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생명과 부활이 주어지는 신앙고백은 어떤 고백인가(11:21~27)

[일시] 20210404(주일) 오전9, 11

[찬송] 25장 면류관 벗어서, 161장 할렐루야 우리 예수, 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PW: 믿음, MIW: 고백하는

T.S: 믿음이란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 땅에 오시어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 자신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예수께서는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13:44).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그 가치는 자기밭을 다 팔아서라고 살 만큼 가치있고 소중한 것입니다. 사실 설교는 거대한 밭에서 보화를 캐내는 작업과도 같은 것입니다. 매주 말씀을 듣는 우리 성도들은 성경을 통하여 보화를 캐내어가져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올 해 들어와 지난 125일부터 창세기 강해를 시작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요한계시록을 강해했으니 이제는 시작을 한번 강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싶어서 강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이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엄청난 보화들이 무진장 들어 있었습니다. 창세기가 얼마나 과학적인 책인지를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그토록 알고 싶어했던 천사창조가 첫째날에 있었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하나님께서 첫째날에 지구를 창조하셨는데 창조되던 첫날부터 지구는 24시간에 한 번 자전하게금 창조하셨다는 것 등 놀라운 사실들을 무궁무진하게 쏟아져나왔습니다. 그리고 엊그제는 노아의 홍수이후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에도 놀라운 보석이 들어 있었습니다. 창세기 9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노아와 노아의 세 아들들과 새 언약을 체결하는데, 먼저는 아담과 16백년전에 맺었던 언약을 다시 언급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체결의 증표로서 하늘에 무지개를 두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때 하나님께서 노아와 노아의 아들들과 맺은 언약이 무엇입니까? 그 언약이 무엇이길래 그것을 보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상에서 만나는 일들 가운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나게 되기도 하는데, 그 원인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실 지난해 6월부터 회개의 또다른 측면을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는 구원을 위한 회개를 전폭적으로 외쳤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6월부터 저주로부터 해방받는 회개를 외쳤는데, 그것은 한 마디로, 조상들의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은 죄는 아니지만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결과로 인하여 귀신들이 후손들의 몸 속에 치고들어오면, 불치병 희귀병에 시달리게 되, 자기자식들이 정신적인 장애를 앓아 사람구실을 하지 못하며, 자살하게 되고 사건사고 등이 계속해서 끊어지지 않으며, 열심히 살아도 가난하게 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저주는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노아언약 속에도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언약의 핵심사항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9:5-6 내가 반드시 너희[자신]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요구할 것이다) 6 [누구든지]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게 되]면 그 사람의 피도 [다른 사람에 의하여] 흘릴(흘려질)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누군가 조상들 중에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하여 죽인 일이 있다면 반드시 그 죄값을 그와 그의 후손들이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사울왕 시대에 기브온거민을 억울하게 죽인 탓에 다윗왕 때에 3년간 기근이 있었던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자기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했는데도 풀리지 않는 저주가 있다면 조상들이 지은 살인의 죄를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노아의 언약을 보면, 왜 하나님께서 살인의 죄를 앙갚음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까? 어차피 아담의 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은 다 죽게 되어있는데 말이죠. 그러나 이것은 한 번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죽을 운명에 처해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다 빨리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오히려 육체의 생명이 살아있을 때에 즉 죽기전에 꼭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께서도 손대지 않는데, 왜 네가 무슨 권리로 남의 생명을 함부로 해하느냐고 묻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살해하면 그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류와 맺은 첫 번째 언약도 생명을 보존하라고 맺은 언약이었고, 두 번째 언약도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하는 언약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제 예수님을 통하여 인류와 생명에 관한 또 다른 생명의 언약을 맺으시고 있습니다. 그것의 한 예가 오늘 나사로의 회생사건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사람들이 생명을 얻어 서 영원히 살기를 바라시는지 그 마음을 읽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사람들에게 당신의 생명을 다 주시는 것입니까? 그리고 만세전에 미리 선택해놓은 사람이 따로 있어서 그 사람에게만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까? 우리는 성경을 몰라도 너무나 모르고, 하나님의 뜻을 몰라도 너무나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바라시는 뜻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주시려는 생명을 우리는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보화를 캐어 소유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나사로의 죽음을 놓고서 예수께서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사실을 들려주자 마르다가 주님더러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없는 현실에 맞딱뜨렸을 때에 어떻게 반응할까요? 그 첫 번째 가능성은 자신의 능력의 한계 앞에서 자신의 무능을 탄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가능성은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지만 그러한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없는 형편에 처한 자기자신을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가 인간의 능력밖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찾으나, 나사로가 죽어버린 것처럼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정말하고 낙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죽음 앞에서 절망하거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너희가 끝났다고 하는 그 순간이라 할지라도 내가 왔다면 그 문제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귀중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때 마르다와 마리아는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오빠가 병들어서 죽었고, 죽은 지도 이미 4일이 지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주님께서 오셨다는 말을 듣고 달려나가서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여기에 조금만 더 일찍 오셨다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인데,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2)청중적 접근

 

3)본문문제배경

 

4)문제발생원인

그런데 인간의 생명의 주인되신 예수님께서 그곳에 오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그때 예수께서는 절망하고 있는 마르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11:25~26[직역]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그리고 생명이다. 나를 믿고 있는 자는 비록 죽을지라도 [장차] 살 것이다. 살아있고 그리고 나를 믿고 있는 모든 자는 그 시대까지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예수님이 누군지를 모르면, 문제 앞에서 절망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예수님이 누군지를 모르면, 모든 사람 앞에 닥치는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맙니다.

믿음이 있어도 예수님이 누군지를 모르면, 생명의 주인이 거기에 와 있어도 사람이 죽어버렸다면 더 이상 소망이 없었다고 절망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예수님이 누군지를 모르면, 죽어도 다시 사는 것이 현재에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예수님이 누군지를 모르면, 예수님이 오셨어도 문제만 바라볼 뿐 예수님에게 부탁하지도 못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예수님이 누군지를 모르면, 현상만 바라볼 뿐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예수님이 누군지를 모르면, 예수님을 모든 문제의 해결자로서 결코 바라보지 못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예수님이 누군지를 모르면, 예수님이 그 문제를 해결해주시려고 와 있어도 그분이 지금 일해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있어도 예수님이 누군지를 모르면,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전혀 생각하지 못합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우리들은 믿음으로 예수님이 와 계시면 그분이 언제 문제라도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분이 와 계시면 인간에게 절망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심지어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아직 모든 것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 마르다의 신앙고백은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어떻게 다른가?

오늘날 예수님에 대한 우리들의 신앙고백은 어떠해야 할까요? 그것은 적어도 음부 곧 귀신들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신앙고백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신앙고백은 베드로가 했습니다.

16:16-1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문들)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의 이러한 신앙고백은 우리 주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가 되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신앙고백은 사실 우리가 죽은 다음에 확인이 되는 고백이요, 살아 있을 때에는 귀신의 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권세이지만 사실 귀신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기에 쉽게 확인이 되지 않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고백은 이러한 신앙고백에서 그쳐서는 아니 됩니다. 그것은 좀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죽음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신앙고백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부딪히고 있는 현실의 문제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신앙고백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마르다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렇다면, 마르다는 대체 예수님에 대해 어떠한 신앙고백을 한 것인가요? 얼핏 보기에 마르다의 신앙고백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거의 같아 보입니다. 비교해보겠습니다. 먼저 한글성경으로 보겠습니다.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1: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당신)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거의 같이 보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헬라어성경으로 보면, 둘은 다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예수님에 대해 2가지 신앙고백이라면, 마르다는 예수님에 대해 3가지 신앙고백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이 본문을 헬라어원문으로 보시겠습니다. 먼저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su. ei= o` cristo.j o` ui`o.j tou/ qeou/ tou/ zw/ntoj?

(쑤 에이 호 크리스토스, 호 휘오스 투 데우 투 조온토스)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당신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것을 우리 말로 하면, “당신은 그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하나님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수식어 살아계시는이라는 문구는 사실 아들을 수식하는 단어가 아니라 하나님을 수식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즉 아들이 살아계시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그런데 마르다의 신앙고백은 이와는 조금 다릅니다.

su. ei= o` cristo.j o` ui`o.j tou/ qeou/ o` eivj to.n ko,smon evrco,menoj

(쑤 에이 호 크리스토스, 호 휘오스 투 데우, 호 에이스 톤 코스모스 에르코메노스)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God, he who is coming into the world)

(당신은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세상 안으로 오고 계시는 이이십니다)

우선 마르다의 신앙고백은 예수님이 누군지가 3가지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부터 다릅니다. 앞의 2가지는 거의 같습니다. 앞의 2가지는 하나님에 대한 수식어로서 살아계시는이라는 말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에는 붙어있지만, 마르다의 신앙고백에는 그것이 붙어있지 않는 것에서만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세 번째의 신앙고백는 마르다에게만 있는 신앙고백입니다.

o` eivj to.n ko,smon evrco,menoj

(호 에이스 톤 코스몬 에르코메노스)

(he who is coming into the world)

(세상 안으로 [현재] 오고 계시는 이)

이것을 한글로 번역하면, 세상 안으로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입니다. 쉽게 말해, 마르다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에다가 당신은 세상 안으로 지금도 오고 계시는 분이라고 한 가지를 더 고백한 것입니다. 아니, 사람은 여기 있으면 저기에는 없는 것이기에, 만약 예수님에 대해 신앙고백을 제대로 하려면, 당신은 세상이 이미 오신 분이든지, 당신은 앞으로 세상 안으로 들어오실 분이라고 해야지,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마르다가 예수님을 시간 밖에서 시간 안을 들여다보고 계시는 분, 공간 밖에서 공간 안을 들여다보시고 현장 안으로 들어오신 분이라고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행할 수 있는 존재는 그분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 유대인들은 왜 예수님을 구원자이자 하나님으로 믿지 아니하는가?

여기서 잠깐, 우리는 오늘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당시 마르다도 유대인들 중의 한 사람이니까요.

오늘날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들 중의 한 사람 정도로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분을 절대 구원자하나님의 아들이나 하나님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유대인들 중에는 약 2%가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와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럼, 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구원자요 하나님으로 믿지 아니하는 것일까요? 그것에 대한 결정적인 이유는 딱 2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결코 둘이 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직 한 분으로 단독으로 계시는 분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리고 둘째,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런 자들은 그들은 다신론자로 치부합니다. 그것은 신성모독죄를 짓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이라도 예수님을 구원자와 하나님으로 고백하면, 유대인으로서 자격에 제한을 줍니다. 예를 들어, 죽고 나면 유대인의 공동묘지에 묻힐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가족들도 그를 이방인으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르다가 했던 신앙고백이 실로 엄청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이며, 세상으로 오고 계시는 이라는 뜻은?

마르다는 나사로의 동생이자 마리아의 언니입니다. 열심히 있고 음식 잘 만드는 여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늘 예수님을 잘 대접하려고 했던 바로 그 여인이 바로 마르다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예수님더러 예수님이 누군지에 관하여 말씀을 듣더니 이러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지금도 세상 안으로 오고 계시는 이이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누구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까? 그분은 저 하늘에 계시지만 지금도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시어 일하고 계시는 분으로 보았다는 뜻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라는 명칭요한계시록에 보면, 주 하나님에 대한 명칭이라는 것입니다(1:8).

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여기에 나오는 장차 올 자라고 된 한글번역이 실은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라는 것인, 번역을
장차 올 자라고 번역했을 뿐입니다.

o` w'n kai. o` h=n kai. o` evrco,menoj

(호 온 카이 호 앤 카이 호 에르코메노스)

(지금 있는 이 그리고 아직도 있는 이,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

다만, 마르다의 신앙고백이 요한계시록의 용례와 다른 점은 마르다가 예수님을 세상 안으로라는 수식구를 넣어서 고백했다는 것 뿐입니다. 고로 우리는 마르다가 말하는 지금도 세상 안으로 오고 계시는 이라는 명칭이 곧 하나님에 대한 명칭이었다는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은 어떤 분으로 고백한 것입니까? 그녀는 예수님을 그리스도곧 구원자요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만 아니라, 그분을 지금도 일하시는 이,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이”, 지금도 하나님으로서 내 곁에 다가오셔서 일하시는 이, 영원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지금 곁에 오셔서 나를 만나 주시는 분이라고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께서는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셨습니까?

11:25~26[직역]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그리고 생명이다. 나를 믿고 있는 자는 비록 죽을지라도 [장차] 살 것이다. 살아있고 그리고 나를 믿고 있는 모든 자는 그 시대까지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예수께서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오시어 일하고 있는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믿으면 죽어도 다시 살 것이고, 무릇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마르다가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자,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 곧 하나님이신데 지금 이 땅에 마르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려고 오신 분이라고 고백했을 때에 어떤 복을 받게 되었습니까?

주님께서 그녀에게 생명이요 부활이 되어 주셨습니다. 죽어도 다시 사는 것을 보게 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지 4일된 자신의 오빠가 다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소망이 없어졌던 그녀에게 환희가 주어진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는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도무히 해결할 수 없는 죽음의 문제마저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빠가 다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 청중의 더 큰 복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어떠한 분으로 고백하느냐는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가 만약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할 때 음부의 권세들을 이기게 됩니다. 하지만 마르다처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분을 하나님이시지만 지금 내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나를 찾아오신 분이라는 신앙고백을 한다면, 죽음에 직면하고 있는 우리에게 그분은 생명이 되어주시고, 부활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절망적인 문제를 한 순간에 기쁨으로 바꾸어놓으실 것입니다.

 

2)결단

우리가 육신을 갖고 있어서 육체의 한계에 놓여있지만 예수님은 여전히 생명이요 부활이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내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그때만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살아계십니다. 그래서 죽음도 생명으로 바꾸어주고 계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께서 비록 아들의 신분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그분이야말로 구약시대의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야말로 베드로의 신앙고백처럼 구약에 기록된 360가지이상의 예언을 성취하러 오신 약속된 메시야이자, 구원자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채 있는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신 증거는 무엇입니까? 죽은 지 이미 4일된 나사로를 일으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분만이 스스로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분이 생명이요 부활이시라는 것을 증거해줍니다.

누가 생명과 부활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구세주와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할 뿐만 아니라, 지금도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 곁에 오신 생명과 부활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때입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주여, 이제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믿음을 주시옵소서. 다같이 2~3분간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 결단의 축복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예수님이 누군지를 확실히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은 지금도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지금도 나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은 생명의 주인이시요 내가 죽는다고 해도 나를 다시 살려주실 수 있는 부활생명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 앞에서는 죽음의 문제일지라도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그동안 우리의 신앙고백이 약했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은 유일한 구원자로 믿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이 생명이심을 믿나이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이 부활생명이심을 믿나이다.

주여, 이제는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이 예수님이심을 믿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예수님이 누군지를 보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신앙으로 고백하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예수님이야말로 생명이시요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을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노아와 우리 인간들과 생명의 언약을 맺어오셨구나.

2. 예수님이야말로 유일한 구원자시요 하나님이시로구나.

3.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곁으로 찾아오셔서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로구나.

4. 음부를 이기고 사망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이는 오직 생명 그 자체이시요 부활이신 우리 주 예수님밖에 없구나.

5. 베드로의 신앙고백에서 마르다의 신앙고백으로 다가설 때 우리도 기적을 체험하는구나.

6.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도 다시 살 수 있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한 죽음을 결코 보지 않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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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 저주가 다시 없으며(계22:1~5)_2021-06-20(주일) 갈렙 2021.06.20 267
340 영적으로 깨끗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안수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행9:17~19a)_2021-06-13(주일) 갈렙 2021.06.13 474
339 주의 보혈의 능력과 우리의 자백의 상관관계(요일1:7~9)_2021-06-06(주일) 갈렙 2021.06.06 390
338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나와 내 가정을 지키는 실제적인 방법(막9:25~29)_2021-05-30(주일) 갈렙 2021.05.30 311
337 한 분 하나님의 벗(친구)이 되는 자들이 받을 신약의 축복(요15:15~16)_2021-05-23(주일) 갈렙 2021.05.23 312
336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만 믿으면 죄사함을 받을까?(히10:15~18)_2021-05-16(주일) 갈렙 2021.05.16 627
335 인류를 위한 한 분 하나님의 최대의 관심사는(창18:16~21)_2021-05-09(주일) 갈렙 2021.05.09 390
334 창세기강해(85) 하나님의 때와 아브라함의 두번째 실수(창16;1~3과 15~17;1)_2021-05-02(주일) 갈렙 2021.05.02 326
333 창세기강해(78) 실수를 통해 배워가는 아브라함(창13:1~13)_2021-04-25(주일) 갈렙 2021.04.25 391
33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진짜 이유는(창11:31~12:1)_2021-04-18(주일) file 갈렙 2021.04.18 483
331 가나안과 가문의 저주를 끝낸 한 여인(마15:21~28)_2021-04-11(주일) 갈렙 2021.04.11 300
» 생명과 부활이 주어지는 신앙고백은 어떤 고백인가(요11:21~27)_2021-04-04(주일) 갈렙 2021.04.04 281
329 회개가 전부일까? 진실로 회개했다면 그 후는?(요20:27~29와 21:15~17)_2021-03-28(주일) 갈렙 2021.03.28 380
328 원수들의 공격을 이겨낼 수 있는 진짜 최고의 무기는(시27:1~6)_2021-03-21(주일) 갈렙 2021.03.21 353
327 주께서 주신 매고 푸는 권세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마16:18~19)_2021-03-14(주일) 갈렙 2021.03.14 702
326 아담과 하와는 과연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갔을까?(창3:8~16)_2021-03-07(주일) 갈렙 2021.03.07 451
325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하는가(창2:8~14)_2021-02-28(주일) 갈렙 2021.02.28 296
324 어떻게 할 때 그리스도께서 내 속에서 형상을 갖추시는가?(갈4:19)_2021-02-21(주일) 갈렙 2021.02.21 294
323 영적인 빈익빈과 부익부의 갈림길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눅8:16~18)_2021-02-14(주일) 갈렙 2021.02.14 305
322 영적 전사가 되어 죄를 처리하는 법(창4:3~12)_2021-02-07(주일) 갈렙 2021.02.07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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