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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기도문강해(0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6:9)

[일시] 20190901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42장 거룩한 주님께, 91장 슬픈 마음 있는 사람, 645장 하늘에 계신 아버지(주기도문)

PW: 기도, MIW: 아뢰는 것이다.

T.S: 기도란 절대시오 전능자이신, 우리의 아버지에게 우리의 공동체의 필요를 아뢰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오늘은 기도에 관한 말씀을 나눌까합니다. 사실 기도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머리로 들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땀흘려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원리를 한 번쯤은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대체 누구에게 기도합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에게 기도합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우리 하나님이 누구시며,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그분이 과연 듣고 계신지 아니 듣는지를 잘 모르고 있다면 기도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기도를 받는 대상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에 가능한 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기도하고 있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의 기도를 과연 하나님께서 듣고 계신지에 대해 긴가민가하기 때문에 기도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도 우리 민족은 기도했습니다. 천지신명에게, 산신령에서, 당산나무아래에서, 단골네에게, 죽은 조상에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자기가 기도하는 대상이 어떤 존재인지를 잘 몰랐습니다. 그래도 그냥 지극 정성으로 기도하면 그 정성이 하늘에 닿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기도는 하지만 기도를 응답받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치자면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이 드리는 기도만약 그분이 내 기도를 듣고 있는지 아니 듣는지 모른 채 기도하고 있고, 그분이 정말 내 기도를 응답해주실 수 있을른지에 관해 의심하고 기도한다면 그 사람은 지금 조선시대에 미신을 섬기고 있던 시대와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기도드리는 대상이 누군지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내일부터 오는 토요일까지 우리는 9월 특별새벽집회를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합니다. “하늘과 땅을 위하여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기도드릴 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누굴까요?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겠지만, 오늘 본문 말씀에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이라고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기도하라고 나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에게 기도할 것을 명하셨을까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할 때에 누구에게 기도할 것을 정해주셨는데 놀랍기도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혹은 여호와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대상인 하늘[] []에 계시는(있는) 우리[들의] 아버지[시여]”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6:1,7:11).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2가지 부정적인 기도 곧 유대인들의 외식하는 기도와 이방인들의 중언부언의 기도가 잘못된 기도라는 것을 가르쳐주신 후에,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시되, 기도를 받는 대상은 바로 하늘들 안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라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왜 예수께서는 기도할 때에 여호와혹은 하나님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아버지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리고 예수님은 왜 그분을 하늘에 계신 분이라고 소개하셨을까요? 그분을 땅 위에나 음부에 계시는 분이라고 소개하지 않으셨을까요?

 

2)청중적 접근

오늘날 한국교회 성도들은 과연 얼마나 기도시간에 나와서 기도하고 있을까요? 왜 우리는 기도하러 나오라는 교역자의 말에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것인가요?

기도하지 못하도록 가족이 방해하고 있어서입니까? 아니면 어떤 다른 유혹이 있어서 그것을 뿌리치지 못해서 기도하러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까? 대체 오늘날에 한국교회의 많은 성도들은 기도하지 않는 것일까요?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당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잘못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는 참된 기도를 어떻게 드릴 것인지에 관하여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주님께서는 이 때, 하지 말아야 할 기도를 2가지를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유대인들의 기도의 형태인데, 그것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는 외식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다른 사람이 듣고 보라고 하는 기도가 아니라,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이방인들의 기도의 형태인데, 그것은 많은 말을 해야 들을 것이라고 믿고 드리는 중언부언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우리의 무슨 일로 기도하러 왔는지를 이미 다 알고 계식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이와같은 방식으로 계속해서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기도의 대상과 기도할 내용을 알려주시는데, 오늘말씀은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으로서, 우리가 누구에게 기도하는가에 관한 말씀으로서, “하늘들 안에 계시는 우리의 아버지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사람에게만 보이려고 하는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은밀히 보시고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과시하게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도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들으실 줄 알고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계속해서 반복하게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어떻게 기도해야 기도가 응답되는지 잘 모른 채 기도하게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기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는지 아니 들으시는지도 알지 못한 채 기도하게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올리는 기도를 들어주고도 남음이 있는 전능자이신지도 모른 채 기도하게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인 것을 모르기에, 자신의 드리는 기도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분이라고 잘못 생각하게 됩니다.

 

 

3. 문제해결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언제나 들으시고 응답하실 수 있으며, 우리의 기도를 듣고 반드시 응답해주실 수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자 우리의 아버지를 향하여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1)인간의 헌신과 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럼, 우리는 누구에게 기도해야 합니까?

헬라어 원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파테르 헤몬 호 엔 토이스 우라노이스이다. “아버지, 우리들의, 안에 [계시는/있는], 그 하늘들이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522065a8.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72pixel, 세로 145pixel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해야 할 대상, 다시 말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누군지에 관하여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3단어입니다.

첫째는 아버지에게 기도하라. 둘째는 우리의 아버지에게 기도하라. 셋째는 하늘들 안에 계시는 우리의 아버지에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왜 예수께서는 하나님에게 기도하라내지는 만군의 여호와께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너희의 아버지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이제는 헬라어 본문에 나오는 기도를 들으신 분에 관한 3가지 호칭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내일부터 6일동안 진행될 특별새벽집회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누군지를 알고 기도하는, 그래서 틀림없이 응답받는 놀라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아버지(파테르)(Father)

이것은 사실 파격적인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드렸던 대상은 위엄과 두려움의 여호와 하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도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냥 주님이라고 불렀을 뿐입니다. 이다. 더더욱 그들을 하나님을 결코 자기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습니다. 구약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버지라고 소개한 적이 있지만(14),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한 적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하나님은 심판과 공의의 두려움의 하나님이었지 결코 친근한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약시대에는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의 아들들로 거듭 태어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개할 때에 자신을 아버지라고 하신 것은 첫째, 하나님이 그들을 지은 창조주요(64:8), 둘째, 이스라엘의 국가를 세우신 분이요(32:6), 셋째, 그들의 주인이라는 뜻(1:6)에서 아버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64: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32:6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이스라엘백성의)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실제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아버지(조상)아브라함이라고 말합니다(16:24).

16: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기도드릴 대상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계실 때에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님 혼자였는데 말입니다(12:50,16:17).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그런데 이제는 하늘에 계신 그분을 너희의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제는 예수님만이 아니라, 당신의 제자들까지 아들들로 낳아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의 아버지가 되실 것임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도나이에서 아버지 호칭을 바꾸어서 부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당신의 자녀들과 아버지와의 친밀성과 그리고 관계성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내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고 칩시다. 그때에 다른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무엇인가를 구하는 것과, 자신의 아들딸이 대통령인 아버지에게 구하는 것은 동일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 조국 사태도 자신의 아들딸에게는 관대한 아버지의 모습이 역력하게 보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제 자신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예수께서 죽은지 나흘된 나사로를 살릴 때의 기도를 참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11: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요11: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내어주는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항상 들어주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신적 존재에게 하나님에게 기도하기는 기도하는 것이지만 실은 우리의 아버지되신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낳으신 아버지가 되시기에, 그분은 결코 나와 동떨어져있어 나의 일에 관심이 없는 분이 아니라, 나의 일에 가장 관심을 많이 기울이시는 분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나의 가장 가까이서 나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뜻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에는 바로 이러한 자세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7:9-11 너희 중에 [아비된 자가]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 우리의 아버지(파테르 헤몬)(Our Father)

그런데 예수께서는 기도할 때에 그냥 아버지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기도할 때에 우리들의 아버지로 부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을까요?

이것은 우리기 기도할 때에 개인적인 이기적인 욕망을 따라 기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다 유익하도록 기도할 것을 주문하신 것입니다. 나의 필요, 나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는 기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공동체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기도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자기가 속한 모두의 공동체을 허물어뜨리는 기도를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은 믿는 이들은 과거에는 혈육이 서로 다르게 태어났기에 서로 남남인 관계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영적인 아버지로 모시고 섬기는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형제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알고, 형제의 필요를 내 필요로 알고 기도하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것은 우리 믿는 이들이 시대와 인종과 계층의 장벽을 뛰어넘어 우주적인 대가족인 것을 생각하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는 힘없는 자들”, “가지지 못한 자들”, “능력이 약한 자들을 소외시키고 그들을 누르고 압제하는 기도를 해서는 아니 됩니다.

 

. 하늘들 안에 계시는(In the heavens)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장차 제자들이 기도할 때에는 하늘 안에 계시는 그분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럼, 왜 예수께서는 그냥 땅 위에 계시는 하나님혹은 땅속 음부에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가르치시지 않고, 그분을 하늘들 안에 계시는 우리의 아버지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것일까요?

이것이 매우 중요한 것인데, 이러한 수식어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수 있는 대상의 능력과 그분의 들으심에 관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들 안에 계시다는 말은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과 절대 초월성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늘은 삼층천입니다. 그들은 새들이 날아다니는 첫째하늘(sky)이 있고,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둘째하늘(space)이 있으며, 하나님과 천사들이 있는 셋째하늘(heaven)이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도바울도 고후12에서 자신의 사도성에 대해 의심을 갖는 자들을 향하여 과거에 자신이 보았던 환상과 계시를 언급하는데, 그가 14년전에 셋째하늘에 이끌려갔었노라고 고백합니다(고후12:1~2). 그리고 그는 셋째하늘에 있는 낙원안으로 이끌려 가서 사람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레마를 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다고 소개하고 있습니까? 그분은 셋째하늘에만 계시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들즉 첫째하늘과 둘째하늘과 셋째하늘 모든 곳에 계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분은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시다는 표현임과 동시에, 이 우주는 그분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를 들으시는 그분이 저 위에 있는 하늘들에 계시다는 것은 그분은 모든 인생들의 기도를 다 듣고 계시다는 것을 뜻하며, 인생들이 드리는 모든 기도에 다 응답해줄 수 있는 절대자요 초월자이며 전능자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분은 우리의 기도를 듣지 못하거나 응답해주실 수 없는 모자라는 분이 아닙니다. 또한 어쩌다가 우리의 기도를 귀로 못 들을 수 있는 분이 결코 아니신 것입니다. 다 듣고 계시고 모든 기도에 응답할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115:3~8). 그분은 우상들이나 귀신이나 우리의 육체의 아버지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115:3-8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4 그들(이방나라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5 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6 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7 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8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사실 하나님은 유한한 우리 피조물인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절대자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초월해 계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 위에 계시는 분이시기에 그분이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으십니다.

139:1-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하늘에 오르신 예수께서는 이제 그의 영을 이 땅에 보내시어 그 영을 통해서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있습니다.

삼하22:7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2)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기도란 절대 초월자시오 전능자이신 우리의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요, 우리를 자녀로 낳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확인하는 것이며, 우리 공동체의 필요를 채우고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우리가 기도하면 하늘들에 계신 우리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들으십니.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하면 우리의 공동체의 필요를 아시는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심지어 우리가 고통 중에 있을 때에 우리가 부르짖으면 그곳이 어디든지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예수님께서는 우리더러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더러 기도하기는 기도하되 첫째, 사람 앞에 보이기 위해 기도하지 말고, 오히려 은밀한 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둘째, 많은 말을 해야 들으실 줄 잘못 알고 길게 기도하거나 많이 기도하는 이방인의 기도를 따라하지 말고, 오히려 기도하기 위해 이미 나올 때부터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분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셋째, 그분이 신적 존재이기는 하나 이제를 우리를 자녀로 낳으셨기에 그분은 언제 어디서나 가까이서 우리에게 집중하고 계시고 언제나 관심갖고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넷째, 개인적인 이기적인 욕심보다는 공동체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기도보다는 중보기도가 훨씬 더 기도응답이 잘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섯째, 그분은 하늘에 계시는 절대초월자요, 전능자이시기에, 언제 어디서나 우리가 무슨 기도를 드릴 지라도 다 응답하실 수 있는 분임을 알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사정을 듣고도 해결해 주실 수 없는 무능한 아버지가 아니십니다. 그분은 어쩌다가 졸아서 우리의 기도를 까먹는 분도 아니십니다. 그분은 절대 초월자요 전능자이시며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수 있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번 한 주간은 기도하는 한 주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귀한 기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결단의 축복

기도하면 하늘 아버지께서 들으십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우리 하늘의 전능자께서 응답해주십니다.

이제는 거꾸로 말해보겠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듣지 아니하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전능자이신 것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러 오십시오. 우리 하늘 아버지가 얼마나 크고 위대한 분이신지를 이번 한 주간을 통해서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은 어떤 기도를 원하시는가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한 주간은 놀라운 한 주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수시로 암송하는 주기도문이 이처럼 크고 위대한 기도였고, 완벽한 기도였는가에 놀라게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체험하는 한 주간이 되실 것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오늘은 우리가 누구에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우리의 하나님은 경외해야 할 대상이지만 동시에 기도시에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개인의 이기적인 기도보다 공동체의 필요를 간구할 때에 기도응답이 더 잘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절대초월자요 전능자요 무소부재하신 분이시기에 어떤 기도도 그리고 언제든지 응답하실 수 있는 분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기도에 열심내지 못했나이다.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언제나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어디서든지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믿고 기도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 누군지를 알지 못하게 가로막은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기도를 들으시는 하늘 아버지께 나아오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기도에 열심을 낼지어다. 하늘 아버지를 늘 가까이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외식하는 기도와 중언부언기도는 잘못된 기도였구나.

2. 은밀히 보시며 기도하기 전에도 이미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늘 아버지께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는구나.

3.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시로구나.

4. 지금 하나님께서는 신적 존재로가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로서 기도를 들으시는구나.

5. 개인의 이기적인 기도보다는 공동체의 필요를 위한 중보기도가 응답이 더 잘 되는구나.

6.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어떤 기도라도 다 듣고 있고, 모든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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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 그 길을 어떻게 영광의 길이라 할 수 있나?(요13:30~32)_2019-11-24(주일) 갈렙 2019.11.24 182
256 죽은 자를 기념하는데 왜 예수님은 되고 죽은 자들은 안 되는가?(고전11:23~26)_291-11-17(주일) 갈렙 2019.11.17 259
255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눅13:22~30)_2019-11-10(주일) 갈렙 2019.11.10 352
254 초막절을 지키지 않으면 정말 비를 내리지 아니하는가?(슥14:16~19)_2019-11-03(주일) 갈렙 2019.11.02 317
253 왜 하나님은 일주일간 초막에 거주하라고 했을까?(레23:39~44)_2019-10-27(주일) 갈렙 2019.10.27 234
252 받은 은혜에 내 한 목숨 주님께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눅17:11~19)_2019-10-20(주일) 갈렙 2019.10.19 249
251 외부세력의 위협 앞에서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행4:23~32)_2019-10-13(주일) 갈렙 2019.10.13 422
250 이제는 WCC와 WEA에 속한 교회를 떠나야 하는가?(계18:1~8)_2019-10-06(주일) 갈렙 2019.10.06 317
249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 과연 어디까지 해야 하나?(요18:33~38)_2019-09-29(주일) 갈렙 2019.09.29 248
248 예수님 이후 참된 지혜자는 누구인가?(마11:25~27)_2019-09-22(주일) 갈렙 2019.09.21 278
247 우리의 본향은 진정 어디인가?(히11:8~16)_2019-09-15(주일) 갈렙 2019.09.15 418
246 주기도문강해(08)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마6:13)_2019-09-08(주일) 갈렙 2019.09.07 248
» 주기도문강해(0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6:9)_2019-09-01(주일) 갈렙 2019.09.01 228
244 바울의 기도와 내가 드려야 할 기도(엡1:15~19)_2019-08-25(주일) 갈렙 2019.08.25 286
243 주님의 말씀은 왜 영이요 생명인가?(요6:58~64)_2019-08-18(주일) 갈렙 2019.08.18 259
242 영지주의자라 할지라도 절대 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요일5:19~21)_2019-08-11(주일) 갈렙 2019.08.11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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