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5(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15)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계5:6~14)_성도가 예배를 바칠 유일한 대상은 누군가?_2022-05-15(주일)
https://youtu.be/78PrmrpXy04 [혹은 https://tv.naver.com/v/26829855 ]
1. 들어가며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들을 계속해서 살펴보았다. 그것의 핵심은 어린양이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양에게도 주 하나님에 대한 찬송과 경배를 올려 드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상에서 예배하고 있는 존재들 곧 네 생물과 24장로들 그리고 천천만만의 천사들과 천상의 피조물들은 현재 천국에서 어떻게 예배하고 있을까? 이들이 어린양에게 올려 드리고 있는 찬송과 경배는 과연 어떤 것이며 또한 무슨 이유에서 그렇게 하고 있는가? 그리고 현재 이 지상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우리들은 과연 누구에게 이 찬송과 경배를 올려 드려야 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찬송과 경배를 가로채려고 하는 세력들이 요한계시록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들은 대체 누구이며, 무슨 이유 때문에 한 분 하나님만이 받으셔야 할 그 찬송과 영광을 가로채려고 하는가? 그리고 마지막 때가 되면 우리 성도들도 누구를 경배할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의 환난의 때가 올 것인데 그때에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며, 그러한 결과는 어떠할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대한 경배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하나님을 사칭하는 세력이 누군지를 살펴보고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2. 성도들은 과연 누구에게 찬송과 경배를 올려 드려야 하는가?
성도들은 천국에서 과연 누구에게 찬송과 경배를 올려 드려야 하는가? 즉 천상의 예배에서 우리가 예배드릴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천상에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찬송과 경배를 올려 드려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시다(계7:11). 우리는 천상에 계신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를 드려야 한다. 이것은 비단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 곧 피조물의 대표인 네 생물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로서 24장로들 그리고 144,000명 되는 보좌에 앉은 이들과 구원받은 허다한 무리들이 찬송과 경배를 드리며, 천천만만의 천사들과 피조물까지 다 경배를 드린다. 이중에서 네 생물을 제외하고는 전부다 엎드려 경배를 드린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찬송과 경배를 받으실 하나님에 대해 어떤 표현을 하고 있는가? 그것은 총 4가지로 표현되어 있다. 첫째는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찬송과 경배를 드린다(계4:10). 이 보좌는 하나님 한 분의 보좌로서 통치의 보좌와 심판의 보좌이다. 둘째는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에게 찬송과 경배를 드린다(계4:10). 하나님만이 항상 살아 계시며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셋째는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이'에게 찬송과 경배를 드린다(계4:11). 그분만이 창조주이시며 창조된 피조물을 다스리고 섭리하시고 인도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넷째는 '어린양'에게 찬송과 경배를 드린다(계5:8,14). 어린양께서는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기 때문이다.
3. 예배와 관련하여 어린양께서 주 하나님이신 증거는 대체 무엇인가?
예배와 관련하여 어린양께서 주 하나님이신 증거는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분은 한 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찬송과 경배를 동일하게 받고 계시기 때문이다. 만약 어린양이신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오직 주 하나님만이 받으셔야 할 찬송과 경배를 받으실 리가 없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7장 11~12절을 보면, 모든 천사가 보좌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송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천사들은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7가지의 흠숭을 드린다. 그것은 찬송과 영광, 지혜와 감사, 존귀와 권능(능력) 그리고 힘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천천만만의 동일한 천사들이 어린양에게도 7가지 흠숭을 드리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노래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5:12). 그렇다. 순서만 바뀌었을 뿐 하나님께 드리는 7가지 흠숭을 동일하게 어린양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어린양이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분이 한 분 하나님이 아니라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신성 모독을 하고 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상에서 예배드리는 존재들이 예수님께 드리는 7가지 흠숭을 통하여 어린양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가 있다.
4. 하나님께 바쳐야 할 찬송과 경배를 가로채려는 세력은 대체 누구인가?
그런데 오직 한 분 하나님께 바쳐야 할 흠숭 곧 찬송과 경배를 가로채려는 세력들이 있음을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알려 준다. 그 세력은 바로 용이다. 이 '용'은 타락한 천사장이었던 루시퍼로서, 옛 뱀이요 마귀와 사탄이요 온 천하를 꾀는 자다. 그런데 이 놈이 하나님만이 받으셔야 할 찬송과 경배를 자신도 받으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그 놈은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예수님에게 내어 드리고 예수님을 가둬놓으려 했던 무저갱에 지금 자신이 갇혀 있다. 그는 [천국에서의] 천년 왕국이 끝나는 어느 시점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잠깐 내어 보내는 시기가 올 때까지 무저갱에 갇혀 지낼 것이다(계20:3). 그렇지만 그놈은 자신이 찬송과 경배를 받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자신을 대신하여 2인자를 내보내서 그의 일을 하고 있는데, 그가 바로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첫째 짐승'이다(계13:1~10). 이 짐승은 이 세상 제국의 왕들 속에 들어가서 역사하는 영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 제국의 왕들이 이 짐승을 대신하여 경배를 받으려 하고 또한 경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 세력을 사도 요한은 여러 짐승을 가지고 알려 주었는데, 그 짐승은 사자와 곰이요, 표범과 열 뿔 가진 무서운 짐승이다(계13:1~3). 이러한 짐승은 사실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짐승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다니엘서 7장에서 짐승은 각각 '사자'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요, '곰'은 메대와 파사의 다리오와 고레스 왕이요, '표범'은 그리이스(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을 가리킨다. 그리고 무서운 열 뿔 가진 짐승은 앞에서 출현했던 짐승들의 특징과 더불어 무서운 이빨을 지녔는데, 이는 로마 제국의 왕들로서 당시에는 네로 황제나 도미시안 황제를 가리킨다.
그런데 문제는 사탄을 대신하여 바다에서 올라온 첫째 짐승(=적그리스도)이 죽임을 당하고 다시 살아난 때에 발생한다. 그때가 되면 땅에서 올라오는 두 뿔 가진 어린양 같은 [둘째]짐승(=거짓 선지자)이 용처럼 말을 하고 첫째 짐승의 권세를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미혹하여 첫째 짐승에게 경배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첫째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말하게 한 후 그 우상에게 경배하게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 첫째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는데, 이때 짐승과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에게 표(짐승의 표=666)를 준다. 그러므로 이 표를 받지 못한 자는 매매를 못해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은 로마 황제 시대에도 있었고 장차 앞의 어느 날에도 있을 것이다.
5. 왜 성도들은 짐승과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은 왜 [첫째]짐승과 그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우를 범하는 죄가 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십계명의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1~2계명을 어기는 자를 죄가 없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이 죄를 범하는 자에게는 자손 3~4대에 그 죄값을 물리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정도면 우상 숭배의 죄는 큰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에게 어떤 벌을 내리신다고 말씀하고 있는가? 그것은 크게 3가지다. 첫째는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는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져 세세토록 고난을 받게 되고 밤낮으로 쉼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계14:9~11). 그렇다. 짐승과 그의 우상을 경배하는 자는 영원한 고통이라는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한 분 외에 다른 존재에게 경배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는 일곱 대접 심판이 내려지는 마지막 환난의 시기에 이 땅에 남겨지기 때문이다(계16장). 요한계시록에서는 말세(예수님의 승천 이후 재림때까지)가 되어서 일어날 일을 일곱 가지 인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마지막 일곱 번째 인은 또다시 일곱 나팔 재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곱 나팔 재앙은 그가 그리스도인이든지 비그리스도이든지 상관없이 다 받는 것이지만, 일곱 나팔 재앙들 중에서 마지막 일곱 번째 나팔 재앙인 일곱 개의 대접 재앙들을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휴거되기 때문에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 중에 누가 이 땅에 남겨지는가? 그것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이 남겨진다. 물론 이때 남겨지는 기간은 아주 짧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단코 그때 남겨져서는 아니 된다. 그렇게 하려면 목숨 걸고 짐승과 그의 표를 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만약 짐승과 그의 우상을 경배하고 표를 받는 자는 일곱 번째 나팔 재앙 곧 일곱 가지 대접 재앙들을 고스란히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첫째 대접 재앙 때에 사인(sign)으로서 짐승의 표를 받고 그것의 우상을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재앙들은 일곱 대접 재앙이 끝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짐승을 경배하지 말아야 하고, 짐승의 우상을 경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6. 우리 성도들이 오직 하나님께만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이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키면서 오직 하나님께만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하는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3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그러한 자들만이 천국의 유리 바닷가에 서서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계15:2~4). 다시 말해, 짐승과 짐승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나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러한 자들만이 일곱 대접 심판들을 받기 직전에 하늘에 휴거되어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계15:1~8). 셋째, 이러한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면 왕 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계20:4). 이러한 자들이 주님이 오시기 전에는 먼저 천국에 들어가서 거기서 천 년 동안(주님의 승천 후 재림 전까지 하늘에서의 시간) 왕 노릇할 것이요, 만약 주님의 재림시에 부활체가 되어 주님을 맞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왕 노릇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다 더 적극적으로 오직 하나님께만 찬송과 경배를 올리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7. 나오며
사실 천국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우리가 믿는 순간에 천국에 들어간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육신의 목숨이 끝나는 그날까지는 말이다. 그렇다고 악한 사탄 마귀가 우리가 계속해서 예수님을 잘 믿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와 그의 졸개들인 귀신들은 자기들은 영원히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지만, 그러한 영광스러운 저 천국을 자기보다 능력이 적은 인간들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냥 놔둘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시기 질투의 화신들이다. 자기가 못 들어간다면 들어가는 이들이라도 잘 다독거리고 배려해 주는 작자들이 아니다. 이들은 정반대다. 자기가 못 들어가는 그곳을 다른 이가 들어가려는 것을 배 아파한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이 이 세상에 살아갈 때에는 필연적으로 이러한 악한 영들과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들에 의한 핍박을 우리 성도들은 인내로서 잘 이겨내야 한다(계13:7~10). 이들은 한사코 자기들이 경배를 받기를 추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께만 예배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이들을 싫어한다. 그러나 공생애 기간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까지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렇다. 그들의 핍박을 너무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핍박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이신 주 예수님만 경배하고 그분에게만 찬송을 올려 드리자. 이것이 천국 백성이 이 땅에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이다.
2022년 05월 15일(주일)
정병진목사
1. 들어가며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들을 계속해서 살펴보았다. 그것의 핵심은 어린양이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양에게도 주 하나님에 대한 찬송과 경배를 올려 드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상에서 예배하고 있는 존재들 곧 네 생물과 25장로들 그리고 천천만만의 천사들과 천상의 피조물들은 현재 천국에서 어떻게 예배하고 있을까? 이들이 어린양에게 올려 드리고 있는 찬송과 경배는 과연 어떤 것이며 또한 무슨 이유에서 그렇게 하고 있는가? 그리고 현재 이 지상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우리들은 과연 누구에게 이 찬송과 경배를 올려 드려야 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찬송과 경배를 가로채려고 하는 세력들이 요한계시록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들은 대체 누구이며, 무슨 이유 때문에 한 분 하나님만이 받으셔야 할 그 찬송과 영광을 가로채려고 하는가? 그리고 마지막 때가 되면 우리 성도들도 누구를 경배할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의 환난의 때가 올 것인데 그때에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며, 그러한 결과는 어떠할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대한 경배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하나님을 사칭하는 세력이 누군지를 살펴보고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2. 성도들은 과연 누구에게 찬송과 경배를 올려 드려야 하는가?
성도들은 천국에서 과연 누구에게 찬송과 경배를 올려 드려야 하는가? 즉 천상의 예배에서 우리가 예배드릴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천상에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찬송과 경배를 올려 드려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시다(계7:11). 우리는 천상에 계신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를 드려야 한다. 이것은 비단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 곧 피조물의 대표인 네 생물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로서 24장로들 그리고 144,000명 되는 보좌에 앉은 이들과 구원받은 허다한 무리들이 찬송과 경배를 드리며, 천천만만의 천사들과 피조물까지 다 경배를 드린다. 이중에서 네 생물을 제외하고는 전부다 엎드려 경배를 드린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찬송과 경배를 받으실 하나님에 대해 어떤 표현을 하고 있는가? 그것은 총 4가지로 표현되어 있다. 첫째는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찬송과 경배를 드린다(계4:10). 이 보좌는 하나님 한 분의 보좌로서 통치의 보좌와 심판의 보좌이다. 둘째는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에게 찬송과 경배를 드린다(계4:10). 하나님만이 항상 살아 계시며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셋째는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이'에게 찬송과 경배를 드린다(계4:11). 그분만이 창조주이시며 창조된 피조물을 다스리고 섭리하시고 인도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넷째는 '어린양'에게 찬송과 경배를 드린다(계5:8,14). 어린양께서는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기 때문이다.
3. 예배와 관련하여 어린양께서 주 하나님이신 증거는 대체 무엇인가?
예배와 관련하여 어린양께서 주 하나님이신 증거는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분은 한 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찬송과 경배를 동일하게 받고 계시기 때문이다. 만약 어린양이신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오직 주 하나님만이 받으셔야 할 찬송과 경배를 받으실 리가 없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7장 11~12절을 보면, 모든 천사가 보좌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송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천사들은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7가지의 흠숭을 드린다. 그것은 찬송과 영광, 지혜와 감사, 존귀와 권능(능력) 그리고 힘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천천만만의 동일한 천사들이 어린양에게도 7가지 흠숭을 드리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노래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5:12). 그렇다. 순서만 바뀌었을 뿐 하나님께 드리는 7가지 흠숭을 동일하게 어린양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어린양이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분이 한 분 하나님이 아니라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신성 모독을 하고 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상에서 예배드리는 존재들이 예수님께 드리는 7가지 흠숭을 통하여 어린양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가 있다.
4. 하나님께 바쳐야 할 찬송과 경배를 가로채려는 세력은 대체 누구인가?
그런데 오직 한 분 하나님께 바쳐야 할 흠숭 곧 찬송과 경배를 가로채려는 세력들이 있음을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알려 준다. 그 세력은 바로 용이다. 이 '용'은 타락한 천사장이었던 루시퍼로서, 옛 뱀이요 마귀와 사탄이요 온 천하를 꾀는 자다. 그런데 이 놈이 하나님만이 받으셔야 할 찬송과 경배를 자신도 받으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그 놈은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예수님에게 내어 드리고 예수님을 가둬놓으려 했던 무저갱에 지금 자신이 갇혀 있다. 그는 [천국에서의] 천년 왕국이 끝나는 어느 시점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잠깐 내어 보내는 시기가 올 때까지 무저갱에 갇혀 지낼 것이다(계20:3). 그렇지만 그놈은 자신이 찬송과 경배를 받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자신을 대신하여 2인자를 내보내서 그의 일을 하고 있는데, 그가 바로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첫째 짐승'이다(계13:1~10). 이 짐승은 이 세상 제국의 왕들 속에 들어가서 역사하는 영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 제국의 왕들이 이 짐승을 대신하여 경배를 받으려 하고 또한 경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 세력을 사도 요한은 여러 짐승을 가지고 알려 주었는데, 그 짐승은 사자와 곰이요, 표범과 열 뿔 가진 무서운 짐승이다(계13:1~3). 이러한 짐승은 사실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짐승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다니엘서 7장에서 짐승은 각각 '사자'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요, '곰'은 메대와 파사의 다리오와 고레스 왕이요, '표범'은 그리이스(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을 가리킨다. 그리고 무서운 열 뿔 가진 짐승은 앞에서 출현했던 짐승들의 특징과 더불어 무서운 이빨을 지녔는데, 이는 로마 제국의 왕들로서 당시에는 네로 황제나 도미시안 황제를 가리킨다.
그런데 문제는 사탄을 대신하여 바다에서 올라온 첫째 짐승(=적그리스도)이 죽임을 당하고 다시 살아난 때에 발생한다. 그때가 되면 땅에서 올라오는 두 뿔 가진 어린양 같은 [둘째]짐승(=거짓 선지자)이 용처럼 말을 하고 첫째 짐승의 권세를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미혹하여 첫째 짐승에게 경배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첫째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말하게 한 후 그 우상에게 경배하게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 첫째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는데, 이때 짐승과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에게 표(짐승의 표=666)를 준다. 그러므로 이 표를 받지 못한 자는 매매를 못해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은 로마 황제 시대에도 있었고 장차 앞의 어느 날에도 있을 것이다.
5. 왜 성도들은 짐승과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은 왜 [첫째]짐승과 그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우를 범하는 죄가 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십계명의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1~2계명을 어기는 자를 죄가 없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이 죄를 범하는 자에게는 자손 3~4대에 그 죄값을 물리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정도면 우상 숭배의 죄는 큰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에게 어떤 벌을 내리신다고 말씀하고 있는가? 그것은 크게 3가지다. 첫째는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는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져 세세토록 고난을 받게 되고 밤낮으로 쉼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계14:9~11). 그렇다. 짐승과 그의 우상을 경배하는 자는 영원한 고통이라는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한 분 외에 다른 존재에게 경배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는 일곱 대접 심판이 내려지는 마지막 환난의 시기에 이 땅에 남겨지기 때문이다(계16장). 요한계시록에서는 말세(예수님의 승천 이후 재림때까지)가 되어서 일어날 일을 일곱 가지 인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마지막 일곱 번째 인은 또다시 일곱 나팔 재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곱 나팔 재앙은 그가 그리스도인이든지 비그리스도이든지 상관없이 다 받는 것이지만, 일곱 나팔 재앙들 중에서 마지막 일곱 번째 나팔 재앙인 일곱 개의 대접 재앙들을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휴거되기 때문에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 중에 누가 이 땅에 남겨지는가? 그것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이 남겨진다. 물론 이때 남겨지는 기간은 아주 짧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단코 그때 남겨져서는 아니 된다. 그렇게 하려면 목숨 걸고 짐승과 그의 표를 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만약 짐승과 그의 우상을 경배하고 표를 받는 자는 일곱 번째 나팔 재앙 곧 일곱 가지 대접 재앙들을 고스란히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첫째 대접 재앙 때에 사인(sign)으로서 짐승의 표를 받고 그것의 우상을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재앙들은 일곱 대접 재앙이 끝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짐승을 경배하지 말아야 하고, 짐승의 우상을 경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6. 우리 성도들이 오직 하나님께만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이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키면서 오직 하나님께만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하는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3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그러한 자들만이 천국의 유리 바닷가에 서서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계15:2~4). 다시 말해, 짐승과 짐승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나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러한 자들만이 일곱 대접 심판들을 받기 직전에 하늘에 휴거되어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계15:1~8). 셋째, 이러한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면 왕 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계20:4). 이러한 자들이 주님이 오시기 전에는 먼저 천국에 들어가서 거기서 천 년 동안(주님의 승천 후 재림 전까지 하늘에서의 시간) 왕 노릇할 것이요, 만약 주님의 재림시에 부활체가 되어 주님을 맞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왕 노릇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다 더 적극적으로 오직 하나님께만 찬송과 경배를 올리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7. 나오며
사실 천국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우리가 믿는 순간에 천국에 들어간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육신의 목숨이 끝나는 그날까지는 말이다. 그렇다고 악한 사탄 마귀가 우리가 계속해서 예수님을 잘 믿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와 그의 졸개들인 귀신들은 자기들은 영원히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지만, 그러한 영광스러운 저 천국을 자기보다 능력이 적은 인간들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냥 놔둘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시기 질투의 화신들이다. 자기가 못 들어간다면 들어가는 이들이라도 잘 다독거리고 배려해 주는 작자들이 아니다. 이들은 정반대다. 자기가 못 들어가는 그곳을 다른 이가 들어가려는 것을 배 아파한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이 이 세상에 살아갈 때에는 필연적으로 이러한 악한 영들과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들에 의한 핍박을 우리 성도들은 인내로서 잘 이겨내야 한다(계13:7~10). 이들은 한사코 자기들이 경배를 받기를 추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께만 예배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이들을 싫어한다. 그러나 공생애 기간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까지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렇다. 그들의 핍박을 너무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핍박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이신 주 예수님만 경배하고 그분에게만 찬송을 올려 드리자. 이것이 천국 백성이 이 땅에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이다.
2022년 05월 15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