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령의 은사(03) 방언을 말하게 되면 어떤 유익이 있는가(고전14:2~4) [일시] 2020년 06월 21일(주일) 오전9시,11시 [찬송] 찬36장 주 예수 이름 높이어, 찬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찬424장 아버지여 나의 맘을 PW: 믿음, MIW: 방언기도 T.S: 믿음은 모국어로 드리는 통성기도와 더불어 방언기도도 열심히 드리는 것이다. |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은 회개하고 주일성수하면 살면 그것으로 족한 것일까요? 만약 그것만 필요한 것이었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내주하시는 성령만을 보내 주셨을 것입니다.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회개하게 하시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도 더 돈독히 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부활후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꼭 부탁하신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행1:4-5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오히려]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계속]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장차]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후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위로부터 능력으로 옷을 입혀진 후에 복음전하라 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는 성령세례를 통하여 능력을 받은 후에 복음을 전파하러 나가라고 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3가지라고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악한 자 안에 놓여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요일5:19). 둘째, 능력이 있는 마귀와 그의 귀신들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 나가려면 담대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강퍅한 세상사람들이 마음의 문이 열려지게 하려면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무장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왜 우리가 성령으로 무장해야 합니까? 왜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까? 그것은 복음을 전파하려면 능력으로 무장되지 아니하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예루살렘에 머물러서 가만히 있기만 하면 다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됩니까? 아닙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행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막9:28-29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돕는 천군천사가 오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지혜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능력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회개기도를 해야 원수마귀가 힘을 잃어버리고 쪼그라들다가 결국 떠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게 될 때에 어떤 일들이 생깁니까? 성령께서 오실 때에 어떤 선물을 가지고 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들이 있는데, 그것을 사도바울은 “성령의 은사(고전12:31)”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고전12:8~10의 말씀을 보면, 총9가지 은사를 선물로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12:8-10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①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②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③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④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⑤능력 행함(능력들의 역사들)을, 어떤 사람에게는 ⑥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⑦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⑧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⑨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그럼, 하나님께서는 왜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까? 그것을 한 마디로 딱 요약하다면, 그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함입니다.
고전12: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유익하다”라는 동사는 “쉼페로”라는 동사인데, 그 뜻은 “유용하다, 유익하다, 쓸만하다, 도움이 되다”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부어지실 때에 우리에게 유용한 선물들을 안겨주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받을 때에 이땅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도 유용하게 그것을 사용할 수 있으며, 우리 자신과 내 자녀를 귀신으로부터 지켜낼 때에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성령을 받으셨다면 성령의 은사를 구하시어, 늘 능력받고, 귀신을 물리치며,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게 될 때에 성령께서 선물로 주시는 은사들을 어떻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함께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성령세례 가운데 최초로 나타났던 방언의 은사를 어떻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은사가 없는 분들은 은사를 사모하시기를 바라며, 이미 은사가 있는 분들은 더 다듬어지고 확실하고도 정확한 은사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신령한 은사 중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운다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방언으로 말하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길래 자기의 덕을 세운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인가요?
“자기의 덕을 세운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2)청중적 접근
믿는 이들 중에는 성령세례가 있다는 것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더욱이 성령의 은사는 이미 성경책이 신약27권으로 종료되면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령의 은사는 존재하지도 않으며, 있어도 별로 쓸모가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옳은 주장이었다면, 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그토록 신신당부하기를, 복음의 증인이 되기 전에 반드시 위로부터 능력의 성령을 받고 나가라고 하셨겠습니까? 만약 그것이 초기 복음 전파시에 12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이었다면 왜 그것을 제자들에게만 제한하지 않으셨겠습니까? 그것은 오고오는 세대가 다 그것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고오는 세대에 그것이 없으면 복음전파가 실제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세상에 나가 귀신에게 오히려 정복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무엇인가를 더하거나 빼려고 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바울이 A.D.53~58년에 있었던 제3차전도여행중에 에베소에 머물러 있으면서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써보낸 편지입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2차전도여행(A.D.49~52)년에 개척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고린도라는 도시는 아가야지방의 수도로서, 대도시였지만 항구도시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이방신들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도시였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려면 그들에게는 특별히 초자연적인 일들이 더 요구되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그러한 은사들도 어떤 다른 교회들보다도 많이 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특히 고린도교회는 방언의 은사가 남달리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방언의 은사를 오용하거나 잘못 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편지를 써보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부어질 때에 나타나는 9가지 은사들 가운데, 바울은 3가지 은사들 곧 방언과 예언 그리고 방언통역까지 3가지 은사를 골라 그 실체를 알려주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유용하게 잘 사용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려고 한 것이 고린도전서 14장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바울은 여기서 신령한 은사들 가운데 “방언의 은사”가 과연 어떤 은사인지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왜 유익한 지도 알려주었습니다.
고전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고전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고전14: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계속해서] 금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은 “방언‘이라는 신령한 은사가 어떤 은사인지를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첫째, 사람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그래서 그것을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알아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 그것은 영으로 비밀들을 말하는 수단이라고 말했습니다. 넷째, 그리고 그것은 거듭난 성도가 자신의 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보통 모국어로 기도하지만 방언기도는 자신의 영을 사용해 성령을 힘입어 드리는 영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다섯째, 이러한 영의 말, 영의 기도는 성도들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이것을 말하는 것을 금하게 해서는 아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고전14:39).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방언이 어떻게 유익한지를 잘 모르면, 방언을 못하게 금지시키고 말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성령의 은사가 방언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을 모르면 방언하는 것을 보고서 더 이상 헛소리를 하지 말라고 나무랄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방언이 얼마나 자신의 영혼과 삶과 신앙생활에 유익한 줄을 모르면 방언을 하지 말라고 억제시킬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방언의 은사를 부정하면, 방언은 성경이 쓰여질 당시에만 있었던 것이지, 지금은 이미 없어졌다면서 방언의 은사는 다 귀신의 장난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방언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잘 모르면, 교회에서 방언을 말하는 자를 쫓아버릴 수도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방언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잘 모르면, 방언 말하는 아무것도 아니라도 애써 부정해버릴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방언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잘 모르면, 방언의 은사를 사모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방언이 얼마나 유용한 은사인지를 모르면, 이것을 사용하는 것을 제한해 버릴 것입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방언이 우리의 영혼과 과 신앙에 매우 유익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런 자들에게는 방언으로 은사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은사들이 그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가. 방언의 은사란 어떤 것인가?
최초의 성령세례사건으로 처음으로 출현하였던 ‘방언’이란 대체 어떤 은사일요? 사실 방언에 대한 논란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최초의 방언은 표적으로서 외국어이며, 그것은 성경이 완성됨에 따라 더 이상 사라졌다”고 말하는 분들도 더러 있습니다. 고로 사람이 자기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말하는 “방언”을 말하는 것은 헛소리요 귀신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이요 아무 의미없는 말장난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왜 방언의 은사는 사탄마귀가 주는 은사가 아닌지를 엊그제 금요일을 심야기도회 메시지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어찌되었든지 고전 14장에 따르면, 방언은 성령의 나타남 곧 성령의 은사이자 영적인 은사들 중의 하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은사는 특별해서 사람이 자기가 태어난 지방에서는 결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던 것니다. 또한 방언은 영이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의 기도”라는 것입니다(고전14:2,14). 한편, 다른 은사들(영적인 선물들)에 비해 방언의 은사는 표적이면서(막16:17) 능력이 되기도 합니다(눅24:49).
나. 방언으로 말하게 되면 어떤 유익이 있는가?
그렇다면 사람이 방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방언으로 말하는(랄레오) 것입니다(고전14:2)
고전14:2 방언을 말하는(발설하고 있는) 자는 사람에게 [발설]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발설]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발설함)이라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사람이 대개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되면 영으로 발설하게 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행2:4 [예루살렘교회]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방언들)로 [계속해서] 말하기(발설하기)를 시작하니라
행10:46 [이방인 고넬료가정] 이는 방언을 말하며(발설하고 있으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행19:6 [에베소교회]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아직도 계속해서] 방언[들]도 하고(발설하고 있었고) [그리고] 예언도 하니(하고 있었다)
둘째,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고전14:14)
고전14:14~15 내가 만일 방언으로 [계속해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기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장차] 영으로 기도하고(기도할 것이다) 또 [역시] [내가] [장차] 마음으로 기도하며...
사실 방언은 “말의 은사”이면서 동시에 “기도의 은사”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라고 주신 은사입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기도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 특히 통성으로 기도하기를 싫어하는 자에게 방언의 은사는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정말 기도를 많이 하고 싶은데, 모국어로 기도하면 기도거리가 떨어져서 더 이상 기도할 수 없을 때 방언기도는 매우 유용하게 쓰이게 됩니다.
셋째, 방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고전14:15).
고전14: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장차] 영으로 기도하고 또 [장차]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장차] 영으로 찬송하고 또 [장차]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그렇습니다.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 하고 오래 기도하다보면 방언으로 찬양이 나옵니다. 방언찬양은 꼭 천사가 부르는 찬양소리 같습니다.
그렇지만, 방언으로 말하고 있으면 그가 자신의 영으로 비밀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영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방언으로 “말하거나”, “기도하거나”, “찬양할 때”는 엄청 유익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한 마디로 “자기의 덕을 세운다”고 말했습니다.
고전14:4 방언을 말하는(발설하고 있는) 자는 자기[자신]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이것을 원문으로 보면, “헤아우톤 오이코도메이”라도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세운다(건축한다)”는 뜻입니다. 굳이 영어로 표현한다면, “edify himself”입니다. 영어로 “edify”라는 단어는 “build(짓다, 건축하다)”는 뜻이 아니라, “의식을 고양시키다. 교화시키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헬라어로, “덕을 세운다”는 단어는 무슨 뜻일까요? 헬라어로서, “덕을 세운다”로 번역된 단어는 “오이코도메오”라는 동사입니다. 그런데 이 동사는 3가지의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첫째, [집을] 짓다. 세우다. 건축하다.
둘째, 다시 짓다. 재건하다.
셋째, 복구하다. 복원하다.
고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이 3가지를 전부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유익한 것입니다.
첫째, 아무것도 세워진 것이 없을 때에는 자기 자신을 잘 세울 수 있기 때문에 유익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방언의 내용을 살펴보면, 크게 2가지로 분류가 됩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가 거기에 들어있습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방언에 나오는 영의 기도입니다.
“참 좋으신 아버지, 내 생애가 다하는 날까지 헛된 것에 주목하지 아니하고 신실하고 깨끗한 종으로 쓰임받기를 원하오니, 내 아버지의 영광만을 위해 달려가게 하옵소서. 한 영혼이라도 내게 맡기시면 그 영혼 하나를 위해서 내 생명을 희생해서라도 구원의 자리에 바로 세워서, 그 영혼이 아버지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아버지의 위대하심 앞에 영광돌리는 귀한 생명이 되도록, 종이 헌신을 다하여 수고하게금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그리고 또 하나는 예수께서 성령으로 우리의 미래에 되어질 일들 곧 나의 바람직한 것들 곧 사명같은 것을 미리 알려주고 또한 그 일을 위해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주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는 상당히 앞서서 드리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성령의 온전한 인도를 받게 된다면, 그는 먼저 앞서서 드리고 있는 영의 기도를 금방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위해 기도하게 될 것이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은 매우 유익한 것이 됩니다. 그때 주님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급하게 서두르지 말라.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들에 감사하라. 자신을 낮추고 교만하지 말라. 영적으로 깨어서 기도할 수 있는 동역자들과 함께 하라. 잘못된 분별하고 주의 종들을 책망하라.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지경이 넓혀지도록 기도하라.”는 말씀을 먼저 주십니다.
둘째, 이미 무너진 자기 자신이라면 그것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기 때문에 유익한 것이 됩니다. 무너진 자기를 어디서부터 세워야 할지 모를 때에 성령께서 우리 영과 더불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도와주시기에 다시 건축할 수가 있어서 유익하다. 방언은 무너진 자기자신을 세우는 기도가 되기 때문에 유익합니다.
셋째, 자기 자신이 무너져 있을 때는 복구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또한 유익합니다. 혹시 자신이 범죄하거나 실망하여 내려 앉은 상태에 있다고 할지라도 방언기도를 쉬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방언기도가 복구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방언으로 내 영이 자신을 일으켜 세워주도록 아버지에게 간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하고 아버지의 뜻에 부합하는 날이 오면 반드시 회복하는 놀라운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방언으로 말하면 간접적으로 유익한 것도 있습니다. 그것으로는 첫째, 자기 자신이 성령을 이미 받은 것에 대하여 강한 확신이 들기 때문에 유익합니다. “나는 확실히 하나님의 자녀야”라는 생각이 확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것이 기초은사이자 기본은사이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다른 은사들을 추가로 받을 수 있어서 유익합니다. 방언을 하게 되면, 이어서 ‘방언통역’이나 ‘예언’을 할 수 있게 되고, 병든 자를 고치는 ‘신유’의 은사, ‘귀신을 쫓는 은사’, ‘능력’과 ‘기적’의 은사가 따라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가 방언을 하고 나서는 중풍병자 애니아를 고쳤으며 죽은 다비다도 살렸습니다. 빌립집사는 방언을 하고 나서,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귀신을 쫓아내었고, 여러 중풍병자를 고쳤으며, 못걷는 자를 걷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방언을 하고 나서, 지혜와 말씀과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받았고, 영분별의 은사를 받았으며, 놀라운 기적의 은사도 받았으니, 바울의 몸에서 떨어진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가고 귀신도 떠나가는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행19:12). 셋째, 기도하라고 주신 은사이므로 기도를 더 잘 할 수 있고, 더 충분히 기도할 수 있어서 유익합니다. 방언기도를 할 수 있으면 모국어로 기도하다가 막히만 방언기도로 전환하여 하고, 방언기도를 하면서 마음으로 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기에 정말 유익합니다. 넷째, 방언의 내용을 그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 알아들을 수 있기에, 옆에 있는 귀신까지도 두렵게 하는 기도로 사용될 수 있어서 유익합니다.
다. 방언의 한계는 무엇인가?
그러나 방언은 결코 만능은 아닙니다. 방언을 한다고 해서 성령의 음성을 거부하는 것을 계속하면, 방언에 나온 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첫째, 방언을 한다고 해도 만약 그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자신이 지은 죄도 용서받을 수 없으며, 영적인 진보도 이룰 수 없고, 속에 들어온 귀신도 쫓아낼 수도 없습니다. 또한 둘째, 방언을 말한다고 해도 스스로 하나님께 찬양과 시간과 물질로 감사하지 않는다면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보다 적을 것이며, 천국에서 들어가서 받을 상급도 작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셋째, 아무리 방언으로 많이 기도해도, 옛사람의 성품을 가진 자신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지 않는다면, 더러운 자신의 성품을 절대 바꿀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날마다 모국어로 드리는 통성기도도 할 뿐만 아니라 더불어 방언기도도 같이 병행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적 진보를 이뤄가는 것입니다. 자기자신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무너진 것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입니다. 없던 것도 새롭게 건축하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복
가. 헌신자가 받는 복
그러면 방언을 통해 자신을 건축할 수 있습니다. 무너진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영적인 진보를 이뤄갈 수 있습니다. 다른 은사도 받을 수 있습니다. 미래에 바람직한 자기자신의 모습을 갖춰갈 수 있습니다.
나.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일반적인 기도도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에는 시기와 질투심이 들어간 기도도 있고, 욕심이 들어간 기도도 있습니다.
하지만 방언기도는 자기의 욕심이 들어간 기도가 하나도 없습니다. 시기 질투심의 기도도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거룩한 정결하며,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한 기도만 드립니다. 그리고 자기의 미래가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는지를 만들어가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내가 방언통역을 통해서 빨리 그 뜻을 깨달아 회개하거나, 성령의 음성이 내 혼의 영역까지 침투하게 하여 그 음성을 따라서 행하다 보면, 우리도 자신의 영이 드리고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기존 기도에 방언기도를 더하면 더 큰 유익이 됩니다.
가.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나. 결단의 축복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방언의 은사의 유익한 점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방언의 은사는 성령의 최초의 은사요 다른 은사의 시작의 은사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방언에는 말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과 찬양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방언이 유익한 것은 자기자신을 세워줄 뿐만 아니라 무너진 자기자신도 재건하고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방언은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고 기도를 더 잘하게 도와주며, 귀신까지도 떨게 하는 은사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영적인 은사를 사모하지 못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은사를 소홀히 여기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은사를 사모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방언의 은사를 사모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신령한 은사들을 사모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방언으로 기도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신령한 영적인 은사를 사모하지 못하게 방해한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방언으로 기도하지 못하게 막고있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방언을 사모할지어다. 방언으로 기도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믿는 자는 성령세례도 받아야 하는구나.
2. 성령세례가 임하면 성령의 선물들이 주어지는구나.
3. 성령의 은사가 주어지는 것은 우리를 유익하게 하려 함이로구나.
4. 방언의 은사는 말의 은사와 기도의 은사요 찬양의 은사로구나.
5. 방언으로 기도하면 자기자신을 건축하고, 재건하고 회복할 수 있구나.
6. 방언으로 기도할 때 다른 은사도 따라오고, 귀신들도 무서워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