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고의로 죄를 범하면 정말 맹렬한 불에 던져지는가?(10:23~29)

[일시] 20200405(주일) 오전9,11

[찬송]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140장 왕되신 우리 주께, 365장 내 주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PW: 믿음, MIW: 포기하지 않는

T.S: 믿음이란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을 포기하는 않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많이 힘드시죠?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운동이 오늘부로 끝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어제 다시 2주간 더 연장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피로도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그대로 반가운 것은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일을 이제 지방정부에서는 더 이상 막지는 않고 자율로 맡기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음 주일은 전세계교회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절기인 부활주일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교회에서는 부활절에는 모든 성도들이 예배당에 나와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를 해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예배당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은 자율이 되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는 여전히 당분간 더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지난 3월부터 저나 우리 성도들이나 예배당에 나오는 것을 아예 하지 못하거나 숫자를 줄여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교회도 지난 3월 첫째 주부터 금요심야기도회, 주일오후찬양예배를 못 드리고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볼 때 이전에는 매주 주말이 가까이 오면 매우 바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금요일이 되면 금요심야기도회를 인도해야하고 또한 설교내용을 타이프해서 올리고 또한 주일낮예배와 주일오후찬양예배를 준비하고 주보작성하고, 예산청구하고, 거기에다가 주일오후찬양예배의 순서까지 준비할 때에는 어떻게 주말이 흘러가는지 정말 모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3월부터 그럴 일이 없어졌습니다. 오직 주일낮예배 하나만을 위해 준비하니 훨씬 일이 더 수월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게 하기를 벌써 한 달이 넘어갔습니다. 이제나 끝날까 저제나 끝날까 하면서 보낸 시간이 벌써 한 달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때에 제가 느슨해진다면 누가 손해를 보는가 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입니다. 그래서 새벽기도회 하나에도 집중했습니다. 영성이 식어지거나 나태해지 않도록 평소 때보다도 강도 높은 말씀을 준비했으며, 평소 때에는 올리지 않던 새벽기도회의 영상까지 올리면서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성도들은 지금 과연 어떤 상태에 있을까요? 인터넷으로 영상예배를 드리라고 하니까, 누가 감시하는 사람도 없고, 교회에 일부러 차려입고 나오지 않아도 되고, 시간을 내어서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 어느새부턴가 마음이 나태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니 코로나가 안정되어 정상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주일이 되더라도 그 주일에 정말 예전처럼 성도들이 예배에 집중할 수 있을까 모두들 상당히 염려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실은 오늘도 강도높은 말씀을 선포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만 성도들 중에는 아직까지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할 분도 있기에, 그 강도를 조금 줄여보기로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야 할 말씀은 안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사람이 어떻게 되면 구원에서 탈락하게 되는가에 관한 말씀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5번이나 걸쳐 구원탈락가능성을 말씀하고 있는데 오의 말씀은 그중에서 가장 강도 높은 구원탈락의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주일에 구원탈락의 가능성을 경고하는 세 번째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6:4-6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이미 복음을 듣고 복음에 참여한 자가 타락했을 때에는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어서 그 마지막은 비유에 의하면 버림을 받아서 불사름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가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은 타락한다는 말씀을 무슨 심각한 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헬라어원문은 그러한 뜻이 아닙니다. 파라핍토입니다. “옆으로 떨어지다는 뜻으로, 그것은 믿음의 생활로부터 떨어져나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믿고 있는 교회생활을 등지고 떨어져나가는 것이 곧 파라핍토의 원뜻인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교회에 소속되어 있지만 과연 내가 믿음으로부터 떨어져나가고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을 비유로 언급했습니다.

6:7-8 []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비를 맞고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채소를 산출하느냐 아니면 쓸없는 가시와 엉겅퀴를 내느냐가 그것을 결정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고로 내가 지금 믿음으로부터 떨어져나가고 있는지는 내가 맺고 있는 열매를 통해서 알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다릅니다. 무엇이 믿음으로부터 떨어져나가는 일인지 분명하게 나와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구원에서 탈락하여 불사름이 되는 것일까요? 구원탈락의 가능성을 언급하는 네 번째 말씀을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인가요?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성도가 짐짓(고의로) 죄를 범하게 될 경우에는 다시 속죄할 제사가 없어져서 그 사람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형벌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는 자기도 모르고 지은 죄가 과연 있을까요? 있다면 그것은 대체 얼마나 될까요? 미안합니다만,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성령을 받았다면 우리는 죄가 무엇인지 모르고 죄를 지을 가능성이 아주 희박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우리 영혼 속에 성령이 계시지 않았지만 우리가 믿고 난 후에는 우리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이 내가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죄인지 아닌지를 금방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16:7-8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그러므로 자신이 진정 예수님을 믿어 거듭난 신자가 되었다면, 그는 죄를 지을 때 그것이 죄인지 알고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2)청중적 접근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지난주에 이어 구원탈락의 가능성을 경고하는 5가지 말씀 중에 4번째의 말씀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 중에는 우리에게 충격적인 말씀이 하나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서 죄를 짓게 된다면, 그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같이 히10:26~27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0:26-27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고의로, 자진하여서)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설마 내가 고의로 죄를 지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지옥불에 쳐넣을 리가 있겠어?” 하면서 이 말씀을 애써 외면하려고 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데 나를 지옥보내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실 거니까, 이러한 말씀에 미혹되면 안돼라고 자기자신에게 말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설령 내가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우리 부모가 나를 아들이 아니라고 버리지 않듯이, 내가 조금 죄를 지었다고 해서 나를 버리기까지 하겠어, 잠시 징계할 뿐이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모든 믿는 자는 다 고의로 죄를 짓는 것인데, 그렇다면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테니까, 이런 말은 다만 경고일 뿐 실제 그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을 거야 하고 생각을 접어버릴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히브리서와 같은 경고의 말씀은 잘 보지도 읽지도 않으려 하고 오직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와 같은 말씀 곧 믿음으로써 의인된다고 하는 말씀만을 가까이 두려고 할 것입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장차 받을 심판의 기준을 우리 스스로가 세워서는 아니 됩니다. 심판자는 우리가 아니라 그것은 아들로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부여받은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날 예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날 심판을 받아서 불못에 던져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 사람이 진리의 온전한 지식을 받은 후에 고의로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는가?

먼저, 우리가 진리의 온전한 지식을 받은 후에 짐짓 즉 고의로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에는 3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더 이상 지은 죄들에 관하여 그 죄를 용서해주기 위한 희생제물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26). 속죄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10:26-27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1)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2)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3)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둘째, 27절 상반절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오직 두려움 가운데에 심판을 기다리는 것만 남아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27a). 요한복음 5:24에는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셨던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라고 나와 있는데, 여기서는 그는 심판을 받을 일만 남아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셋째로, 대적자들을 계속해서 삼키려고 하는 맹렬한 불만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27b). 이것은 그가 지옥불에 떨어져 고통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고로 우리는 이상의 3가지 말씀을 통하여 고의로 죄를 짓는 자는 그 죄를 용서받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심판을 받고 지옥불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럼, 한 번 생각해봅시다. 제가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세상에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들 중에 정말 그것이 죄인지 아닌지 모르고 죄를 짓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거의 없습니다. 다 죄를 짓겠다고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고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성도들은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하고 다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일까요? 가장 최종적으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경고하는 요한계시록 21:8의 말씀을 보더라도, 고의로 죄를 짓는 것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고, 오직 비겁해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거나, 아예 믿지 않거나, 십계명을 어긴 자들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진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대체 고의로 죄를 짓는다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요?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비겁한) 자들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가증한) 자들과 살인자들(6계명)과 음행하는 자들(7계명)과 점술가들(2계명)과 우상숭배자들(2계명)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8계명)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 고의로 죄를 범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고로, 우리는 고의로 죄를 범한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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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로 보면, 헤쿠시오스 가르 하마르타논톤입니다. 중간에 나오는 가르왜냐하면(for, because of)”이라는 문장의 접속사입니다. 고로 우리는 23절에서 25절까지를 왜 힘써야 하는지에 관한 이유로서 이 말씀이 주어졌다는 것을 우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사어 헤쿠시오스를 만나게 됩니다. 헤쿠시오스는 우리 말로 번역하면, “고의로, 일부러, 의도적으로, 자진해서, 자발적으로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wilfully(NIV,KJV)”, “deliberately(RSV)”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하마르타논톤이라는 동사는 죄를 짓다라는 하마르타노동사의 현재 분사 능동태 구문입니다. 그러니까 한 번 의도적으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고의로 죄를 짓는 것을 가리킵니다. 벌써부터 !”하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괜히 간이 콩알만해졌네라고 말하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고 열 번이 되면 어느새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 그 인생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고의로 죄를 짓는다는 것을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히브리서기자는 그 다음에 나오는 문장을 통하여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29절의 말씀입니다.

10:29 하물며 1)하나님의 아들을 짓밟[], 2)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여겼고), 3)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하였던) 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이 문장은 누가 형벌을 받게 되는지 3가지 종류의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동사들은 전부 다 동사,분사,과거의 문장들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했던 자들 중에 결국 형벌을 받아 맹렬한 불속에 들어갈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것이 고의로 죄를 범하는 것인가요?

첫째,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는 죄입니다. 예수님을 믿었던 자였는데, 어느날 예수님이 어딨어?”라고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과거에 예수님을 믿었더라도 지금 현재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다면 그는 고의로 죄를 범하는 첫 번째 사례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거부하는 자는 죄를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그를 위해 다른 속죄의 방법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흘림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미 인류가 타락했을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이 범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흠없는 양을 죽여서 그것으로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입힐 때부터 시작되었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율법으로 이미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속죄의 피를 통한 죄용서는 수 천 년 전부터 이미 예언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아무 소용없다고 하는 사람은 결국 죽을 때에 죄용서받지 못하고 불못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셋째,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즉 성령을 모욕하는 죄(성령훼방죄)입니다(12:32). 결국 이것은 한 마디로 회개케 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도와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공생애 기간에 이러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12:31~3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모욕하는) 것은 [장차] 사하심(용서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반대하여 말한다면) [장차] 사하심(용서하심)을 얻되(얻을 것이로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반대하여 말한다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장차] 사하심(용서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성령께서는 무엇하시는 분입니까? 우리가 죄를 지을 때에 우리를 책망하시는 분이십니다(16:8). 그리고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증언하시는 분이십니다(15:26). 그리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이 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14:26). 그리고 오직 진리 가운데로만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16:13). 그런데 그분을 거역하거나 그분에게 모욕을 주는 일을 하는 자는 결국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된 자는 하나같이 예수님을 믿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떨어져나가게 됩니다.

 

그럼, 왜 이러한 일이 지금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에게 발생했거나 또는 발생하려고 하고 있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또다시 그들에게 너무나 큰 시련과 고난이 불어닥쳤기 때문입니다(32).

10: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많은) 싸움을 견디어 낸 것[계속] 생각하라(기억해보라)

그러한 시련은 과거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또 한 번의 시련의 바람이 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그들에게 어떤 고난과 시련의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까? 크게 2가지입니다.

첫째로,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자신의 가정과 공동체로부터 따돌림을 받았습니다(33).

10:33 혹은 비방(비난)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있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둘째로,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34절에 나와 있습니다.

10:34 너희가 [감옥에]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하고 있는 것들]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그렇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고, 자신의 소유(재산)을 몰수당하기도 했4다는 것입니다. 더 심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장에 나옵니다.

11:36-37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시험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그렇습니다. 그들 중에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처한 자들도 수두록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자들이 이러한 주장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모이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니, 이 환난이 지나가면 모십시다그래서 잠시 모임을 중지하자는 제안도 있었습니다(25).

 

. 우리가 구원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뒤로 물러가면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질 수 있습니다(39).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의 믿음이 절대 흔들리지 않도록 그들을 붙들어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자기들의 소망의 고백을 흔들리지 말고 굳게 붙잡고 있으라고 했습니다(23).

10:23 또 약속하신(하셨던) 이는 미쁘시니(신실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소망의 고백)”을 움직이지 말며 [계속해서] 굳게 []잡고[있으라]

이는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을 결단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자신의 죄를 용서해줄 수 있기에, 비록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그것을 참고 견디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잠시 잠깐이면 예수께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하늘에 영구한 천국이 기다리고 있으며, 큰 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어려울 때가 될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자고 했습니다(24).

10:24 서로 돌아보아 사랑[의 자극]과 선[] [위들][계속해서] 격려하며(격려하고 있으라)

그래서 그들은 이미 그러한 따돌림과 불이익을 당한 자들을 서로가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갇힌 자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에게 또한 불이익이 닥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한 것입니다.

셋째,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처럼 모이는 것을 포기하지 않되, 더욱 그날이 가까이 옴을 볼수록 더욱 그렇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25).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많이] 그리[그렇게]하자

왜 그래야 하는가요? 만약 어렵다고 힘들다고 모이기를 힘쓰지 않게 되면 어느 순간에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고, 예수님의 피를 부정하게 되고, 죄를 책망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거역하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더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왜 우리는 어려울수록 모이기를 힘쓰고, 예배드리기를 힘써야 하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며, 굳건기 환난의 날을 이겨내며 더욱더 사랑과 선행을 행하여 격려하고 모이기에 힘쓰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34~36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더 영구한 하늘의 소유를 얻게 될 것이요, 저 하늘에서 더 큰 상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0:34-36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결국은 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관건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11장에 믿음이 무엇인지를 말했으며, 믿음으로 고난을 이겨낸 조상들을 언급했던 것입니다.

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내용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예수님도 보이지 않으며, 회개하여 죄가 용서되는 것도 보이지 않으며, 천국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떠났던 믿음의 선진들의 증거는 가득합니다. 고로 우리도 결코 뒤로 물러가지 않는다면 끝내 천국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있는 것들에 대한 고백을 더욱 붙잡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돌아보아 사랑으로 선행으로 섬기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어려울수록 모이기에 힘쓰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무엇이 고의로 범하는 죄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고난과 핍박 때문에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 고의로 죄를 범하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보이지는 않지만 회개하면 예수피로 내 죄가 용서된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고의로 죄를 범하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회개케 하고 믿게 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거역하는 것이 고의로 죄를 범하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고의로 죄를 범했던 자들 중에 결국 불의 형벌을 받을 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나의 불신앙의 죄를 이 시간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고난 때문에 뒤로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핍박 때문에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소망의 고백을 꽉 붙잡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어렵다고 모이기를 폐하지 않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한 두 번은 괜찮다고 속이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두려움의 영을 조장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끝까지 믿음을 지켜낼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믿음의 공동체에서 떨어져나간다는 것이 결코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구나.

2. 믿었던 성도들 중에서 구원에서 탈락하는 자가 있긴 있구나.

3. 믿었던 자라도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면 구원에서 탈락하고 마는구나.

4. 믿었던 자라도 회개할 때 예수피로 자신의 죄가 용서된다는 것을 부인하는 자가 구원에서 탈락하는구나.

5. 회개케 하시고 믿게 하시는 성령님의 책망과 인도를 거부하는 자가 구원에서 탈락하는구나.

6. 소망의 고백을 붙잡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힘쓸 때에 비로소 신앙이 보전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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