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에게는 사랑스러운 10명의 자식이 있었다. 그런데 욥은 하루 아침에 10명의 자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또한 갑자기 죽어버린 열 명의 아들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동물이야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겠지만 사람은 죽는다고 해도 그것이 끝이 아니니 말이다. 아무리 자식을 아끼고 사랑한다해도 부모가 항상 자식을 지킬 수는 없지 않은가! 욥은 당시에 자식에 대해 어떻게 했어야 옳았을까?
많은 설교자들은 하루 아침에 죽어버린 욥의 자식들이 천국에 갔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게 맞는 말일까? 당신은 그러한 주장이 근거가 있는지 한 번이라도 살펴보았는가? 누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무턱대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분별해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오늘 이 시간에는 욥의 신앙관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면서, 욥이 갖지 못한 한계와 욥의 자식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사실 우리에게 욥은 일종의 인내의 표상으로 알려져 있다(약5:11). 자기에게 불어닥친 고난을 온 몸으로 겪어낸 위인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욥은 사탄의 첫번째 시험에서는 이겨냈지만 두번째 시험에서는 그만 넘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욥에게 행해진 사탄의 첫번째 시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사탄이 욥의 모든 소유물을 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다. 사탄이 하도 욥을 하나님에게 참소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까닭없이 욥과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감싸고 돈다고 투덜대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욥을 시험해도 좋다고 허락하셨다. 단, 욥의 소유물만을 칠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그것이 욥이 받은 첫번째 시험이다. 욥은 당시 동방에서 제일 큰 부자였지만 그때 자신이 가진 모든 소유를 잃어버렸다. 그 많던 소와 양과 낙타와 나귀를 잃어버렸으며, 종들도 일어버렸으며, 심지어 자기의 10명의 자식도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흔들리지 않았다.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니 자신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뿐이라고 고백하였다(욥1:20~22).
하지만 욥의 인내는 거기까지였다. 욥에게 허락한 두번째 시험에서 욥은 그만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해버렸기 때문이다. 욥이 당한 두번째 시험은 사탄이 그의 몸을 치는 것이었다. 사탄이 그의 뼈와 살을 치자, 욥은 그의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기 시작했다. 3일만에 그의 몸은 부어올랐고 거기에서 진물이 흘러나왔는데 파리가 와서 똥을 누는 바람에 그 몸에는 구더기가 끓었다(욥7:5). 그러자 그는 질그릇 조각으로 자신의 몸을 긁적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욥의 아내는 욥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버리라"(욥2:10). 그래도 욥은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화도 받지 않겠소"라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욥의 이러한 고백은 딱 일주일간만 유효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욥은 자기의 생일부터 저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욥3:1). 그리고 왜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면서 자기를 빨리 죽여달라고 불평했다(욥7:11). 사실 욥은 이 일이 있기 전까지 율법 앞에서 흠없는 삶을 살아왔었다. 그는 당시 율법이 성문화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며 그말씀대로 살아왔던 자였다.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를 돌보지 않은 일이 없었고, 버려진 이름없는 시체를 치워주기까지도 했다. 그리고 어떤 여자에게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욥31장). 그리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 희생도 아끼지 않았다. 자식들이 생일잔치에 혹 포도주를 먹고 실수하지 않았나 하여, 잔치가 끝나면 곧바로 제사까지 드려주었기 때문이다(욥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언제나 평안함이 없었다. 기쁨이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다 하더라도 혹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행동을 하여서 자기가 현재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 즉 부요의 축복과 자녀의 축복과 형통의 축복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늘 염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욥3:25~26). 그는 한 마디로 율법주의적인 신앙을 갖춘 전형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욥의 한계였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율법주의적인 신앙을 갖춘 자는 부지런히 주의 일을 행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지만 그에게는 평안이 없다. 기쁨이 없다. 잘 때도 두려움을 가득 안고 잠을 잔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보아서 혹시 잘못된 것이 있으면 어찌하나 항상 생각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혹 이런 사람이 아닌가?
욥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정말 진실했고 성실했으며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자였다. 하지만 그가 한 가지 몰랐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 어떠한 잘못을 했어도 하나님께 진실로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죄를 깨끗히 용서해주신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그는 '회개'를 몰랐던 것이다.
그러므로 욥은 율법대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몸소 실천하고 있었고 그것을 자식에게 가르쳐 주기는 했지만 정작 자식들에게 회개를 가르쳐 주지는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10명의 자식이 잔치를 벌이다가 그만 치어져 죽은 것이다. 큰 바람이 그 집의 네 귀퉁이를 치니 집이 무너져 한꺼번에 10명의 자식들이 죽게 된 것이다. 하지만 죽어가면서도 그들은 회개하지를 못했다. 죽을 때의 회개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순간에도 그들은 자신의 아버지께서 와서 자기들을 위해 제사를 드려줄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 아버지 욥은 그 자리에 없었고 자식들은 죽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들의 영혼은 과연 어찌 되었을까?
그래도 욥기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누구든지 기도줄을 끝까지 놓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건지신다는 사실이다. 잘못하면 제사를 드릴 줄 알았던 욥은 자신이 하나님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정작 회개할 줄을 몰랐다. 하지만 욥은 기도줄을 놓지 않고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주신다. 그때 욥은 비로소 자신의 지식의 한계와 율법주의자였던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입술을 가리며 재 가운데서 회개한다. 왜 그랬을까? 자신이 인생의 모든 원인과 결과들을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보니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회개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의 죄 즉 그의 교만과 원망과 불평의 죄를 용서해주셨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율법주의에 갇혀지낼 때에 낳았던 10명의 자식들, 잔치를 즐기다가 하루 아침에 죽은 10명의 자식들은 되돌릴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 자식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언제까지 자식들을 지켜낼 수는 없지 않는가? 그러므로 이제는 자식들에게 회개를 가르쳐주어야 한다. "너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언제 어떻게 불어닥칠 재난에 어떤 화를 당할지 알 수 없단다"라고 말이다. 욥은 많은 것을 알고 있는듯 했지만 정작 중요한 한 가지는 알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 죄를 용서해주신다는 사실을 말이다. 욥은 10명의 자식을 잃고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신도 혹 욥과 같은 사람은 아닌가 자문해보라. 자식을 대신하여 제사를 드릴 것이 아니라 자식에게 회개를 가르쳐주는 부모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자식이 자신의 영혼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