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한다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일까? 어떻게 해야 충성한 것이라고 인정받을 수가 있을까? 또한 충성과 구원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다시 말해, 심판날에 우리의 충성도가 과연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충성할 때에는 어떤 것에 충성해야 하며, 충성한 결과로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축복에는 대체 어떤 것이 있을까? 오늘 이 시간에는 충성과 관계된 성경말씀과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의 권고의 말씀을 들어보자.
1. 들어가며
예수님께서는 서머나교회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 "충성하라"라고 말씀하신다(계2:10). 하지만 당시 서머나교회는 신앙적인 고난과 경제적인 고난을 동시에 겪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충성할 것을 명령하신다. 다시 말해, 신앙적인 고난과 경제적인 고난까지 이겨낼 수 있는 처방전으로서 충성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충성한다"는 뜻은 대체 어떤 것일까? 그리스도인들에게 왜 충성이 필요하며, 그 의미는 무엇이며, 그 결과가 무엇인지도 함께 알아보자.
2. 그리스도인들에게 왜 충성이 필요한가?
첫째,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왜 충성이 필요한지부터 살펴보자.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충성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도 더러 있다. "충성하지 않는 것이 그리 죄될 것도 아닌데, 굳이 충성할 필요가 있을까?"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다. 충성하지 않는 것이 결국에는 죄로 이어지게 되며, 영혼이 구원을 받는 일에 있어서도 엄청나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3. 사람은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
여러분은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는다고 생각해 보았는가? 신구약성경이 가르쳐주는 바에 의하면,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회개"와 "믿음"을 통해서다(막1:15).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필수적으로 자신이 지은 죄를 시인하고 통회자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우리 죄인들을 위해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를 믿음으로 구원받기 때문이다.
가. 오직 믿음으로서인가?
그런데 아직까지도 어떤 믿는 이들은 구원이 "오직 믿음만으로" 얻는 것인 줄 아는 이들도 있다. 안타깝게도 성경 어디를 보아도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얻는다는 말씀은 거의 없다. 한편 여기에서 언급하는 '구원'은 사람이 죽어서 그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얻어 천국에 들어가려면, 믿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믿음에다가 반드시 회개가 필요하다. 사람은 예수님을 믿어도 여전히 죄를 짓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4;17)"라고 말씀하셨다.
나. 아니면 믿음과 행함 둘 다가 필요한가?
그런데 믿는 이들 중에 어떤 이들은 사람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려면 "믿음과 행함"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도 정확한 구원의 조건은 아니다. 왜냐하면 행함이 어느 정도가 있어야 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고무줄 행위 구원인 것이다. 그러므로 은총과 행위를 강조하는 천주교에서 신앙생활하는 자는 구원받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천주교인들은 대부분 자신의 영혼이 연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죽은 부모님의 영혼을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기놓기 위해, 자녀들이 통 크게 헌금하는 일이 종종 많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라도, 성인들의 잉여공로를 사서 자신의 부모님을 천국에 보내드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를 희구하기에, 어떤 이는 죽을 때에 자신의 재산을 교회에게 기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듯 선한 행위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직 예수님의 구속의 피로 우리의 죄가 씻겨질 때에 우리가 구원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구원은 절대적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자신이 죄인인지도 모르며, 지은 죄를 회개하지도 않는데 단지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죄가 저절로 씻겨지는 것이 아님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죄를 씻기 위해 모든 사람들은 다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다. 행함을 강조할 때에 생기는 폐단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이 믿음과 행위로 이뤄진다고 굳이 믿으려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자는 다음의 내용에 주의하라. 만약 구원의 요소에 행함을 추가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생각해보았는가? 그때에는 2가지 놀라운 폐해가 발생하게 되고 말 것이다. 첫째는 행함을 통해서 자기의 의를 드러내려 하는 사람이 발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의 의는 약화될 것이며, 자신의 의를 한층 더 높이게 될 것이다. 그것과 더불어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자는 둘째, 행함을 실천하지 아니한 사람을 볼 때에 그만 이런 것도 행하지 못하느냐며 정죄하는 일도 동시에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안 된다. 우리의 의로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오직 의로우신 분은 우리 주 예수님 뿐이시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달됨으로 가능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이 필요하고, 회개가 필요하다. 셋째, 행함을 통해서 자신의 부족한 믿음과 부족한 회개를 대신 감당하려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간혹 보다 보면, 예수님을 잘 믿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천국과 지옥도 믿지 못하는 성도가 있기도 하다. 회개하면 죄가 씻겨지는지도 잘 모르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자라도 구원은 받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런 자들이 착안해 낸 것이 바로 행위를 통해서 믿음과 회개를 대신해보려는 것이다. 행위를 통해서 부족한 믿음을 채워보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또한 회개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행위로 구원얻을 것이라고 믿고 행동으로 보여주려하는 것이다. 아니다. 그러면 큰 일 난다. 행함이 믿음과 행위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렇듯 우리가 구원얻는 데에는 오직 믿음으로서가 아니며, 믿음과 행함으로서도 아니다. 그것은 회개와 믿음을 통해서인 것이다.
라. 회개와 믿음으로서 구원얻는다고 믿는 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가?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이 구원얻어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이 회개와 믿음이라고 하니까, 자신에 있어서 행함은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훗날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우리의 심판의 기준이 우리의 믿음뿐인지 아니면 행함으로 심판받는지를 말이다. 마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를 보라. 거기에 보면, 그 사람의 구원의 당락이 그들의 행위를 따라 결정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행위가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가 아닌 것은 확실하나, 내가 참된 믿음을 가진 자인지 아닌지는 행함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는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에게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그에 따르는 행위가 없다고 한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가짜 믿음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에 따른 행위가 있는지를 늘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주님께서 천국의 헌법을 말씀하신 산상수훈을 보라. 거기에 보면, 산상수훈의 결론이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인 것을 말씀하고 있다(마7:24~27).
마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그렇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만 그 믿음이 훗날 심판대 앞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야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집에 부딪힐 때에, 그 집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집은 그 사람의 믿음을 가리킨다. 곧 말씀을 듣고 행함의 열매가 뒤따르는 자가 심판의 날에 그 믿음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고 회개생활을 잘 감당하고 있으니, 내가 천국에 들어가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겠죠?"라고 생각하지 말라. 믿음에 따른 행위가 따라올 때에라야 우리의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라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인지라 죄를 짓지 아니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된 본성이 안에 죽을 때까지 남아있고, 오늘도 믿는 자들을 미혹하여 죄짓게 만들려고 시도하는 귀신들이 밖에 웅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는 우리의 구원의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행함이 뒤따르는 믿음에다가 회개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주는 것이다.
마. 회개와 믿음의 중요성을 아는 자가 꼭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믿음을 가진 자는 항상 '충성'이라는 글자를 마음에 달고 살아야 한다. '충성'이 우리를 죄짓는 곳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주고,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 삶으로 나를 안내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간다면, 또한 충성이 자신의 행실에 따른 합당한 보상 곧 하늘의 상급으로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깨닫고 실천하는 자는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나는 과연 오늘도 충성했는가를 따져보라. 그래서 자신의 구원이 주님의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해보라.
4. "충성한다"는 낱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둘째, 이제는 '충성한다'는 낱말의 의미를 살펴보자. 헬라어로 '충성하다'는 단어는 "피스토스"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2가지 의미로 쓰였다. 하나는 믿는다는 뜻이며, 또 하나는 충성하다. 신실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는 그 단어가 쓰인 문맥을 잘 살펴봐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것에 충성한다고 하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가. 충성에도 전제조건이 있다.
이 단어의 의미를 살피기 전에, 우리는 이 단어에 어떤 전제조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 사도바울의 말을 들어보자.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1-2)" 그렇다. 충성이라는 단어는 일꾼과 항상 맞물려 있다. 다시 말해 어떤 일을 맡은 자에게 필요한 것이 충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충성하기 위해서는 맡은 일이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래야 충성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성도가 교회에 등록하여 세례를 받고 직분을 맡게 되는 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 충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어찌하든지 성도들에게 충성의 중요성을 가르친 다음에 그들에게 충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기도의 자리, 봉사의 자리, 전도의 자리 등등을 말이다. 만약 충성의 중요성도 가르쳐주지 않으며, 또한 충성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으면, 성도는 어린아이의 신앙에서 멈춰서고 말 것이다. 해야 할 일감이 없는 자는 책임감도 잘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목회자로부터 무엇인가를 맡게 되면, "저에게도 일을 맡겨주십니까? 감사합니다."라고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충성할 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의 신앙이 성숙해지기를 원한다면 어떤 일감을 맡기를 바란다. 그래야 자신의 육신을 쳐 복종시킬 수 있고, 그것 때문에 한 번이라도 더 기도의 자리에 나갈 수 있고, 죄짓는 삶보다는 주의 거룩한 사역에 더 동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어떤 것에 충성할 것인가?
그렇다면, 성도들은 어떤 것에 충성해야 하는가? 크게 4가지 것에 충성해야 한다. 첫째로, 작은 것이라도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다(눅16:10). 하나님은 작은 것에 충성한 자에게 더 큰 일도 맡기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다른 이보다 더 큰 일을 감당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더 큰 상급을 얻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내게 큰 일이 주어지든 아니면 작은 일이 주어지든 맡겨진 일에 충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둘째로,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다(눅16:10). 불의한 재물이란 여기서 '돈'을 의미한다. 사람들 중에는 회삿돈을 함부로 쓰는 사람이 있다. 자기돈이라고 하면 그렇게 펑펑 쓰지 못할텐데, 회삿돈이라고 하니까 물불을 안 가리고 쓰는 것이다. 아니다. 그러면 그는 불의한 재물에는 충성하지 못한 자가 될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알려지게 되면 그에게 더 큰 일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셋째로, 남의 것에도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다(눅16:12). 남의 것에 충성하지 못한 자는 결국 자기의 것도 만들 수 없다. 이 세상 사람치고 처음부터 자기의 것을 갖고 태어난 자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남의 것을 맡아서 충성하여 남기게 된 자는 자기의 것도 채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모든 일에 충성할 수 있는 자라야 한다(딤전3:11).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를 충성된 자라고 말씀하실 것이고, 그런 자에게 더 귀한 직분을 맡겨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다. "충성한다"는 낱말의 3가지 의미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충성한다는 단어의 속뜻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자. 충성한다는 것은 어떤 일을 맡은 자가 그 일에 대해 보이는 신실한 태도를 가리키는 것인데, 그것은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비유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달란트비유를 통해서 충성된 자가 누구며, 게으른 자가 누군지를 말씀해주셨다. 한 주인이 자기의 종들을 불러서 그의 달란트를 그들에게 각각 나눠주었다.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겨주었다. 그것은 그것으로 장사하라는 것이었다. 그때 여기서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자와 두 달란트를 받았던 자를 통해서 우리는 충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충성한다는 의미는 첫째, 게으르지 않고 열심을 낸다는 뜻이다(마25:16). 주인으로부터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어떻게 그 돈을 관리했는지 아는가? 즉시 가서 장사했다고 한다. 그는 그 돈을 감추어두지 않았으며, 적당히 어떻게 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주인의 뜻을 알고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주인이 자신에게 맡긴 일을 위해 즉시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주인으로부터 칭찬받기 위해 그는 즉시 게으르지 않고 일을 시작한 것이다. 아니 열심을 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교회처럼 뜨뜻 미지근한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그런 자를 하나님께서는 토해내버릴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차겁든지 뜨겁든지 해야 한다. 게을러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맡은 일이 있으면 열심을 품고 주인의 뜻에 따라 혼신을 다해 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라오디게아교회에 대한 처방책은 바로 "열심을 내라"였던 것이다(계3;19). 둘째, '충성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 작다고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다(마25:17). 이는 두 달란트 받은 자에 해당한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더 적게 받았다고 불평하기를 즐겨한다. 아니다. 불평할 시간에 나가서 일해야 한다. 나중에 주인으로부터 들었던 칭찬을 보라. 두 달란트를 받아 두 달란트를 더 남긴 자나, 다섯 달란트를 받아 다섯 달란트를 더 남긴 자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 축복이 동일하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25:21,23)" 그렇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눈여겨 보시고 있다. 그리고 나중에 그 런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다(눅16:10). 마지막으로 셋째, 이것은 부수적인 것으로서 '충성한다'는 것은 무슨 일에서든지 지혜롭게 행동한다는 것이다(눅16:8). 충성한다고 하면서 물불을 안가리로 일을 하지만, 그 결과가 참담하게 나오게 해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열심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중의 결과를 예상해보며 지금 지혜롭게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할 때에, 함께 일하는 다른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도 살펴보면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자들이 교회에 몇 명만이라도 있다면, 교회는 놀라운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5. 충성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무엇인가?
이제는 마지막으로 충성하는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보상을 주시는지 즉 충성의 결과는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자. 충성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보상해주신다. 그 보상은 이 세상에서 받는 것도 있을 것이며, 저 세상에서 받는 것도 있다(막10:29~31). 다시 말해 충성에 대한 보상은 영육간에 주어지는 복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충성하라. 잠언기자는 개미에게 가서라도 배우라고 하였다. 그렇다. 충성하는 것은 내게 복이 들어오게 하는 축복의 통로가 된다. 충성을 다할 때에, 열심을 낼 때에, 최선을 다할 때에 좋은 결과가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충성할 때에는 언제나 지혜롭게 행동하라. 그래야 손해가 없으며, 나중에 후회할 일이 없을 것이다. 건투를 빈다.
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alletei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