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신앙고백은 무엇일까? 그것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으로 알려진 2가지 신앙고백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이다(마16:16). 하지만 이러한 신앙고백만으로 우리의 신앙고백은 과연 충분한 것일까? 그동안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사람이 구원받기에 충분한 신앙고백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고백은 곧 교회의 기초가 된다고까지 말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견해는 바른 견해일까? 마16:18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반석인 자기자신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말씀하셨다(마16:18, 고전10:4). 그러므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예수님에 대한 완전한 신앙고백을 해야 한다.
우선 우리가 일차적으로 고백해야 할 신앙고백은 베드로의 2가지 신앙고백이다(마16:16). 그리고 거기에다가 2가지 신앙고백이 더 필요하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다른 2가지의 신앙고백을 또한 기뻐받으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도마가 했던 신앙고백이다(요20:28). 도마는 그때 이렇게 고백했다. "당신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그 말이 그 말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는 분도 있으시겠지만, 그것은 아니다. 도마의 신앙고백은 베드로의 신앙고백과는 달리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상당히 진전된 신앙고백이기 때문이다. 자, 오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아울러 왜 도마의 신앙고백이 필요한지를 살펴보자. 그리고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도마의 신앙고백을 합친 완전한 신앙고백을 통하서 우리가 어떤 혜택을 받게 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도마의 신앙고백의 차이에 대해서 살펴보자. 제일 처음으로 이 두가지 신앙고백은 예수께서 사람이실 때에의 신앙고백과 예수께서 하나님이실 때의 신앙고백이라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 전의 신앙고백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이었다고 한다면, 도마의 신앙고백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의 행한 그의 신앙고백이라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 전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어떠했는가? 그것은 그가 예수님의 3년반동안의 공생애를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얻은 신앙고백이었다. 그리고 그것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깨닫게 해주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신앙고백도 귀하다. 하지만 이러한 신앙고백은 예수께서 사람으로서 이 땅에서 가진 직책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언급함으로써 그분이 사람이셨지만 죄없는 분이심을 드러내주고 있다. 하지만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도마가 고백했던 신앙고백은 예수님을 사람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도마의 신앙고백은 예수께서 사람으로서 사역을 다 마치시고 난 후 예수께서 원래부터 가지셨던 본성이 무엇인지를 드러내주는 신앙고백이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님에 대해서 고백했던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사람이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었다. 하지만 도마의 신앙고백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도마는 왜 부활하신 후에 자신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의 고백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도마는 먼저 부활하신 후의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했다. 여기서 유대인이었던 도마가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해 그가 대단히 진전된 신앙고백을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유대인에게 있어서 주님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으시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여호와 외에 다른 존재를 결코 주님(히, 아도나이)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것이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마를 그것을 아주 거리낌이 없이 했다는 것은 그가 이미 예수님을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 계시되었던 여호와로 인식했다는 것을을 의미한다. 우리가 신약성경을 읽으면서 발견할 수 있는 놀라운 사실은 신약성경에는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이름이엇던 '여호와'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일컫지 않기 위한 이유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유대인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 '여호와'라는 이름 대신에, 그분을 '주님(히, 아도나이)'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신약성경에는 '여호와'라는 단어 대신에 '주'라는 명칭이 그대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도마가 예수님을 '나의 주님' 곧 '나의 아도나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도마가 예수님을 여호와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예수님은 아도나이시다. 예수님은 구약시대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언약을 맺으셨던 바로 그 여호와이시다. 그리고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과 시내산에서 계약을 체결했던 바로 그 여호와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는 '여호와'라는 이름 대신에 모두가 다 '주님'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유대인들이라도 예수님을 칭할 때에 '주님'이라는 명칭을 주저없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에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던 그 여호와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사실이 정확하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있어서도 예수님은 "주님(히, 아도나이)"이며, 구약성경에 나오는 그 여호와 하나님인가 아닌가?
뿐만 아니라 도마는 부활하시어 자신 앞에 나타난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도 고백했다. 구약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예수님을 '엘로힘'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마가 예수님을 나의 엘로힘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것은 도마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단지 사람으로서 그리스도가 아니라 하나님으로서 전능자요 창조주이심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 엘로힘이라는 명칭은 하나님을 전능자요 창조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로 계시하기 전까지, 하나님은 자신을 '엘로힘'이라고 하셨다. 특히 창세기를 읽어보면, 엘로힘이라는 의미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창1:1~2:3을 보라. 거기에는 여호와라는 명칭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 부분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히, 엘로힘)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곧 그들이 예수님을 전능자요 창조주로 고백했다는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공생애를 사셨을 때에도 이미 자신이 전능자요 창조주이심을 드러내셨다. 그분의 말씀 한 마디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지 않았던가! 예수께서 저주한 열매없던 무화과나무가 하루 아침에 말라버리지 않았던가! 그리고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해주지 않았던가! 특히 날 때부터 소경의 눈을 뜨게 했던 사건은 그분이 창조주이심을 여실히 증명해준다. 왜냐하면 날 때부터 소경되었다는 말은 시신경이 고장났다는 말이 아니라, 시신경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인데, 예수께서 그의 눈을 뜨게 했다는 것은 곧 없던 시신경을 창조해내셨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전능자요 창조주이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는 사람으로서의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에다가 하나님으로서의 신앙고백이 더 필요한 것인가? 그 이유는 첫째로, 사람으로서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마16:16)만으로서는 한 분이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어렵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지켜본 자들이 고백한 신앙고백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그분은 어떤 분이셨는가? 만세전부터 그분은 하나님으로 존재하신 분이셨다. 그리고 부활후에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러므로 부활의 예수님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시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으로 되돌아가신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사람으로 태어나신 분에 대한 신앙고백에 불과함을알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제 좀더 나은 신앙고백이 필요한 것이다. 도마와 같은 신앙고백이 더 필요한 것이다. 만세전부터 만세후까지 그분이 더 많은 시간 동안 가지고 계셨던 그분에 대한 신앙고백이 더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그분이 바로 우리의 주님이시요,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신앙고백이다.
그리고 둘째로, 예수님을 하나님보다 약간 못하신 분으로 평가절하함으로서 우리가 사탄마귀를 대적하는 데에 상당히 많은 어려움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 사람으로서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한사코 예수님을 하나님보다는 하나님의 아들로만 보게 한다. 그러므로 이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힘입는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힘입는 것보다는 그 능력이나 권세에 있어서 더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전능자와 창조주라고 신앙고백하는 순간, 우리는 좀 더 강한 자가 된다. 왜냐하면 전능자요 창조주이신 예수의 이름으로 사탄마귀로 대적하고 결박할 수 있기 대문이다. 사실 예수께서는 창조주이지만, 사탄마귀는 한낱 그분의 피조물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제 여려분도 신앙고백도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키기를 바란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둘 다가 필요하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의 신앙고백도 필요하고, 부활하신 후의 신앙고백도 필요하다. 예수님이 사람으로 행하신 신앙고백 2가지에다가, 그분의 하나님 자신이심을 말해주는 2가지 신앙고백, 총 4가지의 신앙고백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바로 그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신 사람이시다. 더불어 예수님은 만세전부터 만세후까지 주님이시요, 전능자요 창조주이신 하나님 자신이시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