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많은 성도님들이 헷갈려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믿는 자들이라도 성령을 또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갖는 것입니다. 왜나하면 오순절계통에서는 믿는 자라도 성령의 세례를 또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세례의 표징은 곧 방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지 못하는 자는 성령세례도 받지 못한 것이며 또한 그런 자는 구원받기도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이들의 주장이 옳은 것일까요? 믿는 자들이라도 다시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성령의 선물을 다시 받아야 하는 것인가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믿는 자가 다시 받아야 하는 것은 인격적인 성령이 아니라 성령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언의 은사는 성령의 선물에 해당하는 것이며, 이것은 혹 받지 않는다 해도 구원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성령의 선물을 받아서 얻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령세례의 표징으로서 방언을 말하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면, 1900년대에 들어오면서 방언이 회복되었기에 그전에 살았던 믿는 자들은 다 구원받지 못했다는 결론이 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방언은 성령의 선물에 불과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선물은 받으면 좋은 것이겠지만 그것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구원받지 못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실 사도행전만 잘 살펴보더라도 우리는 믿는 자들이 성령을 또 받아야 하는지, 아니면 기도하여 성령의 은사를 받아야 하는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특히 헬라어 원문을 보면, 믿는 자들이 인격적인 성령하나님을 받아야 하는지 아니면 성령의 선물을 받아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총 4차례에 걸쳐 성령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그러나 사실은 한 차례만 사람들이 믿을 때에 외적인 성령세례인 표징인 성령의 은사를 동시에 받은 것일 뿐, 나머지 세 차례는 믿은 후에 한참을 지나 외적인 성령세례인 방언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가정에서 만큼은 그들이 믿을 때에 외적인 성령세례가 동시에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동시에 방언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믿을 때에 성령의 선물이 주어진다는 것을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에게는 따로 기도함으로 외적인 성령세례 곧 성령의 선물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좀 더 세부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받은 외적인 성령세례의 사건은 행2장에 나옵니다(행2:1~4). 그날 마가다락방에 모여있던 120명의 사람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그들은 외적으로 부어준다고 약속한 성령의 세례를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을 믿고는 있지만 외적인 성령세례를 받아야 능력을 받고, 또한 능력을 받아야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도한지 10여일만에 그들에게 외적인 성령세례가 부어졌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전부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외적인 성령세례를 받아 방언을 말하고 있는 120명의 성도들을 보고서 놀라 모여든 유대인들을 향하여, 베드로는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면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입니다(행2:38). 그러므로 방언으로 말하게 된 것은 외적인 성령세례를 받아서 주어진 것으로서, 그것이 곧 성령의 선물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둘째, 사마리아성도들도 내적인 성령세례(회개와 거듭남)와 외적인 성령세례(방언 등의 은사)가 분리되어 나타난 경우입니다(행8:14~20). 사마리아성도들은 이미 빌립집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상태였지만 그때까지 외적인 성령세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헬라어원문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내려가서 성령받기를 기도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어떤 것(정관사가 없음)받기를 기도하며 안수했다고 나와 있습니다(행8:14~15). 그러자 그들이 성령의 어떤 것(정관사없음)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행8:17). 또한 이것을 지켜본 마술사 시몬이 베드로에게 돈을 주며, 자신도 안수할 때에 성령의 어떤 것(정관사없음)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성령의 어떤 것(선물)을 어떻게 돈을 주고 살려고 생각했느냐고 하면서 책망을 합니다. 그때 베드로는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주고 살 줄을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행8:20)"라고 분명하게 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마리아교회는 회개하여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내적인 성령세례은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외적으로 부어지는 성령세례 곧 성령의 은사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내려가서 그들에게 기도하고 안수하여 외적인 성령세례 곧 성령의 선물을 따로 받게 했던 것입니다.
셋째, 그러나 최초의 이방인 가정이었던 고넬료 가정이 성령을 받을 때에는 내적인 성령세례와 외적인 성령세례가 동시에 일어난 사건입니다(행10:44~48). 왜냐하면 고넬료가정에 모여있는 식구들은 베드로를 통해서 처음으로 복음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얼마나 복음듣기를 사모했던지,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그들을 회개케하고 거듭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외적인 성령세례도 동시에 부어졌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말씀을 듣는 중에 방언을 말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행10:46). 이때 그들이 방언말하는 것을 들었던 베드로는 이방인에게도 성령부어주심(헬라어원문에는 '성령의 선물을 부어주심')의 말미암아 놀랐다고 했습니다(행10:45). 여기서도 방언은 성령의 선물의 하나였 것입니다.
넷째, 마지막으로 행19장에 나오는 에베소교회는 내적인 성령세례와 외적인 성령세례가 각각 따로 나타난 경우입니다(행19:1~7). 이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들었고 이미 회개의 세례까지 받은 상태였습니다(행18:24~28). 하지만 사도바울이 와서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그러자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있는지 조차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했습니다. 만약 우리도 이 본문을 헬라어원문을 보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성령을 또 받아야 하는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헬라어 원문에 보면, 여기에 나온 성령은 인격적인 성령이 아니라 성령이 어떤 것(정관사가 붙어있지 않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곧 에베소 성도들이 받지 못했던 것은 성령이 아니라 성령의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구원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주는 선물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에베소성도들은 인격적인 성령하나님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성령의 어떤 것(정관사없음)을 들어보지 못한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이 오실 때에 성령께서 선물도 주신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방언으로 말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사실 성령께서 사람에게 오실 때에 동시에 주어집니다. 즉 믿을 때에 주어집니다. 다시 말해 성령이 오실 때에는, 먼저는 사람 속에 내주하시어 그 사람으로 하여금 회개케하고 예수님을 믿게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외적으로 역사하여 성령의 선물을 주십니다. 하지만 성령의 선물이 있다는 사실을 들어본 적도 없는 자들은 성령의 선물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그후에라도 성령의 은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칩시다. 그때에라도 기도하게 되면 그들도 성령의 선물을 따로 받게 됩니다. 마치, 사마리아성도들이나 에베소교회성도들처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믿는 자 속에 오십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성령의 선물을 받는 자가 있는가 하면, 나중에 성령의 은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나서 나중에 기도할 때에 그것을 받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순절계통에서 성령세례로서 방언을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라 주장하는데,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방언은 성령의 은사의 일종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성령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방언으로 말하지 않아도, 이미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던 자는 다 자기 자신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받은 상태가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일컬어 보통 내적인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내적인 성령세례만으로도 사람은 얼마든지 구원을 받을 수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은 회개와 믿음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오실 때에 선물을 주신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자는 나중에 기도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구하는 자에게는 성령의 어떤 것(정관사가 없음)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분명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눅11:13). 그런데 눅11:13에 관한 마태복음의 평행본문에 보면, 예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마7:11). 곧 구하는 자에게 예수님께서는 '좋은 것' 곧 '성령의 선물'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내적인 성령세례를 받았든지 아니면 외적인 성령세례까지 받았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은 다 믿음을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 하고 회개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부 다 현재 구원을 얻어가고 있는 상태이기에, 잘못하다는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도 믿음에 파선하는 자가 있다고 분명하게 말했었고(딤전1:19~20), 예수님께서도 이미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라도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 자도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계3:5).
그러므로 자신이 아무리 성령의 선물인 방언을 말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죄를 짓고도 여전히 회개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결국 구원의 경주에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자기자신 안에 성령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계속해서 성령을 소멸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살전5: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살전5:19)".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외적인 성령세례인 방언의 은사같은 성령의 선물을 받았든지 아니면 아니 받았든지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뤄어 나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