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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86JzppNOIWs
날짜 2017-12-01
본문말씀 마태복음 25:31~46(신약 4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양과 염소의 정의, 인자와 왕이시며 심판주이신 예수님, 지극히 작은 자 중에에 한 명, 예비된 왕국의 상속자, 영원한 불의 형벌, 영벌과 영생

그리스도인들의 대부분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비유(마25:31~46)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장차 주님의 심판 때에 누가 과연 양의 자리에 서게 되며 누가 염소의 자리에 서게 되는가? 또한 그들이 영생과 영벌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가난하고 병들고 불쌍한 자들에게 선행을 베풀면 그냥 양이 되고 영생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가? 아니면 선행과는 상관없이 예수님만 믿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가? 여기에 많은 오해가 있다. 그러나 마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는 그 진실을 우리에게 말씀해준다. 하지만 헬라어성경의 잘못된 번역으로 인하여 그 뜻이 감추어져 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의 진실 안으로 들어가 보자. 그리고 양이 되며 영생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되자.

 

1. 들어가며

  기독교인들에게 양과 염소의 심판의 비유말씀(마25:31~46)은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비유 말씀들 가운데서도 잘 알려진 에피소드 중의 하나다. 그런데 양과 염소의 심판은 얼핏 보기에 믿음을 따라 심판하지 않고 행위를 따라 심판하는 심판 곧 행위심판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의인의 자리 곧 양의 자리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나라 곧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왕국)의 상속을 말하는 것을 보고, 이 심판은 백보좌심판이 아니라 상급심판으로서 천년왕국에서 나라(왕국)을 상속받는 것에 대한 심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행여 이 본문을 잘못 해석하다보면,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 자라면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양과 염소의 심판은 어떤 심판을 가리키는 것인가? 그리고 양과 염소는 대체 누구를 가리키며, 이들이 영생(영원한 생명)과 영벌(영원한 형벌)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냥 선행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인가? 오늘 양과 염소의 심판에 대한 우리 주님의 말씀을 성경원문(헬라어)에 따라 살펴봄으로서 인자의 참된 심판의 기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2. 양과 염소의 심판은 백보좌심판과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첫째, 양과 염소의 심판은 계20장에 나오는 백보좌심판을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면 상급심판을 가리키는 것인가?

  우리 주님께서는 믿음을 통한 인류 최후의 심판 곧 백보좌심판 전에 과연 어떤 이들의 주장처럼 천년왕국에서 왕국을 상속할 자를 뽑기 위해 상급심판으로서 양과 염소의 심판을 행하시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러한 이중심판은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후 문자적인 천년왕국이 이 지상에 결코 펼쳐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벧후3:10~13). 천년왕국이란 오직 요한계시록 20장에만 등장하는 것으로서, 예수님께서는 공관복음서에서 언급하신 일이 없으며, 다른 사도들도 언급한 일이 없다.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은 묵시(계시)의 책으로서 거의 대부분이 상징과 환상으로 엮어진 책이기에,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숫자도 마찬가지로 상징적이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이 지상에 천년왕국이 펼쳐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고로 백보좌심판 전에 상급심판이 있다는 것은 틀린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오직 단회적이며 결코 이중적이 아니다. 둘째, 마25장의 양과 염소의 심판도 상급심판이 아니라 백보좌 심판과 동일한 하나의 심판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심판의 결과를 보라. 인자의 오른편에 서있던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며, 인자의 왼편에 서있던 자들은 영원한 형벌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특히 의인들은 이 세상의 시초로부터 그들을 위하여 이미 예비된 채 있는 왕국을 상속받게 될 것이다. 사실 그렇다. 예수께서도 요14장에서, 당신이 하늘로 가시는 이유들 중의 하나가 제자들이 오면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함이라고 하셨다(요14:1~3). 어떤 사람은 마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 나오는 "창세로부터 상속할 나라"이지만, 백보좌심판 이후에 받게 될 천국은 만세전부터 준비된 나라이므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틀린 주장이다. 만세전에 천국은 예비되어 있지만 천국집은 예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믿고 회개하여 천국백성이 되는 순간부터 그의 집이 지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보좌심판이나 양과 염소의 심판이나 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녹명여부에 따라 심판되어지는 동일한 심판에 대한 다른 표현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 결과가 천국안으로 들어가든지 아니면 불못에 들어가든지 하기 때문이다. 만약 양과 염소의 심판이 상급심판으로서 천년왕국에 참여할 자를 뽑는 심판이라면, 염소의 자리에 참여할 자도 그리스도인들이므로 영원한 형벌에 들어가게 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므로 이 둘은 서로 다른 심판이 아니라 하나의 같은 심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3. 누가 양과 염소에 해당하며, 누군가가 양의 자리와 염소의 자리에 서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둘째, 양과 염소는 과연 누구를 가리키며, 그들이 양의 자리 혹은 염소의 자리에 서 있게 된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우선, 첫째로, 양과 염소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를 살펴보자. 양과 염소의 자리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시기에 심판받을 모든 민족을 가르면서 생겨난 자리다. 그런데 우리 한글성경은 마25:40의 번역이 조금 잘못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 한글성경에서는 "인자가 그들을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같이 한다"고 번역되어있지만, 헬라어원문에 의하면, "마치 목자가 염소들로부터 양들을 구분하는 것 같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냥 한데 있는 양과 염소의 무리들을 양과 염소의 자리로 둘로 각각 나눈다는 뜻이 아닌 것이다. 염소들로부터 양떼들을 골라낸다는 뜻이다. 그렇다. 모든 사람들은 이미 아담의 범죄로 인해 모두가 다 영벌에 처할 대상들 곧 염소들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서, 달라진 삶을 사는 자가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의인들의 삶을 산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영벌에 처해질 염소들로부터 양들을 골라내시는 것이다. 이 말씀은 천국에 들어갈 자가 그리 많지 않음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으며, 양과 염소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알려준다(마25장의 달란트비유와 동일하다).

  둘째로, 어떤 사람이 심판을 받은 후에 양의 자리와 염소의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먼저, 어떤 자가 그날 양의 자리에 서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들이 영생 안으로 들어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그날 심판주가 되시는 주님으로부터 "의인들"이라 불리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들은 굶주린 자를 보면 대접하였고, 목마른 자는 마시게 하였으며, 나그네된 자를 보면 영접해 주었으며, 헐벗었을 때에는 옷을 입혀주고,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았던 것이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을 보살펴준다면, 양의 자리에 참여하게 되아 심판후에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것은 그뜻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도 않은 채, 선행을 조금 했다고 해서 그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결단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죄의 문제도 해결하지도 못하고, 거듭 태어나지 못해 하나님의 생명을 받지도 못한 자가, 어찌 선행을 조금 실천했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과거의 지은 죄가 선행이라고 하면 없어지는 것인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천국에는 오직 죄 때문에 못 들어가는데, 과거의 지었던 죄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헬라어 원문을 볼 줄 알아야 한다. 특히 40절의 말씀은 너무나 곡해되어 번역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말씀을 바로 잡지 아니하면, 가난한 자와 병든 자와 고통에 시달리는 자를 누군가가 돌보아주면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본문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예수님의 말씀과 성경의 말씀과는 상충되는 해석이다.

  자,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을 송두리채 수정해줄 마25:40의 말씀을 헬라어원문에 따라 직역해보도록 하자.

마24:40 그리고 왕이 대답한 후에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진실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나의 이 가장 작은 형제들 중의 한 명에게 너희가 행했던 것만큼을, 너희는 나에게 행했다."

  그렇다. 40절의 헬라어원문에 따르면, 이 말씀은 누군가가 지극히 작은 자 한 명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에게 한 것이 되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뭔가를 행하는 자(선행자)가 결국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는 말씀이 결코 아니다. 이는 그들이 선행을 했다고 해서 영생에 들어간다는 말씀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 40절에 의하면, 그들이 선행을 베풀어준 대상이 그냥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다. 주님께서 지극히 작은 형제들을 '내 형제들"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지극히 작은 형제들을 자신의 동생들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은 그들은 최소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인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그들은 주님의 형제들 중에서 지극히 작은 형제들인데 이는 35~36절의 말씀에 의하면,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을 당한 형제들이라는 것을 금방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주님의 동생들과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복음을 전하러 갔다가 굶주리게 되고, 목마르게 되고, 나그네되고, 병들고, 헐벗고, 옥에 갇혀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난해서 못먹고 목입고 된 것이 아니며, 이들이 죄를 지어서 옥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마10장의 경우처럼 복음을 전하러 가서 그렇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삶은 사도바울에게서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고후11장을 보라. 그는 복음을 전파하다가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으며, 매도 맞고, 파선하여 죽음의 바다 위에서 지내며 목말랐고, 여러번 잠자지도 못했고 굶주렸으며, 춥고 헐벗은 채 지내야 했다(고후11:23~27). 그렇다. 재판장이신 우리 주님께서 "내 형제들 곧 나의 이 가장 작은 형제들"이라고 지칭했던 대상은 복음을 전파하러 다니던 주님의 제자들, 사도들, 복음전파자들로서,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복음전파에 온 힘을 기울이다가 고난을 받고 못먹고 못입고 나그네가 되고 때로는 병이 들거나(에바브라디도의 경우처럼), 옥에 갇히기도 한 것이다. 특히 "이(this)"라는 지시대명사가 지금 거기에 있는 주님의 형제들을 지칭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냥 가난하고 불쌍하고 감옥에 갇힌 자들을 돌보아 준 것이 영생에 들어가는 조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고로, 어떤 사람들이 그날 양의 자리에 있다가 영생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가? 그들은 복음전도자들로부터 복음을 받고 이미 그리스도인들이 된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복음을 전해준 자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기꺼이 그들을 예수님처럼 돌아보고 섬겼던 자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고아나 노숙인들이나 떠돌이들을 모아다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옷을 주고 잠자리를 제공해주고 직업교육을 시켜 세상에 보냈다는 이유 때문에 그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일은 예수님을 믿지 않은 단체에서도 하고 있다. 그렇다. 영생에 들어갈 자는 최소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자기에게 복음을 전해준 복음전파자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을 보고는 그들을 돌아보고 섬기겼던 자들인 것이다.

  둘째, 염소의 자리에는 과연 누가 어떻게 되어서 그곳에 서게 되었고 결국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양의 자리에 참석한 자와는 반대되는 사람들이다. 그들도 의인들의 경우처럼 심판주이신 예수님을 주님을 부르고 있다(마25:344). 생각컨데 그들도 믿는 자들이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들은 자신에게 복음을 전해주었던 자들이 어려움과 곤경에 처한 사실을 보고도 그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던 자들이다. 그렇다고 그들은 큰 죄들을 범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우상을 숭배했거나 간음을 저질렀거나 도둑질을 했거나 위증하는 죄를 범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 염소의 자리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주님의 형제들로서 복음을 전파하던 자들이 굶주리고 있었으나 먹을 것을 주지 않았으며, 목말라 했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고, 나느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지도 않았으며, 헐벗고 있을 때에 옷을 입혀주지도 않았으며, 병들었을 때에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않았던 것이다(마25:42~43).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복음을 전해준 자들에게 대한 고마움과 감사의 표시였음에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서는 자기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그분들을 보내주신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도 오직 자기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살았지 헌신하거나 희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원히 염소가 되어 영벌(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된 것이다.

 

4. 나오며

  누가 양이며 누가 염소인가? 그리고 누가 과연 영생과 영벌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가? 오늘 본문에 의하면, 모든 사람들은 다 염소로 태어난다. 하지만 어느날 복음전도자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되었을 때 그들은 양이 된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영생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행함으로 그들의 믿음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복음을 전해준 자들이 어려움과 곤궁에 처했을 때에 본체 만체 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픔으로 알고 그들을 돌아보고 섬겼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그들을 섬기면서 그것이 곧 주님이 베풀어준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니 주님께서도 그들을 양의 자리로 분류하신 후에, 그들이 행동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렇다. 영생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최소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인 자이다. 그러나 더욱 분명한 것은 삶으로서 주님에 베풀어주신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았던 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염소떼들 가운데 양으로 분류되어 영생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과연 염소였다가 양이 되었는데 아직까지도 염소처럼 살고 있으면 안 된다. 그것은 진정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다운 삶이 아닌 것이다. 무조건 병들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도와주었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 구원얻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행4:12). 불신자들 중에도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누구든지 영생 안으로 들어가려면, 복음을 듣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의 자리로 분류된 사람은 최소한 예수님을 믿은 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도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전혀 행하지 않는 자는 결국 염소의 자리에 분류되고 말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받은 은혜를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꼭 마22장에 나오는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의 비유처럼, 예복의 중요성을 모른 채 그 잔치에 참여하고 있는 어떠한 한 사람처럼 말이다(마22:11~13). 우리는 늘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나를 구원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분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그들이 어려움과 곤궁에 처해 있는 것을 것을 보았을 때 본체만체 해서는 아니 된다. 이러한 사실을 지금까지도 잘 몰랐다면,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잘못을 겸손히 시인하고 주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실천에 옮길 수 있기를 바란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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