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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6r04yLxlewU
날짜 2019-11-22
본문말씀 히브리서 6:1~12(신약 358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구원보전,구원탈락,구원잃음,히브리서의구원론,야고보서의구원론,로마서와갈라디아서의구원론,소홀히여김,견고히붙잡음,타락,고의로죄를범함,경주를끝마침,믿음지킴,회개함

어떻게 하면 이미 얻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아니할 수 있는가? 어떤 이는 한 번 구원얻으면 구원을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구원을 하나의 싯점으로 생각해서다. 구원은 한 순간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시작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두렵고 떨림으로 완수해야 할 일이다(빌2:12). 그래서 바울은 구원의 과정을 경주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이미 얻은 구원을 어떻게 하면 보전할 수 있는가? 여기에 그 해답이 있다.

 

1. 들어가며

  어떻게 하면 이미 얻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아니할 수 있을까? 성경은 이미 얻은 구원이라도 잃어버릴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기나 한가? 그리고 이미 구원의 노정에 들어온 자라도 탈락할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나 한가? 그런데 신학자들 중에는 이미 얻은 구원은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과연 이 문제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우선 우리가 알 것은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할 구원관에 대해 어느 누구에게서 들었다거나 혹은 어느 신앙고백서에서 보았다고 해서 그것을 무작정 따라갈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정반대의 교리가 서로 다른 교단에서 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통교단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지만, 무엇이 보다더 성경적인지를 알고 있을 때에 믿음을 더 견고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어떻게 해야 이미 얻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는가? 무엇보다도 우리의 구원자되신 예수께서는 그 문제에 관하여 어떤 말씀을 하신 것일까? 그래서 오늘은 신약성경 가운데 구원을 잃어버릴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보고,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어디에 그러한 말씀이 있는지 특히, 일반서신서(히브리서~유다서)에 기록된 말씀과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그 문제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우리 모두는 이미 얻은 구원을 끝까지 보존하여 천국에 이르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2. 구원받기는 쉬운 일인가 어려운 일인가?

  사람이 구원받기는 쉬운 일인가 아니면 어려운 일인가?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구원받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눅13:24). 왜냐하면 그것은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구원받는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은 딱 2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첫째, 그가 믿음을 끝까지 붙들었기 때문이며, 둘째, 자신의 죄를 회개했기 때문(눅13:28~29)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을 얻기를 원하는 자는 끝까지 자신의 믿음을 지켜내야 한다(마10:22). 그런데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의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포기할 줄 알아야 하며(마19:16,21,29), 자기의 목숨이라고 내놓을 줄 알아야 한다(마16:25). 그런데 사탄마귀는 우리가 계속적으로 믿음을 가질 수 없도록 갖가지 유혹과 방법으로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시도할 것이며, 핍박을 통해서 우리가 믿음을 포기하도록 종용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마귀의 유혹과 핍박을 이겨내야 한다(마24:13,22). 그런 자만이 좁은 문을 통과하여 천국에 입성할 수 있을 것이다.

 

3. 사도바울과 베드로는 어떤 구원관을 언급했는가?

  사도바울이나 베드로도 역시나 예수님과 똑같은 구원론을 말했다. 사람이 구원받기가 어렵다고 했다.

  먼저 사도 바울의 경우를 보자. 그는 고린도전서 10장에서 B.C.1446년경 애굽에서 포로로 잡혀있던 이스라엘백성들이 모두가 다같이 출애굽은 하였으나 그들이 광야에서 거의 다 멸망을 받았다(고전10:5). 다시 말해, 그들이 애굽에서 빠져나와 일차적인 구원은 얻었지만 결국 구원의 최종장소인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광야에서 우상숭배하고 원망불평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결국 징계를 받고 엎드러져 죽었던 것이다. 유다서도 동일하게 이들이 구원받지 못했음을 언급했다. 결국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얼마든지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더욱이 바울은 수시로 믿음에서 파선한 자들에 대해 언급했다. 그런 자들로는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다고 했다(딤전1:19~20, 딤후4:14). 또한 얀네와 얌브레처럼 항상 배우지만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 있다고도 말했다(딤후3:7~8). 그리고 돈을 사랑하다가 믿음에서 떠난 자도 있다고 말했다(딤전6:10).

  둘째, 사도 베드로의 경우를 보자.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시작될 것인데, 그때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찌 더 구원을 받겠느냐고 말했다(벧전4:17~18). 그리고 베드로후서에서는 구원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예를 들어서 설명했다(벧후2:4~5). 그러므로 사도들은 사람들이 구원받기가 어렵다고 증언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4. 일반서신서 기자들은 어떻게 구원을 말했는가?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나 사도 베드로를 제외한 다른 신약의 저자들은 구원에 관하여 어떤 증언을 했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다른 신약의 저자들도 마찬가지로 구원을 잃어버릴 가능성과 구원의 노정에 들어왔지만 결국에 구원에서 탈락할 사람이 있음을 언급하였다. 참고로 신약의 서신서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잠깐 살펴보자. 신약의 서신서는 바울서신과 일반서신으로 나뉜다. 바울서신은 수신대상자가 분명하다. 어떤 특정한 교회이거나 특정인물이다. 하지만 일반서신의 경우는 수신자가 불분명하다. 교회도 아니도 어떤 특정한 개인도 아니다. 그러한 서신에는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일이삼서, 유다서가 있다. 그중에서도 구원론에 관하여 중요한 가르침을 더 많이 전해주는 서신으로는 히브리서와 야고보서가 있다.

  먼저, 히브리서의 경우를 보자. 히브리서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수신자는 유대교인이었으나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을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히브리서는 특정한 개인이나 교회를 대상을 쓴 서신(편지)이 아니다. 그렇다면, 히브리서에서는 어떤 구원관이 기록되어 있는가? 그것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히브리서는 구원을 잃어버릴 가능성을 매우 높게 경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경고는 사실 히브리서에서 적어도 5차례 이상 나오고 있다. 첫째로는 믿음으로 얻은 구원을 등한히(소홀히) 여기면 공정한 보응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히2:1~4). 둘째로, 믿음을 가진 자라도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기에, 믿음의 기초를 끝까지 견고히 붙잡고 있지 않으면 결국 안식에 못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히3:7~4:13). 셋째로,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체험해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부터 타락한 자는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다고 하였다(히5:11~6:12). 넷째로, 본인이 진리의 지식을 받은 후 고의로 죄를 짓는 자는 결코 속죄가 불가능하다고 하였으며, 그를 위해서는 심판만 기다리고 있고, 그에게는 맹렬한 불꽃만이 남아 있다고 했다(히10:26~31).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앞에 있는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끝마치지 못하다면 그도 끝내는 주님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지 않으실 것이라고 했다(히12:1~29).

  둘째, 이제는 야고보서의 경우를 보자. 야고보서는 구원과 관련하여 매우 충격적인 증언들이 있다.  다시 말해서, 행함으로 증명되지 아니한 믿음을 가진 자는 구원받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약2:14). 즉 자신은 믿음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에게 행위들이 뒤따라오지 않았다면, 그 믿음을 가지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이것은 구원의 노정의 끝에서 하는 고백이다). 심지어 칭의도 믿음만 아니라 행위로부터 있는 믿음으로 완성되는 것이라고 했다(약2:22). 이와같은 사실은 미국의 풀러신학교 김세윤박사의 경우처럼, 성도의 구원은 "종말론적으로 유보된 칭의"라고 가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야고보 장로의 경우를 보더라면 성도가 구원을 얻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5. 요한계시록에서 우리 주 예수께서는 어떤 구원관을 말씀하셨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하나님이지 구원자이신 예수께서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 우리는 사도요한이 마지막으로 기록했던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정확히 언급하신 구원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그 표준이 되기 때문이다.

  승천하시어 보좌에 앉아계신 예수께서는 첫째, 자신이 죽임을 당하는 위기에 처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계14:12, 13:10).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우상(짐승)을 숭배하는 자는 결국 구원에서 탈락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핍박 가운데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부인한다면 그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짐승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는 짐승을 경배하거나 결코 짐승의 표를 받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짐승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세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단어인데, 우리는 그 어떤 짐승의 강요에도 굴복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오직 믿음이요, 예수님만 우리의 주님이요 구원자요 하나님이심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둘째, 자신이 지은 죄들을 회개하여 자신의 겉옷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계22:14).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다. 태어날 때부터 죄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죄된 본성의 유혹과 싸워야 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싸움에 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죄된 본성의 유유혹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귀신들도 밖에서 안으로 공격해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생각으로 범죄하여 말로 범죄하고 정말 때로는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래서 죄를 지었을 때에는 회개할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의 피로 자신이 지은 죄들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자는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날마다 자신의 더러워진 겉옷을 빨아서 희게 해야 한다.

 

6. 사람이 구원을 얻는 2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결국 사람이 구원얻는 2가지 방법은 믿고 회개하는 것이다(막1:15).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에 들어가려면 회개하는 것이 필요하고(마4:17),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죄를 고백함으로 예수의 피로 자신의 죄를 씻어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장차 복음의 증인이 될 것을 명령하시는데, 그때에 하신 말씀은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가와 더불어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를 예루살렘에서부터 모든 이방족속에게까지 전파할 것"을 말씀하셨다(눅24:47~48). 이제 제자들은 바로 그 일에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개해야 죄용서를 받아 구원받을 수 있음을 증언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교묘한 속삭임에 속아넘어가서는 아니 될 것이다. 믿고 날마다 회개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성도들이 더욱더 신경써야 할 것은 믿는 것보다도 믿음을 지켜내는 것이어야 한다. 한국적인 상황에서 믿음을 갖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믿음을 지켜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7. 나오며

  그렇다. 사람들이 구원받기는 쉽지 않다.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고 사도들도,. 다른 성경기자들도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그것은 좁은 문을 통과하는 것이라고 했다. 좁은 문을 통과해서 들어가야 결국에 구원얻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좁은 문이라도 통과하여 구원얻기를 원하는 자는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도록 해 놓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구원얻기 위해 예수님의 공로 외에 다른 무엇인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마련해두신 구원은 완전한 것이요 다른 무엇인가가 더붙어져야 비로소 완성되는 구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예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바라고 소망하고 있음을 표현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때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하나님으로 고백하려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를 보고서 지정의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예수님만이 구원자임을 우리에게 고백할 것을 요구하신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고백해야 할 결단의 순간이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모른다고 하는 자들은 주께서 심판의 날에 그를 모른다고 하신다고 말씀하셨다(마10:32~33).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믿는 자인지를 표현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고백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지 않는 것이요, 그것이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범죄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아뢰어 예수의 피로 자신의 죄를 씻어내야 한다. 그러나 현저하게 범죄하는 것은 용서받기가 어렵다. 죽기 전에 우리는 지은 죄를 다 고백할 것이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 이것만큼은 꼭 간직하며 지켜내기를 바라며, 회개, 날마다 실천하기를 바란다.

 

2019년 11월 22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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