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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HNAKdPD1nGU
날짜 2019-09-27
본문말씀 마태복음 17:14~20(신약 28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귀신안나가는이유,회개부족,믿음부족,십계명공부,예수님공부,부활하신예수님은누구신가,귀신의존재,귀신이두려워하는것

1. 들어가며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귀신은 반드시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귀신은 하나님의 원수이자 우리 인간들의 원수이기 때문이다(마6:10, 눅10:19). 귀신은 하늘나라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질서를 어긴 자들이며, 이 땅에 좇겨내려와서는 인간을 죄짓게 만들고 죽음으로 몰고가고 있는 속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신은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과학적인 데이타로서는 뽑아낼 수 없는 영물들이다. 그러므로 불신자는 한없이 귀신의 존재를 부인하게 된다. 하지만 성경은 다르다. 하나님께서 영물로 만든 피조물이 둘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사람이고(슥12:1~2) 하나는 천사다(히1:14). 그런데 천사들 중의 일부가 타락하여 이 땅에 쫓겨내려와 귀신(다이모니온)이 되었다(계12:7~9). 그래서 그들은 다시는 천국에 못 돌아간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자기들의 마지막은 무저갱의 감옥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눅8:31).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기간에 자기들은 이 땅에 인간들을 몰래 사냥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귀신의 정체를 알고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면 우리의 영적인 삶은 피폐해질 것이고, 귀신들의 장난질에 그만 질병과 사건사고와 우환에 시달리다가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귀신에 의해 정신적인 질병까지 시달릴 수도 있다. 아니 오늘날에는 그것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오늘은 과연 어떻게 해야 귀신으로부터 내와 내 자식을 지켜낼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해방받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귀신의 집은 어디인가?

  귀신이 땅속에 들어가 있을 때에는 귀신들이 사는 거처인 음부(하데스)다. 그런데 그들은 지구와 연결된 여러 개의 문들을 통과하여 지구의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들은 쉴 곳은 찾는다. 세상에 나온 귀신들이 쉴 곳은 사실 인간의 몸이다. 왜냐하면 아담의 범죄 이후에 하나님께서 사탄의 표상이었던 뱀에게 "너는 종신토록 흙을 먹고 살리라"고 하셨는데, 그 흙이란 창2:7에서 사람의 육체를 만들었던 재료 곧 티끌과 동일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몸이 귀신들의 집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를  꼬드겨서 죄짓게 하는데 성공한 뱀에게 내린 하나님의 명령은 뱀으로 하여금 흙(인간의 몸)을 먹고 살 수 있도록 허용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사람도 인격체이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의 마음의 문을 열어준다거나, 아니면 죄를 지었을 경우에만 귀신이 인간의 몸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지 다른 때에는 귀신이라도 인간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는 사람의 마음의 문을 노크한 후에 허락을 맞고 들어가는데 귀신이 어찌 함부로 사람 속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들이 사람 속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일이다. 그래야 사람이 마귀에게 속하기 때문이다(요일3:8). 이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그대로 증명된다. 즉 마12:43이하에 보면, 어느날 예수께서 귀신의 거처에 대해서 말씀하신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없는 곳들을 통하여 다니면서 쉼을 얻으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귀신은 그러한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때에 귀신이 자기에게 말했다. "내가 나온 내 집 안으로 장차 돌아갈 것이다."(마12:43~44). 그렇다. 귀신이 지상으로 나와 있을 때에는 자기의 집으로서 인간의 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자기들은 인간의 몸 안에 있을 때에라야 사람을 죄짓게 만들기 쉽고, 결국 사랑믈 죽여서 지옥으로 끌고 내려가는데에 딱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요10:10). 그러므로 우리는 내 몸을 항상 깨끗하게 해 놓아야 한다. 그리고 거룩한 영에 늘 접촉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이것은 맨 나중에 다루도록 하겠다.

 

3. 성령과 귀신은 과연 우리 몸 속에서 함께 공존할 수 있는가?

  그런데 놀라지 말라. 우리의 몸은 귀신의 집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예수님을 믿는 순간 죽을 때까지 성령의 전(집)이 되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첫번째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나도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그렇다. 우리 인간의 몸은 범죄하기만 하면 귀신이 들어와 거처하는 귀신의 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서 예수님을 자기의 맘 속에 영접하기만 하면 그는 성령의 전(집)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거룩한 것과 더러운 것은 결코 함께 할 수 있는가? 영적 법칙으로 볼 때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아니 그렇게 해서도 아니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하나님의 거룩하니 그분을 거룩하시다(레11:45,19:2).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피조물을 속된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그 사람은 죄로 더럽혀진 것이요, 더러운 사람이 된 것이다. 죄가 있는 곳에 사망이 있고 사망이 있는 곳에는 항상 귀신들이 진을 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생전에 할 수만 있으면 하루라도 빨리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거룩한 명령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시며, 상대적으로 귀신은 더러운 영(막5:8)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둘 중의 하나는 우리의 몸 속에서 없어져야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성령님이 더 크신가? 아니면 귀신이 더 큰 존재인가? 당연히 성령님이 더 크시다. 그러므로 성령이 있는 곳에서는 귀신을 깝죽거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실 우리의 몸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우리의 몸은 즉시 거룩한 성령이 거하시는 집이 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어서 성령을 모신 분은 아무도 귀신과 함께 하지 않는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영들과 과 더러운 귀신들이 함께 할 수 없는 장소이기 때문에, 둘이 함께 공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귀신은 우리에게서 쫓아내야 하는가?

  이를 정리해보자. 사람은 누구나 십계명법을 더 공부하여 자기가 지은 죄들이 무엇인지를 한번쯤은 알아보고 그러한 죄를 회개해야 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건데, 어떤 분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죄를 씻어낸 뒤에 비로소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으면 당신 자신도거룩한 영을 모신 존재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도는 거룩한 성령을 모신 거룩한 백성이자 거룩한 성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귀신은 자기의 처지를 알고 그냥 떠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신이 떠나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둘 중의 하나다. 하나는 어릴적에는 예수님을 믿었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버리고 도망갔다면 그는 철저히 회개부터 해야 한다. 또 하나는 가룟유다. 그도 하나님께 쓰임을 받기 위해 예수님에게 12제자들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가룟유다도 귀신에 사로잡힌 자들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4. 귀신을 쫓아버리는 명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귀신이 사람(자기자신)에게서 나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안에 성령을 모시게 됨으로 우리의 몸이 거룩한 성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귀신이 내 몸 속에 침투해 들어와 귀신이 우리의 몸을 자기의 집이라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연 성령으로  들어와 계시는 하나님을 내보내야 하는가 아니면 귀신을 내쫓아야 하는가? 그렇다. 영적 세계에서 내 몸은 결코 거룩한 것과 더러운 곳이 함께 할 수 없는 장소다. 사도바울도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겠느냐고 말했다(고후6:14~16). 이어서 그는 "그러나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다(고후6:16, 고전3:16).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왜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의 노여움(분노)이 임하는지 아는가? 그것은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의 구분 그리고 속된 것과 거룩한 것에 대한 구분을 말하고 있는 구약의 정결법을 알면 잘 구분할 수가 있다. 하나님은 더러운 것과 함께 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체가 거룩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내 몸 안에 거룩한 성령님과 더러운 귀신이 함께 거주하는 것은 가장 안 좋은 조합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버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신이 떠나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2가지다.

  첫째, 귀신이 내 몸 안에 붙어있을 합법적인 이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가야 할 이유가 없는데 나가라고 하니까 나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반드시 자신이 지은 죄를 자백하여 예수님의 피로 깨끗히 씻음을 받아야 한다. 회개하여 용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그래서 회개를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신이 나가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아직 그가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다는 것이다. 좀 더 말하면, 아직 무엇이 죄인 줄을 몰라고 회개하지 않고 있는 죄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성도는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조차 잘 모르는가? 그것은 무엇이 죄인지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율법 중에 도덕법에 대해 무지했거나 배우지 못한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바울은 말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렇다. 자기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죄인지 아닌지는 율법의 도덕법인 "십계명"에 나와 있다. 십계명을 제대로 공부했다면 그는 자신이 지은 죄를 다 회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별히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예수님)께서는 구약에 나와있는 도덕법을 한층 더 강화했다. 예를 들어, 간음은 육체의 간음만이 아니라 이미 마음에 간음하는 것까지 포함시켰다. 그리고 살인죄를 남을 미워하고 형제를 욕하는 것이까지 포함시켰다. 우상숭배의 죄나 탐심의 죄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보더 더 추구하고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까지 회개해야 한다. 그러지 아니하면 귀신은 계속 안 나가고 버틸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분명히 자신이 지은 모든 죄를 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귀신이 떠나가지 않는 경우다. 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나갈 것을 명령했는데도 나가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작은 믿음 때문이다(마17:20). 믿음이 부족해서다. 아니 믿음이 바닦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마17:17). 그럼, 이때 믿음은 무엇에 대한 믿음인가? 그것은 우리가 귀신을 쫓을 때에 사용하는 "예수의 이름"에 대한 믿음이다. 이름은 그 인격을 대변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한 믿음이 턱없이 부족하면 귀신이 알고 안 나가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상대적으로 제압하고 밀어부치는 귀신의 힘에 눌릴 수도 있다. 이때에는 아무리 귀신에게 예수의 이름을 사용해도 별로 소용이 없을 수 있다. 귀신은 지금 축사자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알고서 대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귀신은 우리가 어떻게 행하고 있고 말하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지를 계속 안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몸의 주인의 말을 들어야 할지 무시해도 되는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믿음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런데 믿음을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말씀에서 나오기 때문에(롬10:17), 우리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한 믿음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귀신들린 자들 중에는 이렇듯 말씀을 들어 믿음을 키워나가는 일에는 전혀 시간을 내지 않고, 오직 누구에게 상담받고 찾아가서 안수나 받아 귀신을 내쫓으려 하니 갖다 바쳐야 할 돈은 얼마이며,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내야 하는가? 그렇다고 귀신이 또 안 들어오는가? 그렇게 하지 말라. 남의 도움으로 귀신을 쫓아내려고 하지 말고 내 믿음을 키워서 내 믿음으로 귀신을 제압해야 한다. 귀신은 무시로 우리에게 접근해 오기 때문이다. 아니다. 믿음이다.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을 사용해 귀신을 쫓으라고 명령하신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대한 믿음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5. 왜 율법을 공부해야 하는가? 

  왜 율법을 공부해야 하는가? 죄를 회개하기 위해서다. 죄를 회개해야 귀신이 우리 안에 거주할 있는 근거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에게 나가라고 명령하면 아무런 반항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귀신이 우리 몸 안에 들어올 때에 합법적으로 들어왔던 것처럼 우리도 합법적으로 그놈을 쫓아내야 한다. 그럴려면 우리에게 죄가 없어야 한다. 죄는 사실 우리를 오염시키고 더럽힌다. 그런데 귀신은 어떤 영인가? 바로 "더러운 영"이다. 더럽힘을 받은 영이다. 그러므로 죄와 귀신은 한 통속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죄가 있는 한 귀신은 합법적으로 우리 몸 안에서 버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예수의 이름을 사용해 귀신더러 나가라고 한들 그들은 꿈쩍하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율법에 대한 공부는 "십계명강해"를 참고하십시오. https://dongtanms.kr/board_CpCD51/47286).

 

6. 왜 예수님이 누군지를 공부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더 공부해야 하는가? 궁극적으로는 죄용서받고 천국가기 위함이다. 그러나 예수님과 귀신의 능력에 대해서 알고 귀신을 쫓아내려면 예수님을 더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누구신가? 안타깝게도 오늘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그만 멈춰 있다.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각각 다른 분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기 때문이다. 삼위일체가 이단으로부터 참된 신앙을 지켜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오히려 이것 때문에 아버지 따로, 아들 따로, 성령 따로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한다. 하나님께서 삼위일체 방식으로 활동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한 분으로 계셨다. 그분이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어 오신 것이다(딤전3:16, 요1:14). 그분을 우리는 예수님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신가? 그분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으로 그분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시다. 토기장이인 것이다. 그러므로 토기가 맘에 안 들면 깨뜨려버릴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런데 그분은 없는 것도 만드시는 분으로 지혜가 끝이 없다. 지혜로 모든 것을 만드신 그분은 피조물에 주신 지혜와는 견줄 수 없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분은 못 아시는 것이 없고 못 하실 일이 없다.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귀신은 어떤 존재인가? 그분이 당신의 뜻을 이루는데 사역자로 쓰려고 만든 피조물에 불과하다(시103:20~22).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일부 능력을 준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들도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귀신은 능력에 있어서 제한이 있다. 귀신은 전지전능하지 않는 것이다. 귀신이 우리를 붙잡으려고 하지만 그들의 능력은 제한적임을 알라. 하지만 우리 주님의 능력은 제한이 없으시다. 뿐만 아니라 귀신은 동시존재가 불가능하다. 한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 있으면 다른 사람의 몸 속에 동시에 들어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무당의 세계에서는 형제들 간에 자신이 신내림을 받아 다른 형제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고 자신이 신내림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바로 귀신의 한계인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동시 존재가 가능하다. 언제 어디에든지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를 때에 그분은 즉시 역사하실 수 있다. 특별히 육신을 입고 오셨던 하나님께서는 지상에서의 속죄사역을 마치시고 부활승천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막16:19). 그리고 우리 주님은 다시 재림하실 때까지는 아들로서 해야 할 사역을 감당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두 번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다. 먼저는 십가가상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다(요19:30). 왜냐하면 인류를 위한 속죄사역을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사탄마귀를 불못에 멸하시고 인류에게 심판을 집행하신 후에 "그것들이 이루어졌도다" 말씀하실 것이다(계21:6). 그때까지는 인간의 모습을 가지신 예수께서 그 일들을 행하신다. 그러므로 이것을 다 이루실 때까지 예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는 말은 실제로 하나님의 우펴편에 앉으셨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까지 인류가 다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대제사장으로서(히7:24~25,5:10), 중보자로서(딤전2:5), 대언자(원문:보혜사)(요일2:1)로서 일을 계속하실 것임을 나타나는 상징적인 표현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110편에 나오는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예수님)에 대해 다윗이 보았던 환상의 성취다. 우리 주님은 영원히 살아계시므로,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으로서 재림시까지 속죄사역을 감당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천국에 가보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부활승천후의 광경을 묘사한 요한계시록의 증언이다(계3:21,7:17). 그러므로 두번째 "다 이루었다"고 하신 후에 하나님의 보좌는 이제 "하나님의 보좌"라고 불리지 않고,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고 불려진다(계22:1,3). 그러나 그분은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계시지만 동시에 또한 내려 오셔서 우편에 서셔서 우리를 위해 대제사장과 중보자와 보혜사로서 일을 하신다. 그 일은 인류에 대한 심판이 끝나기 전까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재림하심으로 당신의 뜻이 완성될 때에는 더이상 그분은 대제사장과 중보자와 보혜사의 일을 하시지 않을 것이다. 더이상 그것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후로 예수님은 보좌에 앉으셔서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고 온 우주를 주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7. 나오며

  오늘날 안타깝게도 성도들은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잘 모른다. 아니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에 대해 물어보지도 않는다. 예수님을 믿었으면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가 다 용서받았다고 믿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러한 말씀이 없다. 예수님을 믿었으면 그분의 피로 우리가 죄를 회개할 때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한 것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는 오직 현재 짓고 있는 죄와 과거에 지었던 죄만을 용서받을 수 있을 뿐이다. 그것도 회개할 때에 가능하다. 예수를 믿었으니 자신의 죄는 이미 다 용서받았다고 착각하지 말라. 만약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다 용서받았다고 한다면, 인류의 죄는 이미 다 용서받은 것이다. 그러면 회개할 것이 무엇이 있겠으며, 귀신이 무슨 이유로 사람의 몸 속에 들어오고 무슨 이유 때문에 예수의 이름을 사용해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아니하는가? 다 죄 때문이다. 자백함으로 죄용서를 받을 수 있는데, 자백하지 않아 죄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회개하라. 철저히 회개하라. 십계명을 통해서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철저히 살피고 지은 죄들을 낱낱이 자백하라. 그래서 귀신이 나간다. 그리고 위에서도 말씀했지만 우리 주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정도로 제한하지 말라. 그것은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실 때에 붙여진 신분이다. 그분이 부활승천하신 후에 그분은 하나님으로 계신다. 그분이 이 땅에 오기 전에도 하나님으로 계셨지만 지금 하늘에서 그분은 보좌에 앉아계신다. 다만 우리의 완전한 구원을 완성하실 때까지는 대제사장과 중보자와 보혜사로서 일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을 쫓을 때에는 전능자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쫓아내라. 귀신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하다. 감히 어떻게 귀신이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과 함께 거주하려고 하는가? 겁도 없이 말이다. 건투를 빈다.

 

2019년 9월 27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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