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 정말 말도 많고 탈고 많은 영원한 주제다. 하지만 이 문제를 반드시 풀고 지나가야 한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일평생 신앙생활한 것이 헛될 수도 있으며, 그날 가슴을 치며 통곡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주제를 다시 꺼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동안 증거해 온 말씀과는 좀 다르게 표현하려고 한다. 그것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라고 시작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대체 어찌 된 것인가? 그동안 선포해온 명제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니다"라고 말해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제 이 주제를 설명해 가면서 그 의문은 자연히 풀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지만 그 구원은 우리의 부주의로 인해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증거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 그럼 케케묵은 물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를 좀더 확실하게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 보자.
2.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을 받은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 그렇다. 사실 이 두 개의 질문이 비슷한 것 같지만 비슷하지 않다. 그러니 정 반대의 답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둘을 어떻게 정확히 연결하여 한 개의 문장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하지만 우리의 부주의로 인하여 구원은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언제 구원을 잃어버리게 되는가? 그것은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이 세상에서 늘상 그러는 것은 아니다. 우리 믿는 이들 중에 만약 구원을 잃어버리는 자가 있으면 그는 죽고나서다. 죽은 후에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이지 맨날 구원을 얻었다가 잃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우리가 거듭나게 되면 거듭나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그가 죽는 날까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가 안 되었다가를 반복하지 않는다. 우리 믿는 이들 속에 들어오신 성령은 우리가 죽는 날까지 결코 떠나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3.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구원이라도 잃어버릴 수 있는가?
그렇다면 위와같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구원이라고 잃어버릴 수 있다는 성경구절이 있는 것인가? 있다.
첫째,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구절이 성경에 있는지 찾아보자. 그것은 히브리서 5:8~9에 나온다.
히5:8-9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그렇다. 분명히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께서는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이 근원이 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왜냐하면 구원은 전능하고 완전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요, 그분이 주시는 구원은 어딘가가 부족하지 않은 완전한 구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은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설명해 보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은 매일 주었다가도 다시 빼았다 하는 구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데 그것을 주셨다가 그 다음날에 또 다시 빼앗아가는 그러한 분이 결코 아니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실 때에는 완전히 주시려고 주신 구원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으며, 그분이 주시는 구원은 완벽하다. 그리고 그 구원은 우리를 영원히 구원할 수 있는 효력과 능력을 충분하게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러나 영원한 구원을 받았아도 우리의 부주의로 인하여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구절도 있다(요14:16).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쪽에서 주시는 구원만을 생각하고는,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은 완전한 구원이기 때문에 우리가 장차 받을 구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의 대속사역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그분이 완벽한 구속을 성취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통해서 이루어놓으신 완전한 구원 자체가 우리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사역은 사실 완전하다. 하나도 흠이 없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 인간편에서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이 상실될 수도 있다. 즉 우리에게 죽은 다음에도 우리가 받은 영원한 구원이 영원히 지속되기도 하고, 죽을 때에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우리가 믿음으로 얻은 구원, 그리하여 성령이 내주하심으로 떠나가지 아니하는 구원은 시간에 제한이 있다는 것이다. 영원무궁토록 계속해서 지속되는 구원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날까지 유효한 구원인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와같은 사실을 잘 모른다. 하나님이 주시려는 영원한 구원이 믿을 때에 이미 받았기 때문에 그러한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절반을 맞고 절반은 틀린 것이다. 즉 우리가 믿을 때에 받았던 구원은 분명히 영원한 구원인 것은 맞다. 하지만 영원한 구원을 받은 자라도 우리의 부주의로 인하여 구원을 상실할 수도 있는 것이 성경적인 견해다.
그럼, 언제 우리가 구원을 잃어버리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가? 그것은 우리가 죽을 때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갈 때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요한복음 14장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고스란히 나와 있다.
요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예수님께서는 이제 당신이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해야 할 일을 완성하실 때가 되신 것을 아셨다. 그리고 그것을 다 이루시게 되면 주님도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께서 떠나가신다는 말에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당신이 떠나가는 것이 오히려 제자들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가면 보혜사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요16:5~7). 사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실 때에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없을 때에 제자들이 위험이 빠지기도 하였다. 오죽 했으면 바다 위를 건너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을까? 그것은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실 때에는 당신도 육신의 제한을 받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육신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영역을 떠나가는 것이 더 제자들에게 유익하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떠나가시면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실 터인데, 보혜사 성령은 육체를 지니지 아니한 하나님의 영이시므로, 동시존재하여 제자들과 언제 어디서든 임마누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때 예수께서는 죽고나서 제자들에게 보내주실 성령이 어떻게 그리고 언제까지 제자들과 함께 하실 것인지를 말씀해주셨다. 그것은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그분은 제자들의 영 속으로 들어가 거주하시며,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14:16).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이 사람의 심령 속에 들어오실 때에 거듭 태어나게 되고, 성령은 거듭 태어난 자와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고 했으니, 한 번 얻은 구원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계산법이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문에 보면, "영원토록" 혹은 "영원히"라는 문구가, "에이스 톤 아이오나(eis ton aiona)"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영어성경에서도 한글성경의 번역처럼 "forever(영원히)"라고 번역해 놓고 있지만, 실은 그러한 뜻이 아니다. 헬라어에서는 그 문구가 "영원히"라는 문구가 아닌 것이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고 있는 "영원무궁하게(forever)"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는 "세세토록(계1:6,18,4:9,10,5:15,7:12,10:6,11:15,14:11,19:3,22:5)"이라는 문구와 "세세무궁토록(롬16:27,딤후4:18,히13:21,벧전5:11)"이라는 문구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세세토록"이라는 문구는 "영원무궁히"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세세토록"이라는 문구는 "영원토록(요14:16)" 혹은 "영원히(요4:14;6:35,58;8:35,51,52,;10:28;12:34)"이라는 문구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세세토록"이나 "세세무궁토록"은 "시대들의 시대들까지"라고 되어있고, "영원히" 혹은 "영원토록"이라는 문구는 "시대들까지"라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4. "영원히" 혹은 "영원토록"이라는 문구(전치사구)는 헬라어로 보았을때, 정확히 어떤 뜻이었는가?
그럼, "영원히" 혹은 "영원토록'이라는 문구가 헬라어로 어떻게 되어있는지 살펴보자. 그것은 "에이스 톤 아이오나"라는 전치사다. "에이스(eis)"라는 단어는 영어로는 "~안으로(into)"라는 전치사다. 이것이 시간과 관련된 단어와 함께 묶어지면 "~하는 동안(for)", ~할 때까지(during)"라는 뜻으로 쓰인다. 지금 "에이스"라는 전치사가 바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럼, 그 다음의 단어를 보자. "톤 아이오나(ton aiona)"에서 "톤(ton)"은 정관사(the)요, "아이오나(aiona)"는 명사다. 여기서 "아이오나"의 원형은 "아이온(aion)"이다. 이 단어는 "세대(generation)", 혹은 "시대(age)"라고 번역되는 단어다. 그러므로 "에이스 톤 아이오나(eis ton aiona)"라는 전치사구는 "그 시대까지", 혹은 "그 시대동안"이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이것을 영어로 표현하면, "for the genaration(그 세대까지, 그 세대동안)"이나 "for the age(그 시대까지, 그 시대동안)"라고 번역해야 한다.
고로, 우리가 믿고 회개하여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그분이 우리와 함께 있는 기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까지(이 시대동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 다음 시대는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거듭난 이후 죽기 전까지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결정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믿는 자들 안에 들어오시어 그때부터 거주하시기 시작하시는데, 그분이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고 거주하는 그 기간은 "이 시대까지(이 시대동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혹시 우리가 부주의하여 주님이 주신 영원한 구원을 경홀히 여기고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죽는 그날 심판대 앞에서 우리가 얻었던 영원한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날 성령께서 떠나가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생명책에 기록된 우리의 이름도 그 날이 지워질 것이다(계3:5).
5. 사람이 받게 되는 영원한 구원은 어떻게 얻게 되는가?
사람이 받게 되는 영원한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그것은 크게 2가지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믿고 회개하여서 죄사함을 받는 과정이 있고, 또 하나는 거듭나서 생명을 얻는 과정이 있다.
먼저, 죄사함의 과정을 살펴보자. 사람은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믿을 때에 죄사함을 얻는 자격을 취득하게 되며,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회개할 때 자신의 죄들의 씻음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사람은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을 때에 예수님의 구속사역으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취득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예수님을 믿을 때에 동시에 또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게 되고 죄용서를 구하게 된다. 그러면 그때에 죄씻음도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회개 했다면, 그날 그가 죽어도 그는 분명 구원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대부분 구원받는 그 날에 죽지 아니한다. 20년에서 50년, 90년까지도 더 살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을 때에 회개한 것으로 구원받기는 쉽지 않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한 것이고, 그때부터 자신이 지은 죄를 자백함으로 죄씻음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은 꼭 자동차면허를 딴 것과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과 비슷하다. 즉 어떤 사람이 자동차면허를 땄다고 치자. 그때는 면허증도 있고 운전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 그가 운전을 하지 않다가 10년, 20년이 지나버렸다고 치다. 그러면 그는 운전을 하지 못한다. 면허증은 가지고 있으나 실제는 운전을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운전면허증이 있다고 해서 자신은 언제나 운전할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운전면허증을 땄으면 그때부터 쭉 운전을 해야, 어느 때든지 운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많은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자신이 예수를 믿은 것으로 자신의 죄가 다 용서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니다. 예수님을 믿어 그분을 영접했으면 면허증을 딴 것이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회개함으로 죄사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직접 입술을 벌려 마음으로 진정 회개할 때에 우리의 죄가 사해지기 때문이다(요일1:9). 운전면허증을 땄어도 직접 운전을 해야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갈 수 있는 것이지,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으니 언제라도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둘째, 이제는 거듭남의 과정을 살펴보자.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고 회개함으로 죄용서를 받는다. 그러면 그때에 거룩한 영이신 보혜사 성령께서 믿는 자들 속으로(영 안으로) 들어오신다. 이때에 내 영과 성령이 하나가 된다. 그러나 이때 들어오시는 영은 성령의 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시다(계3:20). 예수께서 성령으로 믿는 자들의 영 안으로 들어가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이제] 주는 [그] 영이시니(고후3:17)"라는 말씀과 아울러, "첫사람 아담은 생령(사는 혼)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예수님)은 살려주는(생명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15:45)"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리스도가 부활승천 후에는 곧바로 생명주는 영이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롬8:1에서도 버울이 성령을 소개할 때, '생명의 성령'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 성령께서 믿는 자들 속에 들어오실 때에, 그때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에 동시에 생명(조에)도 가지고 들어오신다. 이러한 생명은 헬라어로 "조에"라는 생명으로서,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생명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생명은 한동안 오직 한 사람만 갖고 있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있을 때였다. 그래서 그분은 아버지의 생명을 가진 유일한 아들이라는 의미로 "독생자"라고 불리셨다(요3:16). 왜냐하면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실 때에는 오직 예수님에게만 아버지의 생명을 나눠주셨기 때문이다(요5:26). 하지만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 그분은 다시 영이 되셨으므로, 이제는 믿는 자들에게 당신의 영과 함께 생명도 나눠주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아버지의 생명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 거듭 태어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들(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예수님은 아들들 중에 맏아들로 승격하시게 되셨고, 우리들은 그분의 동생들이 될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이 가지고 있던 생명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도 주입되는 것이다.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여 거듭 태어난 자는 자기 안에 아버지의 생명이 있는 것이다. 그런 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고, 그런 자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천국은 아버지의 생명을 가진 자만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한 번 구원은 영원히 구원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어떤 분(목회자)이 책을 썼다. "구원은 영원한가?"라는 책이다. 읽어보니,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받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지은 자를 징계하셨으면 하셨지 그를 버리지는 않으신다"는 것이다. 만약 "주여 주여"라고 외쳤는데 버림을 받았다면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이요, 유대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만약 성도가 죄를 지어서 구원이 취소된다고 하면 아무도 구원받을 자가 없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왜냐하면 예수믿고도 죄짓지 않고 살아갈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핏 맞는 주장 같이도 보인다.
하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도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그가 죄를 지어서가 아니가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은 자는 이미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그는 이미 영원한 구원을 받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주의하지 않는다면, 죽을 때에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것은 단 한 가지 이유에서다. 그것은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아서다. 고로, 사람이 죄를 지어서 구원을 못받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아서라는 것을 꼭 알아두어야 한다.
또한 그분은 "성도가 회개를 한다고 해도 완벽하게 회개할 자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회개로 구원받을 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이 말도 맞는 것같이도 들린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회개가 아니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일이 없다. 단지 회개를 하지 않아서 죄용서를 못받는다고 말씀하셨을 뿐이다(요일1:9). 그리고 사도요한은 요일1:7에서도, 우리가 진정 빛 가운데 행하기만 해도 그분과 우리 사이에 교제가 일어나게 되면, 그러한 교제가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요일1:7). 그렇다. 우리는 우리가 진정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지은 죄를 통회자복하면 그리고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설령 우리가 고백하지 않은 죄가 남아있더라도 그 죄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못받을 리는 없다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그때에 우리가 미처 다 자백하지 못했다면 죄도 함께 다 용서함을 받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회개하지 않는 데에 있다. 그런 자는 점점 더 죄를 더 많이 짓게 될 것이고 그러면 마귀에게 뻔히 붙들리게 된다. 그러면 점점 더 죄의 늪에 빠져버리는데, 그러다가 회개하지 못하고 죽으면 지옥행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짓는 즉시 회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생각나는 죄를 남겨두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성령께서 깨우쳐주시는 대로 즉시 즉시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자신에게 고백하지 않는 죄가 있다는 것이 조금 꺼림찍하다면, 그는 오늘부터라도 당장 십계명(출20장)과 산상수훈(마5~7장) 공부를 해 보시기를 추천드린다. 율법의 십계명은 죄를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요, 예수께서 율법중 십계명은 한층 더 강화시켜 놓았기 때문에, 십계명을 공부를 하고 산상수훈을 공부하게 되면 좀 더 많이 죄가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십계명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면 알수록 성령께서는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를 더 잘 깨닫게 하신다는 기억하라. 고로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고 무엇을 회개해야 할지 잘 생각나지 않거들랑 즉시 십계명 강해(https://dongtanms.kr/board_CpCD51/47286)를 들어 공부하시고, 산상수훈의 강해를 들어 주님의 음성에 귀기울이시기를 강력하게 추천해본다.
또한 그분은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다 기억해낼 수 없으므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구원이 영원히 유지된다"고 하였다. 또한 "성령께서 한 번 얻은 구원을 취소되지 않도록 보증해주시기 때문"이란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성령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여 책망하심으로, 우리가 회개하도록 도와주시는 분이시지, 우리의 구원을 책임져 주시는 분이 결코 아니시다. 그분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보증해주시고 인치시는 분이신 것이지 우리가 얻을 구원을 우리가 잃어버리지 않도록 책임져주시는 분은 아니시다. 물론 성령께서는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우리를 책망하겨 회개하도록 돕는 일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끝내 성령의 책망을 거절하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성령께서도 우리가 죽을 때 우리를 떠나가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 성령께서는 좋으신 분이요, 우리를 도우라고 보내어진 분이시지만, 그분은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까지 구원을 베푸시는 분은 아니시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회개할 수 있도록 책망해주시는 분이시다. 그분이 결코 우리 대신 회개를 대신해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다시 말해,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회개해주지도 않으시는 분이지만, 그분의 책망 자체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의 책망을 듣고 회개할 때에 비로소 우리의 구원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7. 나오며
참으로 구원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구원에 관해 어쩌면 말 장난 하는 것도 같다. 하지만 복잡할 것은 없다. 오직 다음의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 즉 우리가 믿고 회개할 때에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하지만 그 구원이라도 영원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부주의로 우리가 얻은 영원한 구원을 우리가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과 회개로 얻을 구원을 죽는 날에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우리는 날마다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책망하실 때에 회개해야 한다. 회개만이 우리가 지은 죄를 씻어주는 유일한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죄용서를 받지 못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사람이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죄를 지었어도 죄용서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믿지 않아서요, 또한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아서다. 죄를 지어서 지옥가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어놓고도 회개하지 않아도 지옥가는 것이다. 아무쪼록 우리가 믿는 자라면 우리는 죽는 그 순간까지 죄를 회개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우리에게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아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니 말이다.
2019년 8월 11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