 무지막지한 조폭이 아닙니다. 어떤 포도원주인이 포도수확철을 맞이하여 아침 일찍 장터에 나가 일꾼들을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에 필요한 일꾼들을 고용했으면 그것으로 끝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포도원의 주인은 오전9시에도 장터에 나가보고, 정오에도 나가보고, 오후3시에도 나가보더니 일없이 서성이고 있는 자들을 고용하여 자기의 포도원에 들여보냅니다. 그리고 심지어 일을 1시간 남겨둔 오후5시에도 나가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당신들은 어찌하여 온종일 일이 없이 여기 선 채 있습니까?” 그러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일꾼으로 고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포도원 주인은 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서 자기의 포도원에 들여보내 일을 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품삯이 아까워 머리굴리는 분이 아닙니다. 어찌하든지 누구나 포도원에 들여보내어 일하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주려고 노력하시는 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조폭같은 잔인한 하나님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에게 어찌하든지 구원의 기회를 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구원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위해 지금도 애쓰시는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일까요?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나병에서 고침을 받은 10명의 환자들 중에서 사마리아 나병환자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 돌아와 그분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였고, 그랬을 때에 주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에게 구원을 선포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사마리아 나병환자는 어떻게 되어 병만 고치지 않고 구원까지 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나요? 오늘날에는 믿음만 있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것도 하나님이 주셔야만 믿을 수 있으니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구원교리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입각한 교리들인가요? 정녕 이 사마리아 문둥병자는 믿는다고 입술로 고백만 하고서 구원받은 것인가요?
2)청중적 접근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30년경 예수께서 공생애의 마지막 해에 이제 곧 얼마 있으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어 죽으실 때가 가까울 즈음에, 베뢰아 전도를 마치시고 유대 땅 베다니로 가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는데, 유대인들이 더욱 더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자, 잠깐 사마리아 지역으로 피신하셨다가 갈릴리의 접경지역까지 올라가실 때에 일어난 한 사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것이 예수님의 공생애의 마지막 전도사역기간 중에 일어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때였습니다. 어느 마을에 들어가고 있을 때에, 나병환자들 10명이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외쳤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여기서 “선생님”이라는 말은 ‘디다스칼로스(teacher)’는 교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에피스타타’라는 말로서, 우리말로는 ‘주관자시여’, ‘절대 능력자시여,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하실 수 있는 자시여’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자기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기를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자신을 단번에 보이라” 그러자 그들은 주관자의 말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뒤, 사마리아에서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제사장들에게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떠나가고 있는 중에 그들의 나병이 깨끗이 치유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의 한 사람은 사마리아사람이었습니다. 혼혈족으로서 이방인이라 불리웠고 개취급을 받은 북이스라엘의 후손이 하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를 “이방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헬라어로 “에스노쓰” 즉 “열방, 민족, 이방인”이라는 단어가 아닙니다. 이 단어는 “알로게네스”입니다. “다른 혈통을 가진 자”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사람은 약속의 자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외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가 자기가 병에서 나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자 주님께 돌아와 감사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눅17:17-1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들]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런데]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이방인(다른 혈통을 가진 자)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자들이) 없느냐(발견되지 않았다) 하시고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한 채 있느니라”
4)문제발생원인
그렇다면, 나머지 9명의 유대인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감사하러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이들도 분명 예수님의 말씀으로 치유를 받았음는데, 이들은 왜 자신을 치료해주신 고마운 분에게 나아오지 않았던 것일까요?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불치의 병에서 고침을 받았어도 예수님께 나아오지 아니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불치의 병에서 고침을 받았어도, 감사하지 아니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육신의 질병에서 나았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거기서 끝내버립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을 경험했음에도 반응하지 아니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신이 하나님이 행하신 고마운 일을 경험하고도 모른 채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질병의 치료를 통해서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전혀 헤아리지 못합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사함으로 우리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신 일에 반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고마운 일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가. 예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지나가시던 길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예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지나가실 때에 기적적으로 말씀만으로 불치의 병을 치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거기서 나병환자 10명을 만나셨는데,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에, 10명의 나병환자가 모두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만 되돌아와 예수님을 경배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마지막 구절, 19절의 말씀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여기서 “믿음”이란 어떤 믿음을 가리킵니까? 단지 생각만 하는 믿음을 가리킵니까? 여기서의 믿음은 입술만 딸싹거리는 믿음을 가리킵니까? 여기서 믿음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가만히 있는 믿음을 가리킵니까?
아니 좀 더 나아가보겠습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그에게 억지로 넣어주신 믿음입니까? 그가 믿지 않으려 하였는데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강제하여 집어넣어준 믿음을 가리킵니까?
아닙니다. 여기서의 “믿음”은 반응하는 믿음,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을 경험했을 때에, 그 엄청난운 은혜 때문에 어떻게라도 행동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다고 하는 견딜 수 없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만약 그것을 하나님께서 사마리아 사람에게만 집어넣어주는 것이었다면 한다면, 그 사마리아 나병환자가 왔을 때에 그를 높이 평가해 주셨겠습니까? 당신이 해놓고서 믿음을 칭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나. 사마리아 나병환자는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었을까요?
그렇다면, 이들 중에 혈통이 다른 한 사람 사마리아 나병환자는 어떻게 되어서 구원을 받게 된 것일까요?
첫째, 먼저 주님께서 그를 치료해주시고 구원해주시려고 일부러 그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11~12절). 주님께서는 사실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곧장 들어가셔야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멀어지셨고 사마리아와 갈릴리의 접경지대까지 가셨습니다. 그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얻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은 나병환자들 10명 중에서 사마리아 나병환자만 고쳐주고 그에게만 구원을 주시려고 거기에 가신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를 고쳐주시고 그들 모두를 구원받게 하시려고 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따라서 그분은]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분]를 믿[고 있]는 자마다(모든 이가) 멸망하지 않고(않도록) [오히려] 영생을 얻게(가지게) 하려 하심이라(하려고)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속죄제물로 죄값을 대신하려고 육신을 입고 이 세상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저 하늘나라에서 이 낮도 천한 세상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아니고서 우리는 결코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둘째,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아뢰었기 때문입니다(13절). 이때 나병환자 10명 모두는 당면한 문제에 빠져 있었습니다. 문둥병이 들었기에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있었고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는 형편에 처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하는 것은 사람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어찌하든지 나병에서 나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취급받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목놓아 자기를 고쳐달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중에 사마리아 나병환자가 끼어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14절).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을 부르는 그들이 호칭이 놀랍습니다. 그것은 그분을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자로서 그분을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순종했습니다. 예루살렘성전에 있는 제사장에게로 갔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규정에 보면, 나병환자가 나았는지는 제사장이 판결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레14:2-3a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3 제사장은 진영에서 나가 진찰할지니
그런데 이 다음부터가 달랐습니다. 유대인 나병환자 9명과 이방인 나병환자 1명의 모습과 태도가 영 달랐던 것입니다.
넷째, 사마리아 나병환자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행하신 일에 대하여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입니다(15~16절). 15절입니다. 그 나병환자는 첫째로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자기의 병을 고쳐주신 예수님께로 일부러 되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6절입니다. 셋째로, 그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니, 그는 예수님의 발들 곁에 자신의 얼굴을 대고 엎드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영어표현은 더욱 적나나합니다. He threw himself at Jesus’ feet. 그리고 그는 넷째로, 연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다. 결국 누가 구원을 받습니까?
결국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자기의 믿음으로 자기의 질병을 고친 자라라면 다 구원을 받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으로는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비록 자기의 믿음으로 자기의 질병을 고침을 받았어도, 자기를 위해 위대한 일을 행하신 그분 앞에 나아갈 때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하신 것에 대해 반응해야 합니다. 사마리아 나병환자는 가는 거리만큼 먼 거리를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발 앞에 자신의 얼굴을 던지면서 그분에게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자신의 삶에 당면한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나아오기라도 합니까? 그리고 주님께 부르짖어 간구라도 합니까? 그렇게 하는 이도 드문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해서 그분 앞으로 나아가 감사의 마음을 표현합니까?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이 없느냐?” 그렇습니다. 단지 병낫게 해주시려고 주님께서 그들을 낫게 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구원받게 하려고 1차적으로 기적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병나은 것에서 머물러 버렸습니다. 받은 은혜가 분명하건만 그것에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백날천날 제사장에게로 달려간들 내 질병을 고침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얻는 믿음”이라는 것이 단지 머릿속에서 멤도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행동으로 표현되는 믿음이 진짜 믿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행하셨음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일 수 없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믿음입니다. 그것은 시작하는 믿음에 불과합니다. 만약 우리의 믿음으로 어떤 놀라운 기적을 체험ㅎㅆ어도, 그분 앞에 나와 감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내 병을 고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진 자는 자신의 삶의 문제는 해결받을 수 있을른지는 몰라도,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알고 그것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감사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반응함으로 믿음도 인정받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도구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을 위해 행하신 일에 대해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행하신 일에 대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표현이라도 그분에게 해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5.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주님이 자신을 고쳐주신 일에 대해 되돌아와 경배하며 감사했던 사마리아 나병환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첫째, 그는 그는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만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그분 앞에 엎드리는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만 그렇게 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는 말씀은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 놀랍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전능자이십니다.
둘째, 그는 자신의 육신의 질병만 고침받은 것이 아니라 그의 영혼까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기에 필요한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육신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 사용하는 믿음으로 끝내서는 아니 됩니다.
나.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이처럼 오늘날의 10분의 9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행하신 일에 대해 반응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믿음으로 육신의 질병을 고침을 받았어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자는 그들의 영혼이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는 파렴치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배은망덕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냉열한이기 때문입니다.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위대한 일을 행하신 주님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얼마큼 반응해야 우리도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사실 저마다 다릅니다. 사마리아 친구는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였습니다. 그리고 되돌아와 자기를 고쳐주신 주관자되신 예수께 엎드려 절하면서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가 행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눅19장에 나오는 삭개오는 달랐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자기의 집에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해드렸고 자기의 잘못을 고백한 뒤에는 자기가 신처럼 떠받들던 물질까지 다 내려놓았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칩니다. 어떤 사람은 그분이 행하신 일을 전하는 데에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어떤 분은 이러한 과일과 곡식과 떡을 주님께 바쳤습니다. 어떤 분은 정성스럽게 예물을 준비하여 바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일평생 기도로 헌신하기를 다짐합니다. 왜냐하면 각자에게 주신 성령의 감동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 결단의 축복
그렇지만, 주님이 행하신 일에 반응하지 않는 자는 거기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거기에서 끝나버립니다. 그런 자는 육신의 문제는 해결받을른지는 몰라도 영적인 축복에까지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동하는 믿음으로 주님께 감사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당면한 육신의 문제만을 해결받을 것이 아니라, 영혼의 문제까지 다 해결받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러한 절기 때에 특히 감사를 잘 표현하여, 한 우리 성도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은총에까지 이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어떤 사람이 영혼까지 구원을 받는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께서 행하신 일에 반응하는 자가 자기 자신을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께서 행하신 일에 감사를 표현하는 자가 자기 자신을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나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믿음이 있다는 것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며, 주님이 집어넣어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나 자신이 주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에 반응할 때에 구원이 임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주님이 하신 일에 반응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주님이 하신 일에 감사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주님이 하신 일에 표현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주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주님이 하신 일을 전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행동하는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감사를 표현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주께서 행하신 일에 반응할지어다. 감사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나 모두가 다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우리들 때문이로구나.
2. 구원받는 믿음이란 입술만 딸싹거려는 믿음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될 때 비로소 인정되는구나.
3. 구원은 주님께서 우리 죄인을 위해 찾아오심으로 시작되었구나.
4.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을 찬양하며 그분을 경배하며 감사하는 자가 진정 믿음을 가진 자로구나.
5.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을 찬양하며 그분을 경배하며 감사하는 자가 진정 구원을 받게 되는구나.
6.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을 찬양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자는 영혼의 구원에 이를 수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