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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1-10-10
본문말씀 아가서 2:10, 5:2, 8:13(구약 961면, 963면, 967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아가서,신부의명칭,결혼전의명칭,결혼후의명칭,최종적인명칭,신부의7가지명칭,나의사랑,나의어여쁜자,나의비둘기,나의신부,내누이,나의완전한자,동산에거주하는자

아가서는 참으로 심오한 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이 책 속에 들어가 보면 들어갈수록 주님의 마음이 만져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도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 왕을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을 때부터 불려졌던 그녀의 호칭은 그녀가 솔로몬과 결혼한 후에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녀에게 최종적으로 붙여진 칭호가 한 가지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아가서에는 솔로몬이 그녀를 불렀던 총 7가지 호칭들이 나온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지금 나에게 어떤 호칭을 불러 사용하신다면 나는 어떤 칭호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1. 들어가며

  아가서는 참으로 심오한 책이다. 특히 이 책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가 누리게 될 영적 신분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는 놀라운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장차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으며, 천국에 들어가는 신부라 할지라도 그 신분에 있어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함께 살펴볼 수가 있다. 그런데 아가서에서는 장차 그리스도의 신부를 지칭하는 호칭이 무려 7가지가 발견된다. 그것도 신부가 성장하면서 그 호칭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아가서 전체에 나타난 신부의 호칭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신부의 호칭은 오직 신랑이 신부를 부르는 명칭만을 대상으로 하며, 신부에 대한 호칭이 달라짐에 따라 그녀가 어떤 성장과 변화를 겪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다.

 

2. 아가서에 등장하는 신부의 호칭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아가서에서는 장차 솔로몬의 아내가 될 술람미 여인을 부르는 여러 가지 다양한 호칭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이 여인을 다른 것과 비교하는 표현들도 간혹 있기도 한데 그것은 오늘 전하는 말씀에서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신부에 대해서 신랑이 하는 말들 가운데, 그녀를 일컬어 '바로의 병거의 준마'와 같다고 표현한 것이나(아1:9),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아2:2)'라고 표현한 것들은 제외할 것이다. 그리고 술람미 여인이 자기 스스로를 가리켜 말했던 것들도 제외할 것이다. 이를테면 '샤론의 수선화(장미)(=무궁화)', '골짜기의 백합화(=은방울꽃)' 등의 표현도 오늘 말씀에서는 제외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술람미 여인을 부르는 호칭에 대해서도 다루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연기 기둥처럼 거친 들에서 오는 자(아3:6)',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아6:10)', '귀한 자의 딸(아7:1)' 등은 오늘 나누는 말씀에서 제외할 것이다. 다만 오늘 우리가 다룰 것은 오직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호칭하는 그 표현만을 다루려고 한다. 

  그렇다면,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어떻게 불렀을까? 아가서 1장부터 8장까지를 살펴보면, 솔로몬이 그녀에게 사용한 호칭들은 총 7가지였음을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호칭이라 할지라도 그녀가 결혼하기 전에 솔로몬이 불렀던 호칭이 있는가 하면(물론 이러한 호칭은 결혼 후에도 계속 사용된다), 결혼 후에야 비로소 불려진 호칭도 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최종적인 호칭이 한 가지 더 있다. 그래서 구조상 셋, 셋,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 결혼 전에 솔로몬이 그녀를 불렀던 호칭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첫째는 '나의 사랑', 둘째는 '나의 어여쁜 자', 셋째는 '나의 비둘기'가 있다. 그리고 솔로몬이 결혼 후에 그녀를 부른 호칭에도 3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나의 신부', 둘째는 '내 누이', 셋째는 '나의 완전한 자'가 있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호칭은 '동산에 거주하는 자'이다. 이제, 이러한 칭호들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며, 이러한 호칭들을 통하여 나는 과연 어느 정도 성장하고 있는 신부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3. 결혼 전에 그녀에게 붙여진 3가지 호칭은 무엇인가?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과 결혼하기 전에 그녀를 3가지로 불렀다. 첫째, '나의 사랑'이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이 칭호는 총 8차례 나온다(아1:9, 15, 2:10, 13, 4:1, 7, 5:2, 6:4). 그런데 이 표현이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라야'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친구', '동무', '동료'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표현을 영어 성경에서는 대부분 '나의 달링(my darling)'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가끔 '나의 친애하는 자(my dear one)'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친구나 동료이기는 한데, 사랑하는 친구를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결혼 전에 가장 많이 불렀던 호칭이다. 

  둘째, '나의 어여쁜 자'라고 불렀다(아2:10,13). 그런데 서술적인 의미로 그녀를 '어여쁘다'라고 한 것은 상당히 있다(아1:15, 4;1, 6:4). 여기서 '어여쁜'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야페'라는 단어인데, 이는 '맑다. 깨끗하다. 아름답다'라는 뜻을 가졌다. 영어로는 '나의 아름다운 자(my beatiful one)'라고 번역하고 있다. 아마도 그녀의 외모에서 풍기는 아름다움의 표현인 호칭인 것 같다. 

  셋째, 솔로몬은 그녀를 '나의 비둘기(my dove)'라고 칭했는데, 이는 그녀의 '순결'과 '정절'을 강조하는 호칭으로서, 아가서에서는 세 번 나온다(아2:4, 5:2, 6:9). 참고로 히브리어로 '비둘기'라는 단어는 '요나'이다. 특히 그녀의 순결은 비둘기의 눈으로 많이 표현되었다(1:15, 4:1, 5:12). 그만큼 그녀의 눈은 깨끗했고 한번 보면 빠지게 만드는 그러한 눈이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칭호를 통하여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결혼 전에 연애할 때에는 아주 사랑스러운 친구처럼 여겼고, 아름답게 생각했으며, 그리고 순결과 정절을 가진 여인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 성도들 역시 주님 앞에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어야 하며, 주님의 눈에 아름답게 보여야 함을 말해 준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은 주님께서 보실 때에 순결하며 정절을 지키는 여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4. 결혼 후에 그녀에게 붙여졌던 3가지 호칭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결혼 후에 솔로몬은 그녀를 어떻게 불렀을까? 결혼 전과 마찬가지로 솔로몬은 그녀를 3가지로 칭했다. 그것은 '나의 신부', '나의 누이', '나의 완전한 자'이다. 먼저, 첫째로 솔로몬은 그녀와 결혼한 뒤에 가장 먼저 그녀를 '나의 신부(my  bride)'라고 불렀다. 이제 그녀와 갓 결혼한 신혼이기 때문에 솔로몬은 그녀를 '신부'라고 칭한 것이다. 이러한 칭호는 결혼 직후에만 불려진 칭호로서 아가서에는 여섯 번 나온다(4:8, 9, 10, 11, 12, 5:1). 그런데 우리가 결혼 후에 불려진 그녀의 칭호가 상당히 변화되어 있음을 여기서부터 감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결혼 전에는 그녀와 법적인 어떤 책임이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그러니 지켜야 할 의무라는 것도 느슨할 수밖에 없지만, 결혼 후에는 어떤 법적인 효력이 시작되었기에, 그 용어도 무게가 있어 보인다. 사실 '신부(칼라흐)'라는 말은 동사 '칼랄'에서 왔는데, 이 단어의 의미는 '완성하다. 완전하게 하다.'이다. 그러므로 결혼이라는 관계는 사람이 어느 정도 성숙해지는 단계에 도달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니까 책임감도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솔로몬은 그녀를 '나의 누이[동생](my sister)'라고 다섯 번씩이나 불렀다(아4:9, 10, 12, 5:1, 2). 히브리어로는 '아호트(누이동생 혹은 자매)'라는 뜻이다. 이 명칭은 사실 '나의 신부'라는 칭호보다 훨씬 더 친밀하고 가까운 명칭이다. 왜냐하면 결혼 관계로 맺어진 부부라도 상당한 책임과 의무가 주어지는데, 이 호칭은 책임과 의무는 필수적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부부가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이지만 이 관계는 언제든지 서로 헤어질 수 있는 관계다. 하지만 가족 관계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서로를 떼어놓으려 한다고 해서 분리될 수 있는 그러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는 '독생자(외아들)'라고 불리셨다(요3:16). 그러나 그분이 죽고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 주신 뒤부터는 그분의 신분은 '맏아들'로 승격되셨다. 그러자 그때부터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의 동생들이라고 불리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피를 공유하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결혼을 했다는 것은 상당히 친밀한 관계에 접어들었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의 아내를 '나의 누이동생'이라고 불렀다. 이는 둘의 관계가 이제는 가족 관계처럼 돈독한 관계가 되었고 헤어질래야 헤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었음을 말해 준다. 그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고 그의 슬픔이 곧 나의 슬픔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셋째로,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과 결혼 후에 그녀를 가리켜 '나의 완전한 자(my flawless one)'라고 불렀다(아5:2, 6:9). 히브리어로는 '탐'이라는 단어가 쓰였다. 이것은 우리 말로 '흠없는, 완벽한, 결점이 없는, 얼룩이 없는'이라는 뜻을 가졌다. 그렇다. 결혼 후에 어느새 그녀는 신랑 솔로몬에게 '흠없이 완전한 자'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대체 어떻게 변하였길래 그녀는 솔로몬에게 '완전한 자'라는 호칭을 듣게 되었는가? 그것은 그녀가 결혼 후에 솔로몬의 동산에 들어가는 몇 안 되는 여자가 되었고, 솔로몬에게 그녀 자신이 잠근 동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결혼 전에 불렸던 술람미 여인의 호칭에서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결혼후에 불려졌던 그녀의 호칭이 나의 호칭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그것은 그냥 주어지지 아니하며, 댓가의 지불없이 불려지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고 그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는 단계에까지 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이 동산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깨닫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에 나도 동참하는 신부가 될 때라야 비로소 붙여질 수 있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5. 그녀에게 붙여진 최종적인 호칭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솔로몬 그가 완숙한 경지에 이르렀던 그녀에게 사용한 마지막 호칭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그녀의 7번째 칭호로서, '동산에 거주하는 자'이다(아8:13). 이것은 단 한 번 사용된 용어이기는 하나 사실 가장 강력한 호칭이다. 왜냐하면 구원받는 사람의 최종적인 목표는 저 하늘에 있는 동산 곧 새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가는 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가 아무리 주님의 칭찬을 듣는 자가 되었고 또한 사랑받는 자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결국에 천국에 들어가는 일에 실패한 자가 된다면 우리의 신앙은 실패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의 최종적인 목표이자, 신부로서 가장 바라고 바라는 것에 우리가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그분이 하늘에 마련해 놓으신 그분의 동산 안에 영원히 거주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나중에 또 살펴보겠지만,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해서 모두가 다 새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 아니다. 이미 하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채 있던 자라 할지라도 죽을 때에 그의 이름이 지워지는 자도 있다. 그는 그때 성밖으로 내어 쫓겨나는 자가 되고 말 것이다(계21:27, 22:15).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불려져야 할 마지막 칭호는 역시 '너, 동산에 거주하는 자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신부들에게 불려지는 마지막 칭호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백합화 같고 비둘기 같은 신부에서 성장한 자에게 붙여지는 호칭이요,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을 수 있는 과정을 지나온 자에게 붙여질 수 있는 이름이다. 그래서 그분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고 그분의 목표가 내 목표가 된 자에게 붙여질 수 있는 호칭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는 또 다른 신부를 낳고 양육하는 신부가 될 때 붙여질 수 있는 칭호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주님은 우리가 자기만 구원하는 신부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도 구원할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신부들을 낳고 그들을 길러 내어서 그들을 장성한 분량으로 양육하는 신부가 되기를 바라신다. 

 

6. 나오며

  그렇다면 지금 나의 영적인 단계는 어디 만큼 와 있다고 보는가?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는 얼마든지 헤어질 수 있는 관계 정도인가 아니면 그분과 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서 엄청난 친밀도를 가지고 있는 상태인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이미 주님과 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니다. 만약 자기가 그러한 관계에 들어간 자라고 말하려면, 그는 그분으로부터 이미 '완전한 자'라는 호칭으로 불려지고 있어야 한다. 특히 우리는 주님께서 영의 공간에 만들어 놓은 주님의 동산에 들어간 성도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는지를 알려 주는 척도는 역시 내가 과연 주님의 동산 안에 들어가고 있는 사람이 되었는가를 보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주님의 동산에 들어간 자가 되지 못했다면 주님의 경륜을 만질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주님의 동산 안에 들어간 상태라면, 우리는 그분이 지금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를 알게 될 것이며, 그분이 그 안에서 왜 가끔씩 우시고 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는 그분이 지금도 하늘에서 행하고 있는 그 일을 나 자신도 행하는 자가 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자가 될 때 우리도 하늘에 준비된 동산에서 영원히 거주하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아가서를 좀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 특히 솔로몬은 왜 그가 왕의 신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관심사가 늘 자기의 동산에 가 있었으며 그곳에서 양떼를 돌보는 일이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분이 자신의 동산에서 꺾여진 채 있는 백합화를 가슴에 부여안고 왜 눈물짓고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그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고 내 마음이 그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 나는 지금 그분에게 친구 같은 자인가? 아니면 가족 같은 자인가? 아니면 더 나아가 그분의 마음을 만진 바 되어 그분과 하나가 되어 있는 자인가? 자, 우리를 돌아보자. 그래서 이제는 하늘의 준비된 그분의 동산에서 영원히 거주하는 자가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  

 

2021년 10월 10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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