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힘겹다. 아니 견디기 힘들다. 하지만 고난만큼 신앙에 유익한 것은 없다고 시편기자는 말한다(시119:71). 왜냐하면 고난이 찾아와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되며, 자기를 돌아보게 되고, 겸손해지게 되며, 자신의 성품까지도 정금처럼 다듬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고난을 잘 극복할 수가 있을까? 이것을 위해서는 고난의 원인부터 파악하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대체로 고난의 원인에는 3가지 종류가 성경에서 발견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고난의 원인에 따른 고난 극복방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불어닥치는 고난을 이겨낼 수 있을까? 사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종류의 고난을 우리가 이해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고난에 직면하여 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이겨내었던 성경인물들의 경우를 통해서, 고난을 이겨낼 해법들을 찾아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는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고난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 성경의 사례들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2. 고난은 왜 발생하는 3가지 이유
먼저,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고난이 왜 발생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고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병의 원인을 모르고서 병을 치료하게 되면 질병은 언제고 다시 나타날 수 있으며, 또 다른 질병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내게 고난이 찾아오면 고난이 발생한 그 이유부터 찾아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고난이 찾아오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성경의 사례를 통틀어 살펴보게 되면, 우리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3가지 원인을 추려낼 수 있다. 즉 고난의 원인은 우리들 자신 곧 인간과 하나님과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탄마귀로부터 오는 고난이 있는 것이다.
가. 인간의 범죄로 인한 고난
첫째, 우리 인간들의 범죄 때문에 오는 고난이 있을 수 있다. 이때는 회개하면 고난이 떠나간다. 하지만 범죄의 종류가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저지른 행위가 범죄였는지 아니었는지 잘 몰라서 범죄한 경우다. 이때에는 기록된 성경말씀이나 성령의 깨닫게 하심 혹은 목회자의 설교를 통해서 자신이 범죄하고 있는지를 깨닫는 즉시 그 죄를 더이상 짓지 아니하면 된다. 그러면 고난이 떠나간다. 예를 들어, 추도예배나 장례예배가 우상숭배라고 알게 되었을 때, 더이상 이러한 종류의 예배를 드리지 아니하면 된다. 대체로 우상숭배를 그치지 아니하면, 본인은 불치병이나 치매에 걸리기 쉽고, 이러한 저주는 3~4대까지 이어진다. 자녀가 고통받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성경에 예를 들자면, 나오미의 회개의 경우다. 나오미는 남편을 따라 약속의 땅을 팔아치우고 모압땅으로 이사를 갔다. 그래서 그는 남편을 잃었고 곧이어 장가보냈던 두 아들마저 잃어버렸다. 이때는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나오미는 나중에야 그것을 알고 약속으로 땅으로 돌아왔다. 그때 한 사람을 데리고 왔으니 그녀가 낳은 아들이 바로 다윗의 증조할아버지가 된다. 하지만 범죄가 내 속에 들어있는 죄성에 의한 것일 때는 그 성격이 약간 다르다. 바울은 롬7장에서 자신의 육체 속에 거하는 죄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죄성은 육체 속에 들어있기에 우리가 죽는 날까지 떠나가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종류의 죄는 한 번 회개함으로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을 때까지 우리를 괴롭힌다. 그러므로 이런 죄는 죽을 때까지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 이러한 죄들로는 돈과 명예와 권력과 쾌락을 추구하는 탐욕의 죄들이다. 예를 들어, 음란의 죄를 보자. 음란의 죄는 사람을 일평생 괴롭힌다. 어떤 사람은 유난히도 음란에 약하다. 그래서 다른 것에서는 넘어지지 아니하지만, 그만 음란죄에서 넘어지고 만다. 이러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날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생각으로 짓는 죄라도 날마다 회개하고 또 회개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고난에서 벗어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
둘째.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이 있을 수 있다. 이때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그래서 고난의 원인을 찾게 되었다다면, 그는 고난 가운데서도 감사하며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사도바울의 경우다. 사도바울은 그가 부름받은 그날부터 그에게 고난이 뒤따를 것이라고 들었다(행9:16). 그것 중에는 그에게 주어진 사탄의 사자 곧 육체의 가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자 사도바울을 사탄의 사자를 놓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것이 떠나가기를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가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는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자신의 약한 것들을 자랑하는 자가 되었다. 사실 그가 받은 것은 지극히 큰 것이므로 그는 얼마든지 교만한 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의 경우는 이외에도 다양한 고난이 있을 수가 있다. 그것은 자신이 직접 물어보아 아는 수밖에 없다.
다. 사탄이 주는 고난(핍박과 죽음)
셋째, 사탄이 주는 고난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의 상당부분은 예수믿지 아니하는 불신자를 동원하여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경우다. 이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에는 2가지 대처방법이 있다. 첫째로는 핍박의 현장을 벗어나는 것이다. 핍박하는 자들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유대인들이 거세게 핍박해오자 그 현장을 벗어나는 경우다. 예수께서도 핍박자가 있을 때에는 그 현장을 벗어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고 하셨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마10:23)"고 제자들에게 지침을 하달하신 것이다. 그렇다. 핍박을 받을 때에 그곳에 남아서 끝까지 핍박을 받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때로는 그 현장을 벗어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24장에 나오는 대환란의 시기에서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다(마24:15~21). 둘째로는 내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했을 때에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순교를 통해서 고난을 극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탄은 아무나 죽이지 않는다. 죄없는 자들을 죽이면 자신이 어떻게 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때가 더욱 짧아지게 되고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주님의 재림의 시기는 다른 때가 아니라 순교자의 숫자가 다 차는 시기다(계6:11). 그러므로 순교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때마마 순교자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버가모교회의 안디바가 대표적인 경우다(계2:13). 그리고 서머나교회의 폴리갑의 경우도 그 예이다. 그러면 사탄이 믿는 자들을 핍박하여 고난을 주는 시기는 얼마나 될까? 주 예수께서는 그 기간을 열흘이라고 했다(계2:10). 요한계시록에서 열흘은 아주 짧은 기간이다. 주님께서도 우리의 견뎌야할 고난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 날들을 감해주실 것이라고 하셨다(마24:22).
3. 어떻게 고난을 극복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고난을 잘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난을 잘 극복한다는 말은 좀 어색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누구라도 고난을 잘 이겨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난의 현장에 있을 때에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이겨낸 자들의 사례를 통해서, 우리는 조금이나마 고난을 잘 이겨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2가지 정도의 방법이 있다.
첫째는 어떠한 고난이라도 모든 고난은 유익한 것이며(시119:71), 자신이 고난을 이겨낸 만큼 하늘에서 영광으로 다가온다는 말씀을 믿는 것이다(롬8:17~18).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고난을 당하는 것이 참으로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그리고 이어서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라고 말했다. 그렇다. 고난만큼 유익한 것은 없다. 고난은 첫째로 나를 돌아보게 하고, 둘째로 나로 하여금 겸손해지게 하며, 셋째로 나를 정금같이 다듬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욥은 말하기를 "내가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고 했다. 또한 고난은 자신이 고난을 이겨낸 만큼 영광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는 어찌하든지 그 말씀을 믿고 고난을 견디어야 한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7~18)"고 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또한 상속자라면 고난은 필연적으로 내게 다가오게 되어 있다. 우리의 죄된 본성이 계속해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요, 사탄의 방해공작이 필연적으로 나를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난을 멀리하려고 하지 말라. 고난은 반드시 맞딱뜨리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빨리 고난을 맞이하고 늦게 맞이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만약 내게 고난이 없다면 우리는 상속자가 아니라 사생자인가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고난이 다가온다면 필히 감사하라. 아니 기뻐하라(마5:10~12). 예수께서도 자신이 고난을 받은 후에 비로소 영광에 들어가시지 않았던가!(눅24:26). 또한 베드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기뻐할 가치가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고난을 받은 분량만큼 주님의 오시는 날에 우리가 기뻐할 수 있기 때문이다(벧전4:13).
둘째는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이다. 고난을 잘 이겨낼 장사는 없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고난을 극복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고난이 닥칠 때면 누구든지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야고보서에 보면,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는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약5:13)"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난을 이기게 도와주는 제일 중요한 힘은 기도를 통해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욥도 30년 이상의 고난을 받는 가운데 기도줄을 놓지 않았고 결국 자신의 고난을 견디어 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고난은 이기기가 힘들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영역이다. 여러분도 고난을 만나면 무릎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4. 나오며
어떤 이는 고난은 변장된 축복 혹은 변장하고 나타난 축복이라고 말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어찌하든지 고난은 유익하다. 만약 우리가 고난을 만나지 않는다면 과연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까 싶다. 사람은 고난을 만날 때에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기도한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회개할 것이 있으면 회개한다. 그리고 사탄이 주는 고난의 경우라면 그것을 견디어보려고 한다. 참아 기다릴 때에 그것은 영광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허락하신 고난이라면 그것을 통해서 겸손히 사역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우리 인생에겐느 고난과 같은 좋은 신앙교과서가 없다는 것을 알고 고난을 잘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