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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sJEYB-GUomQ
날짜 2019-08-30
본문말씀 사도행전 19:9~20(신약 221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바람직한교회상,에베소교회,바울이세운성숙한교회,말씀과성령의균형,말씀의실제,준비된주의종,회개와믿음,우상숭배,주하나님이신예수님,순교적인삶,말씀과성령

우리는 주님께서 진정 바라시고 기뻐하시는 바람직한 교회상을 베드로를 통해서 세워진 예루살렘교회만을 생각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았던 사도 곧 바울을 통하여 세워진 교회에도 그 모습이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바울이 1차전도여행과 2차전도여행의 쓰라린 경험이 응축된 사역의 결론이자, 모든 것을 다 토해낸 에베소 지역에서의 복음전파사역을 통해서 나타났다. 그것은 말씀사역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실제도 같이 있었다. 왜냐하면 에베소 선교야말로 바울의 성숙하고도 온전한 복음전파사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에베소지역에서 바울이 전파한 복음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오늘은 그것에 대해 알아보자.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는 바람직한 교회는 대체 어떤 교회일까? 할례받은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세운 교회가 "예루살렘교회"라면, 이방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세운 교회는 "에베소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에베소교회는 이방지역에서 그만큼 성숙하고도 온전한 교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도 인정해주시고 하나님께서도 원하시는 진정한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오늘 우리는 사도바울이 3차전도여행 중에 세웠던 에베소교회를 통해서 어떤 교회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교회인지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래서 지금 자신이 섬기고 있거나 아니면 주의 종으로서 건강한 교회를 꿈꾸고 있는 자들에게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2. 에베소교회는 어떻게 해서 세워졌는가?

  에베소 지역은 바울이 2차전도여행을 하다가 복귀하면서 잠시 들른 지역이었지만, 바울이 안디옥으로 돌아가서는 이제 그곳을 제3차전도여행의 거점으로 정한다. 왜냐하면 그가 선교여행을 하면서 그 도시의 지정학적인 위치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3차전도여행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는데, 바울은 정말 그곳에 건강한 교회를 세우게 된다. 그 교회가 바로 "에베소교회"라는 교회다.

  에베소교회는 사실 바울이 처음으로 개척해서 세운 교회는 아니었다. 아볼로가 먼저 와서 기초작업을 잘 닦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께서 메시야이심을 구약성경을 통해서 유대들에게 가르쳤으며, 그들이 회개할 때에 세례요한이 가르쳐준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3차전도여행 중에 에베소교회에 도착한 바울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하면서 그들이 믿을 때에 성령의 표적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성령이 있다는 것을 듣지도 못했다고 하자 바울은 그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안수를 한다. 그러자 그들 위에도 성령이 부어지셨으니 그들 중에 예언하는 자도 나타났고 방언하는 자도 나타났다. 그때 성령이 부어진 성도들은 총12명이었다. 바울은 이 12명과 함께 에베소지역에 복음을 전파했는데, 처음 3달동안은 유대인들의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파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바울의 행위를 훼방하게 된다. 그러자 그는 복음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따로 모아서 말씀을 가르쳤으니 그 장소가 바로 "두란노서원"이라는 곳이었다. 바울은 이곳에서 무려 2~3년간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한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생견나 교회 가운데 가장 건강하고 바람직한 교회를 세우게 된다. 그 교회가 바로 "에베소교회"인 것이다.

 

3. 에베소교회가 건강하고 바람직한 교회로 세워질 수 있었던 원동력이나 이유는 어디에 있었는가?

  에베소교회가 건강하고 바람직한 교회로 세워질 수 있었던 절대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크게 3가지다.

  그것은 첫째로, 준비된 바울의 복음전파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A.D.47~49년에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고 1차전도여행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때 그의 복음전파의 중심지는 바로 "비시디아 안디옥"이었다. 하지만 그의 비시디아 안디옥의 복음전파는 큰 관점으로 보았을 때에 실패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곳에 교회를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바울은 A.D.49~52년에 2차전도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때 복음전파의 중심지는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그리고 아덴과 고린도였다. 그런데 그것들 중에서 아덴(아테네)에서 복음전파는 실패하고 만다. 이번에도 그곳에 교회를 세우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1차와 2차전도여행 중에, "비디시아 안디옥"과 "아덴"에서 복음전파에 실패하고 말았는가? 그것은 그가 전파한 복음 중에 어떤 핵심요소가 부족했거나 빠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공적인 복음전파로 인해 온전한 교회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에베소교회의 경우를 보면, 바울의 복음전파는 균형잡힌 복음전파였고  빼놓지 않고 전한 진정한 의미의 복음전파였다.

  그렇다면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과 아덴에서 무엇을 빠뜨렸는가? 먼저, 그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는 예수님의 하나님되심을 빠뜨렸다. 다른 지역에 비해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던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은 굳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리 소개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구약성경에 예언되었고 다윗의 혈통으로 오신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과 그분이 비록 죽었지만 3일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전파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분의 이름을 힘입으면, 죄들 사함을 받을 수 있음과 그분을 믿음으로 칭의를 얻는다는 사실까지도 잘 전했다(행13:23,30,33~37,38~39). 하지만 바울은 유대인에게 감히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증언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아덴에서 바울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증거했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에 대한 회개까지 외쳤지만,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의 메시야이심과 구주되심을 전하지 못했으며,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은 더더욱 전하지 못했다. 결국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이인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던 지역에서 바울은 선교에 실패했고 거기에 교회를 세우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두 번의 실패를 바탕으로 바울은 제3차전도여행 중에 에베소에서는 분명하게 복음을 잘 전했다. 즉 바울은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를 분명하게 증언하였다. 그리고 회개를 강조했고, 예수님의 하나님되심에 관하여도 확실히 증언하였던 것이다. 그는 특히 예루살렘으로 가던 노정 중 소아시아의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놓고는 그들을 하나님께서 감독자로 삼으셨음과 하나님께서 자기의 피로 교회를 사셔서 보살피게 하셨다고 증언하였다. 이때 바울은 예수님의 피를 가리켜, 하나님께서 자기자기에게 속한 피라고 함으로서, 하나님께서 피흘려 죽기 위해 사람으로 오셨음을 분명하게 증거하였다(행20:28). 결국 에베소에서의 복음전파 사역은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고, 이로 인하여 에베소에서 2~3년동안 배운 사람들이 소아시아 전역으로 흩어져서 가서 거기에 교회를 세웠으니,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 중 에베소를 제외한 나머지 6개교회가 바로 이때 에베소에서 바울에게서 복음을 듣고 배웠던 자들이 가서 세운 교회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에 여섯교회를 비롯하여, 골로새 교회 그리고 히에볼리 교회도 에베소에서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었던 자들이 세운 교회로 추정되고 있다. 놀랍지 아니한가? 성도들의 영적 상태나 교회의 부흥과 성장에는 복음을 전파하는 자의 성숙성이 그것의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어 둘째로 회개와 믿음에 대한 균형잡힌 복음의 전파 때문이다(행20:21). 바울이 에베소에서 증거했던 복음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하나님 안으로의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의 믿음"을 전파하였다. 그는 먼저 오늘날 종교개혁이후 개신교회에서 잃어버린 "회개"에 관한 말씀을 정확히 증거하였으니,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던 것에서 돌이켜야 함을 분명하게 제시했으며(행17:24~25,30,20:21),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도 계속해서 회개해야 함을 강력히 전파하였던 것이다(행17:30,26:20). 사실 믿는 자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이다(딤후4:18). 그런데 천국에 들어가는 최종적인 관문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회개"에 있다(눅23:39~43, 마4:17). 그러므로 회개했던 십자가의 한 편 강도처럼 그날 회개하고 그날 죽으면 그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도 수십년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지라도 수많은 시간동안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수님을 믿어도 우리의 몸 안에는 여전히 죄된 본성이 남아있고 우리 밖에는 사탄마귀와 귀신들이 도사리고 있는데, 어떻게 죄를 안 짓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필수적으로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한 번 믿은 것으로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도 다 해결받은 줄로 알고 있지만, 아니다. 믿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용서받을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한 것이지 그것이 자동적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에 예수믿을 때를 생각해보라. 그때에는 믿으면서 회개했을 것이다. 아니면 회개하면서 믿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에는 믿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을 받을 증거를 확보하였고, 회개함으로 과거에 지은 죄를 용서받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짓고 있는 죄와 앞으로 지을 죄들은 반드시 자백함으로(요일1:9) 용서받아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으로 돌이킬 때에 해야 할 "단 번의 회개"와 그리고 그 이후에 해야 할 "계속적인 회개"에 대해서 분명히 언급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둘째, 바울은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제시했다. 그것은 예수님을 우리가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님'이라는 말은 사실 2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유대인들에게 "주님"은 "여호와"를 대신하는 말이었고, 이방인들에게 "주님"은 로마황제가 아니라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겠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도바울을 비롯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하게 여겼으며, 한 분 하나님으로 믿었던 것이다(행4:25~26과 시2:1~2, 롬10:9~13과 요엘2:32을 비교해보라). 그러나 오늘날에는 어떻게 변해버리고 말았는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를 거치는 동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신분이 고정되기에 이르렀으니, 오늘날 예수님을 전능자요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는 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요한계시록을 읽어보면, 예수께서는 지금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다(계3:20,7:17,22:1,3). 그러나 그분이 보좌에 앉아계실 때에는 영광으로 둘러쌓여 있기에 그분은 보이지 않는다. 그분이 보좌에서 내려오시면 우리가 그분을 볼 수 있는데,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그리스도)"라고만 증거하지 않았다. 그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했던 것이다(행20:21). 그러므로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장로들을 불러놓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자기자신에게 속한 피로 교회를 보살피게 했다고 말했다.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이신 그분의 피였기 때문이다(물론 하나님에게는 피가 없다. 하나님께서 피를 흘려 속죄하기 위해 육신을 입으신 것이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고로 흘린 피는 사람으로 오신 아들의 피다). 한편, 사도 베드로도 오순절날, 15개국에서 찾아온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어떻게 증거했는가?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2:36)"이라고 증거했던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바울은 복음전파에 따른 실제와 경험 때문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믿음만 가지고 있을 뿐 실제가 없는 분들이 많다. 물론 믿음을 가지면 실제가 나타나기 마련이지만 믿는 지 오래 되었는데도 실제를 갖고 있지 않는 분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신앙은 항상 긴가민가다. 왜냐하면 은혜받으면 하나님과 천국이 진짜 있는 것 같고, 은혜가 떨어지면 아닌 것도 같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실제가 필요하다. 실제를 경험할 때 믿음이 더욱 더 견고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가복음의 저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고 복음서를 끝맺는다.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막16:19~20)" 그렇다.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이 확실하다는 것이 증언되는 것이다. 에베소에는 바로 그러한 역사가 있었던 것이다. 기적같은 치유의 역사가 있었고, 붙어있던 귀신들이 떠나가는 역사가 있었다. 또한 에베소 도시는 아데미여신을 섬기는 도시였는데, 에베소와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아데미 여신의 신상을 버리는 일이 발생하였으며, 귀신의 힘을 힘입어 마술을 행하던 자들이 마술을 버리고 마술하기 위해 사용하던 책을 불살랐기 때문이다(행19장).

 

4. 나오며

  우리는 바울 로마감옥에서 에베소성도들을 위해 보낸 편지를 통해서, 에베소교회는 책망할 것이 없는 교회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더불어 사도행전의 기록을 통하여,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과연 어떻게 세우게 되었으며, 거기에서 어떤 복음을 전파하였고 또한 어떤 사역을 펼쳤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첫째, 그간 실패에 따른 경험이 녹아있는 준비된 바울이 있었고, 둘째, 회개와 믿음으로 구별된 균형잡힌 복음전파가 있었으며, 셋째, 말씀에 따른 실제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속한 교회 아니, 내가 목회하고 있는 교회가 하나님께서 진정 바라시는 교회인가는 바울의 에베소교회사역을 통해 우리는 이제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떤 교회에 속해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교회를 위하여 어떻게 해야하며, 무엇으로 도울 수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보라. 건투를 빈다.

 

2019년 8월 30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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