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는(마5:13~16) [일시] 2020년 04월 26일(주일) 오전9시,11시 [찬송] 찬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찬292장 주없이 살 수없네, 복음성가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PW: 믿음, MIW: T.S: 믿음이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이번 지난 2월 18일부터 우리나라에 급속히 확산되었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가고 있는데, 과연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요?
첫째, 전 세계를 준 전시상황으로 만들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일이 중단되면서 비상체제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제일 바쁜 것은 의료진입니다. 그러니 준 전시상태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둘째, 여러 가지 활동 중에서도 경제활동과 교육활동을 많이 축소되었고 제한되었습니다. 셋째, 신앙적으로 볼 때에는 예배와 기도의 시간을 많이 잃었고 성도의 교제까지 많은 부분을 잃었습니다. 왜냐하면 주일낮예배야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여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주일에 식사를 하지 못하게 되니 성도들끼리 교제하는 시간을 잃었고 여러 번 모일 수 없게 되다보니, 주일오후찬양예배를 잃어버렸습니다. 이 모든 것을 모든 교회들이 다시 복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요청됩니다. 넷째, 더욱이 기독교인들을 꼰대집단처럼 여기게 된 것이 한층 더 가속화되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전도하는 일에 심각한 해를 가져오게 될 것이 뻔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다시 세상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고 그들을 주께 인도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가진 전도에 대한 개념에 대해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을 기대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그 역할을 성실히 감당함으로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의 아름다운 행위를 보고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한 명 한 명의 영혼을 제자삼으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왜 제자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됨으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우리가 세상에서 선한 행실을 한다고 해서 과연 그것이 개인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혹시 이 명령은 그리스도인의 대사회적인 책임과 개인영혼구원의 순서를 뒤바꾸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2)청중적 접근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27년경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 무리들이 예수께로 몰려오자 제자들을 향하여 들려주신 산상수훈의 일부분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예수께서는 천국백성의 기본적인 윤리를 말씀하신 후, 제자들이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이므로, 그들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제자들의 아름다운 행위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늘에 계신 그들의 아버지에게 영광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개인영혼구원이 귀한 것이지 우리의 선한 행실이 그리 중한 것인가 잘못 생각하기 쉽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불신자에게 복음만 전하면 되었지 우리의 선한 행실까지 굳이 보여주여야 하는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우리가 가진 믿음이면 되는 것이지 굳이 나의 선한 행실을 밖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아도 구원에는 상관이 없지 않나 생각하기 쉽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우리의 행위가 없어도 나의 구원에는 상관이 없는데 왜 예수님께서 이러한 명령을 하고 계시는지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믿음이 없으면, 괜히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내 잘못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도 있으니, 처음부터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기가 일하는 일터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숨기고 살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기가 어려우니, 결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티내지 않고 살려고 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불신자의 영혼이 어떻게 해서 구원받게 되는지 그 메카니즘을 잘못 이해하여 영영 전도자의 삶을 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그 뜻을 깨닫고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인인 것을 드러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말의 의미는?
먼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를 누가 잘 압니까? 그것은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성도에게는 2가지 정체성이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이 말씀에 대해 약간의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을 잘못 이해하여, 우리가 부패한 세상을 썩지 않게 할 책임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렇게 잘못 이해하면, 내가 맨날 세상 사람들에게 죄를 지적하다가 그만 왕따를 당할까봐 걱정부터 합니다. 그리고 둘째,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을 잘못 이해하여,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서 행위들이 전혀 없어도 구원받을 수가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왜 이러한 말씀을 하셨는지 이상하다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한 행실을 드러내고 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저버리린채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에 관해 들려주신 말씀의 본래적인 의미를 되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선한 행위가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그리스도인들이 땅(지구)의 소금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 말씀을 헬라어로 보면, “너희는 땅의 소금이다(You are the salt of the earth)”입니다. 우리가 소금으로서의 사명의 범위가 저 우주까지는 아니라, 이 땅덩어리 곧 지구까지라는 것을 한정해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빛이라는 말씀은 우주까지 나아갑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천사들이 있는 이 우주는 어둠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가 땅의 소금이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어떤 이는 이것을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부패한 이 세상을 썩지 않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소금의 역할이 고기나 생선을 썩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부패하고 타락한 사람들을 썩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는 말로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소금에는 여러 가지 역할들이 있는데, 예수께서는 그것들 중에서 한 가지를 들어서 비유로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 번에도 한 예를 들어 말씀했지만, 비유라는 것은 어떤 대상의 모든 개념을 다 들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개념만을 끄집어내어 말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도둑같이 오신다”는 말씀은 도둑이 은밀하게 온다는 개념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마24장에서 예수께서 도둑같이 온다는 말씀은 “생각하지 않는 날에 그리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갑자기 오신다”는 비유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이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은 우리가 부패한 세상을 썩지 않게 노력하는 말씀이 아니라 다른 뜻의 말씀입니다.
마5:13 너희는 세상(땅)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이것은 소금의 어떤 기능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소금의 부패방지기능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소금이 가진 맛의 기능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헬라어원문을 따라 직역해보면 그 뜻의 의미를 좀 더 확실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5:13[직역] 너희는 땅의 소금이다. 그런데 만일 소금이 치욕스럽게(어리석게) 행동하게 된다면, 무엇으로 맛이 나게 되겠느냐? 다만 그것이 밖에 던져진 후에, 사람들에 의하여 짓밟혀지는 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모든 음식의 맛은 소금에서 나옵니다. 만일 소금이 없다면 모든 음식은 맛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음식먹는 재미는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소금에는 음식에 맛을 내는 기능이 있는 것처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은 삶의 맛을 내는 기능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은 속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소금 대신에 다른 것을 사용하여 삶의 맛을 있다고 속입니다. “담배를 피워봐, 맛이 있을 거야! 10년된 보드카를 마셔봐, 맛이 있을 거야! 여러 여자를 건드려봐, 맛이 있을 거야! 마약을 해봐, 맛이 있을거야! 인기를 끌어봐, 맛이 있을 거야! 취미생활을 즐겨봐, 맛이 있을거야!” 등등의 말로 말이죠. 그러나 그것은 그것을 즐기면 즐길수록 자신은 계속해서 피폐해지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양심이 소리칠 것입니다. 그것을 찾아서 아무리 얻어도 여전히 갈증이 난다는 것을 알려줄 것입니다. 또한 그것을 의지하고 소유하면 소유할수록 자신은 더 빈털터리라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을 자기 안에 투여하여 그것으로 인생의 맛을 내보려고 힘을 씁니다. 어떤 여인들은 귀걸이, 팔찌, 목걸이를 통해 인생의 맛을 즐기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모임이 갖다 와 보세요. 나보다 더 비싼 것을 차고 있는 것을 보고는 남편 바가지만 박박 긁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신 자는 다릅니다. 그분을 진정 마음에 모시면, 그 맛은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을 다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상당수의 그리스도인은 자기 속에 지금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그것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것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안에는 대체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가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는 예수께서 들어있습니다. 즉 우리 안에 하나님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과 접촉하면, 빈 가슴이 가득 채워져버립니다. 만난 것 먹지 않아도 행복합니다. 비싼 것 입지 않아도 행복합니다. 자기 혼자 있어도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자기 안에 진정한 보화가 들어있는지를 잘 모른 채, 다른 것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을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래봤자 아무 쓸데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밖에 버려진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힐 뿐이라고 했습니다. 고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기 가지고 있는 것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면 그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과연 온갖 것들로 치장하고 있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확 사로잡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가지려고 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에서 찾으려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상대적인 박탈감에 빠져서 자신이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럼, “우리 안에 들어있는 분”이 누구입니까? 그분은 첫째, 이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누리라고 선물로 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둘째, 우리가 우리들의 잘못과 실수로 인하여 죄를 지어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갈 때에 자신을 속죄제물로 내주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우리의 손을 하나님의 손에 붙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얼마나 소중한 분이라는 것은 우리가 죽을 때에 가장 극적으로 극명하게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의 영혼이 영원한 형벌의 장로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부족함이 없는 곳, 영원이 아픔이 없는 곳, 영원한 슬픔 걱정 고통 아픔 사망이 없는 곳으로 이동하는 자신을 보게 될 때에 만연의 기쁨이 가슴 가득이 뿜어져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이런 찬송을 부를 것입니다.
“햇빛보다 더 밝은 곳 내 집 있네. 햇빛보다 더 밝은 내 집 있네. 햇빛보다 더 밝은 곳 내 집 있네~ 푸른 하늘 저편. 내 주여 내주여 날 들으로서. 내 주의 내주여 날 들으로서. 내 주의 내주여 날 들으로서. 푸른 하늘 저편”
그때에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물어볼 것입니다. “아니, 김대리. 무슨 일로 인해 그렇게 즐거워. 집에 무슨 좋은 경사라도 생긴거 아니야?” 그러면 우리는 그때 이렇게 대답합니다. “네. 그럴 일이 있어요. 호호호!!!”
그러면, 훗날에 그들이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왜 그 친구는 그렇게 힘든 일을 만났는데도 실망하거나 짜증내지 않고, 자신을 힘들게 하는 윗사람에게도 저렇게 최선을 다했으며, 맡겨진 일에 충성했는가”를 생각해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저에게는 무슨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나봐”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우리 안에 만왕의 왕이이자, 전능하신 우리 주 예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분만 붙잡고 있으면 무슨 죄를 지었든지 회개하면 용서받을 줄 알기에 우리는 좌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혜에 한계가 있어도 그분께 지혜를 구하면 지혜를 주신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결코 낙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위험한 일과 힘든 일을 만나도 그분이 보호해주시고 넘어가게 해 주신다는 것을 알기에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설령 병이 든다 하여도 우리 주 예수께서는 모든 병을 치료하시는 치료자이시기 때문에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문제가 해결되면 질병이 떠나간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불치병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시작하려 하는데 자신이게 아무것이 없어도 주님이 채워주실 것을 믿기에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땅의 소금이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둘째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우주)의 빛이라”고 하신 말씀의 뜻은 또 무엇입니까? 이때 예수ㄲ서 말씀하신 빛의 기능은 무엇일까요? 빛의 기능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빛은 어둡고 칙칙한 곳을 밝게 비추어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둘째로, 빛은 추운 장소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기능도 있습니다. 셋째로, 빛은 식물로 하여금 광합성작용을 하게 하여 싹이 나게 하며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기도 합니다. 넷째로, 빛은 멸균작용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여기서 제자들더러 그들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말씀은 빛의 어떤 기능을 두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여기서의 빛은 어둠 가운데 빛을 발산하기 때문에 결코 숨겨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까 우리는 이 땅 지구에 있는 모든 것에 맛을 내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숨겨질 수가 없다는 것이 이 비유의 핵심입니다. 우리 안에 빛되신 그리스도가 들어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숨길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 안에 있는 밖으로 드러나게 되면 빛이 하는 여러 가지 기능들이 저절로 수행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들어가는 곳이라면 “어둠”과 “죄”와 “귀신”이 떠나가게 됩니다. 죄를 짓는 것을 멈추게 되어집니다. 오히려 창조적인 일들을 하게 됩니다. 없던 것도 생각해내고, 있던 것도 더 활성화시키며, 열매도 더 풍성하게 맺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 빛이 가진 속성 때문에 그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로, 우울증에 시달린 자들이라도 우리가 가진 빛을 보고 희망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우리가 가진 빛을 나에게도 나눠줄 수 없겠느냐고 요청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빛은 그 속성상 결코 그것을 감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감추고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나. 그리스도인들이 빛과 소금으로 살도록 못한 결과는?
약 30년 이상을 한국교회는 불신자를 교회에 억지로라도 예수믿게 하여 등록시키는 일에 집중해왔습니다. “예수 믿어봐, 건강해져, 승진해, 진급해. 자녀가 잘 돼”라는 말로 전도하거나,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령의 선물을 받으며 죽어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어”라고 전도해서 데려왔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성도가 많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누리고 있던 것이 부러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16절의 말씀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을 그들이 얼마나 부러워했는지를 알려줍니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들] 앞에 비치게 하여(하라). [이는] 그들로(그들이) 너희[의] 착한(아름다운) 행실을 보고(보게 하기 위함이며), [그리고] 하늘[들 안]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착한 행실에 나오는 ‘착한’이라는 단어는 “아가도스”가 아니라 “칼로스”라는 단어로서, 이 단어는 “멋진, 아리따운, 매력적인”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다니엘 때에 다니엘의 꿈해석을 듣고 느부갓네살왕이 외친 외침과도 같고, 모함으로 인해 사자 굴속에 던져졌지만 전혀 해를 입지 않고 살아서 걸어나오는 다니엘을 보고 다리오왕이 외친 것과 같습니다.
단2:47 [느부갓네살]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단4:37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단6:26-27 내(다리오)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27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시로다
왜 교회에는 사람들이 많이 전도되어 왔는데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이렇게 적습니까? 전도하는 자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는지 그것을 경험한 적이 없었고, 전도되어 온 자도 이야기만 들었을 뿐 실제로 경험하지 못하고보니, 그렇게 해서 전도되어 온 자들이 이제는 다른 누군가를 전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믿는 자들의 삶을 보고 부러워서 예수님을 믿겠다고 나왔어야 하는데, 믿기만 하면 하면 잘 되고 죄사함을 받는다고 해서 거저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 기쁨이 자기 안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하여 자신이 그렇게 추구하던 세상의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체험하지 못했기에, 제상 것을 보고 부러워합니다. 그러니 누가 우리들을 보고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겠습니까? 언제부터 그리스도인들이 이 지경이 된 것입니까? 이는 자기 안에 누가 들어와 계신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요, 그분으로 인하여 기적의 은총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경험한 자는 다릅니다. 그는 세상 것을 가지지 않아도 행복합니다.
다. 그리스도인들이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자기 안에 전능자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아는 자는 다릅니다. 그에게 힘든 일을 맡겨도 그는 충성합니다.
특별히 자기 안에 그분이 “지혜와 지식의 보화의 창고”라는 것을 아는 자는 그것을 세상이 없던 일들을 창조해냅니다. 그는 불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하기 위해서 게으르거나 죄된 본성을 따라 살 수가 없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지도록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면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인내합니다. 성실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책임을 감당합다. 세상의 일이라도 다니엘처럼 충성합니다. 왜냐하면 그 일로 인해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직업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목회자로 부름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땅과 세상 속에 들어가 자신의 직업과 삶을 통하여 불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해 부름받은 존재들입니다. 내 속에 내 삶의 주인 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겸손함과 성실함으로 우리가 행한 일들을 통하여 오직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사회주의자들이 무려 30~50년을 꾸준히 작업해서 오늘날 수많은 영혼들을 노략하고 있는데,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30년 이상을 그렇게 살면 그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요? 그때가 되면 이방제국의 왕들이었던 느부갓네살왕과 다리오왕이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부러워하듯이, 그때에는 우리의 아름다움 행실을 보고 “네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다”라고 스스로 고백하고는 대가 되면 주께로 스스로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꾸준히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그러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일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전도입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초기전도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초기에는 “참된 신자들”로 채워진 것입니다. 그러니 그 가운데서 “순교자”도 나온 것입니다.
나.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그동안 우리 성도들은 예수만 믿으면 어떤 행동을 해도 구원받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30년을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앙은 가짜입니다. 그러면 밖에 버려져 짓밟히게 될 뿐입니다. 기왕 예수님을 믿었으면 자기 안에 계신 주님이 누군지를 알고 그분을 체험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으로 인하여 우리의 삶이 달라진 증거들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우리를 부러워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행실로 인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고백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알곡 전도입니다.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나. 결단의 축복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참된 전도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우리가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진정한 전도가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시간이 걸려도 우리의 행실을 통해 전도가 되어야 진짜 전도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부러워할 때 진정한 전도가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우리의 삶이 세상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다만 밖에 버려져 짓밟힐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주여, 우리가 삶으로 전도하지 못했기에 교회가 타락으로 가득찼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삶으로 전도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맛을 내는 자로 살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세상이 부러워하는 자로 살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내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숨기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주어진 삶과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삶과 직장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숨기라고 미혹한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삶으로 전도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속이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삶으로 전도할지어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성도들은 전능자이신 그리스도를 모신 자들이로구나.
2. 성도들은 소금이어서 모든 방면에서 맛을 내는 멋진 존재가 되었구나.
3. 성도들은 세상의 빛이어서 결코 세상 사람들에게 숨겨질 수 없는 존재였구나.
4. 우리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것인지를 실제로 드러내는 것이 진짜 전도였구나.
5. 불신자들의 입에서 하나님은 살아계시다고 말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전도였구나.
6. 시간은 좀 걸려도 생활전도를 통해서 전도할 때 거기에서 알곡이 산출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