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한마음교회, 속죄의 십자가와 더불어 예수님의 부활을 강조하여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부활의 증인으로 활동하게 하는 놀라운 교회. 그런데 이 교회에서는 이 교회만의 신앙고백이 따로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능자와 창조주 하나님 그리고 주인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대박을 터뜨렸다. 수많은 중독증 환자들이 치유받고 정신적인 약함들에서 벗어나며, 귀신들로부터 해방을 맞이하는 일들이 쉬지않고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이 교회에서는 성도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활의 복음이 가진 장점은 무엇이며 혹 약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1. 들어가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은 누구인가? 그리스도인들이 그분을 믿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분을 누리는 분량은 각기 제각각인 것 같다. 그분을 메시야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는 그분의 피를 통해 죄사함을 받는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그분을 전능자요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는 자는 인생의 문제들까지 극복할 수 있다. 그분을 아는 만큼 그분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당신은 과연 그분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여기, 지금 우리나라에게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하나의 교회가 있다. 그곳은 춘천 한마음교회다. 그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누리는 분량이 기존교회와 다르다. 그 크기와 넓이가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이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사람으로서만 아니라 하나님으로서 충분히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주에 이어서 춘천한마음교회가 말씀하고 있는 부활의 복음이란 대체 무엇인가를 좀 더 살펴보고, 부활의 복음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그리고 단점에 대해서 각각 살펴보고자 한다.
2. 부활의 복음이란 무엇인가?
'부활의 복음'이란 무엇인가? 부활의 복음이란 기존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십자가의 복음'의 반대편에 있는 복음으로서 십자가의 복음과 맞물려 있는 복음을 가리킨다. 그동안 기존교회에서 복음을 설명할 때면 대부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곧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에 관해 초첨을 맞추서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살짝 언급하고 지나가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춘천한마음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십자가보다 더 중요하다고 누누히 가르친다. 부활이 없었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와 효능이 묻혀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부활하기 전까지 제자들은 사실 산헤드린공회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몰래 숨어지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정말 약속대로 성령을 받게 되자, 그들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강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감옥에 잡혀갔으나 그들은 결코 겁먹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못 배운 사람들이었음에도 그들은 산헤드린 앞에서 논리있게 변론하였으며, 또한 그들 스스로가 부활하신 예수께서 행하신 확실한 표적들을 가지고 있었기에, 결국 무죄로까지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의 마음 속에 있다는 강한 믿음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안에 들어와 계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은 더 이상은 메시야나 하나님의 아들 정도가 아니었다. 그들은 무소부재하신 예수님을 만나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자 비로소 예수께서 육체로 계실 때에 했던 말씀들이 다 생각나고 이해가 되어졌기 때문이다(요2:22). 그래서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은 예수님을 더 이상 사람으로 고백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분을 하나님으로 고백하기 시작한 것이다(요20:28). 그렇다면, 그분이 육체로 계실 때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무엇이라고 불렀을까? 그들은 대체로 '주님(퀴리오스)', '선생님'(에피스타타 혹은 디다스칼로스), '랍비'(나의 선생님), '메시야'(그리스도)라고 불렀다. 또한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라는 의미로서 '다윗의 자손'이라고까지 불렀다. 그분은 바로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였기 때문이다.
3. 부활하신 예수님은 대체 누구인가?
그렇다면, 부활의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대체 어떻게 고백되어지고 있는 것인가? 춘천 한마음교회 식구들은 예수님을 3가지로 언급한다. 하나는 '전능자'요, 또 하나는 '창조주 하나님'이며, 마지막 하나는 '주인'이다. 참으로 놀라운 신앙고백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언급하는 첫번째와 두번째 신앙고백은 기존교회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신앙고백이다. 마지막 세번째로 사용하는 신앙고백 곧 예수께서 주인이라는 신앙고백은 사영리 등에서도 조금은 나타나 있는 개념이기는 하지만 부활의 복음에서는 그 개념을 확장해서 사용한다.
자, 그렇다면, 부활하신 주님이 과연 전능자요, 창조주 하나님이며 주인인지를 살펴보자. 먼저, 첫째로 부활하신 주님은 과연 전능자인가? 그렇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전능자로 자신을 계시하셨을 뿐만 아니라(출6:2~3, 욥5:17), 사9:6에서 장차 아기이자 아들로 오시는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예언되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족장시대의 사건으로 추정되는 욥기서를 읽어보았는가? 거기에 보면 하나님을 전능자로 표현하는데, 무려 29번이나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을 '여호와'로 표현하는 것(32회)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둘째로, 부활하신 주님은 과연 창조주 하나님이신가? 그렇다. 왜냐하면 모든 만물 즉 보이지 않는 것들과 보이는 것들이 다 그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통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분 없이는 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요1:2~3,골1:16,계3:14). 그럼 셋째로, 그분은 과연 주님이시며 주인이신가? 그렇다. 그분은 주님이시요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다(롬14:9).
4. 초대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신앙고백이란 무엇인가?
사실 우리가 교회의 역사를 공부해보면,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은 어떠했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바로 예수께서 주님이라는 신앙고백이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해야 세례를 주었고 성만찬예전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신앙은 신약성경에서도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그 대표적인 구절들이다.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롬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골2: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빌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렇다면, 춘천 한마음교회에서는 왜 주님을 주님이라고 사용하는 것보다 '주인'이라는 표현을 더 즐겨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 교회의 나름대로의 신앙고백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래 성경에 등장하는 '주님'이라는 단어는 거의 대부분이 구약에서 '여호와'를 대신하는 용어였지, 그것이 '주인'이라는 뜻으로 거의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구약시대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를 함부로 사용하지 못했다. 십계명에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지 말라는 말씀에 주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호와'를 부르거나 지칭할 때에는 대부분 '주님(아돈)' 혹은 '아도나이(나의 주님)'이라고 사용하였는데, 그 횟수가 무려 6천번이 훨씬 넘는다. 또한 신약성경에서 구약성경말씀을 인용하려 할 때, 신약의 저자들은 구약의 '여호와'라는 이름을 전부 다 '주님'이라고 바꾸어서 사용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롬10:13, 요12:13). 그렇다. '주님'이라는 용어는 대부분 '여호와'라는 단어의 대체용어로 쓰인 것이다.
하지만 춘천 한마음교회에서는 '주님'에 해당하는 단어의 의미를 좀 더 확장해서 사용하였다. 그것은 '주인'이라는 개념이었다. 사실 '주님(헬, 퀴리오스)'이라는 단어는 '여호와'를 대신하는 대체용어 이외에도 4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다. 첫번째로는 '주인, 소유주'라는 개념이다(삿19:22~23, 눅20:13). 이것은 포도원 주인의 비유에 나온다. 이것은 농부들의 주인 즉 농부들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는 '다스리는 자, 통치자, 왕'이라는 뜻도 있다(계11:15).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예수님에 대한 호칭으로 '만유의 주와 만왕의 왕"이 쓰인다(계17:14,19:16). 그리고 세번째로는 '제정하신 이, 만드신 이, 창조자'라는 뜻도 있다(마12:8). 이것은 예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의미에서 나오는 개념이다. 마지막 네번째로는 '구원하는 자'라는 뜻이 있다(마9:26). 이것은 제자들이 풍랑속에서 죽음의 위험에 직면했을 때 그들이 주님을 부르는 칭호에 담겨있는 표현이다. 그렇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하지만 그 뜻의 용례는 좀 다르다. 춘천 한마음교회에서는 이러한 개념들 중에서 첫번째의 개념 즉 '주인'이라는 개념을 확대해서 사용한 것이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들이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가르치고 있다. 비록 '주님(퀴리오스)'에 대한 개념 중 '주인'이라는 개념이 미약하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신앙고백을 만들어내되, 그 주인이 누군지를 정확하게 가르침으로 춘천 한마음교회는 한 마디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왜냐하면 그 주인이 바로 '전능자'요,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5. 춘천한마음교회가 선포하는 핵심적인 진술들
이제는 춘천 한마음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도지를 통해서 그들의 주장을 좀 더 정리해보도록 하자. 특히 오늘은 죄에 대한 회개의 개념과 구원의 개념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춘천 한마음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진술은 총 7가지다. 그 진술들을 통해서 우리는 춘천 한마음교회이 외치는 부활의 중요성과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과 죄 그리고 회개의 의미 및 구원의 의미를 정리해보자.
첫째, 부활의 중요성을 살펴보자. 그들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부활'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다(행17:30~31)" 이것은 사실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인용된 성경구절은 잘못 적용한 해석인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들은 예수님을 '전능자'요, '창조주 하나님'이며, '주인'이라고 고백한다(요20:28, 롬14:9).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셨다가 가셨다고 말하지 않고, '전능자가 이 땅에 오셨다 가셨다'고 진술한다.
셋째, 죄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들은 성경대로 다 이루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를 근원적인 죄라고 명명하고, 일반적인 죄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지 않고, '자기가 주인된' 죄라며 명명한다. 그런데 김성로목사님께서 이러한 죄에 대한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요한복음 16:9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는가하면, 사람의 죄란 "예수님을 자기 주인으로 믿지 않는 죄"라고 한다. 하지만 요16:9은 예수님을 자기의 주인으로 믿지 않는 죄를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다. 예수님을 그들이 믿지 않는 죄인데, 그들은 바로 유대인들로서 유대종교지도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고 있었으나, 그들의 자리를 침투해 들어오는 예수님을 질투한 나머지 예수님을 배척하고 만다. 그분이 구약성경에서 무려 350가지 이상 예언된 메시야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거부해버린 것이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을 듣고도 예수님을 배척해버린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죄라고 명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김성로목사는 항상 부활과 주인이라는 단어에 초첨을 맞추다보니, 죄도 예수님을 자기의 주인으로 믿지 않는 죄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해버린 것이다. 조금은 아쉬운 데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분의 진술이 틀린 것은 아니다. 참으로 죄는 예수님을 자기 주인으로 믿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회개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부활의 복음을 외치는 춘천한마음교회에서는 '회개'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라고 회개하는 것이라고 진술한다(막1:15, 행2:38). 하지만 인용하고 있는 성경구절에서 말하는 회개(메타노이아)라는 단어의 뜻은 대체로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 내지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은 자범죄들을 깨닫고 뉘우치고 돌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죄(헬, 하마르티아)'라는 의미가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가듯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서 벗어난 것을 가리키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전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죄란 자범죄 외에도 자신이 죄인인 것 자체를 시인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눅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의 세리의 기도를 보라. 거기에 보면 그는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18:13)."라고 자신의 죄인됨을 시인하며 통곡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구원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들은 구원이란 예수님을 자기의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롬10:9). 하지만 이러한 진술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성경 전체가 말하고 있는 바른 구원관하고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라는 인생의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가리키는데, 구원은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믿는 믿음과 더불어 일평생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해야 얻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마4:17, 막1;15).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들의 이러한 진술을 그대로 적용해보았더니 놀라운 결과들이 나타나더라는 것이다. 그랬더니 신앙의 얽인 문제들이 풀려지고, 인간관계가 새롭게 되어지며, 마음의 병과 중독에서 벗어나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이 교회를 눈여겨보게하는 훌륭한 사례가 아니겠는가 싶다. 그렇다. 이상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춘천한마음교회는 자기나름대로의 새로운 신앙고백을 만들었고, 그것을 실제적으로 적용하여 많은 열매들을 거둬들인 특이한 사례에 해당한다.
6. 춘천한마음교회가 외치는 '부활의 복음'의 장점과 단점
이제는 마지막으로 부활의 복음의 장점과 단점을 정리하면서 마무리해보자.
첫째, 부활의 복음의 장점은 무엇인가? 3~4개 정도가 된다. 첫째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한층 더 끌어올려놓았다는 점이다. 춘천한마음교회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새로운 신앙고백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전능자요, 창조주 하나님이요, 주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러한 신앙고백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인생의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 이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셔들임으로 수많은 중독과 정신적인 억압과 스트레스, 컴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귀신으로부터 해방을 받고 있다. 셋째, 죄를 이기는 데에 적극적인 방법을 찾아내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죄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사용된 것은 사후약방 처방전이었다. 즉 죄의 결과들에 대해 회개함으로 용서받는 방법을 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마음교회에서는 죄를 짓지 않도록 사전에 막아버리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은 예수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인도를 따라 살도록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넷째, 이것은 보조적인 장점으로서, 믿는 자들 안에 들어오시는 이가 부활하신예수님인 것을 끝까지 붙들도록 함에 따라 성령을 가장하는 귀신의 장난에 속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 기존교회에서는 영접할 때만 예수님을 영접할 뿐 그 다음부터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성령께서 보이지 않고 성령이 오실 때에는 은사(선물)를 주신다고 하니까, 귀신들이 성령을 가장하여 활동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신사도와 빈야드의 상당부분은 여기에 속한다고 하겠다. 하지만 춘천한마음교회에서는 이 부분의 위험성을 제거해주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이가 예수님일 뿐만 아니라 그분을 일평생에 자기 주인으로 모시며 살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귀신이 성령으로 사칭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천한마음교회에서 외치는 부활의 복음에도 단점은 있다. 이것도 서너가지 된다. 첫째, 부활의 복음이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만 집중이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부활의 복음을 적용한 결과,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인생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주 쓰이게 된다는 점이다. 둘째, 그러다보니 사람의 영혼을 구원받게 하는 데 즉 궁극적인 구원에 대해 소원해진다는 것이다. 인생의 성공은 인생의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죽어서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인데, 아무래도 인생문제의 해결에 집중하다보니 이 부분에 대해서 강조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 너무나 '부활'이나 '주인'에 대해 강조하다보니, 자신의 문제가 실제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거기에 만족해버린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암병같은 불치병에 걸렸어도 부활의 복음을 깨닫고 자기 안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있으니 죽어도 아무런 상관없다는 마음이 생겨나서 불치병을 이겨내는 집중력이 약화되어 불치병에서 낫는 사례가 적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부활의 복음을 들었음에도 실제적으로 물질에 축복이 더해지지 않아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부활의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하는 마취상태 혹은 세뇌상태에 머물게 된다는 점이다. 넷째, 죄에대한 정의를 치우치다보니,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지도 않으면서도 자신의 인생의 주인을 예수님으로 정하고 가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 빠져버린다는 것이다. 인간은 역시 인간이지 하나님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내 인생의 주인을 주님으로 바꾸었다고 하더라도 또 넘어질 때가 있다. 그러면 그들은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기보다는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는 죄만 회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폐해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임하는 것이다. 예를 들ㅇ러보자. 우상숭배의 죄를 지으면 그 저주가 3~4까지 이르게 된다(출20:5). 물론 내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나는 그 저주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내 자식이 믿지 않을 경우 한 대를 뛰어넘어 자식에게로 간다. 그러므로 부모인 나 자신도 그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할 뿐더러, 자식에게도 우상숭배의 죄의 심각성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서 대물림되는 우상숭배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 인생의 주인을 예수님을 바꾸는 것에만 초첨을 맞추다보면 온갖 저주를 자기나 자기의 자식이 받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감사해버리는 상황으로 갈 뿐 그것을 끝내는 방향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7. 나오며
그렇다. 우리 동탄명성교회는 춘천한마음교회처럼 3년6개월동안 회개와 천국복음에 집중해왔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바른 구원론을 회복할 수 있었고, 바른 신앙을 찾을 수 있었다. 여기에 따른 감사와 기쁨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보다 더 적극적으로 죄를 짓지 않게 하는 데에는 부활의 복음을 따라갈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그리고 예수님을 전능자요 창조주 하나님이자 주인으로 아는 데서만 그치지 말고, 춘천한마음교회처럼 그것을 실제로 적용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한다면 금상첨화의 신앙생활이 될 것 같다. 회개와 천국복음의 핵심이 사람의 영혼이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데 기존교회가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오류들을 바로잡아 주고 바른 길을 안내해 주고 있어, 춘천한마음교회의 부활의 복음가 하나될 때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동탄명성교회 홈페이지나 앱, 유튜브를 통해서, 약 1,300개 이상의 바른 구원론에 관한 '회개와 천국복음' 설교를 누구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