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세 종류의 경배자들(마2:1~12) [일시] 2019년 12월 22일(주일) 오전9시,11시 [찬송] 찬64장 기뻐하며 경배하세, 찬112장 그 맑고 환한 밤중에, 찬122장 참 반가운 성도여 PW: 경배, MIW: 섬김 T.S: 경배는 심령이 가난한 자와 미리 준비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섬김의 행위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성탄절을 예전에는 “크리스마스”라고 불렀습니다.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중세 로마카톨릭의 미사에서 유래한 말로서,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것을 기념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미사를 올리자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로 넘어오면서 “미사”는 “예배”라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1946년에 나온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단이 펴낸 합동찬송가에는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나옵니다. 지금의 찬123장의 제목이 그때에는 찬96장이었는데, 찬송가 제목이 “첫 번 크리스마스(Thr first Noel the angel did say)”였습니다. 밤에 양떼를 치던 목자들이 첫 번째 경배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아기예수가 나신 것을 경배하고자 했던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였으며, 그들은 어떻게 경배를 드렸을까요? 그들의 경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참된 경배자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오늘은 성탄절을 며칠 앞둔 대강절 마지막 주일에, 오는 성탄절을 맞이하는 성도들의 마음자세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유대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자 저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와 경배하면서 자기들이 준비해 가져온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는 말씀입니다.
동방박사들은 당시 파르티아제국에 살던 이방인들이었는데 어떻게 되어서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이를 경배하러 찾아온 것인가요?
그들은 유대인처럼 확실한 정보도 가지지 않았는데 어디를 찾아가서 경배하려고 메시야를 찾아온 것인가요?
그들은 별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왕궁의 박사들로서, 많은 시간동안 자리를 비우게 되면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없을 터인데, 왜 아기를 경배하러 간 것인가요?
3,200 km이상의 머나먼 길을 가다보면 살아서 다시 돌아간다는 보장도 없을 터인데, 그들은 어떻게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날 수 있었을까요?
2)청중적 접근
필연적인 일도 아니고, 간단한 일도 아니며, 살아서 돌아간다는 보장이 전혀 없으며, 갔다가 오면 자신이 지위가 없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 있다면, 과연 나는 동방박사처럼 메시야의 별을 찾아 길을 떠날 수 있을까요?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27년경 유대땅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서 일어난 사건을 말합니다. 당시는 헤롯대왕이 약 62세의 나이로 유대인의 왕으로 다스리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동방 즉 아나톨레 곧 동쪽으로는 어떤 박사들 곧 마고이로서, 천문점성술자 혹은 천문역학자들이 자기들이 있는 지역에서 메시야의 별을 보고는 태어난 메시야를 경배하러 왔다는 말씀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그런데 어찌 보면 동방박사들의 여정은 무모한 듯이 보입니다. 첫째, 사실은 자기들이 살던 지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고 물었을 때 과연 예라고 대답하기가 어려웠을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러한 남편과 아버지를 그냥 갔다고 오라고 가족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래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넷째, 갔다오면 직업이 상실될 수도 있었습니다. 다섯째, 메시야를 찾아간다고 하지만 과연 만날 수 있을지 보장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길을 떠난다고 해도 과연 그 아기 메시야를 만나게 될른지도 전혀 알 수 없으며, 가다가 어떤 강도를 만나 과연 살아서 갔다 올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인데도 그들은 메시야에게 경배하고자 귀한 선물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먼 길을 떠나게 됩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기약없는 길을 떠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갔다가 살아서 돌아올른지 보장이 되지도 않는 위험한 여행을 결코 떠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기나라의 왕자가 태어난 것도 아니므로 굳이 태어난 왕의 아들에게 경배하고자 무모한 시도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갔다 돌아왔다가 자신의 직업도 잃을 수 있는 것을 알면서도 길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태어난 메시야에게 드릴 선물을 미리 준비할 수도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기 나라의 왕자가 태어난 것도 아닌데, 굳이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이를 찾아나서는 무모한 도전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방박사들은 믿음으로 태어난 메시야를 경배하고자 길을 떠났습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가. 동방의 박사들은 대체 누구였는가?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동방박사들(마고이)은 대체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자기들이 살던 곳에서 그의 별을 보고 길을 떠난 자들입니다(2절).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마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마2:2[직역] "유대인들의 왕으로 낳아지신(틱토) 이가 어디 있습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동방 안에서 그의 별을 보았으며 그리고 그분에게 [단번에] 경배하러 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절반만 아는 정보였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엄마가 자식을 낳아서 탄생하는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가 자식을 보는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엄마가 자식을 낳는 의미의 “틱토(tikto)”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헤롯대왕이나 유대인들은 메시야는 아버지가 자식을 보는 “겐나오(gennao)”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마2:1[직역] 그런데 헤롯 왕의 날들 안에 예수께서 유대의 베들레헴 안에서 태어나게 되신(자식을 보게 되신, 겐나오) 후에, 동방으로부터(아포) 천문역학자들이 예루살렘 안으로 당도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말하고 있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방의 박사들은 메시야를 만나서 그에게 경배하고자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길을 떠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얼마나 먼 거리에서 찾아온 것인가요? 당시 동방에는 “파르티아”라는 제국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을 타고가면서 활을 쏘는 민족이었습니다. 이 세상 나라 들 가운데 로마제국과 맞장을 뜬 유일한 하나의 제국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파르티아제국입니다. 파르티아 제국은 (B.C.247~A.D.226)는 헬라제국이 통치하고 있던 시절의 중간즈음에 생겨난 나라로서, 페르시아의 유목민 아르사케스 일족이 헬라제국의 셀류코스 왕조의 지방 총독을 몰아내고 B.C.247년경에 세운 나라입니다. 그래서 일명 ‘아르사크 왕조’라고도 부릅니다. 그리고 중국의 옛 사서에서는 중국식 발음표기법에 따라 안식국(安息國)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의 수도는 여러 군데로 이사를 했지만 대부분 “니사(Nisa)”라는 곳을 수도로 삼았습니다. 오늘날의 투르크메니스탄의 “아슈하바트”라 불리는 “니사”는 기원전 즉 B.C.3세기 중반부터 기원후 즉 A.D.3세기 초반까지 중앙아시아를 지배했던 파르티아 제국의 수도였습니다(지금은 ‘투르크메니스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바벨론에 잡혀온 유대인들로부터 메시야에 대한 소식을 듣고는 별을 연구하다가 메시야의 별을 발견하고는 3,200km나 되는 머나먼 거리를 찾아온 자들입니다. 말이 3,200km이지, 그들은 살아서 다시 돌아갈 기약이 없이 그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태어난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를 원했거나 경배했던 자들은 이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나. 아기예수께 경배하기를 원했던 세 종류의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아기 예수께서 태어났을 때, 당시 3종류의 사람들이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헤롯대왕이었고, 마태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누가복음 2장에 보면, 밤에 베들레헴 지경에서 밖에서 자기의 양떼를 치던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동방박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헤롯대왕은 왜 아기예수를 경배하고자 했던 것일까요?
첫째, 아기예수를 경배하고자 했던 첫 번째 사람은 오늘 본문에 나와 있듯이 헤롯대왕(재위 (B.C.37-A.D.4년)입니다. 그는 B.C.73년경에 태어난 사람인데, 그의 나이 62세 정도가 되었을 때, 동방박사들의 방문을 통해서 메시야의 탄생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사실 유대인이 아니라, 에돔족속의 후예로서 이두메사람인데, 워낙 정치적인 수완이 뛰어나 로마에 가서 살면서 로마의 황제로부터 유대의 왕이라는 직분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약40년간 유대를 통치합니다.
그런데 그는 얼마나 포악하고 사람을 믿지 못한 사람이었는지, 자신의 아들 7명 가운데서 3명을 죽여 없애버렸고, 자기의 왕위를 굳건히 지키고자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이었던 자신의 아내마저 죽여 없앴으며, 장모도 처참하게 죽인 비정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이 찾아와 전해준 소식 곧 메시야가 탄생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얼마나 놀라워했겠으며 당황했겠습니까?
그는 겉으로는 태어난 아기께 경배하고자 한다고 말했지만 그는 진짜 아기예수를 경배하고자 함이 아니라, 자신의 정적이 태어났으니 그를 없애버리려는 생각에서 동방박사에게 거짓으로 말을 한 것입니다.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7~8절의 말씀입니다.
마2:7-8 이에 헤롯이 가만히(몰래)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파이디온)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그는 그곳에 가서 결코 경배하지 않을 사람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가 행한 나중의 행동에 나옵니다., 그는 동방박사들이 되돌아오지 않자, 군사들을 보내 2살 아래로 베들레헴에 있는 사내아기를 다 죽인 살인자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가 아기예수를 경배하고자 말한 것은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에서 한 말이었지 진짜 태어난 메시야를 경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이뤄보겠다는 야심을 이루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 예수님을 경배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자들은 결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런 자는 끝까지 메시야를 진정으로 경배하지 못합니다.
둘째, 아기 예수께 경배했던 자들로 목자들이 있습니다(눅2:8~14). 이들은 당시 사회로부터 짓밟히고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 주민으로서의 정당한 권리, 예를 들어 선거권이나 피선거권의 자격도 주어지지 않았고, 법정에 섰을 때에 증인으로 채택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정보는 주후 5세기에 나오는 문헌에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탄생 때에 목자들은 다른 각도에서 보아야 합니다. 사실 유대인들의 조상은 야곱인데, 야곱은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그의 아버지 이삭 때부터 여전히 목자였고, 자신도 목자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따르는 다윗도 역시 목자였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목자는 사람 취급받지 못하는 존재라기보다는 오히려 낮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로 특징지워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가난했기에 오히려 하나님의 메시지에 긍정적으로 반응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천사들이 그들에게 나타나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을 때, 그는 천사들의 소식을 믿고서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나신 아기를 뵈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그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이들은 메시야가 세상의 권력자들이나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실은 유대인의 왕으로 누가 태어나든지 별로 관심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천사가 전해준 소식은 그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눅2:10-12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왜냐하면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바라고 바라는 자의 탄생소식 곧 메시야의 탄생에 관한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얼마후 하늘에서 나타난 수많은 천군천사들도 합창으로 노래했습니다.
눅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했던 그들은 천사가 전해준 소식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직접 그 사실을 확인해보고자 베들레헴동네로 가보았습니다. 그들은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하고 말라고는 서둘러 베들레헴으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뉘여있는 아기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첫번째 경배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그 아기에 관하여 했던 말을 그대로 전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스스로 원해서 아기예수에게 경배한 자들은 아니었습니다. 천사가 가르쳐준 놀라운 소식을 들어서 비로소 메시야의 탄생소식을 알았던 자들입니다. 그래도 이들은 참 잘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천사가 전해준 소식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의 부모를 제외하고 가장 먼저 메시야의 탄생을 알고 경배하고 전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 해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동방박사들의 크리스마스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천사의 갑작스런 방문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양떼를 잠시 들에 놔 둔 채 아기예수의 탄생을 확인하려고 베들레헴 동네로 달려갔습니다. 그리하여 첫 번째로 아기예수께 경배를 올린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날 밤에 갑작스럽게 이 모든 일이 일어난 터라, 아기예수를 경배할 만한 합당한 예물을 준비하지는 못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일이 그들의 손에는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동방박사들의 경우는 다릅니다. 이렇나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과연 어떤 사람을 찾을 것인지를 금방 알게 해 줍니다.
셋째, 아기예수를 경배하였던 자들 중의 핵심에는 동방박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메시야가 태어나기 수개월 아니 적어도 1년 훨씬 이전에 파르티아를 출발해 유대 땅을 찾아갔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아기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까지도 내려놓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배우고 들었던 모든 지식과 정보와 지혜를 동원하여 메시야를 찾아나셨습니다. 한 마디로, 메시야를 찾아 경배하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자들입니다. 그들은 항상 메시야의 오심을 사모하던 자들입니다. 일평생에 한 번만이라도 메시야를 만나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메시야를 찾아 떠나가기 전부터 아기예수를 찾아 만나면 드리려고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혹시 잘못 되어 도적떼를 만나 그 값진 예물을 빼앗길 수도 있을 지라도 그것이 메시야를 경배하고자 하는 마음을 억누를 수는 없었습니다.
가다가 중간에 실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 땅까지는 잘 왔지만 메시야의 탄생장소가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야가 태어날 장소로부터 약10km 떨어진 장소인 예루살렘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은 유대인의 왕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의 헤롯의 궁전이었습니다. 만약 이들이 구약성경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들은 곧바로 “베들레헴”으로 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 중에서 “미가”라는 선지자가 이렇게 예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미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그러나 그들은 메시야의 대한 정확한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자기 도시에 살던 유대인들을 통해서 장차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자를 보내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헤롯대왕의 도움 때문에 메시야가 태어날 정확한 장소를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헤롯대왕도 그 장소를 몰랐는데, 그가 모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불러모아 메시야가 어디에서 태어나겠는지를 물어서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자기의 나라를 이끌어갈 왕자의 탄생을 축하하려고 길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른지 알 수 없는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하루 이틀 한 달 정도 금방 갔다가 올 수 있는 길을 떠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에스라 7장 9절에 의하면, 에스라의 인도를 따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는 4달(1월 1일에 출발하여 5월 1일에 도착)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길이는 약800km정도입니다. 그런데 파르티아의 니싸(Nisa)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3,200km가 됩니다. 그러니 적어도 16개월(1년 4개월)을 걸어가야 도착할 수 있는 길이입니다. 그러니 수개월이 아니라 1년 반 정도를 가야 겨우 갈 수 있는 길을 떠난 것입니다. 그것도 오직 네비게이션은 길 따라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길을 곧바로 이동하는 별이었습니다. 그러니 길을 따라 간 것도 아닙니다. 그냥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이동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걸고 그 길을 떠난 것입니다. 그것도 반드시 자기가 메시야를 만나서 경배드리겠다고 선물까지 준비해서 말입니다.
다. 다시 오실 주님을 우리는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결국 누가 메시야를 경배할 수 있는 것입니까?
첫째는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일러준 소식을 들었을 때 듣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진짜인지 직접 찾아가서 확인해보는 자가 메시야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우리는 가만히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확인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런 자들이 메시야를 만나서 경배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첫 번째 크리스마스 경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동방박사들의 경우처럼 메시야를 만나서 경배하겠다는 마음의 각오를 가지되, 그분을 만나러 가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분을 만나보아야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먼 길이라고 마다하지 않고 도전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메시야를 경배할 줄 믿고 태어난 메시야에게 드릴 선물을 미리 준비해둔 자입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했지만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을 떠날 수 없었다고 말입니다. 지금도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메시야를 경배하기 위해 오는 동방박사들이 있었기에,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을 떠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원래 처음에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에서 방을 얻지 못했습니다. 호적하러 온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기거할 방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에 의하면, 요셉과 마리아와 아기 예수께서 머물러 계신 곳은 더 이상 ‘마굿간’이 아니라 어느 ‘집’(오이코스)입니다. 이미 호적하러 온 자들은 다 떠나갔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요셉과 마리아만이 그 동네에 남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방박사들이 경배하러 그곳에 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경배란 심령이 가난한 자요 미리 준비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참다운 섬김입니다.
5.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어떻게 되었습니까? 동방박사들은 3,200km나 되는 장거리 여행 중에 도적을 만나지도 않았고, 풍토병에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메시야가 탄생한 곳을 정확히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자신들이 준비해온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려 아기예수께 축하할 수 있었습니다.
나. 청중의 더 큰 복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결국 메시야를 만날 수 있습니까? 다른 욕심이나 속셈을 가지고 주님을 만나러 해서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는 심령이 가난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듣게 되면 그 말씀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만나 보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열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떤 어려움과 역경도 이겨내야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자신은 반드시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미리 그분께 드릴 감사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2)결단
우리에게는 태어나신 아기예수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경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오후찬양예배에 어찌하든지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는 수요일에 성탄축하예배를 통해서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마음과 정성을 준비하여, 아기예수님께 참다운 경배를 드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바로 이러한 자들이 다시 오실 주님도 잘 준비할 수 있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도 심령이 가난한 자가 그분을 만나보게 되는 것이요, 그분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믿는 자가 만나보게 될 것입니다. 그분이 있기에 오늘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자가 그분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을 만나면 무엇을 드릴까 하면서 주님께 그날 바칠 예물을 준비하는 자가 그분을 만나보는 것입니다.
나. 결단의 축복
주님은 오늘도 심령이 가난한 자를 찾습니다. 말씀이 나와 있으면 그대로 믿는 자들을 찾습니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과 역경에 처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오직 메시야를 만나겠다는 열심을 품고 준비하는 자 그리고 그분을 만나면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를 알고 미리 준비하는 자를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누가 주님을 만나보며 경배할 수 있는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심령이 가난한 자가 주님을 만나서 경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을 만나고 경배하기 위해서는 직업과 목숨이라도 내어놓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감사의 예물을 준비하는 믿음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들은 말씀을 그대로 믿지 못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주여, 주께 드릴 것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부족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주님을 찾고 찾는 자가 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죽을 것을 각오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미리 준비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믿음으로 사는 자가 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죽음을 두려워하게 하여 결단을 방해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믿음을 약화시키려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심령이 가난해지고 죽기를 각오하며 주님만 따라갈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해지는구나.
2. 메시야를 만나고 그분을 경배할 마음이 간절한 자가 주님을 만나게 되는구나.
3. 주님을 만나기까지 쉬운 여정만 있는 것은 아니로구나.
4. 죽기를 각오할 때 하나님이 길을 여시는구나.
5. 누구나 다 알고 시작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구나.
6. 주님은 미리 준비하는 자의 기대를 결코 저버리지 아니하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