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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9-07-31
본문말씀 에스겔20:1~32(구약 1179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이스라엘의반역,이스라엘의장로들의가증함,애굽에서의우상숭배,광야에서의우상숭배,가나안에서의우상숭배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 있을 때에도, 광야에 나와서도, 가나안 땅에 입성해서도 계속해서 우상을 숭배하였다. 왜 그랬을까? 그들이 진짜로 계속해서 우상을 숭배하였던 직접적인 원인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인도하여낸 이스라엘 백성을 곧바로 시내산으로 인도하여 거기에서 율법을 주셨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특히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이유는 무어이었을까? 그리고 그때 그들에게 처음으로 율법말씀을 주셨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때 그들을 율법으로 정죄하여 그들에게 벌을 주려고 주신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가? 오늘날에 들어와서도 율법말씀은 우리를 얽어매어 움쭉딸싹을 하지 못하게하는 올무에 불과한 것인가? 에스겔서에는 창세기나 출애굽기에도 나오지 않는 하나님의 마음들이 종종 나온다. 오늘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이다.

 

1. 들어가며

  에스겔은 다른 많은 선지자들보다도 환상을 많이 본 선지자다. 그런데 환상과 꿈으로 친다면, 사실 다니엘을 따라갈 선지자가 없겠지만 에스겔도 참으로 많은 환상을 본 선지자임에 틀림없다. 특히 에스겔이 보았던 천상에 있는 하나님 보좌의 환상은 구약의그 어떤  선지자들 가운데도 가장 정확하고 온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영광스러운 하늘보좌의 환상을 본 대신에 그는 엄청나게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으나 무려 7년동안은 입이 입천장에 붙어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7년간은 오직 행동으로만 예언해야 했다. 또한 그의 아내가 이유없이 갑작스럽게 죽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울 수도 없었다. 그것은 사랑하던 성읍 예루살렘의 멸망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오늘은 에스겔강해 8번째 시간으로서, 에스겔이 포로로 잡혀온 지 7년째 되는 해 5월 10일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에 관한 말씀(겔20~23장)에서 첫번째 부분에 해당하는 말씀이다. 우리는 오늘 속으로 우상을 숭배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하나님께 물으러온 이스라엘의 가증스러운 장로들에 대해 살펴볼 것이고, 과거 이스라엘 조상들(애굽시절, 광야시절, 가나안시절)이 저질렀던 우상숭배의 실상을 들여다 볼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과연 우상숭배에 쉽게 물들게 되는지, 그리고 율법이란 어떻게 되어서 유대인들에게 주어지게 되었는지까지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주에는 율법과 안식일의 상관관계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하게 된 두 번째 이유와 산당과의 관계를 살펴볼 것이다.

 

2.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왜 에스겔을 찾아왔는가?(겔20:1~4)

  이스라엘 장로들이 에스겔을 찾아온 것은 에스겔이 포로로 잡혀간 지 7년째 되던 해(B.C.591년) 5월 10일이었다. 이스라엘 장로 여러 사람이 에스겔에게 여호와께 신탁을 받으려고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기 전에 먼저 에스겔에게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 알려주셨다. 한 마디로 그들이 하나님께 묻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이처럼 분노하신 것일까? 사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 찾아온 것인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벌써 이번이 세 번째다. 첫 번째는 에스겔에 포로로 잡혀온 지 6년째 되던 해(B.C.592년) 6월 5일이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묻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들이 행하고 있는 가증스런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행하는 가증스러운 일에 대해서 먼저 환상을 보여주셨다. 그 모습인즉 이스라엘의 대표격인 장로들이 뜰 문의 담벼락에서 분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스라엘 장로 70명이 각기 향로를 들고서 벽에다가 그려놓은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 앞에서 향을 피우고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겔8:10~11). 그리고 그 뒤에도 정확한 시기는 나오지 않지만 한 번 더 장로들이 에스겔을 찾아왔다. 그때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에게 묻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속내를 에스겔에게 들려주셨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들의 우상들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고 있다는 것이었다(겔14:4).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들이 섬기는 우상의 수효대로 보응할 것이라고 하셨다(겔14:4). 그런데 그들이 이번에 또 찾아온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살아있는 한 그들에 내게 묻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겔20:3)"고 하셨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의 가증한 일이 어떠했었는지를 들려주었다.

 

3. 장로들의 방문에 따른 하나님의 즉각적인 대응이 알려주는 놀라운 영적 비밀은 무엇인가?

  장로들은 한 마디로 앞뒤가 다르고 겉과 속이 다른 회칠한 무덤같은 사람들이었다. 신약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들은 세상적으로는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지도자 그룹에 속하겠지만 실제는 하나님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는 지도자들이었다. 그러자 그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말씀해주셨다.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앞뒤가 다르고 겉과 속이 다른 자들의 기도를 결코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들에게 자기에게 간구하기를 매우 바라신다. 하지만 범죄자나 악행자의 요구사항까지 다 들어주시는 분은 아니다. 왜냐하면 기도의 응답은 항상 의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굴절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4.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에 그들은 어떻게 살았는가?(겔20:5~9)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자신 속 마음을 드러내시는 장면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그것의 예로서, 오늘 말씀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말씀도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에스겔에 기록된 말씀은 창세기나 출애굽기에는 그 기사가 나오지 않는 부분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는 애굽 땅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찾아가셨다. 그리고 당신을 나타내셨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찾아가서  말씀하기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다(겔20:5). 이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시려 그들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축복의 시작은 아브라함에서부터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그 어떤 사람보다도 참으로 기뻐하셨다. 왜냐하면 셋의 후손들마저 다들 우상숭배에 빠질 때에 아브라함은 유독 여호와 하나님만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2가지 축복을 약속하셨다. 하나는 그의 자손이 하늘과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해 주겠다고 했다. 또 하나는 가나안 땅을 그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첫 번째의 약속은 예상 외로 애굽땅에서 이미 성취되었다(출1:7). 그 시작은 기근으로 인하여 야곱과 그의 식구 72명이 애굽으로 들어가서 살게 되었는데, 야곱의 자손들은 거기서 430년을 살면서 숫자가 바닷가의 모래처럼 불어났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키지 못하신 약속이 하나 남아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것을 이루기 위해 그들을 찾아간 것이다.

  애굽에 찾아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눈의 눈을 끄는 가증한 것들을 버리라고 명령하셨다(겔20:a). 그리고 애굽의 우상들을 숭배함으로 인하여 스스로를 더럽히지 말라고 하셨다(겔20:7b). 하지만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눈을 끄는 바 가증한 것들을 버리지 아니하였고, 애굽의 우상들을 떠나지 아니했다(겔20:7~8). 그때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애굽에 있는 신들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고, 레위기 18장에 읽어보면 애굽의 가증한 풍속 즉 근신상간, 음행, 간음, 동성애, 수간, 인신제사를 따르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진노하셨다. 그래서 애굽 땅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없애버리시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애굽의 신들을 심판하신 뒤에(민33:4), 애굽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광야로 데려가셨다. 왜 그러셨는가? 그 이유는 이방나라의 눈 앞에서 신실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겔20:9). 그랬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킨 것은 애굽에 있는 200만명(장정만 60만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쌍해서도 아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들어서도 아니었다. 사실 그들이 하나님께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셔서 한 번 말씀하시면 그것을 성취하시는 여호와이심을 그들로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5. 사람이 우상을 숭배하게 되는 직접적인 이유들은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 광야에 나왔을 때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들은 왜 애굽의 신들과 가나안의 신들을 숭배하게 되었을까? 결론적으로 그것에 대한 직접적인 이유를 보면 첫째로, 그들의 눈에 그렇게 행하는 것이 더 좋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들이 다 애굽의 신들에게 끌렸던 것이다(겔20:7~8). 이러한 사실은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 이방신을 숭배하는 이방인들의 행위는 훨씬 더 멋있게 보였고 좋아보였던 것이다. 그러자 이방신 숭배를 들여온 것이다. 그리고 둘째, 산당에서 이방신들을 섬기듯 섬기는 것이 훨씬 더 쉬웠고 편리해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솔로몬의 성전건축이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기 산당(높은 산)에 가서 제사를 드리었다. 하지만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산당에서 제사드리지 말라고 하셨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성전으로 와서 경배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러한 행위는 상당히 번거로웠고 귀찮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동안에 해왔던 것들은 산당제사였다. 그들은 자기들 살고 있는 지역의 가까이 있는 높은 산(바마)에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서 이방신들을 위해 제사드리던 제사를 사용하게 되었고, 거기서 향을 살랐으며, 음식을 차려놓고 빌었다. 그런데 그것은 멀리 떨어진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행하는 것보다는 훨신 더 쉬웠고 편리했다. 그러나 산당제사를 물리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가나안 땅에서의 우상숭배까지를 다루게 될 다음 주 강해시간에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6. 광야에 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행했는가?

  그렇다. 초자연적인 역사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로 나왔을 때에는 어떻게 행했는가? 그들은 애굽에서 섬기던 신을 버리고 가증한 일을 버렸는가? 전혀 아니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들의 상황을 간파하시고 그들의 우상숭배를 막으시고 더이상 그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하지 않도록 그들을 위한 조치로서 "율법" 말씀을 주셨다. 고로 율법이란 우상숭배를 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미리 알려줌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배려였다. 그리고 애굽의 가증한 풍속을 따라가면 안 된다는 것을 미리 알려준 것이었다.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그것을 준행하면 그것으로 인하여 생명을 얻게 하는 좋은 법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하였다. 그렇다. 처음에 율법은 결코 사람을 정죄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나온 출애굽 1세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준행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을 율례(의식법들)를 주며, 내 규례(재판법들)를 알게 하였고, 또 내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고 내 안식일들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노라(겔20: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애굽 1세대들은 주님의 말씀을 대놓고 거역하고 있었다. 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반역의 봉기를 올렸고, 율법을 준행하지 않았고 또한 그것을 멸시하였다. 그리고 안식일들의 율례마저 크게 더럽혔다. 그러자 또다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당신의 분노를 그들에게 쏟아 그들을 다 죽이려고 생각하셨다. 하지만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달리 생각하시고는 곧 이방아나라들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그것을 광야에서 아주 없애지는 아니하였던 것이다.

 

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말씀을 주셨던 본래적인 의도는 무엇이었는가?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말씀을 주셨던 본래적인 의도를 생각해본다. 사실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려고 주신 법이 아니라 살리려는 법이요,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올무로서 주신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을 자들을 저주로부터 해방시켜주기 위해 주어진 법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원래는 정말 좋은 것이었다. 그것은 복을 주기 위함이었지 결코 저주을 주기 위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이 악해져서 더 많은 죄를 지으려고 하니, 율법은 그들이 지키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세도 자신의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출애굽 2세대들에게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근본적인 목적을 정확히 설명해주었다. 그것은 놀랍기만 하다.

신30:11-14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계명)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13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그렇다. 율법은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저주를 받지 않고 복을 받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주신 법이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다하고 늘 입술에서 그 율법을 떠나지 않게 하면 얼마든지 지킬 수 있는 법이었다. 하지만 우상을 숭배하려고 생각하고 있고, 이웃에게 해를 끼치려는 마음을 가지고고 있는 상태에서 율법말씀을 지키려 하면, 율법은 자기에게 매주 거추장스러운 것이요, 자기자신을를 정죄하는 법이며, 자기자신을 매우 힘들게 하는 법이라고 느껴진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율법에 대한 관점을 한 번쯤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율법이 그를 얽매는 올무처럼 작용하고 있다면, 그는 필히 죄를 지으려는 사람이거나 죄를 짓고 있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율법은 그렇게 하려고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더러 저주받지 않게 하려고 미리 일러준 법으로서, 율법은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도 고맙고 소중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8. 나오며

  사람이 자기 속에 딴 마음을 품고 주님께 찾아오면 주님은 그를 잘 만나주시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자가 주님께 나올 때 그를 만나주는 것이다. 그렇다. 신앙에도 지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으로 애굽에 들어간 자들은 신앙의 지조를 지키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우상을 만들어 섬겼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분노를 자아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만 없었더라면 아마도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없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약속을 하셨으면 그것을 신실히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하고자 초자연적으로 우상을 숭배하던 히브리인들을 광야로 이끌었다. 그리고 거기서 저주가 어떻게 자기에게 나타날 수 있는지를 알게 하고, 그들이 지키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율법말씀을 주셨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애굽의 우상들과 악한 습성들을 버리지 않았다. 결국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땅을 정복하고 각 지파별로 그 땅을 분배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이번에 이스라엘 민족은 이제 가나안 땅의 우상을 숭배하고 그 풍속을 좇아 행하기이 바빴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길이길이 참으셨다. 무려 800년이나 말이다. 결국 남유다 14대 므낫세왕의 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우상숭배와 가증한 행위들은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왕 때에 한층더 심화되었다. 그러자 이제는 끝내시겠다고 결정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증스러운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주님께 나아와서 묻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결코 듣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다(렘11:10~11). 얼마나 그들이 앞뒤가 다른 삶을 살았으면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2019년 7월 31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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