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어떤 하나님을 믿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당신은 어떤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하겠는가? 자신이 정통신학을 했다고 하는 이들은 한사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양태론자들은 잘못 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가? 오늘 이 시간에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양태론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정의를 통해서 이들이 말하는 하나님이 어떤 부분에서 잘못되었는지를 살펴보고 무엇이 가장 성경적인 정의가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정의
첫째, 삼위일체론자들이 말하는 하나님과 양태론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정의와 그 폐해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삼위일체론자들은 과연 어떤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살펴보자. 삼위일체론자들 특히 자신이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가장 성경적인 하나님이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말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이런 것이다. "성부(여호와)도 하나님이요, 성자(예수님)도 하나님이며, 성령님도 하나님이다. 그러나 세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 계신다." 이를 좀 더 달리 설명하면 이렇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하나님으로서는 같지만(동일한 본질을 소유하고 있지만), 각각은 다른 인격을 가지고 있다." 즉 "한 본질 안에 세 인격"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정의다. 그리고 덧붙혀 삼위일체론자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만세전부터 각각 따로 독립적이 인격을 갖추고 존재하셨다고 주장한다. 성자가 성부로부터 나오시고,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하셨지만 그 시간적인 순서는 정할 수 없이 영원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의가 과연 맞는 정의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틀린 정의다. 왜냐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하나님이신 것을 맞지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각각 다른 인격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각 동일한 신격(본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격을 가지신 분은 오직 아들 예수님 뿐이다. 성부(여호와)와 성령께서는 인격을 가진 적이 없으시다. 오직 성자 예수님만이 사람을 몸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나셔서 33년반의 생애를 사셨을 뿐이다. 그러므로 한 본질(신격) 안에 세 가지 인격이라는 표현은 사실상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삼위일체론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은 만세전부터 각각 다른 인격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단지 오직 한 분 하나님만 존재하고 있었을 뿐이다. 더불어 만세전부터 성부와 성령과 함께 계시던 성자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것도 아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3.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게 될 때 나타나는 폐단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66권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삼위일체론자들이 주장하는 하나님을 믿게 된다면 그 폐해는 불보듯 뻔하다. 첫번째로, 하나님을 한 분으로 믿기 어려워진다. 성부도 하나님이요 성자도 하나님이요 성령도 하나님이라고 믿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한 분으로 믿고 따른다는 것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삼위일체론자들이 주장하는 하나님을 믿게 된다면 둘째로, 우리는 다신론이나 종교다원주의자가 되기 쉬워진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나님도 계시고 아들 하나님도 계시다고 하니까, 어머니 하나님도 있다고 주장하는 이단들이 쉽게 치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하나님의 어머니(마리아)가 있다고 주장하는 천주교가 기독교를 가장하여 버젓이 행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다(신6:4). 그러므로 어머니 하나님이 어디 있으며, 하나님의 어머니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어머니 하나님도 없으며, 하나님의 어머니도 없다. 다만 예수의 어머니(마리아)만 있을 뿐이다. 셋째로, 한 분 하나님만 믿고 있는 오늘날의 유대인이나 이단인 여호와증인들을 전도하거나 바른 길로 인도하기 힘들어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코 하나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믿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4. 양태론자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
둘째, 양태론자들이 주장하는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시며,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떤 폐해가 있는지를 살펴보자. 먼저, 양태론자들이 주장하는 하나님을 요악하면 이렇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그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각각 다른 양태로 나타난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성부로 나타나셨고, 신약시대에는 육신을 입고 성자로 나타나셨으며, 오순절 이후에는 성령으로 나타나셨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렇게 틀린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이후부터가 문제다. 이들은 첫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오직 각각 신격만 가진 분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신 성부께서 육신을 가진 아들이 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들이 죽고 부활하여 성령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크게 잘못 되었다. 왜냐하면 성자 예수님은 신격만을 가지신 분이 아니라 인격도 동시에 가지신 분이기 때문이다. 즉 성자는 100%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100%인간인 것이다. 하지만 양태론자들은 인성을 가지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은 것을 가지고, 아버지가 고난받고 죽은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이들의 주장을 "성부고난설'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삼위일체론자들은 양태론이 이단이라 주장한다. 왜냐하면 크게 2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예수님의 인성의 측면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고스란히 아들이 되었으니 아들에게는 인성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이 고난받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고난받은 것이요, 아들이 십자가에 죽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예수님의 재림과 천국을 단지 영적인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이제 죽고 부활하셔서 성령이 되셨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께서 오신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신 것이며, 성령께서 오셔서 신자들 마음 속에 들어가심으로 이미 천국에 이루어졌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재림과 천국의 도래는 실재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으로 내재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예수님의 재림과 천국을 소망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5. 양태론자들의 커다란 실수과 그 폐단
그렇다면, 양태론자들은 과연 무엇을 잘못 본 것인가? 이들에게 있어서 커다란 실수가 있었다. 그것 때문에 성부고난설이 나오게 되고, 성령의 오심을 예수재림이라고 보며, 성령이 오셔서 통치하는 것을 천국이 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실수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 한 가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 곧 동시존재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영적인 존재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이요(요4:24), 둘째는 천사들이며(히1:14), 셋째는 사람이다(슥12:1).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은 영이시나 창조주인 영적 존재요, 천사들과 사람들은 영이지만 피조물인 영적 존재들이다. 이중에서 천사들은 육체가 없는 영적 피조물이지만, 사람들은 육체를 가진 영적인 피조물이다. 그렇다면, 똑같은 영적 존재라 할지라도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4가지에 차이가 있다. 그것은 자존성, 무소부재, 전지전능, 영원불변에 있어서의 차이다. 특히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할 때 가장 염두해 두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무소부재'라는 속성을 좀 쉬운 말로 바꾸면, '동시존재'라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만이 창조주로서 동시존재가 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똑같은 시간에 예배드리는 모든 교회들에게 동시에 가셔서 예배를 받으신다. 그렇지만 양태론자들은 하나님의 이 동시존재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셨다고 할 때에 그들에게 예수님은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아버지는 하늘에 계셨고, 아들이 땅에 동시에 존재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것이니, 하늘에서는 아버지로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셨으며, 땅에서는 인성을 가진 아들로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잘 몰랐던 양태론자들은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자기자신에게 기도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또한 예수님의 인성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성부가 고난받고 죽은 것이라고 오해하고 말았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어떻게 신성만을 가진 성부가 성자가 되었는데, 죽을 수가 있었겠는지 말이다. 하나님은 죽을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성부가 성자가 되어서 고난받고 죽었다는 것은 성경을 크게 빗나간 것이다. 아니다. 성부가 고난받고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어 인성을 취하심으로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시고 죽은 것이다. 성부가 아닌 아들이 고난받고 죽으신 것이다. 그리고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거기에서 성부와 자신으로부터 당신의 보혜사 성령을 믿는 자들에게 보내주셨다. 그러므로 오순절날 성령님이 오심은 결코 예수님의 재림이 아니며, 성령의 통치가 천국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양태론자들의 결정적인 실수는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한 것과 예수님의 재림과 천국에 대해 잘못 판단한 것이다. 그러므로 양태론자들은 이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끝까지 한 분으로 보려고 했다는 시도다.
6.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자, 그렇다면 성경에서 가르치고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은 대체 어떤 것일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은 세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다(신6:4, 요17:3). 만세전부터 하나님은 한 분으로 계셨고, 만세후에도 한 분으로 계실 것이다. 그분은 사실 시간밖에 계시는 분이므로 '만세전'이라는 말이나 '만세후'라는 시간개념을 쓸 수 없는 분이시다.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라 세 분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삼위일체론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이 정통이라고 하고, 이 교리를 믿지 않는 자를 이단이라고 매도한다면, 놀라지 말라. 구약시대 성도들은 다 지옥에 들어가야 맞다. 왜냐하면 이들 중에 그 누구도 성부도 하나님이요, 성자도 하나님이시요, 성령도 하나님이시다고 하는 삼위일체를 믿은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결코 당신이 세 분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시다. 단지 삼위일체론자들이 잘못 해석한 것 뿐이다. 성경을 보라. 천지만물을 창조할 때에도 하나님은 홀로 창조하셨다고 한다(사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사44:24)" 그러나 삼위일체론자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하나님께서 의논하시고 이 세 분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고 주장한다. 아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성부께서 성자와 의논하지 않으셨다. 오직 한 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다. 창1:26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는 말씀에서 '우리'라는 말은 한 분 하나님과 그곁에 모시고 있는 천사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것은 창18장에 아브라함 앞에 나타난 여호와와 두 명의 천사들로서 설명하고도 남는다.
7. 예수님은 아들로서 만세전부터 존재하셨을까?
그렇다면, 신약성경에서 모든 만물이 다 아들을 통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며(요1:3, 골1:16~17), 태초부터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요1:1)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 사용하시던 방법이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말씀하심이었다. 즉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자, 빛이 존재하게 되지 않았던가!(창1:3) 즉 이때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의 도구였고, 창조를 실행케 한 장본인이었다. 그러므로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원문에는 '하나님에게서' 혹은 '하나님 곁에')고 하는 것이다(요1:1). 그리고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했을 때, 뒤에 나오는 '하나님'이라는 단어에는 정관사가 없다. 그것은 이 말씀이 꼭 하나님과 같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도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홀로 창조하셨다고 표현한 이사야의 기록이 맞는 것이다(사44:24). 그렇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셨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비로소 '여호와'로 계시된 것이다(출6:2~3). 그러므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은 홀로 한 분이신 만군의 여호와이셨다.
8. 동시에 존재하신 아버지와 아들
그런데 홀로 한 분이셨던 그 하나님께서 어느날 구약에 약속하신 대로 약 350가지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메시야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 아니 다른 한 편으로는 동정녀 마리아의 태를 빌어 태어나신 것이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이때 태어나신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혹은 '사람의 아들(인자)' 혹은 그냥 '아들'이라고 불리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내서 이 세상으로 들어오셨기에 아들인 것이요, 마리아에게서 태어났기에 아들이라고 불린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은 한 편으로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나신 것이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제 우리의 눈에 두 분처럼 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하나님께서 두 분으로 존재하든 열 분으로 존재하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전능하신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하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편에서 볼 때, 이 땅에서는 아들이 있고, 하늘에는 아버지가 있게 되었다. 사실 구약시대에는 그 어느 누구도 한 분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단지 인간을 지으셨다고 측면에서 비유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했을 뿐이다(말2:10).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려면 반드시 자식을 낳아야 한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한 번도 자식을 낳으신 적이 없기에 아버지라고 불리우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구약시대에 가장 많이 불렸던 여호와 하나님의 칭호는 '하나님(신)'이라는 것과, '전능자'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구약시대 때만에 해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없었으며 아들 또한 없었다. 하지만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심으로 말미암아 신성한 본성만을 가진 하나님은 이제 '아버지'라 불리게 되었고, 인성을 취하신 하나님은 아들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하늘에는 신격을 가진 아버지가 계시고, 땅에는 신격에다가 인격을 가진 아들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9. 인성을 취하신 아들의 겸비와 그 아름다운 순종
그러므로 인격을 갖춘 아들 예수님은 항상 신격을 가진 아버지에게 인간으로서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를 취하였다. 매일 아침 새벽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를 드렸으며, 아버지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셨다. 그래서 인성을 가진 아들이라는 측면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아버지보다 크지 않고 모르는 것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즉 당신이 재림할 날짜에 대해서는 오직 아버지만 아실 뿐 자신은 모른다고 말씀하셨으며(마24:36), 그리고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요14:28). 하지만 신격에 있어서는 예수님도 하나님이셨으므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말씀하셨고(요14:9, 12:44),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셨으며(요10:30). "내가 그니라(I am)"이라고 하는 신성한 이름(출3:14)을 직접 사용하셨다(요8:24,28). "내가 그니라"는 표현은 출3:14에 나오는 하나님의 본래의 이름으로서,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칭호다. 그렇다. 예수님은 인성의 측면에서는 아들이라고 불리우셨지만, 신성의 측면에서는 하나님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일서를 보면, 누가 이단인지를 구별하는 세 가지 기준을 말하는데, 하나는 예수께서 약속된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것이요(요일2:22), 또 하나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요일2:23)과 예수께서 육체를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것이며(요일4:2~3), 세번째로 예수께서 참 하나님이신 것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다(요일5:20)".
10. 하늘에서 하나님은 몇 분으로 계시는가?
그렇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약 60년이 지난 요한계시록에 분명하게 나타난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으신 인자같은 이가 예수님이신데, 이분이 높이 들린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다(계3:20, 7:15~17, 20:11). 그런데 구약성경에는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아계신다(사6:1, 단7:9~10). 그리고 이분이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며, 시작과 끝"이라고 하신다(계1:17,21:6,22:13,16). 그런데 이러한 표현은 구약시대에 여호와께서 자신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사41:4,44:6,48:12). 그리고 이분은 자신을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고 하시는데(계19:16,17:14), 여호와께서도 자신을 그렇게 표현하셨다(슥14:9, 딤전6:15~16).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보좌가 나오는데, 그 보좌는 오직 한 개 뿐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보좌 좌우에 예수님의 보좌가 따로 있고, 성령님의 보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하는 것은 상징적인 표현이었일 뿐이다. 실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결코 예수님의 보좌가 따로 있지 아니하고, 오직 한 개뿐인 그 하나님의 보좌에 바로 예수께서 앉아계신다(계3:20, 7:15~17). 결국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요 구약에는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했던 바로 그분이라는 말이 된다.
11. 구약과 신약의 난제들
어떤 삼위일체론자는 예수께서 구약시대에 하나님으로 따로 존재하셨다고 하는데, 그 근거로 시110:1의 말씀을 인용하거나, 요1:1과 잠8:22~23을 인용하거나, 요17:5을 인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110:1의 말씀은 다윗이 환상중에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을 내다 본 것이고, 요1:1과 잠8:22~23에 나오는 태초에 있던 '말씀'이나 '지혜'는 선재하신 예수님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말씀과 지혜를 의미하거나 아니면 아직은 출현하지 않았지만 만세전부터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생각 속에 있는 말씀과 지혜를 가리키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시간 밖에서 항상 현재로 존재하기 때문에, 말씀과 지혜가 과거에 있었던 것처럼 표현해도 틀린 것은 아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요17:5에서 예수께서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원문에는 아버지 곁에서) 가졌다는 영화"는 하나님의 생각속에 이미 하나님께서 아들로서 오셔서 인류의 속죄를 이루심으로 영광받으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겠다.
12. 나오며
그렇다. 결국 우리가 믿어야할 하나님은 삼위일체론자들이 주장하는 하나님도 아니며, 양태론자들이 주장하는 하나님도 아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하나님은 성경 66권에 자신을 계시한 바로 그분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 그분은 한 분 하나님이시나,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인성을 취하신 분이요, 지금은 하늘 보좌에 앉아계시며 장차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로서 재림하실 분이시다. 이분만이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고, 전능자이시며 "에고 에이미(I am)"이시다. 이분 외에는 그 어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으며 구원자도 없다. 그분만으로 인하여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다. 환난후 이분이 오실 때에 이 세상은 끝이 날 것이며, 믿고 회개한 자는 천국에 들어갈 것이고, 믿지 않거나 회개하지 않은 자는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