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구원과 멸망은 어느 누가 말한대로 만세전에 예정된 대로 되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자유의지의 선택의 여지가 거기에도 들어가는가? 왜 우리는 구원을 전적으로 은혜라고 말하는가? 그러면서도 왜 우리는 "믿으라, 회개하라"고도 말해야 하는가? 우리에게 알려진 이중예정론은 과연 성경적인가? 여기, 이중예정론은 마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심판에서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를 주목해보자.
1. 들어가며
예정론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려는 노력의 결과의 하나다. 그러므로 참으로 소중한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정론이 어느새부턴가 만세전 개인구원 예정론으로 흘러가 버렸다. 그리하여 그것은 이제는 운명론처럼 변해버렸다. 그렇다면 진정 과연 개인구원이 만세전에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살 천국집이 이미 만세전에 준비된 상태에서 우리가 이 세상에 보내어진 것인가? 만약 하나님께서 한 사람은 '구원'으로 예정해놓으시고, 만약 한 사람은 '멸망'으로 예정해 놓으셨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판을 집행하실 수가 있으실까? 심판이란 우리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 책임을 물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나와있는 예정론과 우리가 실제 믿고 있는 예정론이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심판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과연 무엇을 예정하셨으며, 우리가 그 예정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만세전에 나 자신인 아무개를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작정하고 예정해놓으셨다고 믿는 분들은 꼭 이 메시지를 끝까지 들어보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2. 사람이 받는 '구원(salvation)'은 '구속(redemption)'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사람이 구원을 받는 데에는 2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우리를 위한 구속의 과정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온 인류의 죄값을 속량하시기 위해 죄없으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피흘려 죽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피흘림이 없다면 사람이 죄사함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롬6:23, 히9:22). 그러므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구속은 인간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로 이러한 구속의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된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들이든 예수께서 흘리신 보혈은 모든 인류의 속죄를 위한 피흘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대신하여) 자기[자신]을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이니라(딤전2:6)' 그러나 구원에는 또 하나의 과정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께서 이미 2천년전에 골고다 언덕에서 흘리신 속죄의 제사를 믿는 믿음과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한 회개의 과정이 필요하다. 아무리 예수께서 속죄제사를 치렀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믿지 않는 자에게 속죄의 효력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천년전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사 치르신 속죄제사를 나를 비롯한 모든 인류의 죄들을 없애기 위한 속죄제사였다고 믿고 동시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면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요일1:9).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라고 했다. 그렇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죄는 사함 받을 수가 없으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될 수도 없다. 하지만 문제는 예수님의 구속의 사건을 자신의 구원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데에 있다. 예수님의 속죄제사를 믿기만 하면 자신이 구원받은 줄로 아는 것이다. 만야 그것이 옳은 것이라면 모든 인류는 다 구원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의 속죄제사는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예수께서 속죄제사를 치렀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그러한 효력을 지닌 속죄제사였음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속죄의 은총이 베풀어지지 않으며, 자기의 죄를 자백하지 않는 한 사람의 죄는 씻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만세전에 예정된 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원자로 이 땅에 보내어진 것을 믿고 그분의 골로다 언덕의 희생이 나의 죄를 위한 속죄제사였음을 믿고 회개할 때에 성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일종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사실을 믿음으로 구원의 노정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고, 회개를 다 했을 때 그 노정을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는 구원의 노정에서 결국 탈락하게 되는 것이다.
3.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예정론은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마련해두신 인류 구원의 예정이란 어떤 것인가?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인류 구원에 관한 예정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엡1:3-6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로 인하여 인류를 자기의 아들들이자 상속자가 되게 하시기로 예정하신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예정론'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예정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고 불멸하는 존재로 지어진 존재는 오직 천사와 인간 단 둘 뿐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하나님의 아들들로 예정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예정해 놓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아닌 천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결단코 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에베소서 3장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구원 예정은 인류를 종족으로 나눌 때에 유대인들만을 그위하여 렇게 작정하신 것이 아니다(엡3:6). 그들이 유대인들이 되었든지 이방인들이 되었든지 상관없이 누구나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자를 구원하기로 예정해 놓으신 것이다(요3:16, 계22:17).
4. 만세전 개인 구원 예정론은 과연 성경에 나오는가?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확실히 알아 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예정은 인류의 개인을 위한 구원 예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개인이 아니라 인류(사람)를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는 일종의 공동체 예정인 것이다. 즉 천사가 아니라 인간을 그렇게 하시겠다는 인류 구원 예정인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예정을 잘못 해석한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예정을 어떤 개인을 위한 구원 예정으로 바꾸어 놓았고, 동시에 이중 예정으로까지 만들어 놓았다. 왜냐하면 이중 예정론은 이런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어떤 개인은 구원으로 예정하시고, 어떤 개인은 멸망으로 예정해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어떤 특정한 개인을 구원하기로 예정해 놓으셨다는 말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오직 인류를 그렇게 하시겠다고 작정하셨을 뿐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롬9~11장에서, 야곱을 구원하기로, 에서는 버리기로 예정하신 것이 아니냐고 주장할른지 모르겠지만, 성경에는 그러한 말씀이 없다. 오직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두 사람이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예지예정일 뿐이다. 그것은 구원 예정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개인 예정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에 대한 사역 예정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특별한 부르심과 사명이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천국에서 이미 그에게 명을 주어서 이 땅에 보내시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우는 많지는 않다. 그러나 이것은 다 개인에 대한 사역 예정인 것이지 개인 구원 예정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한다. 성경적인 예정만을 믿어야 한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예정'은 어떤 개인을 구원이나 멸망으로 예정해 놓으신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정이란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로 보내셨다는 것을 믿고, 그분이 치르신 골고다의 희생이 인류의 속죄를 위한 희생제사였음을 믿으며, 자신의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날마자 자범죄들을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구원 예정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예정이란 개인 구원 예정 혹은 개인 멸망 예언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한 구원 예정이요, 믿고 회개하는 자로 하여금 구원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예정인 것이다.
5. 만세전 개인 구원 예정 및 개인 멸망 예정이 옳은 것이라고 한다면 발생하는 일은 무엇인가?
만약에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구원으로 예정해 놓으시고, 어떤 사람은 멸망으로 예정해 놓으셨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아주 잔인하고 편협스럽고 나쁜 하나님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어떤 사람은 구원으로 예정해 놓으시고 어떤 사람은 멸망으로 예정해 놓으셨다면, 그러한 하나님은 폭군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구원을 당신이 이미 정해놓고는 그렇게 끌고 가시며 그것을 절대 변동이 없게 만드시는 분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맞다면, 우리 중 누군가가 아무리 믿고 회개하여 구원받고 싶다고 주님께 구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만세전에 구원으로 예정해 놓지 않았다면 그의 모든 수고와 눈물 곧 그렇게 믿으려 하고 회개하는 모든 일이 소용이 없는 일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누구는 구원으로 예정하시고 누구는 멸망으로 예정해 놓으셨다면 그것은 매우 공의롭지 못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판하시겠다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의지가 있기에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어찌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하나도 없는데 우리를 불러다놓고 심판을 하시겠다고 하시겠는가? 마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심판을 보라. 당신이 이미 결정해놓은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인가 아니면 그들이 행한 것에 대한 심판인가? 또한 만약 정말로 이중 예정론이 맞는 것이라고 한다면 누구든지 구원받으라고 초청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사람이 구원이 예정된 대로 될 터인데, 만약 그렇게 했다가 예정에는 없는데 덜컥 예수님을 믿기라도 하겠다고 하는 날에는 큰 일 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망으로 예정해 놓았는데, 그가 믿겠다고 하면 하나님의 예정이 허물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누구나 구원으로 초청해서도 아니 된다. 아니 전도해서도 아니 된다. 또한 만약 이중예정론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굳이 믿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말씀을 들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리고 회개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믿게 하실 것이고 회개시킬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그러면 "주 예수를 믿으라"고 권먼해서도 아니 될 것이며, 또한 "회개하라"고 외쳐서도 아니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원 예정이 존재하려면 타락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죄없는 첫 아담이 죄를 지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어서 죄를 짓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과연 그때 하나님께서 "아담아, 어서 죄를 지어라. 그래야 내가 너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 수 있지 않겠니?"라고 하셨겠는가? 그렇다면 마귀에게 상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죄의 조성자라고 하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아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분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여 사람이 일찍이 구원과 멸망으로 정해놓고 강요하시는 그러한 분이 결코 아니시다. 그분은 모든 인류를 위해 피를 흘려 죽으셨으며, 모두가 구원을 얻도록 초청하고 계신다. 다만 인간이 그것을 거부하고 회개하지 않아서 구원을 받지 못할 뿐이다.
6.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심판이 말해주는 예정론은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성도를 먼저 불러 심판하는 양과 염소의 심판의 비유에서 우리는 어떤 예정론을 발견할 수 있는가? 마태복음 25:31~46에는 인자가 모든 민족을 불러놓고 심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모든 민족은 세상 모든 민족의 사람들 중에(유대인도 포함된) 모든 믿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이 심판은 불신자를 심판하는 백보좌 심판이 아니라 먼저 믿는 자들을 심판하는 심판이기 때문이다(마25:37,44, 벧전4:17~18, 고후5:10, 고전3:12~15). 그때에 왕은 자신의 보좌에 앉아서 사람들을 둘로 가르는데, 양은 주님의 오른편에서부터 서게 하고, 염소[새끼]는 주님의 왼편에서부터 서게 하신다. 그리고 오른편에 있는 양들에게는 "내 아버지에게 이미 복을 받은 채 있는 자들이여, 너희는 창세(세상의 창설)로부터(아포)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채 있는 왕국을 단번에 상속받으라"고 말씀하신다(마25:34). 그리고 왼편에 있는 염소[새끼]들에게는 "이미 저주를 받은 채 있는 자들이여, 너희는 나로부터(아포)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채 있는 영원한 불속으로 계속 들어가고 있어라."라고 말씀하신다(마25:41). 그런데 이때 이들이 양쪽으로 서게 된 이유는 믿음과 회개에 따른 열매들이 그들에게 있었나 없었나를 가지고 판단하신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언제 하나님의 왕국이 누구를 위해 그리고 언제 준비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마25:34). 만약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을 이미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하셨다면, 이미 만세전에 준비된 그 천국집에 들어갈 사람에게 그 집을 주시는 것이 맞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천국의 공간은 이미 예비되어 있지만 그 사람이 구원받은 후에 점차로 그 집이 준비된다면, 그것은 만세전 개인 구원 예정이 틀린 것이다. 그러면, 마25:34의 말씀은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 그것은 구원받을 사람이 들어갈 집이 만세전에 이미 예비되어 있다고 말씀하지 않고, 창세로부터 예비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창세의 시기 곧 세상의 창설은 그 시기 아네에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창세(세상의 창설)로부터"에 나오는 전치사가 "에크"가 아니라 "아포"가 쓰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여기에 쓰이고 있는 전치사가 자기를 포함하고 있는 출발이라면 "에크"이겠지만, 자기를 포함하지 않는 출발로서 "아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과연 멸망받을 자를 미리 만세전에 예정해 놓으셨는가 하는 것이다. 양과 염소의 심판의 비유에서 우리는 우리 주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영원한 불못이 비록 외식하는 자들로서 형식적인 믿음과 가졌던 염소들이 들어갈 장소라 할지라도 그 장소는 처음부터 이들을 처벌하기 위한 장소로서 준비된 것이기 아니기 때문이다. 염소들이 들어갈 그 영원한 불은 결코 사람들을 위해 만드신 것이 아니고, 다만 타락한 마귀와 그의 천사들(귀신들)을 위한 형벌의 장소로서 준비해 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멸망받을 인간를 정해놓으시고 또한 그들에게 형벌을 주실 장소를 불못을 만드신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기를 바라시며 진리의 온전한 지식에 이르기를 바라고 계심을 알라(딤전2:4).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세상 길로 가며 죄악의 길로 가고 마귀를 따라가기 때문에,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예비된 불못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을 지옥보내기 위해 지옥을 만들어놓고 계신 것이 아니다. 그런데 만세전 개인 구원 예정이나 만세전 개인 멸망 예정은 하나님을 나쁘고 포악하고 불공정한 하나님으로 만들어 간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만세전부터 불못을 만들어 놓고는, 그곳에 갈 자도 당신이 미리 정하시고, 그래서 사람들의 일부를 그리고 몰고가시려 하시는 분이 되기 때문이다. 아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코 그러한 잔인한 하나님이 아니시다.
7. 나오며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파트가 바로 예정론 파트다. 만세전 개인 예정론이 마치 성경에 있는 것인량 믿고는, 자신이 지금 예수님을 믿고 있고 또한 교회에 다니고 있으니 자신은 이미 만세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예정론을 믿고 따르게 되면 과연 그 사람이 정신차리고 신앙생활 하겠는가? 이러한 자가 날마다 죄와 싸우겠으며, 죄를 지은들 즉시 즉시 회개하겠는가? 그는 "하나님께서 만일 나를 구원하기로 예정해 놓으셨다면 언젠가는 내가 지은 죄들을 회개시키겠지" 하면서 기다리거나 회개를 뒤로 미뤄 안일하게 대처할 것이 뻔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자신을 멸망으로 들어가게 하는 줄도 모른 채 말이다. 아니다. 그것은 잘못된 교리에 철저하게 속는 것이다. 왜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재림을 연기하고 계시겠는가? 그것은 한 사람이라고 더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그렇게 하고 계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말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그렇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 구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한 번만 진실로 그렇게 하면 되는 일이겠지만, 지은 죄들을 회개하는 일은 우리가 일평생 지속되어야 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넋놓고 회개하지 않고 있으니 그분이 지금도 얼마나 안타까워하시겠는가? 구원은 믿고 회개할 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구원은 그 순간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일종의 여정과도 같은 것이다. 100m달리기와 같다고 보시기 바란다. 끝까지 경주를 마쳐야 하는 것이다. 끝날까지 믿음을 잃지 않아야 하고, 자신을 죽인다고 해도 믿음의 지조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은 죄들을 깨끗히 용서받아야 하는 것이다. 자기의 두루마기를 빨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는 더러운 신부를 자신의 신부로 받아주지 않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미 믿음을 갖고 있으나 중간에 바람이 나서 다른 외간 남자를 만나고 있는 자를 곧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에 눈이 돌아간 자를 주님은 결코 신부로 맞이들이지 않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1장 8절은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비겁한)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불신)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그렇다. 핍박이 두려워 비겁하게 주님을 부인하는 자들이나 믿지 않는 불신자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도 우상숭배하거나 음행하거나 거짓말하는 등의 범죄자들은 결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거룩한 신부로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결국 불못에서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 지금이라도 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자는 점차 하나님의 구원 안으로 예정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는 자는 버려져서 바깥 어두운데로 쫓겨나거나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서 거기서 슬피 울며 자기를 한탄하면서 이를 갈게 될 것이다. 왜 그때 성령의 음성을 따르지 않았을까, 왜 그때 그 목회자의 말을 듣고 돌이키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2021년 09월 12일(주일)
정병진목사
수정중)사람의 구원과 멸망은 어느 누가 말한대로 만세 전에 예정된 대로 되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자유 의지의 선택의 여지가 거기에도 들어가는가? 왜 우리는 구원을 전적으로 은혜라고 말하는가? 그러면서도 왜 우리는 '믿으라, 회개하라'고도 말해야 하는가? 우리에게 알려진 이중예정론은 과연 성경적인가? 여기, 이중예정론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심판에서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를 주목해보자.
1. 들어가며
예정론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려는 노력의 결과의 하나다. 그러므로 참으로 소중한 신앙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정론이 어느새부턴가 만세 전 개인 구원 예정론으로 흘러가 버렸다. 그리하여 그것은 이제는 운명론처럼 변해버렸다. 그렇다면 진정 과연 개인 구원이 만세 전에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살 천국 집이 이미 만세 전에 준비된 상태에서 우리가 이 세상에 보내어진 것인가? 만약 하나님께서 한 사람은 '구원'으로 예정해 놓으시고, 만약 한 사람은 '멸망'으로 예정해 놓으셨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판을 집행하실 수가 있으실까? 심판이란 우리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 책임을 물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나와 있는 예정론과 우리가 실제 믿고 있는 예정론이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심판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과연 무엇을 예정하셨으며, 우리가 그 예정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나 자신인 아무개를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작정하고 예정해 놓으셨다고 믿는 분들은 꼭 이 메시지를 끝까지 들어 보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2. 사람이 받는 '구원(salvation)'은 '구속(redemption)'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사람이 구원을 받는 데에는 2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우리를 위한 구속의 과정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온 인류의 죄값을 속량하시기 위해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피 흘려 죽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피 흘림이 없다면 사람이 죄사함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롬6:23, 히9:22). 그러므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구속은 인간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속의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된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예수께서 흘리신 보혈은 모든 인류의 속죄를 위한 피 흘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대신하여) 자기[자신]을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이니라(딤전2:6)" 그러나 구원에는 또 하나의 과정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께서 이미 2천 년 전에 골고다 언덕에서 흘리신 속죄의 제사를 믿는 믿음과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한 회개의 과정이 필요하다. 아무리 예수께서 속죄 제사를 치렀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믿지 않는 자에게 속죄의 효력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천 년 전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사 치르신 속죄 제사를 나를 비롯한 모든 인류의 죄들을 없애기 위한 속죄 제사였다고 믿고 동시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면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요일1:9).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라고 했다. 그렇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죄는 사함 받을 수가 없으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될 수도 없다. 하지만 문제는 예수님의 구속의 사건을 자신의 구원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데에 있다. 예수님의 속죄 제사를 믿기만 하면 자신이 구원받은 줄로 아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옳은 것이라면 모든 인류는 다 구원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의 속죄 제사는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예수께서 속죄 제사를 치렀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그러한 효력을 지닌 속죄 제사였음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속죄의 은총이 베풀어지지 않으며, 자기의 죄를 자백하지 않는 한 사람의 죄는 씻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만세 전에 예정된 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원자로 이 땅에 보내어진 것을 믿고 그분의 골고다 언덕의 희생이 나의 죄를 위한 속죄 제사였음을 믿고 회개할 때에 성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일종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사실을 믿음으로 구원의 노정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고, 회개를 다 했을 때 그 노정을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는 구원의 노정에서 결국 탈락하게 되는 것이다.
3.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예정론은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마련해 두신 인류 구원의 예정이란 어떤 것인가?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인류 구원에 관한 예정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엡1:3-6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로 인하여 인류를 자기의 아들들이자 상속자가 되게 하시기로 예정하신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예정론'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예정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고 불멸하는 존재로 지어진 존재는 오직 천사와 인간 단 둘 뿐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하나님의 아들들로 예정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예정해 놓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아닌 천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결단코 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에베소서 3장을 읽어 보면, 하나님의 구원 예정은 인류를 종족으로 나눌 때에 유대인들만을 위하여 그렇게 작정하신 것이 아니다(엡3:6). 그들이 유대인들이 되었든지 이방인들이 되었든지 상관없이 누구나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자를 구원하기로 예정해 놓으신 것이다(요3:16, 계22:17).
4. 만세 전 개인 구원 예정론은 과연 성경에 나오는가?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확실히 알아 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예정은 인류의 개인을 위한 구원 예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개인이 아니라 인류(사람)를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는 일종의 공동체 예정인 것이다. 즉 천사가 아니라 인간을 그렇게 하시겠다는 인류 구원 예정인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예정을 잘못 해석한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예정을 어떤 개인을 위한 구원 예정으로 바꾸어 놓았고, 동시에 이중 예정으로까지 만들어 놓았다. 왜냐하면 이중 예정론은 이런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어떤 개인은 구원으로 예정하시고, 어떤 개인은 멸망으로 예정해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어떤 특정한 개인을 구원하기로 예정해 놓으셨다는 말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오직 인류를 그렇게 하시겠다고 작정하셨을 뿐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로마서 9~11장에서, 야곱을 구원하기로, 에서는 버리기로 예정하신 것이 아니냐고 주장할른지 모르겠지만, 성경에는 그러한 말씀이 없다. 오직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두 사람이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예지예정일 뿐이다. 그것은 구원 예정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개인 예정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에 대한 사역 예정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특별한 부르심과 사명이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천국에서 이미 그에게 사명을 주어서 이 땅에 보내시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우는 많지는 않다. 그러나 이것은 다 개인에 대한 사역 예정인 것이지 개인 구원 예정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한다. 성경적인 예정만을 믿어야 한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예정'은 어떤 개인을 구원이나 멸망으로 예정해 놓으신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정이란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로 보내셨다는 것을 믿고, 그분이 치르신 골고다의 희생이 인류의 속죄를 위한 희생 제사였음을 믿으며,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날마다 자범죄들을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구원 예정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예정이란 개인 구원 예정 혹은 개인 멸망 예언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한 구원 예정이요, 믿고 회개하는 자로 하여금 구원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예정인 것이다.
5. 만세 전 개인 구원 예정 및 개인 멸망 예정이 옳은 것이라고 한다면 발생하는 일은 무엇인가?
만약에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구원으로 예정해 놓으시고, 어떤 사람은 멸망으로 예정해 놓으셨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아주 잔인하고 편협스럽고 나쁜 하나님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어떤 사람은 구원으로 예정해 놓으시고 어떤 사람은 멸망으로 예정해 놓으셨다면, 그러한 하나님은 폭군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구원을 당신이 이미 정해 놓고는 그렇게 끌고 가시며 그것을 절대 변동이 없게 만드시는 분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맞다면, 우리 중 누군가가 아무리 믿고 회개하여 구원받고 싶다고 주님께 구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만세 전에 구원으로 예정해 놓지 않았다면 그의 모든 수고와 눈물 곧 그렇게 믿으려 하고 회개하는 모든 일이 소용이 없는 일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누구는 구원으로 예정하시고 누구는 멸망으로 예정해 놓으셨다면 그것은 매우 공의롭지 못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판하시겠다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 의지가 있기에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어찌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하나도 없는데 우리를 불러다 놓고 심판을 하시겠다고 하시겠는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심판을 보라. 당신이 이미 결정해 놓은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인가 아니면 그들이 행한 것에 대한 심판인가? 또한 만약 정말로 이중 예정론이 맞는 것이라고 한다면 누구든지 구원받으라고 초청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사람의 구원이 예정된 대로 될 터인데, 만약 그렇게 했다가 예정에는 없는데 덜컥 예수님을 믿기라도 하겠다고 하는 날에는 큰일 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망으로 예정해 놓았는데, 그가 믿겠다고 하면 하나님의 예정이 허물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누구나 구원으로 초청해서도 아니 된다. 아니 전도해서도 아니 된다. 또한 만약 이중예정론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굳이 믿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말씀을 들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리고 회개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믿게 하실 것이고 회개시킬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그러면 "주 예수를 믿으라"고 권면해서도 아니 될 것이며, 또한 "회개하라"고 외쳐서도 아니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원 예정이 존재하려면 타락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죄없는 첫 아담이 죄를 지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어서 죄를 짓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과연 그때 하나님께서 "아담아, 어서 죄를 지어라. 그래야 내가 너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 수 있지 않겠니?"라고 하셨겠는가? 그렇다면 마귀에게 상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죄의 조성자라고 하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아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분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여 사람을 일찍이 구원과 멸망으로 정해 놓고 강요하시는 그러한 분이 결코 아니시다. 그분은 모든 인류를 위해 피를 흘려 죽으셨으며, 모두가 구원을 얻도록 초청하고 계신다. 다만 인간이 그것을 거부하고 회개하지 않아서 구원을 받지 못할 뿐이다.
6.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심판이 말해 주는 예정론은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성도를 먼저 불러 심판하는 양과 염소의 심판의 비유에서 우리는 어떤 예정론을 발견할 수 있는가? 마태복음 25:31~46에는 인자가 모든 민족을 불러 놓고 심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모든 민족은 세상 모든 민족의 사람들 중에(유대인도 포함된) 모든 믿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이 심판은 불신자를 심판하는 백보좌 심판이 아니라 먼저 믿는 자들을 심판하는 심판이기 때문이다(마25:37,44, 벧전4:17~18, 고후5:10, 고전3:12~15). 그때에 왕은 자신의 보좌에 앉아서 사람들을 둘로 가르는데, 양은 주님의 오른편에서부터 서게 하고, 염소[새끼]는 주님의 왼편에서부터 서게 하신다. 그리고 오른편에 있는 양들에게는 "내 아버지에게 이미 복을 받은 채 있는 자들이여, 너희는 창세(세상의 창설)로부터(아포)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채 있는 왕국을 단번에 상속받으라"고 말씀하신다(마25:34). 그리고 왼편에 있는 염소[새끼]들에게는 "이미 저주를 받은 채 있는 자들이여, 너희는 나로부터(아포)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채 있는 영원한 불속으로 계속 들어가고 있어라."라고 말씀하신다(마25:41). 그런데 이때 이들이 양쪽으로 서게 된 이유는 믿음과 회개에 따른 열매들이 그들에게 있었나 없었나를 가지고 판단하신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왕국이 누구를 위해 그리고 언제 준비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마25:34). 만약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을 이미 만세 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하셨다면, 이미 만세 전에 준비된 그 천국 집에 들어갈 사람에게 그 집을 주시는 것이 맞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천국의 공간은 이미 예비되어 있지만 그 사람이 구원받은 후에 점차로 그 집이 준비된다면, 그것은 만세 전 개인 구원 예정이 틀린 것이다. 그러면, 마태복음 25:34의 말씀은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 그것은 구원받을 사람이 들어갈 집이 만세 전에 이미 예비되어 있다고 말씀하지 않고, 창세로부터 예비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창세의 시기 곧 세상의 창설은 그 시기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창세(세상의 창설)로부터'에 나오는 전치사가 '에크'가 아니라 '아포'가 쓰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여기에 쓰이고 있는 전치사가 자기를 포함하고 있는 출발이라면 '에크'이겠지만, 자기를 포함하지 않는 출발로서 '아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과연 멸망받을 자를 미리 만세 전에 예정해 놓으셨는가 하는 것이다. 양과 염소의 심판의 비유에서 우리는 우리 주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영원한 불못이 비록 외식하는 자들로서 형식적인 믿음과 가졌던 염소들이 들어갈 장소라 할지라도 그 장소는 처음부터 이들을 처벌하기 위한 장소로서 준비된 것이기 아니기 때문이다. 염소들이 들어갈 그 영원한 불은 결코 사람들을 위해 만드신 것이 아니고, 다만 타락한 마귀와 그의 천사들(귀신들)을 위한 형벌의 장소로서 준비해 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멸망받을 인간를 정해 놓으시고 또한 그들에게 형벌 주실 장소로 불 못을 만드신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기를 바라시며 진리의 온전한 지식에 이르기를 바라고 계심을 알라(딤전2:4).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자유 의지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세상 길로 가며 죄악의 길로 가고 마귀를 따라가기 때문에,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예비된 불 못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을 지옥보내기 위해 지옥을 만들어 놓고 계신 것이 아니다. 그런데 만세 전 개인 구원 예정이나 만세 전 개인 멸망 예정은 하나님을 나쁘고 포악하고 불공정한 하나님으로 만들어 간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불 못을 만들어 놓고는, 그곳에 갈 자도 당신이 미리 정하시고, 그래서 사람들의 일부를 그리로 몰고 가시려 하시는 분이 되기 때문이다. 아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코 그러한 잔인한 하나님이 아니시다.
7. 나오며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파트가 바로 예정론 파트다. 만세 전 개인 예정론이 마치 성경에 있는 것인 양 믿고는, 자신이 지금 예수님을 믿고 있고 또한 교회에 다니고 있으니 자신은 이미 만세 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예정론을 믿고 따르게 되면 과연 그 사람이 정신 차리고 신앙생활 하겠는가? 이러한 자가 날마다 죄와 싸우겠으며, 죄를 지은들 즉시 즉시 회개하겠는가? 그는 '하나님께서 만일 나를 구원하기로 예정해 놓으셨다면 언젠가는 내가 지은 죄들을 회개시키겠지' 하면서 기다리거나 회개를 뒤로 미뤄 안일하게 대처할 것이 뻔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자신을 멸망으로 들어가게 하는 줄도 모른 채 말이다. 아니다. 그것은 잘못된 교리에 철저하게 속는 것이다. 왜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재림을 연기하고 계시겠는가? 그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그렇게 하고 계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말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그렇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 구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한 번만 진실로 그렇게 하면 되는 일이겠지만, 지은 죄들을 회개하는 일은 우리가 일평생 지속되어야 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넋 놓고 회개하지 않고 있으니 그분이 지금도 얼마나 안타까워하시겠는가? 구원은 믿고 회개할 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구원은 그 순간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일종의 여정과도 같은 것이다. 100m달리기와 같다고 보시기 바란다. 끝까지 경주를 마쳐야 하는 것이다. 끝날까지 믿음을 잃지 않아야 하고, 자신을 죽인다고 해도 믿음의 지조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은 죄들을 깨끗이 용서받아야 하는 것이다. 자기의 두루마기를 빨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는 더러운 신부를 자신의 신부로 받아 주지 않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미 믿음을 갖고 있으나 중간에 바람이 나서 다른 외간 남자를 만나고 있는 자를 곧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에 눈이 돌아간 자를 주님은 결코 신부로 맞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1장 8절은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비겁한)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불신)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그렇다. 핍박이 두려워 비겁하게 주님을 부인하는 자들이나 믿지 않는 불신자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도 우상 숭배하거나 음행하거나 거짓말하는 등의 범죄자들은 결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거룩한 신부로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결국 불 못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 지금이라도 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자는 점차 하나님의 구원 안으로 예정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는 자는 버려져서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거나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서 거기서 슬피 울며 자기를 한탄하면서 이를 갈게 될 것이다. 왜 그때 성령의 음성을 따르지 않았을까, 왜 그때 그 목회자의 말을 듣고 돌이키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2021년 09월 12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