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이 쳐들어와서 아버지를 어디에 두었느냐고 물어보았을 때 사실대로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모른다고 말해야 하는가? 십계명의 제9계명은 거짓증언해서 아니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거짓증언에 해당하는 것이며,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허용되는 범위는 어디까지면, 절대 허용할 수 없는 범위는 또 무엇인가? 오늘날 거짓증언의 의미와 결과 그리고 현대적인 적용에 대해 살펴보자.
1. 들어가며
오늘은 십계명강해 중에 제9계명 강해 시간이다. 제9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출20:16)"이다. 이 말씀을 히브리어 원문에 따라 직역하면 이렇다. "너는 결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언으로 증언하지 말라." 그러므로 이 계명은 정확히 말할 때 거짓으로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거짓증언으로 위증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제9계명을 어긴 것이 되며, 이 죄를 지은 자가 받게 되는 처벌은 무엇일까? 그리고 지혜롭게 말하는 것과 거짓증거하는 차이는 어떤 것인가? 오늘은 제9계명의 의미와 처벌 그리고 이 말씀에 대한 현대적인 적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2. 제9계명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말씀의 의미
먼저, 이 계명의 뜻인 거짓증언으로 증언하지 말라는 의미부터 살펴보자. 거짓증언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려면 거짓말하는 것과 거짓증언하는 차이를 비교하면 된다. 둘 다 거짓말이다. 그런데 성경은 거짓말하지 말라가 아니라 거짓으로 증언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때 거짓증언으로 증언하지 말라고 했을 때에 이 증언은 법적인 효력을 가진 말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자신이 말한 것이 위증이라고 판결이 나오게 된다면 그 말을 한 것에 대해 자기가 법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거짓증언으로 증언하지 말라는 것은 "네가 만일 거짓증언으로 증언한다면 그 책임을 질 수 있겠느냐? 만약 그 책임을 자신이 질 수 없는 것이라면 너는 절대로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거짓증언하지 말라는 것은 그 증언으로 인하여 혹시 자신은 보호받을 수 있을른지는 몰라도 상대방을 위험에 빠뜨리게 하거나 손해가 나게 하는 증언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해서 상대방을 위험에 빠뜨리게 하거나 손해가 나게 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자신이 받겠다는 각오를 하라는 것이다.
3. 거짓증언의 대표적인 사례
예를 들어보자. 구약의 거짓증언으로 증언한 대표적인 사례는 이세벨의 사주를 받은 이스르엘 동네사람들의 거짓증언이 있다(왕상21장). 당시 북이스라엘의 왕은 제7대 아합왕이었다. 자신의 왕궁곁에 나물을 심어 먹고싶어했던 왕에게 포도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주인이었던 나봇이 율법규정에 따라 그 땅을 팔지도 않아도 대토를 받지도 않겠다고 말하자, 근심하던 차에, 이세벨왕비가 그 소식을 듣고 나봇의 포도원을 뺏기위해 작전을 꾸민다. 그리하여 이세벨의 사주를 받은 이스르엘의 장로들과 귀족들이 나봇을 높인 후에 불량자 2명의 거짓증인으로 세워,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증언하게 했다. 그러자 동네사람들이 나봇을 동네 밖으로 끌고가서 돌로 쳐죽이고만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선지자를 보내 그가 행한 그대로 갚아줄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율법에 이미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으면... 재판장은 자세히 조사하여 그 증인이 거짓 증거하여 그 형제를 거짓으로 모함한 것이 판명되면 그가 그의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신19:18-19)" 그리하여, 아합과 이세벨은 나봇을 죽인 방법에 따라 죽임당했고, 개들이 와서 피를 핥게 되었다. 다시 말해 거짓증언으로 증언하지 말라는 말씀은 자신이 한 말이 거짓으로 판명된다면 그 말한대로 자신이 받겠다는 것이니 그것을 알고 말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4. 거짓증언하는 자가 받게 되는 처벌
둘째, 거짓증언하는 자가 받게 되는 처벌은 무엇인가? 율법규정에서 제5계명(부모공경)과 제6계명(살인금지)과 제7계명(간음금지)을 어긴 자는 반드시 돌로 쳐죽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제8계명(도둑질금지)과 제9계명(거짓증언금지)을 어긴 자는 돌로 쳐 죽이라는 말씀이 율법에 없다. 도둑질하면 배나 여러배를 갚으라고 되어 있고, 거짓증언하는 자는 자신이 대신 벌을 받을 것이라고 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위증죄는 정말 무서운 벌이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이 증언한 것이 정말 거짓인 것으로 판명된다면, 그는 반드시 그 위증한 대로 그 처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예수님시대에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위증하여 누명죄를 씌워 죽게했다(막14:56~57). 결국 그 거짓증언죄 때문에 하나님은 딱 그때로부터 40년 뒤에(광야생활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똑같이 갚아주셨다. 결국에 110만명이 학살을 당했고, 10만명은 로마에 포로로 끌려갔으며, 나라는 망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가 위험에 처해지지 않으려고, 아니면 남을 미워함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하겠다.
5. 거짓증언하는 것과 지혜롭게 말하는 것의 차이
셋째, 그렇다면 거짓증언하는 것과 지혜롭게 말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오늘날 현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십계명에 나오는 제9계명 곧 거짓증언금지규정을 율법에 나와있는 조항대로 그대로 실천해야 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보자. 아버지가 암에 걸려서 죽게 생겼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어본다. "어때, 검사결과가 나왔니?" 그때 아들은 "아버지, 이제 암말기여서 살 가능성이 없대요. 죽기만을 기다리래요. 오래 살아봐야 3개월이랍니다"라고 정직하게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아니요 . 아버지. 좀 더 정밀 검사를 해서 정확한 진단을 해 봐야 한다고 말하네요. 조금은 의심쩍은 결과들이 있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봐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해야 하는가? 후자처럼 말하는 것은 의사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니 어찌 보면 위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을 우리는 거짓증언했다고 말하기보다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지혜롭게 말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버지를 안심시켜드리고 다음에 나오는 어떤 결과이든 조금 더 생각해보고 받아들일 준비를 시켜드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아들의 증언은 거짓증언으로서의 본래적인 똣 곧 상대방에서 상처를 주거나 손해를 보게하고 악영향을 끼치도록 말한 것이 아니므로 이것을 가리켜 "당신은 거짓증언을 했소"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아내가 어떤 물건을 샀다고 치자, "여보, 나 이 물건 잘 샀지?"라고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설령 그 물건이 좋게 보이지 않아도, "역시, 당신의 선택은 탁월해. 어떻게 당신은 좋은 물건을 고르는 발달된 눈이 가졌지? 놀라워요."라고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 따위 물건을 돈 주고 샀어요."라고 말해야 하는가? 이때는 전자의 경우처럼 말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그것이 아내를 기쁘게 하고 아내를 세워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거짓증언하지 말라는 이 계명을 무조건 율법적으로 적용해서 정죄하는 것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공산군이 쳐들어와 목사인 아버지를 다락에 못찾아낼 장소에 숨겼는데, 어디 있는냐고 물을 때, 아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예, 저기 다락너머에 작은 문짝 뒤에 있는 굴 속에 들어있어요."라고 정직하게 말해줘야 하는가? 아니면,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학교에 갔다가 와니 안 보이더라구요."라고 말해야 하는가? 이때는 후자처럼 지혜롭게 말해야 한다.
6. 거짓증언해서는 절대 안 되는 항목
하지만, 지혜롭게 말한다고 해도 그것이 자신의 신앙고백에 관한 질문이었다면 그것을 결코 위증해서는 아니 된다. 자신의 신앙고백에 관해서 우리는 절대 위증하면 아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그것이 위증으로 밝혀질 경우 그 위증한 것에 대한 벌을 나중 자신이 대신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 주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라고 하셨는가? 그것은 이렇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10:32-33)" 신앙고백은 지혜롭게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오직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 그래서 혹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게 된다 하더라고 우리가 주님앞에 드리는 신앙고백은 위증으로 말해서는 아니 된다. 만약 그렇게해서 목숨을 부지했다고 치자, 주님께서는 그가 위증한 것 때문에 나중에 그를 정말 주님을 모르는 자로 판정해 버리실 것이다.
7. 절대 가감해서는 아니 되는 하나님의 말씀
또한 마지막으로 9계명에 대해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나 목회자들이 주의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위증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특히 구원에 관한 말씀은 절대 위증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의 영혼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경우라 할지라도 성경말씀에 더하거나 빼서는 아니 될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66권의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믿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아니하는 것들을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주의 종들이 있다면, 결국에 성도들은 그의 가르침에 따라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면 주의 종들 자신도 지옥에 떨어지는 형벌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예수님을 믿으면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 다 사함받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증언이다. 자범죄는 예수님의 보혈을 믿고, 회개함으로써 씻겨지기 때문이다(요일1:9). 자신이 지은 죄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고 해서 다 용서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과 입술로 지은 죄를 자백하고 통회함으로 용서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거짓선지자 혹은 거짓교사로 판명되지 않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을 읽어보라.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으로 예언하던 거짓선지자들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못에 던져지고 있음을 당신도 발견할 것이다(계14:5, 19:20).
9. 나오며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진리만을 말해야 한다. 특히 이것이 맞는지 저것이 맞는지 분별하기 어려울 때에는 무조건 예수님께서 들려주셨던 말씀에 따라 판별하기를 힘써야 한다. 예를 들어, 사도바울이 쓴 로마서를 보기 전에 우리는 반드시 우리 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록된 사복음서를 먼저 봐야 한다. 이것을 다 보고 완전히 익힌 다음에 로마서를 참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경이 제대로 열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이 옳은지 저것이 옳은지 헷갈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가르친 죄를 고스란히 자신이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가르칠 때에 위증하지 않도록 더욱 더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