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오전시간에는 성령이란 어떤 분이시며 무슨 일을 하시는지 살펴보았다(https://youtu.be/wYuhuP_ly2Q ).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만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셨던 성령에 관한 말씀에 주의하지 않게 된다면 어떤 위험한 결과가 주어지는지를 살펴보았다. 오늘 이 시간에는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성령의 은사는 왜 주어지며 또한 어떻게 받는 것인지 그리고 성령의 은사의 한계점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성령의 은사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성령의 은사란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을 가리킨다. 은사가 헬라어로는 '카리스마'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의 뜻이 오늘날에 와서는 의미가 약간 달라지기는 했지만 원래는 '선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은사(선물)는 받으면 좋겠지만 이것을 안 받았다고 해서 생명에는 크게 지장이 없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큰 지장은 없다. 하지만 성령의 은사이니만큼 귀한 것은 사실이다. 다시 말해, 성령의 은사가 귀하기는 하지만 성도의 구원의 표식이 될 만큼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나하면 그것은 성령자신이 아니라 성령께서는 주시는 하나의 선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령의 은사는 언제 누구에게 주어지는 것일까?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물을 붓듯이 부어주실 때에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받을 수 있게 되었다(행11:17). 왜냐하면 누구든지 주 예수님을 믿을 때에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오시는데 그때에 선물을 가지고 오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는 첫째, 예수님을 믿을 때에 받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행10~11장에 보면, 베드로가 고넬료가정에서 말씀을 전하자, 말씀을 듣는 모든 이방인들에게 성령의 선물이 부어지기도 하였다(행10:44~46). 그리고 그것은 오순절날 마가다락방에 모여 있던 유대인의 120명의 성도들이 받았던 것과 같은 것으로 성령의 선물이었다. 그것은 다 방언을 말하는 것이었다(행2:1~4, 10:44~46). 그렇다. 성령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선물이 주어지는 또 다른 경로가 있다. 그것은 둘째,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는 자가 기도할 때에도 주어지기도 한다(눅11:13).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도에 관한 교훈을 주시면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의 어떤 것(선물)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말씀하시고는,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특별히 이 문장에 나오는 '성령'이라는 단어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인격적인 성령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령이라는 단어 앞에 정관사가 붙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성령'이라고 번역하지 말고, '성령의 어떤 것' 혹은 '성령의 은사'라고 번역했어야 좋을 것이다. 이러한 예는 사도행전 19장에도 나온다.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와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을 때에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대답하였다(행19:2). 그렇다면 에베소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말인가? 내주하시는 성령을 받지 않았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성령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다 '성령의 어떤 것' 즉 '성령의 선물'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거기에 나오는 '성령'이라는 단어도 정관사가 붙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도바울이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의 어떤 것(선물)을 받았느냐?"고 물었던 것이고, 에베소 성도들은 '성령의 선물이 있다는 것을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대답했던 것이다. 그렇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성령이 모든 믿는 사람에게 오시기 때문이다(요7:37~39). 그때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 사람을 회개케하고(고전12:3), 거듭나게하고(요3:5),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내적으로 확증해주기도 하신다(롬8:16). 하지만 동시에 성령께서는 구약시대의 경우처럼, 믿는 자들 위에 내려오심으로 성령의 선물들을 나눠주시기도 하신다(고전12:8~11). 그것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서 말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령의 은사를 전이시켜주겠다면서 안수를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성령의 은사는 성령께서 그분의 뜻대로 각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는 것인데(고전12:11), 사람이 나서서 직접 자신이 나눠주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조심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잘못하면 성령의 전이를 통해 자신이 받은 은사가 귀신이 나눠 준 은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령의 은사들에게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고전12:8~10에 의하면, 총 9가지 은사들이 나온다.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과 믿음, 병고치는 은사와 능력행함과 예언함, 영들 분별함과 각종 방언말함과 방언들 통역함이 있다. 하지만 직분의 은사도 있다. 고전12:28에 보면, 사도와 선지자와 교사의 은사가 나오며, 봉사와 리더의 은사도 나온다. 그렇지만 이 모든 은사들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은사는 뭐니뭐니해도 '방언'이라는 은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선물을 받았다는 모든 기록에서 다 방언이 나타났기 때문이다(행2:4, 8:17~20, 10:45~46, 19:6). 그러므로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성령의 기본적인 은사를 받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믿는 사람들이 다 방언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고전12:30). 그러니까 방언말하는 것이 구원의 척도인 것인량 주장하는 것과 방언은 무슨 신령한 사람이나 받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사람이 주 예수를 믿을 때에 방언의 은사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령이 오실 때에 선물들이 주어진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자에게는 성령의 은사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는 성령께서 왜 은사를 주시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그것은 첫째, 예수님이나 성령님이 보이지 아니하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믿는 사람에게 오셨다는 것을 확증해주기 위해 필요한 표식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것을 통해서 교회의 다른 지체들을 섬길 수가 있기 때문이요(고전12:7), 셋째는 그것이 복음전파에 있어서 유용한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성령의 은사가 주어지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메시야이시며, 하나님 자신인 것을 깨닫게 하려 하는 데에 있다(요15:26).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야이며 하나님 자신인 것을 보여주는 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은사는 매우 위험한 것일 수가 있다. 왜냐하면 사탄이나 귀신들도 원래는 능력있는 천사들이었기에 얼머든지 성령으로 가장하여 능력을 주고 예언하게 하고 환상을 보여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도때도 없이 항상 무엇인가를 보았다는 둥 아니면 무엇인가를 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성령의 은사가 아닐 수 있음을 알라.
마지막으로 성령의 은사는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사도바울은 고전13장에서 성령의 3가지 은사들과 사랑의 은사를 비교하고 있다. 그것은 예언과 방언과 지식의 말씀의 은사들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이러한 은사들에게 단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전부가 다 부분적이라는 것이다(고전13:8~10).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가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치자. 하지만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는 부분적으로 예언의 은사가 나타난 것 뿐이다. 하지만 예언을 받으러 오는 자는 항상 예언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부분적인 예언의 은사만을 주셨기에 즉시 예언을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언을 해야 하는 압박 속에 있게 된다. 그때 귀신들이 순간적으로 그 사람의 상태를 보여주며, 그 사람의 과거까지 들려준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것이 성령께서 가르쳐준 것인 줄 알고 기뻐한다. 하지만 아니다. 비록 그 일로 말미암아 그 사역자가 뛰어난 사역자의 반열에 든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탄의 역사이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러므로 성도들이여, 예언도 부분적이며, 방언도 부분적이고, 지식의 말씀도 부분적이라는 것을 알고서 은사를 활용해야 한다. 방언이 모든 것에 능사가 아닌 것이다. 경험이 없는데도 즉시 알게 되는 지식의 은사도 부분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온다. 아니다. 더 이상 속지 말라. 그러한 은사는 없다. 모든 은사는 다 부분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완전하신 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그렇다. 성령의 은사가 좋고 유익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은사가 지닌 위험성과 한계가 있음을 알고 은사를 활용하라. 만약 성도가 자신이 가진 은사를 제대로 활용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사복음서에 나온 예수님의 말씀을 확실히 배우고 경청하라. 사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이 모든 영분별의 표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고 있어야 순간순간 끼어드는 귀신의 역사를 분간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성령의 여러가지 은사를 받았더라도 겸손히 그것을 사용하여 교회의 다른 지체들을 섬기는데 사용하고 또한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