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거듭남,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3:5~9) [일시] 2020년 05월 31일 오전9시, 11시 [찬송] 찬48장 거룩하신 주 하나님, 찬254장 내 주의 보혈은, 찬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PW: 믿음, MIW: 거듭남 T.S: 거듭남이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예수님을 자기 마음 속에 구주와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이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왜 믿음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믿음에 있어서 의심이 찾아오고 흔들리게 되는 것일까요? 교회에 출석한지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내 신앙은 성장하지 않고 그저 그렇게 있는 것인가요? 일주일에 엿새동안은 나의 육신을 위해 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감사하기는커녕 일주일에 하루뿐 그것도 요즘에는 반나절 정도밖에 되지 않은 주일성수를 왜 그렇게 행하기가 어려운 것일까요? 주님께 드리는 예배와 기도시간 그리고 왜 십일조 등의 헌금을 드릴 때에 왜 아직도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요?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신앙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되 가장 중요한 근본적인 대답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나는 정말 거듭났는가?”하는 질문에서 시작해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진지한 질문을 던져봅니다. “여러분은 과연 거듭나셨습니까?” 이 질문을 받으면 2가지 반응을 보일 것입니까? “거듭남이라는 의미가 무엇이지?” 하는 것과 “나는 진정 거듭났을까?” 하는 의문을 하게 될 것입니다.
초기의 루터교 신학자들은 거듭남 곧 중생이란 “죄인이 잃어버려진 상태에서 구원과 칭의로 옮겨지는 전 과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후기 루터교 신학자들은 칭의는 “삶의 변화”까지는 포함하지 않으며 구원의 교리에서 오직 칭의만을 가리킨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언제 중생하는 것일까요? 어릴 때인가요? 어른이 되어서인가요? 루터교회에서는 어린아이가 세례를 받을 때에 중생한다고 가르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어떤 어린아이가 크기도 전에 전염병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칩시다. 그 어린아이는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이 어린아이가 중생했는지 안 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죠?
한편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중생”이라는 개념을 일관되게 잘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17세기에는 “회심”이라는 단어를 “중생”이라는 단어와 동의어로 썼습니다. 그러나 회심은 중생과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중생과 일치한다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회심”이라는 것은 “마음을 돌이켜 먹음”, “과거의 생활을 뉘우쳐 고치고 신앙에 눈을 뜸” 혹은 “나쁜 데 빠져 있다가 선하고 바른길로 돌아온 마음”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회심’은 회개에 가까운 개념인 것이지 ‘중생’이라는 개념과 가까운 개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회심’이라는 것은 사람이 행하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인데 반해, ‘중생’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행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금세기에 들어와서 개혁주의 신학자들 가운데 챨스 핫지는 “중생”에 대해서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중생이란 영적인 사망에서 영적인 생명으로 옮겨지는 순간적인 변화다”
조금은 감이 오기는 합니다만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설교를 다 듣고 나면 ‘중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럼, 우리 성도들께서는 거듭남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과연 나 자신이 거듭났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인가요? 사실 우리들 중에 혹 아직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은 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함입니다. 더불어 천국에 들어가서도 영광스런 상급을 받기 위함입니다. 사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면 우리가 받는 상급에 따라 우리의 신분이 결정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급의 크기에 따라 천국에서 우리가 누릴 영광의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해의 영광”을 차지할 자도 있고, 어떤 사람은 “달이나 희미한 별의 영광”을 차지할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중생”입니다. 중생을 얻어야 그가 행한 것들이 천국에서 상급이 될 수 있기에, 우리는 중생의 문제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나는 과연 중생했는가”를 알아보고, 중생한 자는 하늘나라의 상급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직 중생하지 않는 자는 오늘 이 시간에 중생의 은총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라며, 우리신앙생활에 중요한 전환점이자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데, 이는 육으로 태어난 것은 육체일 뿐이요 그 영으로 태어난 자라야 영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는 말씀입니다.
왜 예수께서는 당시 율법의 최고석학자인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딱 고집어서 말씀하신 것인가요?
무엇인가를 열심히 공부하고 깨닫는 것을 가지고서 거듭날 수 없다는 뜻인가요?
대체 인간은 어떻게 해서 거듭날 수가 있는 것인가요?
우리가 이 세상에 있을 때에 거듭나지 못한다면 정말로 죽어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 정말 사실일까요?
2)청중적 접근
우리는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죽으면 나는 진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나는 정말 거듭 태어난 사람일까?” “내 안에 성령이 계시는 것이 맞기는 맞아?”
그런데 사실 저도 처음 믿을 때에는 이 질문에 대해 확실히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수 있을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을 것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27년경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의 어느날 밤, 예루살렘에서 예수께서 니고데모와 나누신 대화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때에 유대인들 중에 가장 경건하다고 일컬어지는 바리새인이자, 동시에 산헤드린공회원이었던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찾아와 물었습니다.
“랍비여,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아니한다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결코 행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요3:2)”
그러자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니고데모는 그날 무슨 소문을 듣고 그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오시더니,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아버리면서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나무라셨다는 사실을 들었으며, 또한 그들이 예수님에게 당신이 성전에서 이런 일을 행하려면 무슨 표적을 보여달라고 했을 때에, 주님께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했다는 말씀을 들은 후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그러자 주님께서는 산헤드린공회원이었던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러자 니고데모가 대답했습니다. “사람이 늙은 채 있으면서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두 번째로 어머니의 모태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부터] [태어]나[게 되]지 아니하면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안으로) 들어갈 수 없느니라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많이 배웠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모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율법의 전문가라 할지라도 거듭남의 비밀을 결코 깨닫지 못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렇게 오래 유대교에 있었어도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을 모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영적인 세계에 대해 잘 모르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신의 이해 수준에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잘못 판단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거듭남의 방법과 비밀을 전혀 모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거듭나지 못한 채 살다가 죽을 때에 그만 버림받을 수 있습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거듭남의 비밀”을 제대로 알아, 진실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가. 내가 과연 거듭난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렇다면, 내가 거듭나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인지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래서 제가 10가지 질문지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나는 과연 몇가지 항목에 해당하는지 살펴보십시오.
첫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아무런 부담이나 장애가 없다.
둘째, 나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 특히 언젠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뼈속 깊이 느낄 때가 있었다.
셋째, 주님을 부인하라고 해도 부인할 수가 없다. 혹 주님을 시인함으로 인하여 죽어야 한다고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넷째, 하나님과 예수님, 성경을 더 많이 알고 싶다. 특히 말씀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을 보면 매우 부럽다.
다섯째, 세상의 돈과 권력과 명예라 할지라도 다 부질없는 것이라고 느낀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과 신앙을 맞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주님께 물질을 바치는 것이 아깝지 않다. 더 드리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일곱째, 내 입술이 짜증내고 불평하던 것에서 감사와 찬양으로 바뀌었다.
여덟째,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내적인 강한 확신이 든다.
아홉째,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내적인 생명도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열째, 필수는 아니더라도 나는 지금 방언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니, 나는 아직도 저것과 100% 일치하는 삶이 아닌데, 그럼 나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인가?” 또한 이런 생각도 할 것입니다. “나도 많이 달라졌는걸, 처음에는 저기에 있는 조건들 대부분이 불합격이었는데...” 하는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 위의 항목과 100% 일치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들 중에 2~3가지만 일치해도 거듭난 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거듭났는데도 사람은 아직도 저기에 나온 10가지 항목에 다 100% OK가 되지 않는 것일까요?
첫째, 사람은 자신이 거듭나는 순간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요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이 말씀은 사람은 자기가 거듭나는 순간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느낌으로 확 다가오는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거듭나는 영역이 내 육체가 아니요, 내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있는 혼의 영역도 아니며, 우리의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영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요3:6-7 육[체]으로[부터] [태어]난 [채 있는] 것은 육[체]이요, [그] 영으로 [태어]난 [채 있는]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둘째, 거듭난 자라도 계속해서 죄를 짓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사람이 거듭났어도 귀신들은 그가 죽는 날까지 우는 사자처럼 두루 삼킬 자를 찾으며 미혹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중생한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마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둘째는 내 안에 죄된 본성이 남아있어서 계속해서 나를 괴롭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롬7:19-20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셋째, 그렇더라도 분명한 사실은 중생을 하면 중생한 어떤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즉 바람은 볼 수 없지만, 어디선가 바람소리가 들리고 나뭇잎이 팔랑거리는 것을 본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바람이 있음을 증명해주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미 거듭 태어난 자에게서 나타나는 여러 증상들을 살펴봄으로서 우리는 자신이 거듭 태어났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까 읽었던 10가지 질문지를 다시 읽고 자신을 점검해보면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나. 거듭남(중생)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럼, 사람은 어떻게 거듭 태어나는 것인가요? 여기서 우리는 먼저, 거듭남 곧 중생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함으로 자신이 거듭 태어난 사람인지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어떻게 해야 거듭나게 되는지를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거듭남”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중생은 자기 자신을 개선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의미도 조금도 가미되어 있지만, 자기자신을 이전과는 달리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해보려는 의노력이 곧 중생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 내가 예수님을 믿어 칭의를 얻었다고 하는 것을 중생이라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칭의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주어지는 것인데, 그것은 사람이 옷을 입듯이 외적인 변화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중생은 내적인 변화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셋째, 중생은 성화의 과정도 아닙니다. 물론 중생한 자는 성화의 과정을 밟아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성화가 중생은 아닙니다. 중생은 단회적인 것이며 순간적인 현상으로서 처음 시작의 일이지만, 성화는 과정이며 반복적인 것으로서 일생을 통해 일어나는 삶의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넷째, 중생은 일종의 내면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리킵니다. 칭의가 일종의 외적인 변화를 가리킨다면, 중생은 내적인 변화로서, 중생은 내 영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정확히 정의하자면, 중생이란 내 영 속에 성령께서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심으로 내 영에 하나님의 생명이 공급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중생이란 다른 말로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심”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 중생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사역으로서, 우리는 중생을 받는 입장에 있는 것이지 내가 중생하겠다고 결심한다고 해서 중생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1:13 이는 혈통(피)으로나 육정(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부터] [태어]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들이니라
일곱째, 중생은 시간이 지나면 결과로서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돌감람나무에 원감람나무가 접붙혀짐으로 인하여 이제는 돌감람나무의 잎이 나오지 않고, 원감람나무의 이파리가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육신의 부모로부터 육체의 생명을 받음으로 “태어난 것처럼, 우리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생명을 받음으로 “태어난 것”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행하시는 사역으로 그분이 내 영안으로 들어오실 때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심으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요14:16~17).
요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거듭 태어나게 되면 그 사람에 안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생명이라는 측면에서 “영생”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거듭난 사람이라면 내 속에 영생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다.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는가?
그럼, 사람은 어떻게 거듭 태어나는 것인가요? 다시 질문합니다.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인가요? 그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는 것입니다.
요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죄는 우리가 지었지만 예수께서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음을 믿고 그분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함으로 우리는 거듭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2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부터] [태어]나[게 되]지 아니하면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안으로) 들어갈 수 없느니라
첫째,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둘째, 자신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마음으로 믿고 그분을 자기의 주인으로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부터 거듭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물은 회개요, 성령은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물은 자신의 죄를 씻어내는 역할을 상징하는 것이요, 영은 사람의 영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오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성령으로 들어오실 때에 생명을 가져오심으로 이뤄집니다. 그래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예수님을 자기 마음 속에 모셔들일 때에 거듭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자는 거듭날 수 없으며, 생명이신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은 자는 거듭날 수 없습니다(롬10:9~10, 계3:20, 요1:12).
롬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거듭남이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구주요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의 영 속에 일어나는 현상을 “거듭남”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사람은 이러한 거듭남으로 인하여, 사람의 생명 외에 또 하나의 생명을 갖게 되는데, 그것을 거듭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사람이 거듭태어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첫째, 그 사람에게 생명의 영이신 ‘성령’이 들어오십니다. 둘째, 그 사람에게 ‘영생’이 주어집니다. 셋째, 그 사람에게서 ‘구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넷째, 그가 끝까지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가 죽을 때에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나.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그러나 사람은 자신이 거듭태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도 합니다. 이는 마치 여자가 임신을 했으나 처음에는 잘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입덧을 하고 음식이 메스꺼워짐으로 인하여 자기 뱃속에 다른 생명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1년, 어떤 사람은 3년, 어떤 사람은 10년도 걸립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존재 깊은 곳인 영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며, 때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대로 그 날을 스스로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중생하는 날이 곧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시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께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 성령이 들어오시면 떠나가지 않기 때문에, 한 번 중생한 자는 두 번 중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께서는 우리가 죽는 날까지 결코 떠나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그 시대까지)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왜 우리는 중생해야 합니까?
그래야 우리가 영생을 얻고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살아있을 때에 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믿게 되고, 죽은 다음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생을 해야 사실 신앙생활이 그때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교회에 억지로 나오려고 하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얼마나 시간과 물질이 아깝겠습니까?
고로 우리는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수님을 진심으로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미 자신이 거듭 태어난 신자라면 이제는 내 영이 성장할 서 있도록 환경을 많이 만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나. 결단의 축복
왜냐하면 내가 거듭나서 성숙해진 만큼 우리는 귀신을 대항할 수 있고, 환경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성장한 만큼 어떤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순간에도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무엇이 중생을 가리키는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중생은 내 영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오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중생은 개선이나 칭의, 성화와는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중생은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심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중생은 내가 죄인임을 시인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인으로 모셔들일 때에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을 온전히 나의 구주와 주인으로 믿고 섬기지 못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예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하나이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을 내 주인으로 영접하나이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을 내 안에 온전히 모시들이나이다.
주여, 이제는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존중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내 안의 생명에도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중생했으나 죄된 본성과 끊임없는 미혹으로 끌어가려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거듭난 생명을 따라 사는 것을 방해하는 악한 영들은 묶임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더욱 존중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거듭남은 인식의 변화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구나.
2.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올 때 거듭 태어나는구나.
3. 중생이란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분배되는 것이었구나.
4. 예수님을 믿고 회개할 때에 거듭 태어나는구나.
5. 내가 중생했다고 할지라도 죄된 본성과 악한 영들의 미혹은 우리가 죽는 날까지 계속되는구나.
6. 중생한 자라야 구원얻고 천국에 들어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