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모형론적(예표론적) 성경해석, 왜 필요한가?(고전15:42~49)

[일시] 202038(주일) 오전9,11

[찬송] 43장 즐겁게 안식할 날, 58장 지난 밤에 보호하사,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PW: 믿음, MIW: 모형론적인

T.S: 믿음이란 성경의 비유말씀을 모형론적으로 푸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연일 계속되는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교회가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가정에서 인터넷과 SNS로 예배를 드는 실정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집에서 예배드리는 비상사태를 먼 미래의 일로만 알았으나 전염병으로 인하여 이젠 현실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는 분들은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니 성전예배가 그리워질 것입니다. 성도들과 함께 부르는 찬송소리도 그립고, 함께 마주앉아 식사하는 것도 그리울 것입니다. 사실 지난주부터 교회에서 식사를 하지 않으니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는 생각해보았습니다. 영의 양식을 먹는 일이든지 육신의 양식을 먹는 일이든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죠, 그런데 이번에 대구 신천지에서 집단적으로 발발한 한국형 코로나 사태신천지가 얼마나 심각한 밀교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사회와 가정에 암적인 역할을 잠행해온 존재였는지 그 위험성을 잘 부각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왜 사람들이 신천지의 성경해석에 속아넘아가 가정을 버리고, 학교를 버리고, 직장을 버리게 되었는지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사용해온 비유풀이짝풀이가 한국형 알레고리 성경해석방법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알레고리 성경해석은 A.D.185~254에 살았던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오리겐에 그의 스승이었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A.D.150~215)에 의해 촉진된 것이며, 그 이전에는 유대 역사가요 신학자요 철학자였던 필로(A.D.15~45)가 비유적 성경해석법으로 사용했던 것이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경해석법은 헬라철학자들마저 굴복시킬 수 있었던 놀라운 성경해석방법이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알레고리 해석방법의 위험성입니다. 지금까지 알레고리 성경해석방법을 사용했던 학자치고 이단으로 끝나지 않은 신학자는 없었습니다. 그만큼 알레고리는 심오한 성경해석방법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가지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지난주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이러한 성경해석법이 신천지에서만 사용하는 성경해석 방법이 아니라, 전세계에 약 240만명의 신도수를 가지고 있는 자생적인 한국 이단인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일명, 안상홍증인회)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성경해석방법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그럼,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답을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대체 우리는 어떻게 성경을 해석해야 이단에 빠지지 않으며, 성경에 제대로 이해하는 성경해석을 할 수가 있는 것일까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지금까지 이 강단에서 선포되던 메시지가 다 이러한 성경해석방법에서 나온 것이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정리할 차례가 된 것입니다. 모쪼록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여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원자됨을 믿어서 모두가 다 영생에 이르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바울이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해 언급하면서,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을 서로 모형론적으로 비교했다는 말씀입니다.

왜 사도바울은 세상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꼭 예수님을 둘째 사람이자 마지막 아담이라고 해석하게 되었을까요? “둘째 사람은 순서적으로 보자면 하와 내지는 가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둘째 사람을 그리스도라고 해석했으며, 마지막 아담은 지금도 사람들이 계속 태어나는 과정에 있으니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는 일인데, “마지막 아담을 예수님이라고 꼭 지명하여 말을 했던 것인가요? 그리고 사도바울은 왜 예수께서 둘째 사람이자 마지막 아담이라고 해석했을까요?

 

2)청중적 접근

오늘날에 우리도 성경을 읽다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당신 자신이 누구신지에 관하여 비유적으로 많이 말씀했다는 부분들을 발견하게 되실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렇습니다.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12: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이 모든 비유들의 의미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닙니다. 문자를 뛰어넘은 더 깊은 의미가 다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이 의미들을 알아차릴 때, 진정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그때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이 말씀들을 읽어갈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러한 비유들에 있어서 혹시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까? 여기에는 분명 공통점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가 사실 오늘 말씀드리는 성경해석의 실마리이자 성경해석법의 근간이 됩니다.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55년경 사도바울3차 전도여행(A.D.53~58) 에 에베소에 머물면서 고린도교회에게 써보낸 편지인데, 그중에서 부활에 관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 중에서, 썩을 육체를 가진 사람이 어떻게 죽지 않을 영광스러운 부활체로 살아나게 되는지아담과 예수님을 비교하여 설명해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사도바울은 여기에서 죽은 자의 부활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즉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첫 사람 아담처럼 썩을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처럼 썩지 않을 영광스러운 부활체를 가진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썩지 않을 영광스러운 부활을 입기 위해서는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는지 잘 모릅니다.

믿음이 없으면, 썩을 육체가 어떻게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지 잘 모릅니다.

믿음이 없으면, 첫 사람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그냥 죽으면 죽음으로 끝나는 줄로만 앏니다.

믿음이 없으면, 사람은 첫 사람 아담 안에서 태어나지만 또 한 번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안에서 태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첫 사람 아담은 모형이요 그림자일 뿐, 실체는 마지막 아담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모형이요 그림자가 진짜 실체인 줄 알고 살아갑니다.

믿음이 없으면, 모든 사람은 다 예표인 첫 사람 아담 아래서 신음하고 고민할 뿐, 첫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 줄 둘째의 마지막 아담이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은 믿음으로 비록 첫 사람 아담 안에서 태어났지만 다시 둘째 사람이자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안에서 태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생명을 얻고, 저 새로운 세계에서 부활의 놀라운 영광을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 왜 우리는 모형론적(예표론적)인 성경해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왜 우리는 모형론적인 성경해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3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성경을 문자적인 의미로만 해석해서는 깊은 뜻을 전혀 모르고 지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46년동안 짓고 있던 헤롯성전을 유대인들이 무너뜨려도, 목수이셨던 예수님께서 건축자가 되어서 그것을 다시 3일 동안에 새로 지어보이겠다는 말씀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이 말의 의미는 금방 알아차리기 어려운 말씀이었기에 나중에 그것이 무슨 의미였는지를 깨닫게 된 사도요한은 그것이 예수님의 몸 곧 성전된 예수님의 육체를 가리킨 말씀이었다고 해석해주어야 했습니다(2:21).

둘째, 성경에 나오는 비유말씀을 알레고리적으로만 해석했을 때에는 대부분 이단이 되었거나 사이비 교주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초기 알렉산드리아 교부 오리겐은 성경말씀은 3가지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몸적인 의미 곧 문자 낱말 그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하는 한 남자가 자신의 부모를 떠나 자기의 아내와 붙어서 둘이 한 몸이 되는 결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 말씀에는 혼적인 의미 곧 그것은 도덕적인, 윤리적인, 이성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2:24의 말씀에는 그 뒤에 다른 뜻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첫째로, 세상 모든 남자는 어렸을 적에는 부모의 보호와 가르침 안에 살아야 하지만 언젠가는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새로운 한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여기서 독립이란 정서적, 의지적인 독립만을 가리키지 아니하며, 또한 경제적인 독립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부부는 둘이 한 몸을 이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머리요 여자는 몸으로서 둘이 같이 움직여야지 각각 따로 움직이면 겉으로 보기에는 부부이지만 실은 부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넷째로, 둘이 한 몸을 이루었으니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절대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해서 잠시 떨어져 있는 것만 허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혼적인 의미들입니다.

셋째, 영적인 의미 즉 진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하여 하고 싶은 뜻과 의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감추어진 영적인 의미를 끌어낼 때에, 많은 사람들이 알레고리 해석을 시도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신천지 이만희와 하나님의 교회의 김주철씨 등입니다. 그럼, 이들은 어떤 식으로 이 구절을 해석할까요? 그들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여기서 남자는 짝풀이24:40두 사람이 등장하는데 이때 사람이라는 단어는 성경원문을 보면, “남자로 되어있으니, 여기서 남자란 사람을 가리키며, 그리고 자신의 부모는 고전4:15에 바울이 스승을 아비라고 말했으니, 자신을 가르쳐준 영적인 스승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아내는 하와는 아담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했으니, 고귀한 자기자신인 나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이전의 자기의 스승의 가르침에만 안주하지 말고 진정한 자기자신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언제까지 마마보이처럼 목사님이 던져주는 설교말씀이나 듣고 있을 것이냐는 것입니다. 자기자신이 진짜 누군지를 알려줄 자를 만나 내가 누군지를 발견하여, 이제는 목사님의 성경해석 없이도 자기 스스로 성경말씀을 보고 풀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내가 누군지를 깨닫는 심오한 사람이 되어야 진짜 사람구실을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사람이 진짜 어떤 존재인지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이오직 하늘의 비밀을 간직한 작은 책을 받아먹은 이긴 자 곧 이만희내지는 하늘의 새 예루살렘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끌고 갑니다. 이것이 알레고리적인 해석입니다. 알레고리적 해석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해석할 때에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면 큰 일 납니다. 그러면 반드시 모든 성경말씀은 이단에서만 풀 수 있다고 믿게 되고, 결국 이단의 교주에게 가도록 해석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올바른 어떤 해석의 지침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과 사도바울이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반드시 모형론적으로 성경을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고로,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이 무엇인지를 성경에서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이를 이어받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온전하게 풀려면 예수님께서 성경을 해석하던 방식이요, 사도들이 해석하던 방식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성경을 언급하실 때에 구약의 모든 성경은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책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5:39, 24:44).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또한 사도바울성경을 해석할 때에 그것을 그리스도에게 맞추어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러한 말씀들입니다.

고전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고전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사도바울은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 민족이 밤에 해질 때에 잡아서 피를 바르고 고기를 먹었던 유월절 양이 사실은 그리스도라고 해석했습니다. 여기서 어린양의 피는 속죄를 통하여 죄의 값을 대신 치러 죽음을 이기게 해주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고, “양고기는 영혼의 양식으로서 광야길을 통과하여 가나안땅인 천국에까지 이르도록 도와주는 예수님의 생명을 상징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나왔을 때에 물이 떨어져 목말라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께서 르비딤에 있는 반석을 쳐서 그것을 쪼개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물을 공급한 일이 있는데, 여기서 쪼개진 반석예수님의 몸을 의미하고, 거기서 흘러나온 성령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아까 말씀드린 2:24의 말씀을 사도바울은 어떻게 해석했을까요?

5:22-25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5:31-32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말씀은 아담이 자신의 부모와 같은 하나님의 곁을 떠나 하와와 합하여 한 몸이 되라는 말씀은 실은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것으로 얻어진 결과를 말씀하려는 것으로서,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늘영광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와 그의 아내인 교회성도들과 합하여 하나를 이루어, 천국에 데려가시는 모습을 묘사하기 위한 예표요 모형이라는 것입니다.

 

. 모형론(예표론적)성경해석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모형론적 혹은 예표론적 성경해석이란 무엇을 가리킬까요? 그것은 구약에 나오는 사건이나 사람, 사물, 제도 등이 다 그것들의 실체이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모형과 예표라고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가리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모세가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3:14)”는 예수님의 말씀은 21장에 나오는 사건을 모형론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즉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에돔땅을 우회하여 돌아가도록 하자, 또 마음이 상하게 하나님과 모세에게 왜 우리를 애굽에서 불러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불평했을 때, 하나님께서 불뱀들을 보내서 그 백성을 물어서 죽게 합니다. 그러자 자기들이 잘못했다고 하면서 살려달라고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독뱀(죄의 독)에 물려 죽어가는 자들을 위해 장대 높이 놋뱀(독이 없는 뱀의 모양)을 달아 놓아 그것을 보는 자는 살게 했는데, 이처럼 이같은 것은 분명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일어난 사건이기는 하지만 훗날 죄없는 뱀의 모양으로 오시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도바울은 5:14에서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직접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고전15:45에서는 마지막 아담이라고 말했고, 고전15:47에서는 둘째 아담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에 대한 모형론적인 해석입니다. 즉 첫째 아담처럼 예수님도 사람으로 오셨는데, 하나님께서 첫째 아담을 잠들게 한 후 갈빗대를 취하여 하와를 만든 것처럼,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교회를 만드시는 것을 상징하고, 범죄는 하와가 했으나 그 죄값을 담당하기 위해 아담이 하와가 건네준 선악과를 먹어서 죽게 된 것처럼, 범죄한 우리 인간들을 위해 세상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첫째 아담과 달리 마지막 아담이라는 것입니다. 첫째 아담을 죄를 짓고 사망을 가져왔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죄값을 대신하여 지불하여 사망을 폐하시고 생명을 주시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첫째 아담 아래에서 태어나 죄인이 되지만, 둘째 사람이자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 죄를 해결받고 거듭태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아담은 마지막 아담이자 둘째 아담의 모형인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하여, 아담(그리스도)이 왜 죽게 되었으며, 아담(그리스도)이 어떻게 되어 하와(교회)를 산출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예표론적 성경해석 방법을 사용하면 다음과 같은 3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첫째, 성경의 중심이 모두 예수그리스도라는 것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그것이 곧 생명얻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성도를 율법주의와 기복주의 신앙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줍니다. 구약성경을 율법말씀의 차원으로만 보는 사람은 구약성경을 잘 인용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지키면 복과 생명을 얻지만 안 지키면 저주와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말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을 지켜야 하는 율법말씀으로 보지 않고, 예표론적으로 해석하면 거기에 담겨 있는 더 풍성한 의미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 성경을 문자적 해석의 약함으로부터 그리고 알레고리(풍유)로 해석하려는 위험한 시도로부터 벗어나게 해 줍니다. 1:29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보면, 예수님은 짐승인 양이라고 보는 것인데 이것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약시대에 우리 죄를 대신하여 대신 죽는 대속제물로서 속죄양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선명이나 신천지에서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하여, 예수께서는 양으로 오시어 진짜 죽어버렸기에 속죄사역에 실패했다고 가르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나 모형론적으로 해석하면, 속죄를 대신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으로 풀면 우리는 예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 알레고리적 성경해석방법과 모형론적 성경해석방법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알레고리 성경해석방법과 모형론적인 성경해석의 방법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요? 둘 다 비유를 해석하는 방법으로서 문자적인 의미 너머에 있는 영적인 뜻을 가르쳐준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둘은 쓰임새가 천양지차로 갈라지게 됩니다. 이때, 알레고리는 실체에 대한 그림자를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그 비유를 말하는 자가 설명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암호해독식 성경해석법이므로, 자기주관적으로 풀면 얼마든지 이단교주가 나올 수밖에 없는 해석방법입니다. 그래서 초기교부였던 오리겐(A.D.185~254)도 이것은 위험성이 있다고 했으며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이것을 사용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리고 초기 교부시대 이후 교회에서 점차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었던 해석방법입니다.

하지만 모형론적(예표론적) 성경해석방법은 뜬끔없는 어떤 단어를 가져와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미 있었던 실제 사건이나 인물을 인용하여, 그것은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22장에 등장하는 사건,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사건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인류의 대속제물로 바치는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해석은 항상 예수님으로 귀결됩니다. 그러므로 안전합니다. 구약성경의 모든 인물과 사건들을 다 예수 그리스도로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신약에 나오는 구약의 비유들을 모형론적(예표론적)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읽을 때에, 율법계명으로 읽지 말고, 그리스도를 더 풍성히 누리도록 해석해주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고로 모형론적인 성경해석방법은 첫째, 그리스도를 훨씬 더 풍성하게 누리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둘째, 구약성경을 율법말씀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게 해 줍니다. 셋째, 구약성경을 문자적인 의미나 도덕적인 의미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예수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줍니다. 그래서 넷째, 알레고리의 위험한 해석으로부터 성경해석을 안전하게 보호해 줄 것입니다.

.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고로 이제부터는 성경에 나오는 비유말씀을 해석할 때에 너무 문자적 의미로만 보지 마십시오. 그리고 알레고리식으로 풀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제부터라도 성경말씀을 해석할 때에는 신구약성경을 관통하는 모형론적인 방법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를 풍성하게 누리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 결단의 축복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무엇이 가장 올바른 성경해석방법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모형론적 혹은 예표론적 성경해석방법이야말로 가장 올바른 성경해석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신약성경의 비유말씀을 구약의 실제 사건과 인물로서 푸는 것이 예표론적 성경해석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표론적 성경해석방법은 오직 그리스도만을 높이며 그분만을 증거하는 해석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표론적 성경해석방법은 율법말씀을 가장 훌륭하게 해석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위험한 알레고리적 성경해석방법에서 벗어나려면 예표론적 성경해석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성경에서 오직 그리스도만 찾아내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모형과 실제로 성경을 해석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위험한 알레고리해석을 따라가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율법말씀도 예표론적으로 보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신구약성경을 다 사모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알레고리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라고 유혹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알레고리로 말씀을 빌빌 꼬는 미혹의 영들은 내게서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예수님과 사도들처럼 성경을 예표론적으로 해석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신천지와 하나님의 교회는 알레고리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해왔구나.

2. 알레고리를 잘못 사용하면 이단이나 교주들이 나오는구나.

3. 성경의 비유와 상징은 문자적으로만 풀 수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4. 예수님과 사도들이 사용했던 성경해석방법은 예표론적 성경해석방법이었구나.

5. 성경의 모든 중심은 오직 한 분 예수님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구나.

6. 예표론적으로 성경을 볼 때에라야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영생을 얻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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