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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063i2K32W6U
날짜 2017-02-10
본문말씀 요한계시록 5:8~14(신약 40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예배의 정의, 예배의 6대요소, 제단제사와 성전제사와 회당예배, 개신교예배순서, 천주교의미사,참된예배의조건

예배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우리는 예배를 드렸다고 말할 수 있는가? 구역예배도 예배이며, 수요기도회가 예배인가? 무엇을 보고 우리는 예배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이 드리는 개신교의 예배 형식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인가? 그리고 예배라고 한다면 반드시 들어가야 할 순서에는 과연 어떤 것이 있는가? 오늘은 참된 예배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1. 들어가며

  예배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그것을 예배라고 말할 수 있는가? 주일날이면 성도들은 모두들 예배드리고 왔다고 한다. 과연 어떻게 해야 예배한 것인가? 또 어떤 사람들은 예배보고 왔다고 말하기도 한다. 예배는 과연 보는 것인가 드리는 것인가? 오늘날 우리에게 잘못 알려진 예배에 대한 개념을 되찾고, 진정한 예배자가 되기 위해 오늘은 예배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오늘은 특별히 예배의 기원은 어디에 있으며, 더불어 예배의 형식이 왜 오늘날과 같은 형식을 갖게 되었는지를 성경의 기록과 교회사적인 고찰을 통해 좀 더 들여다보기로 하자.


2. 예배의 기원인 제사제도

  먼저, 예배의 기원부터 알아보자. 예배의 기원은 제사에 있다. 예배가 생기기전 이 땅에는 제사라는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배에 대한 바른 정의를 하려면 제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사제도가 정확한 틀을 갖추게 된 것은 B.C.1445년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제사제도에 관해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율법 안에 제사법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제사는 누가 가장 먼저 드렸을까? 그리고 어떻게 되어 제사제도가 틀을 갖추게 된 것일까?

  인류 최초의 제사는 누가드린 제사였을까? 그것은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사였다(창4:3~4). 그날 둘은 아버지 아담의 지시였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지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날에 각기 제사를 드리게 된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기에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아벨은 양을 치는 자였기에, 양의 첫새끼들과 그것들의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아벨의 제물들은 받으셨지만 가인과 가인의 제물들을 받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셨는지 받지 않으셨는지를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은 아마도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그들이 드린 제물들을 사르는 것이었으리라(레9:24). 그래서 그 향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으리라(창8:21).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날 받으신 것이 좀 이상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날 아벨의 제물들만을 받으신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아벨까지 받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창4:4). 다시 말해, 아벨은 믿음의 제사를 드렸으나 가인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제물을 보면 그들이 무슨 제사를 드렸는지를 알 수 있다. 가인이 드린 것은 가인이 처음으로 농사하여 얻은 수확물이었고, 아벨이 드린 것은 처음으로 얻은 양의 첫새끼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날 그들이 드린 제물은 속죄를 위한 제사가 아니라, 그들이 드린 첫열매를 드리는 감사의 제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물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인도 받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아마도 준비성이 없었든지, 정성이 없었든지, 마음에도 없지만 마지못해서 드렸든지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드린 제물도 제일 좋은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배드리는 자의 제사를 알 수가 있다. 예배드리는 자가 가져온 예물도 중요하지만 예배드리는 자의 마음자세가 예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제물을 드리는 자의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드리는 제물은 어떤 것을 드려야 하는지를 알게 해 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류의 두번째 제사는 노아의 제사로서 희생제물을 드리는 제사였다(창8:20~21). 노아는 홍수 후에 이러한 번제제사를 드렸기에, 그가 드린 제사는 감사와 헌신의 희생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세번째의 제사는 아브라함의 제사였다. 그는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창12:8). 특별히 아브라함이 드렸던 모리아산 제사는 자신의 독생자인 이삭을 바치는 제사로서, 장차 인류의 대속제물인 예수님을 십자가의 제물로 바치는 속제제사를 예표하는 제사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려했던 곳은 모리아산이었는데, 그 장소는 장차 다윗이 예루살렘 성전을 세울 바로 그 장소였고(대하3:1), 장차 메시야가 죽을 그 장소였다. 우리는 이상의 사실들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처음에는 어디서든지 제단을 쌓고 거기에 제물을 바쳐서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이다. 둘째, 그때의 제사는 대부분 집안의 가장이나 족장들이 드렸다는 점이다. 셋째, 특별히 이때의 제사는 제사드리는 자의 마음이 아주 중요했다는 점이다. 


3. 제단제사에서 성막제사와 성전제사로의 변천

  그런데 제사제도에 놀라운 변화가 찾아온다. B.C.1445년 출애굽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의 제도를 알려주면서부터다. 이때의 변화는 첫째, 제사드리는 장소가 한 곳 곧 성막의 진친 곳으로 고정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둘째는 제사를 주관하는 자가 가장에서 제사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자로 고정되었다는 점이다. 이때부터는 레위자손 중 아론과 그의 아들들만이 제사장이 되어 제사를 주관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그때로부터 약 500년이 지나 다윗시대에 들어서자 제사제도에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는데, 그것은 2가지다. 하나는 제사드릴 장소가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한정되었다는 점또 하나는 제사의 내용에 찬송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사실 다윗의 아들 솔로몬 이전까지는 제사드릴 장소가 한 곳은 맞기는 하지만 그 장소는 고정되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짓게 되자, 제사드리는 장소가 이동식 텐트(성막)에서 이제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완전히 고착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사의 내용에 찬송이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다윗은 레위인들 중에서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을 시켜 악기팀과 보컬찬양팀 288명을 만들게 했고, 그들로 하여금 찬양을 담당케 했다(대상15:16~24). 드디어 예배의 순서에 찬양이라는 순서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4. 회당예배의 출현

  하지만 이러한 성전제사 제도의 시행도 잠시 뿐이었다. 그로부터 채 500년을 채우기도 전에, B.C.586년 예루살렘성전이 그만 파괴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우상으로 하나님의 성전마저 더럽히자 하나님께서 스스로 성전이 파괴되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그때 유대인들은 거의 다 죽었다. 그리고 약 5만명정도만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 그래서 이제 포로가 된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여러 도시에 우거하면서 회당을 짓기 시작했다. 회당은 율법교육과 예배의 장소로서 유대인들에게 새로운 신앙이 거점이 되었다. 드디어 성전제사제도가 회당예배로 바뀌는 순간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회당예배는 제사가 없는 예배가 되었는데, 그 순서를 보면 5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신앙고백의 순서로서 쉐마(신6:4~9)을 낭독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기도하는 시간인데, 유대인들은 이때 18개의 기도문을 찬송이나 기도문처럼 낭송했다. 셋째와 넷째는 설교시간으로서, 성경낭독과 더불어 통역을 한 뒤 회당장이 정한 어떤 사람이 그날 교훈적인 설교를 했다. 다섯째는 축도의 순서로서, 연장자가 민6:24~26을 가지고 축복기도를 하였다.

  자, 유대인들의 회당예배의 순서와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자. 이것이 오늘날 개신교의 예배의 순서 및 내용과 얼마나 유사한지를 말이다. 그렇다. 오늘날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짧게는 회당예배에서 가져온 것들이요, 길게는 족장들의 제사와 성전제사제도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특히 순서는 회당예배에서 주로 가져왔고, 자세는 가인과 아벨, 노아와 아브라함의 제사에서 주로 가져온 것들이다.

  그런데, 바벨론제국이 바사(페르시아)에게 망하게 되자, 바사의 초대왕 고레스는 유대인들을 자기고국으로 돌아가게 허락해주었고 성전을 짓도록 허가해 주었다. 그래서 그들이 돌아와 제2의 성전(스룹바벨성전)을 짓게 된다. 그리하여 이방땅에는 회당예배가 드려졌으며, 예루살렘에서는 성전제사가 다시 회복되게 이르렀다. 그후 바사가 헬라제국에서 멸망당하고, 헬라가 로마에게 정복당했지만, 여전이 유대인들은 성전제사와 회당예배는 동시에 드렸다. 그것은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도 마찬가지였다. 해마다 유대인들은 절기를 맞이하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려야 했으며, 평소 때에는 자기 집 가까이에 위치한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곤 하였던 것이다.


5. 초대교회의 예배와 중세교회의 예배

  그러다가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 기독교인들은 성만찬이 가미된 새로운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우선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에 성전에 가서는 기도하고, 회당에서는 예배를 드리곤 했다. 하지만 더불어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이는 예배에도 참석하여 성만찬이 들어간 예배를 함께 드렸다. 왜냐하면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예수께서 성만찬의 예식도 집행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때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주일날 새벽이나 밤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그때는 주일날이 쉬는 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문제가 발생했다. 성만찬의 예식이 잘못 알려져 기독교인들은 사람을 잡아 피와 살을 나눠먹는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 이외에는 그 어떤 존재도 즉 로마의 황제마저도 주님으로 섬기지 않았기에, 대대적으로 박해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예배에서 성만찬예식을 예배에서 분리해 냈다. 그리하여 1부순서로서 말씀예배만을 드렸고, 세례를 받은 자만 따로 남아서 2부순서로서 성만찬예식을 거행했다. 그런데 또 문제가 발생했다. A.D.313년에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함에 따라, 태양신을 숭배하는 제국의 백성들을 대거 기독교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태양신을 섬기는 의식을 고스란히 기독교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직 세례와 성만찬 뿐인 순수한 기독교의식에 갖가지 이방종교의식이 가미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우상숭배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로마천주교는 기독교인들에게 자국어성경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직 예배를 성만찬을 확대한 이방종교의식으로 바꾸어버렸다. 그래서 중세기였던 500년에서 1,500년까지 기독교는 말씀이 없이 의식만으로 예배를 드리는 기인한 예배가 되고 말았다. 그것을 우리는 '미사'라고 부른다. 기독교에 신비적인 이방종교의 풍습을 결합하여 이상한 종교가 탄생한 것이다.


6. 종교개혁자들의 예배

  그러자, 루터를 비롯한 쯔빙글리, 칼빈, 존낙스 등이 종교개혁을 단행하기에 이른다. A.D.313년 기독교공인 이전의 순수했던 기독교신앙으로의 복귀를 선언한 것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시작된 개신교예배는 다시 말씀의 예전이 강조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자국어로 번역된 성경을 들려주어 누구든지 말씀을 읽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쯔빙글리나 존낙스 등은 예배 안에 회당예배에 사용되었던 기도의 내용 중에서 죄의 고백이라는 순서를 다시 부활시켰다. 그리고 중세시대에는 구경꾼이었던 예배의 회중들을 예배의 참여자로 바꾸어놓았다. 그러므로 예배를 본다는 말은 중세시대에 신부들이 행하는 의식을 본다는 개념이므로,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기보다는 예배를 드린다는 말로 바꿔사용해야 할 것이다.


7. 예배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예배의 개념과 구성요소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로, 예배란 무엇인가? 예배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예배란 "하나님과 그의 백성간의 만남"이라고 정의한다. 물론 이 정의는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예배에 대한 분명한 정의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그렇다면 어원적으로 예배란 무엇인가? 히브리어에서는 예배를 대부분 '샤하'라고 말한다. 이 말은 "엎드리다. 경배하다(창18:2, 욥1:20)"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단어는 헬라어로 '프로스퀴네오'라는 단어다. 이 단어도 "엎드리다. 경배하다. ~을 향하여 입을 맞추다'라는 뜻이다(요4:24, 계5:14). 고로 예배란 엎드려 경배하는 행위인 것이다. 또한 히브리어로서 예배는 '아바드'라는 단어도 종종 쓰인다. 이 단어는 헬라어로서 '라트류오'라는 단어와 동일한데 둘 다 "섬기다, 봉사하다, 직무를 수행하다."라는 뜻이다. 결국 어원적으로 볼 때 예배란 하나님의 백성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 자세로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영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구역예배나 가정예배라는 표현은 그것이 그리 좋은 표현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구역모임, 가족경건회'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오늘날 '수요예배'나 '금요예배'라고 많이들 이야기하고 있지만, 좀 더 정확한 표현을 사용한다면,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라고 함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예배를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을까? 그것은 요4:24에 나와 있다. 하나님께서 예배하는(프로스퀴네오)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것은 예배의 장소보다는 예배드리는 자의 자세와 내용을 언급한 표현이다. 즉 육신과 거짓으로 예배드리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안 받으신다는 뜻이다. 몸만 예배당에 왔다가 가는 것은 예배가 아님을 말씀하신 것이다. 즉 예배의 자세와 준비성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예배 중에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지 아니하는 예배는 더이상 예배가 아니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선포되는 설교의 내용을 보라. 과연 진리이신 예수님(요14:6)과 예수님의 말씀(요8:45~46)을 선포하고 있는가?


8. 예배의 구성요소 6가지

  둘째로, 예배의 구성요소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는 그동안 예배에 관하여 성경적인 고찰과 아울러 교회사적인 고찰을 해 보았다. 구약에서는 제사가 있었고 이어 회당예배가 있었다. 그리고 신약에 들어와서는 말씀예배와 성만찬예식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의 변천사도 함께 살펴보았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예배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 정의할 수가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예배를 드렸다고 하는 것은 이런 행위들이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첫째, 우리가 하나님께서 드려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찬송과 기도와 예물이다. 구약시대에는 제물과 예물(감사예물)과 첫열매과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다. 그러나 신약에는 제물을 제외한 다른 것들을 드릴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다윗이 성전제사를 시작할 때에 들여온 찬송도 드려야 하고, 회당예배 때에 사용된 진정한 기도도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이다. 그러면 둘째, 하나님께서 예배드리는 자에게 주시는 것도 있다. 그것도 3가지다. 첫째로는 말씀(설교)을 주시고, 둘째로는 복(축도)을 주시고, 셋째로는 피와 살(성만찬)을 주신다. 말씀과 설교와 성만찬은 오늘날 목회자라는 구약의 제사장적인 직분자에 의해 주어진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도 중개자인 목회자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특별히 종교개혁이후에 대부분의 개신교회는 성만찬을 따로 떼어서 행하고 있다. 그것도 일년에 3~4번 정도로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없어서는 안 되는 예배의 요소인 것을 알고 이 예식을 거룩함으로 참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우리는 오직 주일낮예배만을 예배라고 부름이 합당하다고 하겠다.


9. 나오며

  예배란 한 마디로 죄인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와 그분을 경배하고 섬기는 행위로서, 하나님께는 찬송과 기도와 예물을 드리고, 하나님으로부터는 말씀과 복과 피와 살을 받는 거룩한 영적인 교통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는 자는 옷깃을 여기는 마음 즉 두렵고 떨리는 마음, 경외하는 자세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하며, 예배 순서 하나하나에도 온 맘과 정성을 다하여 섬겨야 할 것이다. 특히 오늘날에는 성만찬보다는 말씀의 예전에 훨씬 더 강조점이 복원된 시기이므로, 진리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며, 그분께 감사를 표현할 뿐만 아니라, 죄사함의 선포와 말씀과 기도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살리고, 죄사함을 받고, 영혼을 충전하여 새 힘을 얻는 예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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