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포기한다. 기도해 봤자 소용이 없더라는 의식이 팽배하다. 혹시 삶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돈벌어서 해결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우리 사회가 확실히 먹고 살기에는 어느정도 부족함이 없는 시대에 되어버린 것일까? 그런데 만약 기도하지 않고서 어떻게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가를 알 수 있을까? 그리고 기도응답을 받아본 일이 없는 자가 어찌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있을까?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즉 기도란 무엇이며, 또한 어떻게 기도를 드려야 하나님이 응답하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도 기도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할까?
믿는 자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도하는 것을 목숨 걸고 하지 않는다.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도 기도하지 않는 것일까? 아마도 기도가 절박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도 못살고 못입고 하던 시기가 지나갔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기도에 대한 응답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 더 큰 이유가 아닐듯 싶다. 기도를 드린다고 해도 과연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하러 나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기도응답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에 대해 크게 실망하지도 않는 것이 현대인들이다. 왜 이렇게 뜨뜻미지근한 신앙이 되어버렸을까? 그것은 아마도 기도가 왜 필요하며, 어떤 기도를 드려야 제대로 응받받는 기도를 드리는 것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기도는 성도의 가장 기초적인 신앙의 요소이지만 어떤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가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오늘은 어떤 기도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는지를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확인해보고자 한다.
2. 왜 성도들은 기도해야 하는가?
기도는 왜 필요한 것일까? 성도들은 왜 기도해야 하는가? 기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지만 그분과 교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며 비는 기도에 응답해주신다는 것을 믿는 자만이 기도하는 일이다. 또한 기도는 시간과 땀과 눈물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기도도 일종의 노동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일은 육체로 보기에는 약간 피곤한 일이 될 것이며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왠만한 문제라면 그냥 자신이 풀어버리려고 하지 하나님 앞에 일부러 기도하러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무엇으로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시며 그분이 나를 위해 준비해둔 천국이 진짜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때에 비로소 자기에게 확실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가 땀과 눈물을 필요로하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기도는 정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천국의 실재를 믿을 수 있는 좋은 도구이자,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통로이기에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3. 기도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는 어떤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가?
그런데 성도들의 기도에 있어서 가장 큰 관건은 과연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해주실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그것만 확실히 알 수 있다면 많은 성도들이 기도에 뛰어들 것이다. 자, 묻겠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기도를 들으시며 또한 응답해주시는가?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의 산상수훈의 말씀에서 기도에 관한 놀라운 영적 비밀들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있다. 그것은 마7:7~8에 나온다.
마7:7-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가. 기도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기도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지를 말씀하고 있다. 먼저, 기도는 구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구한다'는 뜻은 헬라어로 '아이테오'라는 동사로서 '요청한다. 요구한다'는 뜻이다. 이 동사와 비슷한 단어가 또 있는데 그것은 "기도한다(프로슈코마이)"는 동사와 "부르짖는다(외친다, 소리지른다)(크라조)"는 동사가 있다. 그렇다. 기도는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이며, 그분에게 무엇인가를 바라고 요구하는 것인데, 그냥 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짖어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귀가 먹으셨는가? 왜 부르짖어 기도해야 응답하실까? 그것은 부르짖는 태도가 기도의 바른 자세이기 때문이리라. 부르짖는 것은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하나님께서는 어떤 기도를 응답하시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기도를 드려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가? 그것은 동사의 형태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기도한다는 동사들이 거의 전부가 다 현재 명령법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헬라어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용법으로서, 기도는 한 번만 굳게 마음먹고 하는 일이 아니라 계속해서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이 동사에 대한 명령법의 형태가 과거 명령형이 아니라, 현재 명령형이기 때문이다. 헬라어 명령법에는 현재 명령법과 과거 명령법이 있는데, 현재 명령법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행하라는 명령이지만, 과거 명령법은 단호하게 한 번 굳게 마음을 멀고 행하라는 명령이다. 그런데 기도에 관한 명령어는 거의가 다 현재 명령형으로 나온다. 이는 기도는 한 번으로 끝낼 성질이 아니며, 끊임없이 계속해서 해야 할 일임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기도에 관한 교훈을 가르쳐주실 때에, "항상 기도하고 있어야 하고, 낙심하지 말고 있어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해주신 적이 있으셨다(눅18:1). 그것은 억울한 일에 대해 재판을 요청하는 어느 가난한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에 관한 비유에 들어있다. 어떤 도시에 돈만 밝히는 나쁜 재판관이 있었다. 그런데 한 과부가 그에게 찾아가서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나쁜 재판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계속해서 과부가 찾아와서 자기를 괴롭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재판관이 마음을 바꾸게 된다. 왜냐하면 만약 그녀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면 계속해서 자기를 괴롭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과부의 청을 들어주고 만다. 이것이 예수님의 비유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눅18:7-8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다. 언제까지 기도해야 하는가?
우리는 과연 언제까지 기도해야 하는가? 그것은 그분이 들어줄 때까지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분께 요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려야 한다(마7:7~8). 한 번만 기도드리고 끝낼 성질의 것이 아니다. 왜나하면, "구하라"는 동사가 현재 명령형 형태이며,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라는 동사가 미래 수동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도는 계속해서 해야 할 일이며, 기도에 응답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있을 것인데 그 시기는 우리가 정할 수 없고 하나님이 정하신다는 뜻이다. 특히 기도응답구문은 능동태구문이 아니다. 이는 '그것이 주어질 것이다'는 수동태 문장으로서, 하나님에 의해 기도가 끝마쳐질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 우리가 기도는 시작하지만 기도를 끝내시는 분은 오직 그분이다. 기도응답의 주권은 우리에게 있지 않다. 그분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번 기도를 시작했으면 계속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분으로부터 기도응답이 주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4. 기도는 한 번으로 끝낼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계속해서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하셨을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불의한 재판관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불의한 재판관에게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한 번만 드려도 기도에 응답해주시면 참 좋을텐데, 왜 계속해서 끊임없이 요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를 드리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렇다. 초신자 때에 하나님은 기도에 금방 응답해주신다. 왜냐하면 그래야 그가 하나님이 살아계신지를 알고 하나님을 믿고 붙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계속해서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한 번의 기도에 즉각즉각 응답하시는 경우는 흔지 않다. 끊임없이 쉬지 않고 요청하고 찾고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신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해주고 싶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정말 하나님만을 찾고 의지하는지 그 사람의 믿음을 보시기 위함이다(눅18:8). 그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정말 있으면 그 사람은 기도를 쉬지 않을 것이다. 기도하다가 낙심하지도 않을 것이며 중도에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자신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응답해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5.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
그렇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분이시다(시65:2). 그분은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이시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소리를 들으신다. 사실 그분은 우리 지구로부터 이억만리 떨어진 머나먼 셋째하늘에 계신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수 있을까? 우리는 옆집에서 말하는 소리도 듣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은 이억만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 기도하는 우리 인간의 기도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지구에는 수만명의 기독교인들이 동시에 기도할텐데 어떻게 기도를 들으실 수 있을까? 그러니까 하나님은 전능자이심을 알 수 있다(창17:1). 그분은 시공간에 제한을 받는 피조물이 결코 아니시다. 그분은 창조주요 절대자요 전능자이시다. 그래서 신이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이 우주 가운데 오직 그분만이 신이시다. 그분만이 우리의 기도를 동시에 들으실 수 있고 동시에 응답하실 수가 있다. 어떤 이는 우리 성도들이 기도하면 천사가 그 기도를 받아서 하나님께 보고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다 맞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천사는 하나님이 아니기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사가 우리의 기도를 받아서 하나님께서 보고할 때에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금향로에 담을 수가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무소부재하신 신이므로 동시에 우리의 기도를 다 각각 따로 들으시고 동시에 응답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 기도만큼은 하나님께서 직접 당신의 귀로 들으신다(시18:6, 6:9). 다만 천사가 중간에 하나님의 심부름을 받고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도를 다 천사가 담아서 하나님께서 바친다는 것을 불가능한 것임을 알라. 천사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약시대 참 신앙의 인물들은 자신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직접 듣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히스기야왕을 보라. 그는 자신이 드린 기도를 하나님께서 듣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의 힘을 벗어나는 일에 부딪혔을 때에 하나님 앞에 가서 엎드렸다(왕하19:20, 20:5). 그렇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전능한 창조주이며 절대자이신 것이다.
6. 나오며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으리라고 다짐했던 사무엘선지자처럼 기도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믿음으로 드린 기도는 결코 없어지지 아니한다. 하늘에 향처럼 연기가 되어 올라가기 때문이다(계8:3~5). 그래서 하나님께 전달된다. 그러나 기도는 한 번으로 끝낼 성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도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며, 상당히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하는 봉사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면, 기도도 일종의 자신의 상급이 되어 천국집을 멋지게 꾸민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힘들지만 자기의 주변을 둘러보라. 의외로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라와 민족이, 내 집안과 친척과 동료가, 내 교회와 내가 속한 공동체에게 기도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 보여질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여 기도를 일삼아 하기를 바라며, 항상 기도하되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도가 많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훨씬 더 강해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