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16) 토기장이의 비유,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어떤 비유인가?(렘18:1~20:18)_2023-02-24(금)
https://youtu.be/7YI3dSKeOJs [또는 https://tv.naver.com/v/33750841]
1. 예레미야서에서 토기장이의 비유는 어디에 나오는가?
예레미야서에서 토기장이의 비유는 예레미야서의 본론부 제1부의 12개의 단편 예언들 가운데 8번째에 나오는 예언이다. 즉 예레미야서에서 제8예언은 렘18:1~20:18까지의 말씀으로서, 토기장이의 실례와 옹기 파괴란 상징적 행동을 통하여 온 우주와 인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함으로, 범죄한 유다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원칙에 따라 엄정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토기장이의 비유'는 제8예언 가운데도 제일 처음으로 '만민 처우 원칙'이라는 주제에 따라 등장하고 있다. 그때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렘18: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2. 토기장이의 비유는 성경 어디 어디에 나오는가?
성경에서 토기장이의 비유는 주로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에 나온다(사29:16, 64:8, 렘18~19장). 한편 신약성경에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 9장과 디모데후서 2장에 언급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롬9:21, 딤후2:20~21). 여기서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토기장이에 비유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토기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토기장이가 자신의 의견을 따라 여러 종류의 그릇을 만든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모든 만물의 창조주로서 당신의 뜻을 따라 만물을 창조하시고 계신다. 특히 사람을 당신의 뜻을 따라 창조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측면에서 볼 때 하나님은 조물주요, 아버지이며, 토기장이인 것이다(사64:8).
사64: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3. 토기장이의 비유는 오늘날 어떻게 잘못 전달되고 있는가?
그런데 오늘날 토기장이의 비유는 잘못 알려진 것이 많다. 왜나하면 토기장이의 비유를 사람의 어떤 쓰임 즉 용도에 관한 비유로 사용하지 않고, 구원과 멸망에 관한 비유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토기장이의 비유를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토기를 빚으시는데, 어떤 개인이나 민족이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에 계속해서 빗나간다면 결국 그 토기를 깨뜨려 버리시고 새로운 다른 그릇을 빚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만세 전에 개인에 대한 구원과 또한 멸망이 이미 결정된 채 있다는 것으로 토기장이의 비유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적용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구원과 멸망을 설명해 주시기 위해 이러한 '토기장이의 비유'를 사용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께서 토기장이의 비유를 사용하신 것은 하나님께서는 어떤 의도와 목적을 따라 당신이 사용하시려는 용도에 맞춰 사람들을 창조하신 후에 그 영혼을 이 땅에 있는 사람 속에 보내신다는 것이다.
딤후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4. 토기장이의 비유는 어떠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관한 비유인가?
그러니까 토기장이의 비유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비유이기는 하지만, 이 비유는 사람의 쓰임(용도)에 관한 비유인 것이지, 결코 어떤 사람을 만세 전에 구원과 멸망으로 예정해 놓으셨다고 하는 개인 구원 예정에 관한 비유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 특히 칼빈의 예정론을 추구하는 한국 장로교에서는 토기장이의 비유를 개인 사역 예정이 아니라 개인 구원 예정이나 개인 멸망 예언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혼돈이 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토기장이의 비유를 잘못 해석하면 인간의 운명(구원과 멸망)은 하나님에 의해서 절대적으로 달라지게 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개인이 구원을 받거나 혹은 멸망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미 만세 전에 결정해 놓으신 것으로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개인이나 민족을 어떻게 사용하실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리 생각하고 만들어 가시지만, 결코 만물이 창조되기도 전에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멸망시킬 것을 아무도 모르게 정해 놓고 사람을 창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5. 토기장이의 비유가 개인 구원에 관한 절대주권으로 와전되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토기장이의 비유는 하나님께서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빚으신다는 것을 말해 주는 개인 사역 예정에 관한 비유다. 이 사람은 이렇게 사용할 것이고, 저 사람은 저렇게 사용할 것이라고 작정하고 사람을 빚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은 주의 종과 사역자로서 정해진 채 이 땅에 보내어진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창조하실 때에, 이 땅에서 당신의 말씀을 대언하는 종이자, 당신의 능력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도록 하는 데에 사용하시려고 준비하시고 보내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사역하는 사역들 중에는 하나님의 뜻과 의도에 따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빚으셨고 또한 이 땅에 보내셨는지를 파악을 하고서 사역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역자들은 이 세상의 모든 사역자들 가운데 약 1/3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역자들 중에 1/3은 자신이 사역자로 지음받았다는 것을 모른 채 사역하고 있고, 1/3은 자신이 사역자로 지음받았다고 믿고 그냥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떤 이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사역자로 지음받았으며 그래서 이 땅에 보내어졌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사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이 땅에 범죄한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둔다면, 이 세상 임금인 마귀에게 속아서 죄짓다가 지옥에 떨어질 것이 뻔함으로, 이 땅의 사람들 중에 건질 자를 건지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특별한 사역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또한 그 일을 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떤 용도로 쓰여질 것인가 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소관이므로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께 따지지는 말아야 한다. 다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빚어진 자신의 모습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된다.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자를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사도 바울은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길밖에 더이상 다른 방법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2023년 02월 24일(금)
정병진목사
1. 예레미야서에서 토기장이의 비유는 어디에 나오는가?
예레미야서에서 토기장이의 비유는 예레미야서의 본론부 제1부의 12개의 단편 예언들 가운데 8번째에 나오는 예언이다. 즉 예레미야서에서 제8예언은 렘18:1~20:18까지의 말씀으로서, 토기장이의 실례와 옹기 파괴란 상징적 행동을 통하여 온 우주와 인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함으로, 범죄한 유다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원칙에 따라 엄정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토기장이의 비유'는 제8예언 가운데도 제일 처음으로 '만민 처우 원칙'이라는 주제에 따라 등장하고 있다. 그때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렘18: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2. 토기장이의 비유는 성경 어디 어디에 나오는가?
성경에서 토기장이의 비유는 주로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에 나온다(사29:16, 64:8, 렘18~19장). 한편 신약성경에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 9장과 디모데후서 2장에 언급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롬9:21, 딤후2:20~21). 여기서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토기장이에 비유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토기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토기장이가 자신의 의견을 따라 여러 종류의 그릇을 만든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모든 만물의 창조주로서 당신의 뜻을 따라 만물을 창조하시고 계신다. 특히 사람을 당신의 뜻을 따라 창조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측면에서 볼 때 하나님은 조물주요, 아버지이며, 토기장이인 것이다(사64:8).
사64: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3. 토기장이의 비유는 오늘날 어떻게 잘못 전달되고 있는가?
그런데 오늘날 토기장이의 비유는 잘못 알려진 것이 많다. 왜나하면 토기장이의 비유를 사람의 어떤 쓰임 즉 용도에 관한 비유로 사용하지 않고, 구원과 멸망에 관한 비유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토기장이의 비유를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토기를 빚으시는데, 어떤 개인이나 민족이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에 계속해서 빗나간다면 결국 그 토기를 깨뜨려 버리시고 새로운 다른 그릇을 빚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만세 전에 개인에 대한 구원과 또한 멸망이 이미 결정된 채 있다는 것으로 토기장이의 비유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적용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구원과 멸망을 설명해 주시기 위해 이러한 '토기장이의 비유'를 사용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께서 토기장이의 비유를 사용하신 것은 하나님께서는 어떤 의도와 목적을 따라 당신이 사용하시려는 용도에 맞춰 사람들을 창조하신 후에 그 영혼을 이 땅에 있는 사람 속에 보내신다는 것이다.
딤후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4. 토기장이의 비유는 어떠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관한 비유인가?
그러니까 토기장이의 비유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비유이기는 하지만, 이 비유는 사람의 쓰임(용도)에 관한 비유인 것이지, 결코 어떤 사람을 만세 전에 구원과 멸망으로 예정해 놓으셨다고 하는 개인 구원 예정에 관한 비유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 특히 칼빈의 예정론을 추구하는 한국 장로교에서는 토기장이의 비유를 개인 사역 예정이 아니라 개인 구원 예정이나 개인 멸망 예언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혼돈이 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토기장이의 비유를 잘못 해석하면 인간의 운명(구원과 멸망)은 하나님에 의해서 절대적으로 달라지게 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개인이 구원을 받거나 혹은 멸망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미 만세 전에 결정해 놓으신 것으로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개인이나 민족을 어떻게 사용하실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리 생각하고 만들어 가시지만, 결코 만물이 창조되기도 전에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멸망시킬 것을 아무도 모르게 정해 놓고 사람을 창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5. 토기장이의 비유가 개인 구원에 관한 절대주권으로 와전되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토기장이의 비유는 하나님께서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빚으신다는 것을 말해 주는 개인 사역 예정에 관한 비유다. 이 사람은 이렇게 사용할 것이고, 저 사람은 저렇게 사용할 것이라고 작정하고 사람을 빚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은 주의 종과 사역자로서 정해진 채 이 땅에 보내어진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창조하실 때에, 이 땅에서 당신의 말씀을 대언하는 종이자, 당신의 능력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도록 하는 데에 사용하시려고 준비하시고 보내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사역하는 사역들 중에는 하나님의 뜻과 의도에 따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빚으셨고 또한 이 땅에 보내셨는지를 파악을 하고서 사역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역자들은 이 세상의 모든 사역자들 가운데 약 1/3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역자들 중에 1/3은 자신이 사역자로 지음받았다는 것을 모른 채 사역하고 있고, 1/3은 자신이 사역자로 지음받았다고 믿고 그냥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떤 이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사역자로 지음받았으며 그래서 이 땅에 보내어졌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사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이 땅에 범죄한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둔다면, 이 세상 임금인 마귀에게 속아서 죄짓다가 지옥에 떨어질 것이 뻔함으로, 이 땅의 사람들 중에 건질 자를 건지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특별한 사역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또한 그 일을 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떤 용도로 쓰여질 것인가 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소관이므로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께 따지지는 말아야 한다. 다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빚어진 자신의 모습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된다.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자를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사도 바울은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길밖에 더이상 다른 방법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2023년 02월 24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