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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의 말씀은 왜 영이요 생명인가?(6:58~64)

[일시] 20190818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35장 큰 영화로신 주, 270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198장 주 예수 해변서

PW: 믿음, MIW: 영과 생명

T.S: 믿음이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영이요 생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왜 단순한 말이나 가르침이 아니라 영이며 생명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 말고도 이 세상에 많은 선각자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분의 말을 들어보면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해 감화를 줍니다. 그리고 인생의 여러 가지 교훈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분들을 멀리 가서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사실 우리 동이족의 선배였던 공자의 말과 가르침은 참으로 우리에게 훌륭한 인생교과서가 됩니다. 공자(B.C.551~479)는 예수께서 태어나기 500년전 쯤에 중국의 노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인도의 고타마 싯다르타 석가모니(B.C.563~483)와 거의 같은 연대에 살았던 인물입니다. 공자가 살던 시기는 춘추전국시대로서 중국은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그러다보나 노나라의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3살 때 아버지를 전쟁통에 잃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는 공부는 잘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과거제도가 없었기에 관직에 나가지도 못하여, 중년이 넘은 51세에 겨우 노나라에서 작은 관직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는 섭섭해하지 않았고, 늘 공부에 열중했습니다. 그가 훗날 쓴 책 논어학이편1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으면 그것이 군자가 아니겠는가?’” 참으로 멋지죠? 사실 그가 남긴 높은 도덕률 곧 인의예지 사상은 공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 모든 인생에게 큰 교훈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의 말씀은 이런 다른 선각자들과 가르침과는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아니, 혹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이러한 선각자들보다 못한 분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대체 누구이시며, 그가 한 말씀과 가르침은 다른 선각자들의 말과 가르침과는 어떻게 다른 것이었는지를 좀 더 깊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누군지를 잘 몰라보고 그분의 말씀을 들어보고는 그 말씀이 참으로 어렵다고 했을 때에, 주님께서 그들에게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다라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왜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은 다른 여타의 성인군자처럼말하지도 않았을 뿐러더, 자신의 말씀을 영이요 생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2)청중적 접근

우리는 오늘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정확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대상이 누군지를 모르게 되면, 다른 동서양의 선각자들이 남긴 교훈의 말과 가르침을 듣고는 그만 세상 성인군자들의 말과 가르침에 푹 빠져서, 신앙도 버려버리고 믿음도 저버리고 세상의 길로 가는 자가 참 많아지게 됩니다.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공생애의 초기였던 A.D.27년경예수께서 벳새다 들녘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푼 뒤, 무리들과 제자들을 떠나 먼저 가신 후 가버나움에 먼저 가셨는데, 그때에 가버나움에 있는 회당까지 쫓아온 무리들을 향하여 들려주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때 무리들에게 너희들이 왜 나를 찾아왔느냐? 너희들이 나를 찾는 까닭이 혹이 떡을 먹고 배부른 것 때문에 나를 찾아왔느냐 하시면서, 예수께서 왜 벳새다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켰는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요약하면 그것은 이렇습니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었지만 다 죽었느니라. 하지만 내가 주는 것은 그렇지 않으니, 그것을 먹고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줄 음식은 내 살이며, 음료는 내 피다. 나는 사실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너희의 조상들이 먹었고 또 죽었던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장차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4)문제발생원인

그러자 무리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듣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도다. 누가 그분의 말씀을 계속해서 들을 수 있겠는가?”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이 그것에 대해 수군거리는 것을 이미 아시고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는 것이냐?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어왔던 지금도 있던 곳으로 올가가는 바라본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6:63의 말씀입니다.

6:63[직역] 살게 만드는 것은 영이다. 육은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너희에게 발설해온(,,,) , 그 레마들은 영과 같은 것이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알지 못하면, 예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예수께서 그냥 이 세상에 있는 선각자 정도로 받아들인다면, 그분의 영적인 말씀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어렵다면서 주님을 떠나가 버리고 맙니다.

믿음이 있어도, 예수께서 왜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켰는지를 잘 모르게 되면, 그분이 주시는 떡만 보고 배부른 까닭에 주님을 따르려고 하게 됩니다.

믿음이 있어도, 예수님의 말씀을 그냥 가르침이나 교훈 정도로 안다면, 그 말씀이 그 사람에게 영을 살리는 말씀이고 되고 생명이 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과 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받아들여, 그분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말씀이요 생명과도 같은 말씀으로 취하게 되길 바랍니다.

 

. 예수님과 성인군자들의 말씀과 가르침은 서로 어떻게 다른가?

예수님은 위대한 성인군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들과는 전혀 다른 어떤 분이었을까요?

성인군자의 말과 가르침들에는 참 좋은 말씀들이 많습니다. 그렇더라도 그들이 남긴 말씀과 가르침에는 어떤 한계가 있는 것일까요? 그래서 오늘 저는 성인군자의 말씀과 가르침이 우리 주님의 말씀과 가르침과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만약 이 차이를 깨닫지 못하면, 공부를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세상 성인들의 말과 가르침에 탄복하다가, 그만 그들의 말과 가르침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과 가르침은 성인군자들의 말과 가르침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요?

그것은 첫째로, 그들의 말은 우리 인생의 좋은 교훈과 지침서가 될 수 있어도, 그것이 자신의 영을 살리는 말씀과 가르침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63). 다시 63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6:63[직역] 살게 만드는 것은 영이다. 육은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너희에게 발설해온(,,,) , 그 레마들은 영과 같은 것이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 말씀은 이해가 쉽게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것을 좀 더 풀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6:63[직역] [사람의 영을] 살게 만드는 것은 영이다. [사람의] [][사람의 영을 살게 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내가 너희에게 지금까지 말해왔던 말들 가운데 너희 마음에 부딪힌 레마말씀들은 사실 [너희의 영에게는] 영과 같은 말씀이요 [영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말씀이다.

그렇습니다. 세상 성인군자들이 말과 가르침은 우리가 아무리 믿고 따라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람 자신의 영을 살릴 수가 없는 말씀이요 가르침입니다. 죽은 영에게 생명을 가져다 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인군자들의 말과 가르침은 사람에게는 덕을 끼칠 수 있고 감화를 줄 수 있겠지만, 이미 죽어있는 영을 살리는 데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유고슬라비아출신의 성녀 아그네스 테라사 수녀님(A.D.1910~1997)를 알고 있습니까?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연필, 그것이 바로 저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몽당연필로 좋아하는 것을 그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불완전한 도구일지라도, 그것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십니다.”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그녀는 허리를 굽혀 섬기는 자는 위를 보지 않는다면서 자신의 몸을 가장 낮은 데로 낮추어 인류애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있었기에 20세기 혼란과 살육의 인류의 역사였지만 하나님의 용서가 인류에게 조금이나마 부어지지는 않았는가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건강한 남자들도 좀처럼 해내기 어려운 일들을 끊임없는 자기희생으로 살다간 몇 안 되는 성인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각박한 현대 인류사에 빛나는 정신을 보여주었던 그녀마더(어머니) 테레사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놀라지 마십시오.

18살에 수녀가 되어 88세의 일기를 마치기까지, 테레사 수녀는 그렇게 힘든 인생여정을 보내었지만 그녀는 끝내 이러한 말씀을 남기도 이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주여,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공허함과 어둠만이 보일 뿐입니다 그녀는 빈자들에게는 성녀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그녀 안에는 진정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신부와 교황에서 잘 보이기 위해 열심히 헌신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성녀로 보이기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영을 살려주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녀가 죽어갈 때에는 자신은 공허한 상태에서 어둠 가운데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남들이 보기에는, 그가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인생을 살았다고 회자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안에 있는 영을 살리려 오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는 죽어서 영원한 흑암으로 던져지고 말 것니다.

 

둘째, 성인군자의 말과 가르침은 고달프고 힘든 인생을 조금 은 위로해주고 세워주는 것이 될른지는 몰라도, 모든 죄와 고통의 원인인 이 세상의 임금 곧 마귀로부터 그를 건져주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6:62). 사람은 살다보면 죄를 짓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죄를 짓게 되면 그는 마귀에게 속하게 됩니다. 사실 아무리 좋은 가르침을 남기고 훌륭한 인생을 살다간 자라도 인간 내면에 들어있는 죄된 본성을 다 이기고 살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사물의 이치를 다 깨달은 자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는 또 다른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왜 공생애초반부터 마귀와 한판 영적으로 붙어야 했습니까? 왜 예수께서는 공생애의 1/3정도를 사람들로부터 귀신을 들추어내고 그것들을 쫓아내는 삶을 살아야 하셨습니까? 그리고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실 때에 복음만 전하라고 하지 말고, 왜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무리 세상 지식에 능통하고 득도한 자라 할지라도 결국 사탄마귀의 지혜 아래 놓여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사탄마귀는 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임금이기 때문입니다(12:31, 14:30).

12: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아르콘)[장차] 쫓겨나리라

성인군자라도 그 꼭대기에는 다 마귀가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14:30 이 후에는 [더이상] 내가 너희와 [함께]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왜냐하면]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내게(내 안에서) 관계할 것이(아무것도 가지지) 없으니(못한다)

그런데 오직 하나, 마귀가 이기지 못한 사람 하나가 있었으니 그분은 바로 광야에서 마귀와 싸워서 이기신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왜 보혜사 성령님을 믿는 자들 속에 보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그것은 그분이 오시면, 그분이 죄에 대하여, 그리고 의에 대하여, 그리고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고 했는데, 여기서 세상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의 임금이 [이미] 심판을 받은 채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6:11). 예수님에 의해 그는 광야에서 30으로 판정패 당했으며, 십자가에서 그의 머리가 상하여 무저갱으로 내어쫓겨났으니 주님이 오실 때까지 그는 무저갱에서 나오지 못한 채 있습니다. 그것은 계12장과 20장에 나옵니다. 세상의 고결한 학문은 그것이 높아보여도 보이지 않는 세계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셋째, 성인군자의 말과 가르침이 아무리 귀하고 소중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람의 죽음을 이기게 해 주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6:58). 요한복음 6장의 가버나움 회당의 메시지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간단합니다.

너희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이 분을 따라다니면 굶어죽지는 않겠구나 하고 나의 뒤를 따라왔지만 나는 너희에게 육체의 양식을 주려고 온 자가 아니다. 광야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육체의 양식을 준 것은, 내가 너희에게 영을 살리는 내 살과 피를 죽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내 살은 너희의 생명을 위한 것이 될 것이요, 내 피는 너희의 속죄를 위한 것이 될 것이니, 나는 아버지의 약속에 따라 보냄을 받아서 온 자. 이처럼 내가 온 것은 너희들이 지은 죄를 속량하고 생명을 얻게 하려고 왔으니,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내가 너희를 위해 내 몸을 내어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너희를 위해 행했던 내 살과 피가 너희의 속죄와 너희의 생명을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희의 영에게 생명이 공급될 것이이며, 너희가 마귀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이며, 너희가 죽어도 죽지 아니하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될 것이다. 고로 내가 이 땅에 온 목적을 알고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인생의 교훈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반드시 한 번은 겪어야 할 죽음 앞에서 죽음을 이기도록 하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사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모든 사람은 이미 육신의 죽음을 면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고 그분을 믿고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죽음 이후에 있을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그것에 대한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 예수님은 누구셨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은 누구신가요? 여타의 성인군자와 똑같은 지혜자요 선각자이자 그리고 훌륭한 도덕 선생님일까요? 그러나 그들과 우리 주님은 시작이 다릅니다. 그들은 자신의 부모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부모에 의해서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땅에 부모에 의해서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그분은 인류의 속죄를 위해 처녀 마리아의 태를 빌려 이 땅에 들어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엄마의 태중에서 처음으로 창조된 것이지만, 예수님은 이 땅에서 처음으로 창조되는 우리와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그분을 요셉의 아들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6:42).

오늘 가버나움 회당에서 들려주신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42절에 그분은 단지 요셉의 아들로만 불릴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46절에서 하늘 아버지로부터 오신 채 있는 분이셨습니다(6:46). 그러니 46절에, 홀로 아버지를 보았던 분이십니다(6:46). 또한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하늘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직접 내려온 생명의 떡이었습니다(50~51, 58).

, 58절의 말씀을 원문으로 직접 보겠습니다.

6:58 이것은(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었고 그리고 죽었던 그것(만나)와 같지 않다.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장차] 살게 될 것이다.

이제 51절을 봅니다.

6:51 나는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다. 만일 누구든지 이 떡으로부터 먹는다면, 그는 장차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내가 장차 줄 떡도 세상 [사람들]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그렇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을 먹고 생명을 얻도록,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있는(생명을 주는)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분을 음식으로 먹고 마실 때에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분이 우리 안에 잘 들어오실 수 있도록 그분은 친히 죽음을 통과하셨고 그 후에는 영이 되셨습니다.

고후3:17 [이제]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고전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살아있는 혼)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생명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순간적으로 숨(호흡)처럼 들어오십니다. 그래서 그분을 믿고 받아들인 자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당장에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군지를 잘 모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심으로, 그분이 이전에 있던 곳으로 가게 된다면, 그분이 누군지를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6:62).

 

. 그분의 말씀은 영이자 생명이라는 뜻은?

그렇다면, 그분의 레마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는 뜻은 무엇일까요? 참고로, 헬라어로 보면, “(프뉴마)”생명(조에)”라는 단어를 보면, 정관사가 붙어있지 않는 단어들입니다. 이는 영과 생명이 서술적인 용법으로 쓰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요6:63을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6:63[직역] [영을] 살게 만드는 것은 영이다. [사람의] 육은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발설해온(,,,) , 그 레마들(말씀들)은 영과 같은 것이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그분의 말씀이야말로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양식이 된다는 뜻이며, 우리의 영혼에 생명을 준다는 뜻입니다.

 

 

2)청중의 문제와 해결

고로, 그분의 말씀은 세상에 있었던 성인군자가 주는 말과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갈 때에 좀 더 성인군자처럼 살아가도록 도와주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남긴 말씀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첫째, 그분은 우리의 혼이 아니라 우리의 영을 살리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분의 말씀은 우리를 이 세상의 지배자인 마귀로부터 건져내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우리를 천국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야말로 우리의 영을 살리는 말씀이요, 생명을 주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그때 무리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곁을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제자들의 대표인 시몬베드로가 말합니다.

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른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많이 배우지 못했어도 다 영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마귀를 이기고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 그리고 죽어서 사망권세를 극복하고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 청중의 더 큰 복

아무리 이 땅에서 박사라는 말을 듣고, 동서양을 넘나드는 철학을 읖조리며, 세상 사람들로부터 성인군자요 성녀라고 불리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이심을 믿으며, 그분이 사람 되어 우리를 살리려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자신의 모든 죄를 다 용서받고, 마귀로부터 벗어나게 되며, 사망으로부터 일어나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2)결단

지금도 우리가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고 왜 오셨는지를 알고 그분을 믿고 받아들이면, 우리는 그분이 주시는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첫째, 죽었던 우리의 내 영이 소생하게 되며, 둘째로, 우리가 이 세상의 지배자인 마귀로부터 벗어나게 되며, 셋째, 죽어서 사망권세를 이기고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예수님은 이 세상의 오신 성인군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칙을 가르쳐주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처세술을 가르쳐 성공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직 한 가지 목적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살리려 오셨습니다. 그것도 우리의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영에게 생명을 주시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임금인 마귀로부터 건져내어 천국에 데려가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성인군자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속죄를 주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영에게 생명을 공급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마귀로부터 벗어나게금 못해줍니다. 그들은 우리가 죽을 때 이 세상을 탈출할 수 있게도 못해 줍니다.

그들이 뛰어난다고 할지라도 그들도 죄된 본성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지배하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지혜로워서 마귀로부터 지혜롭게 못하기 때문입니다.

 

. 결단의 축복

예수님을 믿어도 어쩡쩡하게 믿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마귀의 지혜를 당해내지 못합니다. 마귀의 사망권세를 이기지 못합니다. 마귀가 다스리는 이 세상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제 오직 한 분, 창조주 하나님이셨지만 우리를 살리려 오신 예수님만을 붙드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죽어보면 다 알게 됩니다. 그러니 믿음으로 예수님을 붙잡으십시오. 예수님은 오로지 이것 때문에 오셨다고 그 말만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예수님의 말과 가르침은 성인군자의 말과 가르침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의 말과 가르침은 사람의 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영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세상 성인군자의 말과 가르침이 아무리 좋아보여도 그것은 결코 우리를 마귀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하며, 죽음으로부터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은 성인군자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려 오셨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잘 살아가는 방법을 깨우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탈출하는 방법을 일러주러 오셨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의 말씀이야말로 우리의 영을 살리는 말씀이요 우리의 영에게 생명을 주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예수님만 따라가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마귀를 따라가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이 세상의 지혜를 따라가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이 세상의 가르침을 따라가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오직 예수님의 말과 가르침을 따라가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예수님이 누구며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를 깨우치지 못하게 가로막아온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세상지식에 온통 휩싸이게 하는 악한 영들은 묶임을 받고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이제는 오직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따라갈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이 세상 성인군자의 지혜와 지식이라도 인생에게 교훈되는 것이 있기는 있구나.

2. 그런데 예수님의 말과 가르침은 저들의 말과 가르침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지혜요 하늘의 지식이었구나.

3. 예수님의 말과 가르침은 사람의 영을 위한 것이로구나.

4. 예수님의 말과 가르침을 통해서만 마귀를 벗어날 수 있구나.

5. 예수님의 말과 가르침을 믿을 때에라야 죽음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되는구나.

6. 그래서 오직 예수님 뿐이라는 말씀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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