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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W4apiY9VO9s
날짜 2019-11-15
본문말씀 누가복음 15:11~20(신약 122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좁은문,믿음과회개,회개의정의,회개의과정,회개의결과,회개의중요성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것은 그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신칭의를 얻었다고 해서 구원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구원의 노정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며,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골인하는 것인가?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하며,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좁은 문을 통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얻게 되는가? 그런데 그 예가 있다. 그 예를 통하여 우리도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 오늘은 그 좁은 문의 두번째 키워드를 정리해 보기로 하자.

 

1. 들어가며

  구원을 얻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그것은 좁은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눅13: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다고 예수께서 말씀해주셨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대체 어떻게 해서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을 받게 되었는가? 좁은 문을 통과하려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 그래서 오늘은 구원얻기 위한 좁은 문을 통과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이 무엇인지 살펴보되, 그중에서도 두번째 관문은 "회개"에 관하여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2.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을 받으려면 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께서는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받는 자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누구였는가? 눅13:28~29를 살펴보니, 한 부류의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고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은 이방인들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후 구원은 혈통적인 조건에 따라 받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을 받게 되는가? 그것은 2가지다. 그것은 그들이 가졌던 "믿음" 때문이요, 또한 "회개"를 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가. 구원받는 좁은 문은 첫째가 "믿음"이다.

  사람이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받으려면 첫째로는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및 모든 선지자가 하나님의 나라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고, 장차 동서남북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와서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눅13:28~29).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믿음의 조상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귿르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신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은 구원의 첫번째 요소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총을 누릴 수가 없다.

 

나. 구원의 좁은 문은 둘째가 "회개"다.

  사람이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받으려면 이어서 "회개"가 필요하다. 믿음만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다. 믿은 즉시 순교할 때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은 그날에 죽지 않는다. 적어도 30~50년은 더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을 구원받게 해주는 또 하나의 관문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회개"다. 왜냐하면 죄를 지은후에 회개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자신이 회개하지 못했던 그 죄 때문에 구원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 생각해보라. 예수님을 믿는 자인데도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면, 그는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른지를 말이다. 아니다. 못받는다. 예수님을 믿어도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계21:8).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반드시 지은 죄를 처리하기 위해 반드시 "회개"가 필요한 것이다. 지은 죄들을 용서받는 유일한 방법은 "회개"이기 때문이다.

 

3.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그렇다면, 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및 모든 선지자들 그리고 동서남북으로부터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 안에 들어가 잔치에 참여하게 되었는가? 그것의 첫번째 요소는 "믿음" 때문이다. 왜냐하면 눅13:28~29의 평행본문은 마8:10~12에 보면, 예수께서 가버나움의 이방인이었던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주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즉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음식을 먹기위해] 비스듬히 앉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이들이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믿음을 통하여 천국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대체 어떤 믿음을 가졌던 것일까? 그들은 2가지를 믿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을 것임과 그들과 그들의 후손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생전에 그것을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믿었고 자식들에게 자기가 믿었던 신앙의 내용을 전수해주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들이 아브라함의 씨(후손)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씨"는 단수로서, 오실 메시야를 상징한다. 그렇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되, 특히 메시야에 관한 약속의 말씀을 믿은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믿음에 대해서, 그것이 "좁은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첫째,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데도 보는 것처럼 믿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움이 뒤따라온다. 이를터면, 무엇인가를 다 보여주고 그리고 다 만지게 해놓고 난 뒤, 믿으라고 한다면 믿지 아니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여주지도 않고 손에 만질 수도 없는 것인데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믿었다는 사실이다. 둘째, 한 번 가진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은 좁은 문이다. 믿다가 흔들려 포기하는 자는 결국 구원에서 탈락하고 말 것이다. 믿음을 끝까지 붙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믿음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잠시 안 믿는다고 한 다음, 자신의 목숨을 살려놓고 그리고 나서 회개하면 되는 것인가? 아니다. 그러한 믿음으로는 천국가기는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그는 넓은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것을 좁은 문을 통과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넓은 길로 가는 것은 결코 구원의 바른 길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4.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회개"는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구원을 위하여 좁은 문을 통과하려면 회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누가복음에 나와있는 사례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매우 "회개"를 강조하는 복음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누가복음을 "회개복음서"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의 첫 외침이 회개였고,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고 말씀했기 때문이다(눅5:32). 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서 전해야 할 복음도 이신칭의의 복음이 아니라, "회개의 복음"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눅24:46~48). 왜냐하면 부활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께서 유언처럼 제자들에게 그것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때 이후로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세례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 전파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셨고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말했던 칭의는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 얻는 칭의가 아니라 오히려 "믿음을 통하여 얻는 칭의"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가. 회개의 시작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회개는 어떻게 시작하는 것인가? 그것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시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례는 "고기잡이의 기적"으로 알려진 베드로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눅5:1~11). 밤이 새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던 어부 베드로였지만 그는 예수님의 레마를 듣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다. 그런데,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았다. 그리하여 동역자의 배까지 고기로 가득 채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보인 반응이 무엇이었을까? 그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린다. 왜냐하면 그 사건을 통해서 베드로는 예수께서는 정말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소문이 헛된 소문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베드로는 창조주요 전능한 하나님이 아니라면 절대 하실 수 없는 일을 직접 경험했다. 베드로는 겸손했다. 그리고 고기잡이의 기적으로 인해 즐거워하기보다는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했다. 그렇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로면 그분 앞에 엎드리게 된다. 고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일이 바로 회개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회개의 과정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죄인은 어떠한 과정을 거치면서 회개하는 것인가? 그것은 낱낱의 죄를 다 고백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눅15:18~20). 그것은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 고스란히 나온다. 둘째는 아버지가 생존해 계시는데도 자기의 몫에 해당하는 아버지의 재산을 달라고 요구하여 그것을 가지고 아버지의 곁을 멀리 떠나갔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길이 미치는 않는 곳에서 허랑방탕하게 지내더니 결국 받은 재산을 다 탕진해버린 둘째아들은 이제 남의 집에 붙여사는 인생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게 되자, 그는 송구스럽지만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어찌 아버지의 얼굴을 그냥 볼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지은 죄를 고백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아버지 앞에 아들로서 자격없는 자라고 시인하기를 바랬다. 그리고 자신을 일꾼의 하나로 받아달라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고백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눅15:21)." 하지만 그는 자기가 준비해간 세 가지의 말을 다 하지 못했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는 말까지 마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이 자식의 용서를 비는 마음보다 훨씬 더 컸기 때문이다. 그렇다. 낱낱의 죄를 자백할 때에 우리의 죄가 용서된다. 우리는 회개를 통해 지은 죄를 용서받게 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그때 죄가 용서되는 것이 아니다. 그때에 예수의 피로 우리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한 것이다. 그때부터는 지은 죄를 고백할 때 죄가 용서된다(요일1:9). 죄를 자백하지 않는데, 어찌 자동적으로 죄가 용서되겠는가? 어떤 이는 예수님을 믿으면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가 다 용서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 죄는 자백할 때 비로소 예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내어 용서받게 되기 때문이다.

 

다. 회개의 결과는 어떠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죄인이 진정 회개를 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것의 예가 바로 "삭개오의 회개"다(눅19:1~10). 삭개오는 여리고의 세리장이었다. 그의 삶을 되돌아본다면, 그는 자신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던 인물로 보인다. 심지어 동족에게서 세금을 거둬 로마에 바치는 세금징수요원으로서 살았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2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하나는 부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잃어버린 것도 있었다. 첫째는 동네사람들로부터 신임을 철저히 잃어버렸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째, 무엇보다도 하나님으로부 멀어져 다. 그의 이름이 무엇이었던가? 그의 이름은 "삭개오"로서, "깨끗한 자"요 "의로운 자"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칭함받을 수 없는 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그는 눈물짓는 밤이 계속되었으리라고 본다. 그러다가 어느날 조건없이 심지어 창녀라도 만나주신다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그분을 만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고 그는 뽕나무 위로 올라가서라도 그분을 만나기를 사모했다. 그때 주님이 그에게 찾아오셨고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는 겸손히 내려와 자기 집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그는 즉시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팔아 율법의 말씀대로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였다. 그리고 만일 토색한 일이 있다고 한다면 4배가 갚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19:9)." 그렇다. 회개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삶 속에서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 그는 이미 그것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러자 주님께서도 그 사람의 회개를 인정해주셨던 것이다. 우리가 만약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했다고 치자. 그런데 심판의 날에 주께서 우리를 모른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주님을 안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알아주셔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자신에게서 나타나고 있느냐가 말해준다. 삭개오는 이미 회개의 열매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주님은 그의 회개를 인정해주신 것이다.

 

5. 구원받는데 회개의 중요성은 얼마나 큰 것인가?

  그렇다. 회개는 믿음과 더불어 구원의 요체다. 믿음 없이 구원받을 수 없고, 회개없이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런데 종교개혁이후 그만 "회개"가 축소되었거나 회개가 약화되고 말았다. 회개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된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생각이 교회를 가득채우고 말았다. 믿음만 있으면 구원받는다는 식이다. 아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회개가 동반되어야 한다.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이 회개복음이요, 예수께서 오신 목적이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그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그가 회개하지 않아서다. 눅13:3,5에 보면, 예수께서는 사람이 회개하지 않아서 멸망을 받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언급하셨다. 특히 평소 때 회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죽기 전에 회개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눅23장에 나오는 "한 편 강도의 회개"다. 한 편 강도의 회개는 죽음 직전에 사람은 회개하고 죽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고 그때라도 회개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6. 나오며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구원은 결코 넓은 길로 가는 것이 아니며, 좁은 문을 통과하여 겨우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받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받은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해주셨다. 찬찬히 보니 그렇게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받은 사람이 누군지를 주님께서 알려주셨다. 그러한 예를 통하여, 우리는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믿음과 회개가 그것의 관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 "믿음"이란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믿는 믿음이며, 이 믿음도 끝까지 지키는 믿음이라야 한다. 그리고 "회개"는 자신의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지은 죄를 낱낱히 고백하는 것임을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고백한 후에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나타나고 있어야 진짜 회개라는 것도 들었다. 말은 사실 간단한 것이지만 그렇게 살아내기는 여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구원의 길이다. 이것이 좁은 문을 통과하는 구원인 것이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은 이 좁은 문을 통과하여 꼭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9년 11월 15일(금)

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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