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구약시대 이스라엘백성들은 죄를 지었을 때에 어떻게 용서를 받았을까? 그리고 그들이 죄용서받는 방법에 있어서 어떤 문제는 없었을까? 그리고 오늘날 믿는 성도들은 어떻게 지은 죄를 용서받고 있는가? 그리고 죄용서받는 방법이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오늘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이후의 성도들의 죄용서받는 방법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보고, 죄용서를 받으려할 때 진짜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2. 구약시대에 죄용서를 받는 방법
먼저, 구약시대에 살았던 성도들은 과연 어떻게 해서 죄용서를 받았을까를 살펴보자. 그것은 율법규정에 따라서 용서를 받았다. B.C.1446년경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 년 뒤에 신광야의 시내산에 도착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말씀을 받게 된다. 그런데 그때 그들이 받았던 율법말씀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하나는 무엇이 죄인지를 가르쳐주는 율법이었고 또 하나는 지은 죄를 어떻게 용서받는 것인지를 가르쳐주는 율법이었다. 앞의 법의 대표는 십계명이고, 뒷의 법의 대표는 제사법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죄용서를 받는 방법은 구약의 제사법 안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제사법에도 2종류가 있었으니, 하나는 자원제사로서 번제제사와 소제제사와 화목제사가 있었고, 또 하나는 의무제사로서 속죄제사와 속건제사가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흠없는 속제제물로 제사를 드려야 했다. 이러한 속죄제사는 의무제사인데, 이것들 중에서도 속건제사는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한 보상까지 들어있는 속죄제사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했을 때에는 속죄제사(혹은 속건제사)법에 따라 거기에 기록된 대로 제사를 드려서 용서받아야 했던 것이다. 때로 그것이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였다면 배상까지 해가면서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가 있었다.
3. 속죄제사는 어떻게 드려졌는가?
그렇다면 속죄제사는 어떻게 치러졌을까? 그것은 드리는 사람에 따라 제물만 다를 뿐, 거의 대동소이했다. 우선 범죄자는 흠없는 제물을 번제단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그 제물에게 안수하여 자신이 지은 죄를 넘긴다. 그리고 나면 범죄자가 칼로 제물의 목을 벤다. 그러면 제사장은 제물의 피를 받아서 그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거나, 둘째휘장이나 법궤 위에 뿌린다. 그리고는 잡은 희생제물의 각을 떠서 번제단 위에 불사른다. 그러면 그 사람의 죄가 용서되는 것이다.
4. 나중에 속죄제사는 어떻게 변해버렸을까?
그런데 이때 처음으로 제물을 드리는 자가 이것을 경험할 때에는, 흠없는 제물이 자기 대신 피흘려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느끼게 되고 다시는 범죄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게 된다. 왜냐하면 죄없는 희생제물이 자신을 대신하여 죽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한 두 번이지, 매번 그렇게 하다보면 그 일들도 식상하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를 짓고도 그 죄가 무서운 것인지를 별로 느끼지 않고 제물을 드리곤 한다. 그리고 이어서는 죄만 지으면 거기에 해당하는 짐승을 끌고가서 제사드리는 일을 흔한 일처럼 여긴다. 나중에는 내가 이런 죄를 지었으니 이번에는 이런 제물을 가지고 가면 되고, 저런 죄를 지었으면 저런 제물을 가지고 가면 되는 것이지 하게 된다. 그러다가 제사는 이제 형식적인 제사가 되어버리고 만다. 성경을 찾아보니, 남유다의 왕국의 제10대왕이었던 웃시야왕 때에 이르게 되자, 벌써 제사는 그 어떤 느낌도 주지 못하는 형식적인 제사로 전락되어 있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잠깐 들어보자.
사1:11-14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그랬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드리는 제물에 간절한 마음이 빠져버리고, 범죄자의 회개가 빠져버린 제사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5. 구약의 속죄제물과 현대 성도들의 속제제물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 우리에에도 마찬가지다. 오늘날에 성도들은 구약의 제물을 드리는 대신에 흠없는 제물로 드려진 예수님을 믿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제물로 믿는 믿음이 구약의 제사의 제물을 대치한 것이다(엡5:2). 사실 예수께서도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많은 사람의 대속제물로 자신을 주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마20:28, 막10:45). 사도바울도 예수님이야말로 모든 인류의 죄값으로서 대신 죽으신 유월절 어린양이라고 했다(고전5:7). 뿐만 아니라 사도요한은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불화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오신 화목제물이라고 하였다(요일2:1). 구약에 바쳐진 제물이 신약에 들어와서는 예수님으로 치환된 것이다.
6. 지금 성도들이 가진 예수님께 대한 믿음의 역사도 구약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성도들도 처음에는 자신이 지은 죄를 위해 예수께서 대신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셨음에 매우 아파하며,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좀 시간이 지나다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대속제물로 죽으신 것이 그에게 대수롭지 않는 일이 되어버린다. 특히 칼빈주의에 물들어버린 사람은 자기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이제는 무슨 죄를 짓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자신을 천국으로 데려가실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죄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게 된다. 그러다보면 예수님의 희생제물되심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에 제물을 가져다가 바친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게 된다. 그러다보면 신약의 성도들도 자신이 죄를 짓는다 하여도, 이미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기에, 자신의 죄는 이미 용서된 것이라고 믿어버린다. 그러므로 죄를 지어도 죄에 대해 마음 아파하거나 예수님께 죄송한 마음을 갖지 않는다. 그러다보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도 형식적이 되어버리고 회개도 입술로만 하는 형식적인 수준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려도 어떤 감동도 받지 못하며, 봉사를 해도 기쁨이 없다.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것이고, 남들도 하는 것이니까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에 드렸던 희생제물은 신약시대에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로 치환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자기가 예수님만 믿고 있으면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믿어버리기 때문에, 자신이 죄를 짓고도 태연하게 살아간다. 죄를 지어도 죄에 대해 아파하거나 죄를 멀리하지 않으며, 때로는 죄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이미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었으니 이제는 그 어떤 죄를 짓는다해도 그것이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를 끊을 수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그것은 크게 잘못된 신앙이다.
7. 오늘날 하나님께서 진정 받아주시는 속죄제사는 어떤 것인가?
진정 사람의 죄가 어떻게 용서되는지 아는가? 그것은 속죄제사나 속죄제물이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믿음은 자신이 죄용서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줄 뿐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으려면 반드시 지은 죄에 대해 마음 아파하고 그것 때문에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음에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마음으로 주앞에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마음을 주께 바쳐야 한다. 이러한 것이 없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사실 그 사람이 지은 죄를 용서해 주지 못한다. 사람이 죄를 용서받으려면 회개하는 마음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시34:18). 사람이 죄를 용서받으러면 하나님 앞에 진정 상한 심령과 깊이 뉘우치는 마음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것이다(시51:17). 그리고 나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할 때 맨 처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아는가? 그것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4:17)"였다. 또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고 하셨다. 회개없는 믿음만으로는 그 사람이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8. 다윗이 가르쳐준 죄용서방법의 비밀
그렇다면, 이러한 영적 비밀을 정말 정확히 알고 있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다윗왕이었다. 나라가 안정되었을 때에 다윗왕은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한가로이 왕궁에서 거닐게 된다. 그러다가 그만 목욕하고 있는 한 여인을 발견하게 되고, 조사해보니 그녀는 자신의 부하장군 우리아의 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정이 타오른 다윗은 그녀를 범하고 만다. 그런데 그녀가 기별하여 임신했다고 말하자, 다윗은 그녀의 남편을 전쟁터에서 불러오지만, 한사코 집에 들어가기를 거절하자, 다윗은 그녀의 남편을 전쟁터의 최전방에 보내 죽게 한다.
그렇다면 다윗이 지은 죄의 성격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고의적인 범죄인 것이다. 다윗이 지은 죄는 고의로 지은 간음죄와 살인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율법에는 고의로 지은 간음죄와 살인죄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그런 죄에는 그 어떤 자비도 없다. 그것은 오직 죽는 길밖에 없다(례20:10,24:17~21). 그것이 바로 율법이 다윗에게 정한 길이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범죄사실을 듣게 되자, 자신의 범죄를 솔직히 털어놓았고 어린아이처럼 엎드려 회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죄를 지었던 일에 대해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토설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를 너그러이 용서해주신다. 그리고 그를 죽이지도 않으신다. 그러자 그때 비로서 다윗은 사람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한다 할지라도 용서받을 있는 방법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실 율법을 찾아보라. 그 어디에도 사람이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규정이 없다. 그런데 율법에도 없는 죄사함의 방법을 다윗이 비로소 체험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먼저 제사를 드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신의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마음을 희생제물로 드려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시51:17, 34:18).
9. 나오며
당신의 지금의 회개생활은 어떠한가? 이제는 우리의 회개의 방식을 되돌아볼 때가 되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제물만 바치면 된다는 생각이 우리의 생각 속에 들어와 있는지 모를 일이다. 신약시대에 들어오게 되자, 예수님만 믿으면 자신의 죄는 다 용서된 것이라고 하는 이들이 수두룩해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들은 회개도 않은 채 오늘도 태연하게 살아가고 있다.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지 못한다. 철저히 자신을 낮추어 회개해야 한다. 상한 심령과 뉘우치는 마음을 주 앞에 먼저 제물로 바쳐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의 믿음도 헛되지 않고, 우리가 고백한 죄를 다 용서받을 수 있게 된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