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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9-06-28
본문말씀 로마서 14:10~12(신약 258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정죄,하나님의진노,하나님의심판,영원한구원,로마서의구원관,로마서와야고보의비교

루터의 종교개혁이후 개혁교회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중세시대 못지않게 타락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러한 이유들의 하나는 "오직 믿음 만능주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오직 믿음" 하나만으로 모든 것은 다 OK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람이 칭의를 받는 것도 단회적인 것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계속적인 것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벗어나려면 반복인 회개가 필요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롬5:9). 그래서 오늘은 로마서에 감추어 있는 바울의 칭의적인 구원관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보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볼 때, 바울은 역시 성령의 영감을 받은 위대한 성경기록자임을 실감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1. 들어가며

  보통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결코 정죄받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심판과 진로부터 벗어나게 되며, 한 번 얻은 구원은 영원히 잃어버리지 아니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일까? 어찌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이 과연 성경적인지 여러분은 체크해보았는가? 우리는 권위있는 자의 주장이라고 해서 무조건 그 주장을 받아들여서는 아니 된다. 과연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들여다보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만약 성경이 진짜 그렇게 말했다면 그것을 목숨처럼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 자신이 얻은 구원에 대해 제대로 체크도 하지 않은 채 무턱대로 들은 말씀을 받아들였다가 나중에 아니라고 판명난다면 얼마나 땅을 치고 통곡하겠는가? 그래서 오늘은 구원론의 핵심이 기록된 로마서를 통해, 과연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구원관은 제대로 된 것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주님의 긍휼이 있기를 바란다.

 

2. 로마서의 칭의관과 야고보서의 칭의관은 어떻게 다른가?

  로마서는 "사람이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에 있다(이신칭의)"고 정확하게 진술하고 있다. 그런데 중세시대에는 믿음만으로는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며 교회(신부)를 통한 사죄의 은총과 자신의 공로가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혹시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바받아서 구원은 받은 자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죄를 짓게 되면 그는 온전히 구원받지 못한 것이기에, 죽어서 연옥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래서 거기서 연단을 받은 후에 천국에 들어간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그러한 교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 변했다. 나중에는 교황이 파는 면죄부는 모든 자범죄를 용서해주는 것이기에 그것을 사게 되면 연옥에 떨어지지 않고 곧바로 천국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러자 면죄부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이것을 지켜보던 루터는 말도 안되는 천주교의 칭의교리를 반박하고 나섰다. 그래서 죄인이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오직 믿음"뿐이라고 설파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직 믿음"이라는 원리가 생겨난 것이다(한편, 조금 뒤에 살펴보겠지만 이는 루터도 실수한 것이 있다). 그리고 이때 루터가 주장한 오직 믿음으로 통한 이신칭의의 교리의 핵심성경구절은 롬3:24,28의 말씀이다.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하지만 이러한 "이신칭의"의 교리와는 달리 "이행칭의"를 주장하는 말씀이 성경에 나온다. 그것은 야고보서의 말씀이다.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약2: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약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그렇다.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써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롬4:2~5). 그는 아브라함도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다고 말했다.

롬4:2-5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그렇다면 우리는 이 둘 중의 누구의 말을 믿고 따라가야 하는가?

 

3. 바울의 칭의의 교리와 야고보의 칭의의 교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성경은 틀림없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께서 받아 말씀한 것들인데, 어떻게 로마서와 야고보서가 충돌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것은 관점이 달라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둘 다 맞는 주장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로마서와 야고보서의 배경을 조금은 알고 있어야 한다.

  로마서는 바울이 3차전도여행중에 고린도에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다. 그런데 바울이 쓴 편지 가운데 오직 한 가지 로마교회만 바울이 개척한 교회가 아닌 곳에 보낸 편지다. 그러니 바울은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초신자들에게 가르치듯이 참된 구원의 복음과 그 여정을 그들에게 써보내고 싶어했다. 그래서 쓴 것이 바로 로마서다. 그러니 로마서는 이미 믿음을 가진 자들을 책망하기 위해 쓴 책이 아니라, "이것이 구원의 옳은 길이다"는 것을 제시하기 위해 쓴 책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구원론에 관하여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지 않았다. 바른 길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는데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고보서는 다르다. 이미 구원의 여정을 다 달려온 자들이 자신을 되돌아볼 때 "나는 과연 구원받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살아왔나?"를 검토하기 위해 쓴 편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신앙의 뒤안길을 되돌아볼 때, 믿음에 합당한 열매들을 발견할 수없다면 그러한 믿음을 죽은 믿음이요, 그러한 믿음으로서는 구원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쓴 것이다.

  그러므로 로마서는 시작의 칭의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면, 야고보서는 마지막 칭의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얼핏 보기에 틀린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둘 다 맞는 주장들이다. 아브라함은 그가 부름받은지 9년(84세)에 칭의를 받았다. 자식이 없었지만 자신의 자식이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롬4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초기의 칭의로서 "시작의 칭의"를 가리킨다. 하지만 야고보서는 이미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 자인데 과연 자신이 믿음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칭의다. 즉 미래적 칭이이자 종말론적인 칭의를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함으로 자신의 칭의를 인정받을 때에 그렇게 제대로 된 칭의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4. 로마서는 진짜 칭의를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로마서는 진짜 칭의를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종교개혁자 루터는 로마서가 말씀하고 있는 칭의를 온전히 풀어내지 못했다. 그는 오로지 전가된 칭의를 칭의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의가 믿는 자들에게 전가되는 칭의는 칭의 시작일 뿐 칭의의 완료지점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거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한 번 예수님을 믿었다고 한다면 이미 칭의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며, 그것을 정죄도 안 받고, 하나님의 심판도 안 받고,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벗어나며, 영원히 구원을 받은 것이며, 그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값없이 은혜로 주신 것이기에 영원히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고 있는 진짜 칭의는 어떤 것일까?

  바울은 칭의는 믿음으로서 시작하는 것이지만, 종말에 가서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말했다. 즉 칭의는 단회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 계속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그것은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비로소 완성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칭의론은 성경번역의 실수로 인하여 감춰지고 말았다. 자, 칭의가 어떤 것인지에 관하여 바울이 로마서에서 언급한 성경적인 견해를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롬3:24과 롬5:9의 말씀을 합쳐서 살펴보자.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우선, 이 성경구절은 잘못 번역된 것이다. 롬3:24의 번역보다도 롬5:9은 더욱더 왜곡되이 번역되어 있다. 그렇다면, 헬라어원문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를 살펴보자.

롬3:24[직역]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혜로 값없이(선물로, 거저,무료로) 의롭게 되고 있느니라

롬5:9 그러므로 이제는 윌가 그분의 피 안에서(피로서) 더욱 더 많이(많은 것에서) 의롭게 된 후에,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그 진노로부터 장차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니라(혹은 "장차 구원을 받아야 하느니라")

  먼저, 롬3:24의 한글번역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속량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값없이 이미 의롭다함을 얻어버린 것처럼(완료형태)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헬라어원문은 지금 의롭게 되어가고 있음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현재 분사 수동태).

  그리고 롬5:9의 말씀을 실로 놀라우리만큼 왜곡되어 있다. 한글성경은 이미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상테 있으니데, 이런 자는 장차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부터 벗어나 더욱 확실히 구원을 받을 것처럼 번역해놓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학문적인 번역서인 표준새번역으로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자.

롬5:9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e)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e. 그) 진노)

  그렇다. 표준새번역을 비롯한 대부분의 번역본들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된 것은 이미 과거의 일이며, 그래서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받을 것은 너무나 확실하다고 번역하고 있다. 이 문장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조건으로서 더욱 더 많은 것에서 의로움을 얻어야 비로서 장차 구원도 받을 수 있다는 말인 것이지, 의롭다하심을 받은 자는 그가 구원받는 것은 더욱 확실하다는 의미로 번역해버렸다. 전혀 아니다. 그 반대다. 그리스도의 피로 더욱 더 많은 것에서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라야 결국에 마지막날 심판의 때에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을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5. 정말 그리스도인들은 정죄받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대(재판석)(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하나님의 진노를 결코 받지 아니하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으면 정죄를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나아가지도 않으며, 하나님의 진노를 결코 받지 아니하고, 확실하게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과연 어떤 것인가? 그런데 이것은 단 하나라도 로마서에 있는 성경말씀이 아니다. 잘못 알고 있거나 왜곡시켜 진리를 감추어버린 표현들일 뿐이다. 그러면 이미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 장차 되어질 일들은 어떤 것들이 남아있는가? 

  첫째, 기존에 알고 있는 바와는 달리 믿는 자라도 정죄를 받을 수 있다(롬8:1).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정죄받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야 정죄받지 않는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롬8:1). 만약 예수님을 믿었어도 늘 예수님 밖에서 살면서 죄를 짓고 성도라면 그는 반드시 심판의 날에 정죄를 받게 될 것이다.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둘째, 기존에 알고 있는 바와는 정반대로 성도들도 심판대에 나아간다다고 말씀하고 있다(롬14:10~12).

롬14:10-12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그렇다. 바울의 전도팀 뿐만 아니라 로마교회의 성도들이라도 다 하나님의 심판대(재판석)에 서게 될 것이라고 했다. 즉 예수님을 믿었다는 이유 때문에 심판을 받지 아니한다는 것을 잘못된 말이다.

  셋째, 기존에 알고 있는 바와는 정반대로 성도들 중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자들도 있다(롬5:9). 왜냐하면 한 번 믿음으로 시작으로서의 칭의를 얻은 후에 회개하지 않고서, 죄를 짓고 또 짓고 있으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이다.

 

6. 종말에 가서 진짜 칭의를 받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고난 후 자신이 지은 죄들을 다 용서받고 의롭다함을 완전히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답도 다 로마서에 있다. 사도바울은 반복적인 칭의와 성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회개라고 했다(롬5:9, 롬2:4~5).

롬2:4-5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결국 시작의 칭의를 받은 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그리스도의 피로 자신의 죄를 씻어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자신이 더욱더 많이 성화가 되도록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자는 죽을 무렵에 매우 힘들게 고생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어떤 작은 죄라도 죄를 가지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칭의에 있어서도 회개는 필수적인 요소다. 하지만, 구원에 있어서도 회개는 필수요, 더불어서 은사를 받는 데에 있어서도 회개가 필수다. 은사가 주어지지 않는 것은 그가 아직 진실로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중한 질병에 시달리거나 자기에게 중한 질병을 가진 자녀가 있는 자라면, 지금 당장 회개를 시작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 회개하지 않는 모든 죄는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각난는(성령께서 생각나게 해주시는) 모든 죄를 모조리 다 회개하는 일이야말로 종말에 가서 칭의를 받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7. 나오며

  로마서는 바울 자신이 개척한 교회가 아니었기에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그들에게 구원의 바른 길을 제시해주고 싶어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신칭의와 더불어,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 죄된 본성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이 그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지은 죄를 회개하라는 말씀 곧 지은 죄를 반복적으로 지속적으로 회개하라는 말씀은 그리 강조되지 못했다. 하지만 바울이 중요한 영적인 진리들을 전혀 기록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비록 분량면에서는 조금 작아보이지만, 꼭 언급되어야 할 복음의 핵심내용들을 그는 다 언급했던 것이다. 그 한 가운데에 "회개"가 들어있다. 왜냐하면 "회개"가 모든 영적인 비밀을 푸는 열쇠요, 칭의를 얻고 구원을 얻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기 때문이다.

 

2019년 6월 28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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