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우리가 이 마지막 시대에 태어나 구원받은 이유는 무엇인가(20:13~16)

[일시] 20220206(주일) 오전9, 11

[찬송] 43장 즐겁게 안식할 날, 86장 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 329장 주 날 불러 이르소서

PW: 믿음, MIW: 감사와 충성

T.S: 믿음이란 주님이 언제 나를 부르셨든지 나를 불러 일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충성되이일하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왜 우리는 이 마지막 시대에 태어났으며 이 놀라운 회개와 천국복음을 듣게 되었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구원열차의 막차를 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마24장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에 따르면, 지금은 말세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24:32-33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것의] 가지가 연하여지고(부드럽게 되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역시]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있다는 것) [계속] 알라(알고 있어라)

어떤 영적인 분은 지금도 가끔씩 하늘에서 재림나팔 소리가 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실제가 아니라 연습이라고 주님이 말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때가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처럼 회개의 복음을 듣고 정말 천국에 들어갈 자로 준비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정말 복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여기에서 적당히 안주하고 만족하면서 회개하고 지내면 되는 것일까요? 그러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와 천국복음을 알려주셨을까요?

저는 그동안 기독교의 모든 체계가 서양과 미국에서 시작되었는데 왜 이 한국 땅에서 마지막으로 꽃을 피우게 되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천국에 직접 가서, 물론 하나님께서 보여준 것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천국에 직접 가서 누가 24장로의 자리에 앉아 있고, 누가 244,000명의 보좌에 앉아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이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우리나라 사람을 제외하고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 사람과 교회에서 이러한 놀라운 영적 세계와 영적 비밀을 알려주고 계신 것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우리나라가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특별한 사명을 감당하길 바라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정말 중요한 시기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전하고 있는 이 회개와 천국복음을 어거스틴도 알지 못했고, 루터나 칼빈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죠지 위필드와 죠지 뮐러, 그리고 무디와 같은 복음전도자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이제는 천국복음의 마지막 전파자로서 우리 한국교회가 선택되었다는 것을 깊이 파악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완수하기 위해 이제 한국교회가 더욱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부활승천하신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요한계시록에서 이렇게 소개하셨습니다.

1:17-18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호 프로토스’)이요 마지막(‘호 에스카토스’)이니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알파(토 알파)와 오메가(토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헤 아르케)과 마침(코 텔로스)이라고 말씀하신 것인가요? 이 말씀은 그분이 온 우주를 창조하심으로 시작하신 분이요 그분이 재림하심으로 우주를 끝내시는 분이라는 뜻일까요? 오늘 우리는 동일한 단어를 오늘 본문 말씀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단지 단수가 복수형태로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여기에서는 나중된 자들(호이 에스카토이)가 먼저 되고, 그리고 먼저 된 자들(호이 프로토이)가 나중 되리라고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비유 말씀을 통하여, 우리 주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보다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과연 어느 시점에 있으며,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은 대체 무엇이며, 우리는 또한 그것을 어떻게 완성해야 할까요?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저녁이 되자 포도원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되, 맨 나중에 온 자들로부터 주었는데, 먼저 온 자들이 자기들은 더 많이 받을 줄 알았지만 나중에 온 자들과 똑같이 받게 되자, 포도원 주인에게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포도원 주인이 그것은 주인의 바라고 원하는 선한 뜻이라고 하면서, 맨 나중의 사람들이 처음의 사람들이 되고, 처음의 사람들이 맨 나중의 사람들이 될 것이라고 해다는 말씀입니다.

일하는 시간이나 양으로 따진다면 먼저 와서 많이 일한 자가 더 많은 품삯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포도원주의 주인은 그렇게 셈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일이 마칠 쯤에 와서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아니한 사람에게 이른 아침부터 와서 일한 사람과 똑같은 품삯을 주었던 주인의 처우는 분명 불공평한 처사가 아니었던가요? 그래서 먼저 온 자들이 불평한 것은 어쩌면 정당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2)청중적 접근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사실은 201절부터 시작된 하나의 천국비유의 단락 안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예수께서 들려주신 이유는 19장에 나와있는 베드로의 질문에 대하여 주님께서 답변해주시고 그 답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들려주신 비유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한 부자청년을 보시면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을 대표하여 베드로가 주님께 물었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렸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과연 무엇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19:28-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따랐던)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버렸던) 자마다(이들 모두가) [장차] 여러 배(백 배)를 받[을 것이]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상속으로 받을 것이다) 30 그러나 먼저 된 자(처음의 사람들)”로서 []나중 되고(될 것이고) “나중 된 자(맨 나중의 사람들)”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20장의 포도원 품군의 천국비유가 제자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이때 예수께서는 이런 비유를 제자들에게 들려주셨습니다.

어느 포도원의 주인포도수확 철을 맞아 일꾼들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러자 이른 아침에 나가서 품꾼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른 아침 6시에 만난 사람들에게 하루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한 후에 포도원으로 들여보냈습니다. 그런데 포도를 수확하는 데에 더 일손이 필요했기에 주인은 오전 9시에 장터에 나가서 만난 자들에게 너도 역시 포도원으로 가서 일해라. 그러면 내게 너희에게 상당한 삯을 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포도 수확을 하는데 더 일손이 필요했으므로, 정오에도 그리고 오후 3시에도 나거서 일꾼들을 뽑아서 포도원으로 들여보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비록 1시간 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손이 부족하니 지금이라도 들여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주인은 나가 보았는데, 정말 그때까지 서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말합니다. 왜 당신들은 온종일 일을 하지 못한 채 여기서 서 있는 것이오 그러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일꾼으로 고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그러자 주인은 또 그들에게 여러분도 내 포도원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난 후에 주인이 일꾼들을 불러 하루 품삯을 주게 했는데, 청지기에게 마지막에 온 사람들부터 품삯을 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후 5시에 들어와서 한 시간만 일한 자가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 전에 왔던 사람들은 자기들은 더 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후3시에 들어온 자나 정오에 들어온 자, 오전 9시에 들어온 자, 오전6시부터 와서 일했던 자나 다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 모두가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 이른 아침부터 와서 일했던 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20:12 [] 나중[] <>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당신은]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견뎠던) 우리와 똑]같게 []하였나이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20:13-16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동료여), 내가 네게(너희들에게) 잘못한(불의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합의)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당신은] (당신의) 것이나 [들어올리라] [그리고] 가지고 가라. [] 나중[] <>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내가 원한다)”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원하는 바) []할 것이 [합당하지] 아니냐(않느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당신의 눈에는 악하게 보이오?) 16 이와 같이 [] 나중[] <> []로서 먼저(처음)[] 되고, ”먼저(처음의) <> []로서 [] 나중[] 되리라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주인의 마음을 모르면, 마치 주인이 품꾼들에게 자기 것이라고 자기 맘대로 시행하는 폭군처럼 지춰질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주인의 마음을 모르면, 주인을 불공평한 주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주인의 마음을 모르면, 주인이 품삯 계산을 잘못 행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주인의 마음을 모르면, 먼저 고용되어 아침부터 안정된 수입을 보장받은 것과 또한 주인이 약속을 그대로 지켜 자신에게 한 데나리온을 어김없이 준 것에 대해서는 고마운 생각을 전혀 갖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주인의 마음을 모르면, 맨 나중에 온 자들에게 긍휼을 베푼 주인을 두고서 그를 오히려 불의한 자라고 매도할 수 있습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우리들은 믿음으로왜 주인이 맨 나중에 온 자에게 하루치의 품삯을 주었으며, 품삯을 줄 때에도 왜 맨 나중에 온 자부터 주어서 그것을 먼저 온 자들로 하여금 보게 하였는지를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무슨 비유인가?

이 천국 비유는 어떤 비유입니까? 시간 관계상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립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께서는 맨 나중에 부름 받아서 주의 나라를 위해 수고한 사람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처음부터 부름받아 수고한 자들과 다르게 취급하지 않겠다고 하는 비유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처음부터 부름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 자들이 왜 자기들이 들어가기로 약속받은 천국을 왜 늦게 온 그들에게도 동일하게 들어가게 해주느냐면서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고로 이 비유의 핵심은 사실 마지막 절에 있습니다. 맨 나중의 사람들이 오히려 천국에 들어가는 처음 사람들이 될 수 있고, 처음의 사람일지라도 천국에 들어갈 때에는 맨 나중에 비로소 들어가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처음 들어온 품꾼들이나 중간에 세 번씩이나 들어온 품꾼들이나 그리고 맨 마지막 끄트머리에 들어온 품꾼들이나 하나님께서는 그들 모두에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공평하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 왜 포도원 주인은 나중 온 자부터 품삯을 주라고 했는가?

보통 일반적으로 다른 주인 같았으면 품삯을 줄 때에 먼저 들어온 자들부터 한 데나리온씩 주어서 보냈을 것입니다. 그렇게 했으면 사실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침 일찍 들어온 자는 한 데나리온을 받기로 계약하고 왔기에 주인은 약속을 잘 지키시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루 벌어 하루 살아야 할 처지에 놓인 자기들이 오늘 하루는 가족들과 배불리 먹을 수 있겠구나 하면서 기쁘게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전 9시나 12시 그리고 오후3시나 마지막으로 오후 5시에 들언 자들은 자기들은 한 데나리온을 받지 못할 줄을 알고 있었는데, 이른 아침에 들어온 자처럼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씩을 주는 주인을 보고서, 요즘에 정말 보기 드문 선한 주인일세 하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이 청지기에게 거꾸로 품삯을 주라고 한 것에 있는 것입니다. 이는 맨 나중에 온 자들에게 주인이 한 데나리온을 주는 모습을 먼저 온 자들에게 먼저 보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먼저 온 자들에게 뭔가를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겸손하지 못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먼저 온 자들을 책망하시기 위함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첫째, 먼저 선택받은 자들이나 나중에 선택받은 자들이나 다 똑같이 일꾼들에 불과한 것인데, 먼저 온 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지 않으면 하루의 일당을 벌 수 없어 굶어야 하는 것은 같은데도, 먼저 온 자들은 자신들은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부름을 받았다고 그 사람에게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자신들을 특별대우해 주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처음 온 자나 맨 나중에 온 자나 다 똑같은 종류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36절에 나오는 헬라어 단어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아쉽게도 우리말 개역성경에는 그것을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알루스(allous)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알로스(allos)’의 복수형인데, 이 단어는 다른이라는 형용사입니다. 그런데 이 다른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말하면 “different(다른 종류로서의 다른)”가 아니라 “other(같은 종류로서의 다른)”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둘은 서로 질적으로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아니라, 단지 주인이 볼 때에는 누가 먼저 선택을 받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다 동일한 종류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른 아침에 먼저 주인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그 사람이 질적으로 우수한 인재여서 뽑힌 것이 아니라 둘 다 주인의 은총을 바라는 사람들로서, 주인이 고용해주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는 사람들, 하나님이 구원해 주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로서 서로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먼저 부름을 받아서 일을 했느냐의 차이만 있다는 것이지, 늦게 부름을 받았다고 해서 그렇게 질적으로 떨어지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주인이 말하기를 맨 나중에 온 자들을 보아라. 나도 사람을 아는데, 그들은 한 시간을 남겨두고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일하는 모습에 얼마나 내가 감동했으면 그들에게 하루 품삯의 1/12을 주지 않고, 그들에게 너희들이 받을 수 있는 하루치의 품삯을 똑같이 주었을른지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라고 한 것입니다. 사실 이른 아침부터 포도원에 들어온 일꾼들은 이제 오늘 하루만 버티면 하루치 일당이 나오게 되었으니 적당히 일해도 되겠구나 하면서, 화장실을 가도 5분이면 갔다올 것은 10~20분 농땡이 피우다가 오고, 물 먹으러 간다고 하면서 5분이면 갔다고 올 것은 또 10~20분 천천히 움직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먼저 들어온 자들에게는 열심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로부터 감사를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충성도가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은 이미 그들과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약속했으니 비록 그들이 게을렀으며 적당히 일을 했을지라도, 그래도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약속한 것이니 겸손히 감사하게 받으라는 것입니다. 뒤늦게 온 자들은 너무나 늦게 포도원에 들어왔지만, 그들은 자신을 불러준 주인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으니, 그들은 비록 하루 종일 일하지는 않았지만도 그들이 쏟은 정성을 봐서, 그들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고로 이 비유는 일꾼을 불러 쓰시는 하나님께서 시대적(시기적)으로 혹은 민족적으로 누구를 먼저 불러 일하게 했느냐, 누구를 불러 나중에 일하게 했느냐의 차이만 있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언제 어느 때에 누구를 일꾼으로 쓰실 것인가 하는 것은 다 부르시는 이의 소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부활승천하신 후 자신을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분은 누구를 언제 불러서 사용할 것인지 그분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먼저 불러 사용하실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불러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단지 주인이 그것을 불러서 쓰는 시기가 다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먼저 부름을 받았다고 자신은 특별대우를 안 해 주느냐면서 불평불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은 너도 그때 일찍이 선택을 받지 못했다면, 너도 오후 5시에 겨우 포도원에 들어가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오후 5시에 간신히 선택받아서 들어온 사람이 내 자식이었다고 생각하면, 너는 이렇게 나에게 불평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 이 비유는 예수님은 정말 긍휼이 많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2: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3: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 이 마지막 시대에 주어진 우리 한국교회의 과제는 무엇인가?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한국교회는 이 시대에 맨 나중에 불러 쓰시는 주님의 마지막 주자이자 복음사역자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민족은 1~2대만 올라가면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신지 아니 계신지도 모른 채, 온갖 우상숭배를 행하며 살았던 저주받은 백성이었습니다. 아니 조선 말기만 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선교사들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들이 오기 직전까지 우리민족은 마귀자식이었고 저주에 갇혀있는 가장 불쌍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시대 마지막에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니 이 어인 은혜입니까? 그래서인지 우리 민족은 이 시대의 끝에 우리를 불러주신 주님을 열심히 찾았고 또 열심히 찾았습니다. 그래서 회개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놀라운 회개와 천국입성 복음을 들었으면서도 게으른 자들이 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온 자들에게도 그들의 나태하고 게을렀던 것을 책망하셨던 하나님께서, 오후 5시에 부름받은 우리가 게으르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도 더욱 분발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아마도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마저도 빼앗기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저는 생각합니다. 이 마지막 시기에 거의 모든 영적인 비밀을 다 알려주었는데도, 우리가 게으르거나 나태하거나 여기에 그냥 편이 안주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민족에게서 촛대를 옮기실 것입니다.

왜 포도원 주인은 오후5시에 들어온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겠습니까? 한 시간만 대충 때우고 가겠다고 농땡이를 피운 자들이었는데도, 주인이 긍휼이 풍성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그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거의 문 닫을 시기에 들어왔지만 자신을 불러서 일꾼으로 써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 마음으로 일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도 시간이 다 되었다고 하는데도 손에 있는 것은 마저 끝내겠다고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면서, 우리들은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이른 아침에 자신이 선택받지 않았다고 그들이 돌아가버렸다면 과연 그들이 선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또다시 선택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언젠가는 선한 주인이 와서 나를 들어쓰실 날이 올 것을 기대하고 기다리고 기다린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후5시가 되었어도 포기하지 않고 주인을 기다린 자들이었기에, 그들이 마지막으로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1시간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들은 그 시간을 정말 성실하게 보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주님이 나를 언제 불렀든지 나를 불러 일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하면서 열심히 맡겨진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오늘 비유는 상급에 관한 비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19장에 나옵니다. 이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순서에 관한 비유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먼저 부름을 받아 하나님께 쓰임받았다고 해서 그가 천국에 들어가고 큰 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꾼들이 당신이 정한 때에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비록 늦게 부름을 받았어도 나를 불러 쓰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부지런히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또 기대치 않은 놀라운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만약 오후 5시에 들어온 자들, 이른 아침부터 들어온 자들처럼 적당히 시간만 때웠다면 그들에게 과연 한 데나리온이 주어졌을까요?

첫째, 남들보다 먼저 믿은 자들은 오늘부터라도 자신에게도 게으름과 나태함이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먼저 선택받은 것에 대한 감사가 있는지를 확인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늦게 온 자라도 긍휼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둘째, 늦게 믿었는데도 하염없는 은총을 베풀어주신 주님께 지금 내가 혹시 게으르게 반응하고 있는 지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늦게 주님 앞에 들어온 자들에게는 보장된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늦게나마 주님의 일을 하실 수 있도록 불러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의 자세가 주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겸손해지고” “충성되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 결단의 축복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왜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와 우리 민족을 회개와 천국복음의 마지막 주자로 선택하셨는지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맨 마지막에 선택받은 민족이지만 우리 민족의 열심을 보시고 주님께서 오늘도 축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먼저 선택받은 자들이라고 할지라도 감사한 마음과 충성된 삶이 없으면서 특별대우를 받으려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뒤늦게 믿었어도 축복을 받았는데 또다시 거기에 만족한 채 적당히 안주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먼저냐 나중이냐 하는 것은 단지 주님의 사역자로서 부름받은 순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겸손하고 충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어느새 감사와 열심이 식어지지는 않았는지 주님께 용서를 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겸손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충성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나태하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게으르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부르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늦은비의 은총을 받았음에도 열심을 내지 않고 게으르게 만들려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부르심의 은총을 망각한 채 현재의 환경에 안주하도록 만드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주님의 부르심에 감사하고 충성하고 또 충성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주 늦게 부르셨지만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열심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큰 복을 주시고 있구나.

2. 하나님은 당신이 정하신 때를 따라 민족과 사람을 불러 당신의 일을 행하게 하시는구나.

3. 맡은 자에게 필요한 것은 정말 겸손충성이로구나.

4. 먼저 부르심을 받았다고 해서 먼저 되는 것이 아니며, 늦게 부르심을 받았다고 늦게 되는 것도 아니로구나.

5. 먼저 믿은 자라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결국 나중이 되고 마는구나.

6. 늦게 부르심을 받았어도 하염없는 은총을 베푸신 주님의 은혜를 망각한다면 또다시 촛대는 옮겨가고 말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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