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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0-09-13
본문말씀 누가복음 18:9~14(신약 125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세리의회개,바리새인의기도,세리의기도,칭의받은기도,자랑하는기도,외식하는바리새인,교만한바리새인,겸손한세리

하나님은 어떤 자의 회개기도를 받으시는가? 사실 성경에서 사람의 회개기도를 과연 하나님께서 진짜 받으시고 용서해주셨는지 아니하셨는지를 그 결과까지 말해주는 본문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기도 곧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는 그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기도에 있어서 우리는 죄용서를 위한 간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서는 그것 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의 태도도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나는 지금 어떤 자세로 기도하고 있으며, 어떻게 회개하고 있는지 이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기도를 들으시는가? 어떤 회개를 받으시는가?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는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고 하겠다.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간다. 그런데 한 사람은 기도응답을 받고 내려오게 되지만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이 드린 기도를 외면당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나게 되었을까? 그러므로 우리들도 자기자신이 드리는 기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기도를 들으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특히 사람의 회개기도가 어떻게 드려질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과연 열납하시는지 아니하시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드리는 기도나 회개기도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는 이 문제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2. 예수께서는 들려주신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는 어떤 것인가?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누가복음 18장의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는 실제가 아니라 비유 말씀이다. 왜냐하면 이것을 예수께서 비유로서 말씀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눅18:9). 참고로 '비유'라는 것은 어떤 것을 빗대어서 교훈하는 예화같은 것인데, 이러한 비유말씀은 말하는 자의 강한 의도가 담겨있는 것이다. 특히 주님께서 오늘 들려주신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는 책망의 성격이 짙은 비유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만약 이 비유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만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복받는 자가 될 수 있다. 아니 이 말씀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고 그것을 실천할 수만 있다면 그는 천국말씀이 옥토 밭에 뿌려진 사람 같아서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처음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어떤 대상을 염두에 두고서 말씀하신 것임을 알 수 있다. "자기를 의로운 자들이라고 여긴 채 자기자신들을 향하여 확신하고 있는 이들"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불어 그가 "남겨진 다른 이들을 멸시하는 자들"이라고 하셨다. 고로 이 비유는 외식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들으라고 한 비유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로 만약 이런 유에 속한 자들이 이 비유를 듣는다면 그는 정말 겸손한 자세로 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자신을 돌아보고는 빨리 회개해야 할 것이다.

 

3. 바리새인은 대체 어떤 기도를 드렸는가?

  이때 바리새인은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가? 그의 기도를 들어보면 우선 우리는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러 왔는지 아니면 자신을 자랑하려고 왔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왜냐하면 그가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나는 다른 사람들(사람들 중에 남은 이들) 곧 강탈하거나 불의하거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음을 감사드리옵나이다"(눅18:11)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랬다. 그는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하고는 죄를 짓고 있는 자들을 비난하는 조로 기도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도적처럼 약탈하고 있지도 않으며, 부정한 방법으로 이익을 남기는 행위도 하지 않으며, 로마 정부에 세금을 수거하여 바치는 펴렴치한 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감사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의 선생이 되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자기자실을 자랑하고 있었고, 속으로 간음하고 있던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물질이 아니라 영혼을 도둑질하고 있었으니 더 악한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바리새인은 자신으 저 악한 세리들과 같지 않다고 자신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도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한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둘째, "나는 일주일에(안식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있으며, 모든 수입의 십일조를 바치고 있습니다"(눅18:12)"라고 말했이다. 사실 모세의 율법에서는 속죄일에 한 번만 금식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레16:29, 민29:7). 그런데 포로귀환기에 이르러 연 4회로 늘렸다(슥8:19). 그러다가 후에는 목요일(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날)과 월요일(내려온 날)에 금식을 하였다. 그러므로 자신은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잘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역시 자기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서 하는 말일 뿐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하는 모습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그는 소득의 십일조를 바친다고 말했다. 이는 세리들은 금식을 하지 않고 있으며, 소득의 십일조도 바치지 않고 있는데, 자신은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자아도취에 빠져있다고 하겠다. 더욱이 셋째, 그는 성전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서서 기도하고 있었다(눅18:11). 아마도 그는 유대인의 뜰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지켜보는 데에서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이 경건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사람들 앞에서 서서 기도하고 있었으며, 남들더러 들으라고 서서 기도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만한 자의 기도를 결코 듣지 아니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알아야 한다. 

 

4. 세리는 어떤 기도를 올렸는가?

  그런데 세리는 바리새인과는 전혀 다르게 기도하고 있었다. 그는 결코 사람을 의식하는 기도를 드리지 않았다. 그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낮추면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간절히 비는 기도를 드렸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그의 기도의 태도에서부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는 성전에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멀찍이 떨어져서 기도했기 때문이다(눅18:13). 그는 아마도 이방인의 뜰에 서서 허리를 구부린 채 기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한 채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가슴을 계속해서 치고 있으면서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너무나 처절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가 얼마나 낮은 자세로 겸손히 기도를 드렸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둘째로, 그의 말에서도 차이가 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하였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18:13). 이 말을 직역해보면 이렇다. "하나님이여, 죄인인 저에게 속죄를 베풀어주십시오(제발 노여움을 풀어주십시오)" 그렇다. 그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철저히 시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속죄를 베풀어주시는 길밖에 없다고 말씀드리고 있었다. 이처럼 세리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철저히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기도했던 것이다. 

 

5. 두 사람의 기도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그런데 두 사람의 기도의 결과가 바로 이 비유에 나온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드리는 기도는 그 기도가 과연 하늘나라에서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들의 기도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잘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그들이 드린 기도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말씀해주실 수가 있었다. 그것은 이렇다. "이에 저 사람(바리새인)보다 이 사람(세리)이 의롭다 하심을 입은 채로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눅18:14)" 이는 먼저 예수께서 기도하고 있던 두 사람들 중에 어느 곁에서 그 기도를 들으셨으며 누구의 기도를 외면했는지를 알려준다. 이때 주님께서는 세리를 "이 사람"이라고 표현하심으로, 바리새인의 기도는 외면하셨지만 세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를 받아주셨신 것을 말씀하셨다.

 

6. 하나님께서는 어떤 기도를 들으시고 어떤 사람의 회개를 받으시는가?

  그렇다. 회개기도할 때에 과연 하나님은 어떤 기도를 받으시는가?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하고 남들을 무시하는 기도를 받으시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러한 기도를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기도할 때에 자기자신의 행위를 자랑하기 위해 드리는 외식하는 기도자의 기도를 결코 받지 아니하신다. 글허다. 기도할 때에 왜 남에게 자기의 기도소리를 들려주려고 하는가?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칭찬을 듣기 위함은 아닌가?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 자의 기도를 들어보라. 그것이 외식하는 기도가 아니면 또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기도를 결코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는 자기를 자랑하려고 나올 것이 아니다.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사람이 들으라고 기도했을 뿐 하나님께서 들으시도록 기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기도였을 뿐 자기 자신의 잘못을 비는 기도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외식에 파묻혀서 살고 있는 바리새인들을 얼마나 지적하셨는가? 그래도 그들은 깨닫지를 못했다. 하지만 세리는 달랐다. 그는 감히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지도 못한 채 기도하고 있었다. 너무나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는 "오직 하나님의 속죄만이 나를 살릴 수가 있습니다"라는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의 기도를 통하여 회개하는 자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는 자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 것도 배우게 된다. 나는 과연 지금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7. 나오며

  하나님께서는 어떤 기도를 들으시는가? 결론적으로 볼 때 하나님은 외식하는 자의 기도를 듣지 아니하신다는 것이다. 자기자랑을 늘어뜨리러 나와서 기도하는 자를 하나님은 교만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며 그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통하여, 아무리 악한 행위를 한 자라 할지라도 겸손히 하나님께 진실로 자신의 죄를 아뢰고, 하나님께 자비를 구한다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섰는데도 거들먹거리며 자기자랑을 늘어놓기에 바쁜 자들은 하나님께서 물리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 자비를 간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기도하러 온 다른 사람들더러 들으라고 비는 기도를 하나님은 듣지 않으신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율법에 기록된 그 이상으로 더 드리고 더 열심히 수고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자의 소원에 귀기울이시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기도는 어떠한가? 회개할 때에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를 올리고 있는가? "나도 회개기도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는 응당 나의 기도를 응답해주셔야 하는 것이 아니야"하는 마음가짐으로 기도하고 있는가? 더욱이 내가 잘못된 것에 대해 기도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어련히 알아서 내 죄를 용서해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는가? 그러한 자는 어리석은 자다. 왜냐하면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 보면 이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내가 어떤 기도를 드린다고 할지라도 용서의 주권은 주님에게 있음을 알고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다만 "나같은 죄인에게 속죄를 베풀어주시기만을 간구하나이다"는 자세로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때에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처분을 내리신다고 할지라도 그 처분을 달게 받겠습니다는 자세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올바른 회개자의 기도 모습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회개는 다 기도의 범주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회개도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비는 기도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가 의롭다함을 얻고서 집에 내려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바리새인은 성전에 올라갔지만 아무 의미없는 시간만 보내고 돌아온 것이다. 아니 하나님께 외면당한 채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절대 이러한 기도가 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회개에 하나님께서 받아주시는 기도가 될 수 있도록 오늘부터라도 겸손하고 진실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리자. 회개기도는 벌써 기도하는 자의 태도에서부터 결정적인 차이가 난다는 것을 명심하자. 

 

2020년 09월 13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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