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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u5Z0uyn-JXI
날짜 2020-09-13
본문말씀 누가복음 19:1~10(신약 128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삭개오의회개,세리장이요부자,삭개오가지은죄들,삭개오의회개,회개에합당한열매

주님은 우리가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곳을 다 보고 기시며, 우리가 어떻게 회개를 했던 자로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다 보시고 있다. 우리는 여리고성의 삭개오를, 단지 예수께서 자신의 집을 심방온 것에 대한 답례로서 자신의 재산 절반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려 하였고, 토색한 자가 있다면 그에게는 4배로 갚아줄 것이라고 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헬라어원문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왜 삭개오가 그토록 주님을 만나보고 싶어했는지 그 이유를 말해주며, 왜 주님께서도 길 위가 아니라 그의 집에 가서 그와 대화를 하고 싶어했는지를 알려준다. 거기에서는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장면들이 있었다.

 

1. 들어가며

  여리고성의 세리장 삭개오의 이야기만큼 잘 알려진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삭개오의 회개 사건은 우리의 생각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삭개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삭개오 이야기에게만 깊이 빠져,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을 쉽게 잊어버린다. 주님께서는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태가 바늘의 구멍을 통과하여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음을 간과해버리는 것이다(눅18:24~25). 그런데 약대가 바늘 귀로 들어간 하나의 사건이 여리고에서 일어났다. 그 주인공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삭개오"다. 그는 대체 누구였는가? 그는 왜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고 했는가? 왜 그날 그 바쁜 와중에도 예수께서는 삭개오의 집에 굳이 들어가시려고 했던 것인가? 그래서 오늘은 부자이자 세리장이었던 삭개오가 과연 어떻게 되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칭함받게 되었고 그 집이 다 구원받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거기에는 놀라운 비밀이 들어 있다. 

 

2. 이 세상 사람들 중에 누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운가?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중에 하신 말씀을 살펴보면, 누가 천국에 제일 들어가기가 어려운지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주님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제 일번 순위는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뱀들이요 독사의 자식들로서,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는 존재(마23:33)"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들은 당시 자기들도 천국에 못 들어가는 자들이었지만 그곳에 들어가려고 하는 자들까지 못 들어가게 가로막고 있던 자들이었다(마23:12). 왜 그런가? 겉으로 보기에는 거룩하고 깨끗한 자들이었지만, 속으로는 더러움과 욕망으로 가득 차 있던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겉과 속이 다른 자는 하나님을 속이는 자이기에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천국 들어가기가 어려운 존재는 누구인가? 서두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그 사람들은 "부자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부자들은 재물에 대한 욕심이 너무나 커서 그것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은 재물을 하나님으로 섬긴다. 그러므로 부자들 중에서 천국에 들어가는 이는 아주 드문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부자들 중에 천국에 들어간 몇 안 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여리고성의 세리장(최고 세금징수요원)이자 부자였던 인물였던 삭개오였다. 그는 나중에 우리 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인증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칭함을 받았다. 대체 그는 어떻게 되어서 약대의 바늘귀를 통과하여 구원을 얻은 자가 될 수 있었는가?

 

3. 삭개오, 그는 대체 어떤 인물인가?

  성경의 등장인물 가운데서 어떤 이름이 나올 때에는 반드시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런데 여리고성의 세리장이었던 그 사람의 이름도 나온다. 그의 이름은 "삭개오"다. 헬라어로 보면, "자카이오스"인데, 이는 히브리어인 "자카이"에서 따온 이름이다. 히브리어로 "자카이"는 "깨끗한" 그리고 "순결한"이라는 뜻을 지녔다. 그러므로 우리는 삭개오의 원래 집안은 아주 경건한 신앙의 집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나 조부모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순결한 사람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에게 그러한 이름을 지어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삭개오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직업과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부자였고 또한 세리장이었기 때문이다. 부자는 예수께서 직접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사람들이라 일컬는 대표적인 사람이며, 세리는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죄인 취급하는 사람들이었다. 지옥이 있다면 먼저 들어가는 직업군에 속했던 것이 바로 "세리"였던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복음의 저자는 삭개오를 소개할 때에, 그냥 단순하게 "그 사람은 부자요 세리장이었다"라고 소개하지 않았다. 둘 다 미완료 문장을 사용하여 그를 소개한 것이다. 이는 그가 진즉부터 부자로 살았으며 그리고 세리가 된 지 오래 되었고 지금도 세리장으로 있는 인물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삭개오"라고 알려주는 것은 그는 세리였지만 원래 그의 가문은 아브라함의 혈통 가운데 믿음 좋은 가문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어떤 이유인지 부자가 되고자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 그가 세리가 되었으며, 이제 그 반열의 최고 꼭대기에 서 있다고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진정 부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모르는 아픔도 같이 있었다. 그것은 여리고성에 살고 있는 백성들과는 어울릴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백성에게 세금을 거둬 로마에서 바치는 직업을 가진 자였기에, 사람들은 그를 "매국노"라고 불렀으며, "세금착취꾼" 혹은 "세금도둑놈"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세리들은 로마에 바칠 세금을 거둬들일 때에, 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거나 이미 거둬들인 세금에서 일부를 자기 것으로 착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리장이었던 삭개오는 여리고성 백성들과는 결코 어울릴 수가 없었다. 또한 안식일이 되었지만 회당에도 나갈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행동했을 때에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비아냥을 들어야 했고, 침뱉음과 돌팔매질 같은 더러운 꼴을 보아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4. 삭개오는 무슨 죄를 지었는가?

  그렇다면, 삭개오는 무슨 죄를 지었던 인물인가? 그가 지은 죄를 살펴보면, 그는 적어도 4가지를 죄를 지었던 사람이었다. 첫째, 그는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어기고 있는 자였다. 왜냐하면 그는 이때까지 재물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에게 우상은 돈이었고 그래서 그는 "세리"라는 직업을 선택했고 결국 부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그는 제3계명과 제4계명도 어기고 있는 자였다. 왜냐하면 그의 직업은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직업 군에 속해 있었으며, 안식일이 되어도 회당에 갈 수 없었기에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셋째, 그는 더불어 제8계명도 어기고 있던 자였다. 왜냐하면 그의 직업은 백성의 고혈을 빨아서 착복하여 챙기는 매국노 세리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넷째, 그는 제10계명도 어기고 있던 자였다. 왜냐하면 재물에 대한 그의 끝없는 욕망이 결국 그를 세리장까지 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5. 왜 예수께서는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시려고 했는가?

  그러면 어느날 삭개오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다. 그래서 자기의 동네 앞으로 지나가신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는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나가 보았다. 그도 그분에게 꼭 말씀드릴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첫째, 그때는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나 있던 공생애 3년차 상황이었기에,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예수님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3절). 또한 그를 아는 여리고성 사람들은 결코 그에게 예수님을 볼 수 있도록 자리를 안내해 줄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돌팔매질만 안 당해도 좋은 상태였다. 그런데 또 하나 그는 키도 작았다(3절). 그러니 멀리서도 그분을 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삭개오, 그는 누구인가? 그는 수학자다. 세리였기 때문이다. 그는 빨리 계산해내었다. 그분을 뵙기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법을 강구할 것인가? 그래서 그는 예수께서 얼마 안 있어 자기 집 앞을 지나갈 것이고 그러면 저 앞에 있는 길목에는 지금은 비록 사람이 없지만 주님은 반드시 그리로 오실 것이 뻔했다. 그러자 그는 예수께서 가시려는 길 앞쪽으로 힘껏 달려갔다. 그리고 예수님을 더 잘 보기 위해, 길 옆에서 도로 위로 뻗어있는 돌무화과나무에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후 정말 그곳으로 예수께서 오셨다. 그런데 그곳에 오자 예수께서 발걸음을 멈추셨다. 그리고 자기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아니라 나이든 어른이, 그것도 부자의 옷을 걸치고 있는 자가 나무 위에 높이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주님은 삭개오를 위로 쳐다보셨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삭개오야, 서둘러 내려오노라.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5절)"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하나 던질 수 있다. 예수께서 왜 굳이 삭개오의 집에 가겠다고 했느냐 하는 것이다. 혹 무슨 물어볼 것이 있으면 잠시 멈춰서서 그를 데려다가하면 물어보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왜 굳이 그의 집에 들어가시겠다고 하셨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꼭 그의 집에 들어가셔야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아마도 예수께서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를 보실 때, 영 안을 통하여 그의 과거를 보신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삭개오도 주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였, 예수께서도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서 확인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꼭 그 집안에 들어가야만이 가능한 일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주님 앞에 나아가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해도 그것을 잘 할 수 있는 여건이 언제나 조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여건은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일이다. 회개하려고 하면 반드시 삭개오의 경우처럼 우리 앞에도 역시 장애물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는 자만이 결국 회개할 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회개하려고 시도한느 순간때 주님의 어떤 움직임이라고 발견했을 때에는 즉시 그것에 반응해야 하는 것이다. 주님은 그때 삭개오의 집에 머무시겠다까지 말했다. 이는 깨끗하고 순결한 그분을 더러운 자기의 집에 모신다는 것을 가리키는데, 그러면 그분의 체면과 위신이 깎힐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셨다. 그러자 삭개오는 기꺼이 예수님을 자기의 집에 모셔들이게 된다. 

 

6. 삭개오는 무슨 이야기를 주님께 들려주려고 했는가?

  그때 삭개오는 기쁨으로 주님과 그의 일행이었던 12제자들을 자기의 집으로 모셔들였다. 그리고 아마 식사를 대접했을 것이다. 그런데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 삭개오는 주님 옆에 다소곳이 서 있었다. 그것은 종이나 할 일인데 그는 주님 옆에서 겸손히 종의 자세를 취한 것이다. 그리고 삭개오는 최근에 일어난 자기의 일을 예수님에 아뢰이었다. 그는 이때까지 나이가 들도록 돈만을 추구하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돈을 만져보았지만 그는 그의 인생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자는 되었지만 사람취급을 받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때 그는 어디 외출 한 번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안식일이 되어도 회당에 한 번이라 제대로 갈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이제라도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회는 그를 받아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어느날 저녁에 그는 자신이 어릴적 아버지의 손을 잡고 회당에 가서 하나님을 찬송하여 말씀을 암송하던 시절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아니라 짐승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처럼 사는 것은 결코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삭개오는, 밤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하나님, 저로 하여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더해 주시옵소서"라고 말이다. 그런데 마냥 그렇게 시간만 보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새 출발하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종을 불러다가 말했을 것이다. "내 사랑하는 종아, 내가 돈이 많다고 해서 그것으로 무엇하겠니? 내 재산의 절반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거라. 그리고 내가 만일 억지로 세금을 빼앗은 일이 있다면 그것을 찾아내어 네 배로 갚아주어라." 그러기에 그는 주님 옆에 다소곳이 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주님께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주님, 보시옵소서.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의 절반을 지금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누구의 것을 거짓으로 갈취했다면 네 배를 갚아주고 있습니다(눅19:8직역)" 그렇다. 그런데 우리말 성경에는 그렇게 나와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 황공하게도 자신의 집에 방문하셨으니, 받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재산의 절반을 팔아 앞으로 구제하는데 사용할 것이며, 세금이 잘못 집행된 것을 찾아내어서4배로 변상해주겠다고 번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다. 그의 고백은 그가 지금 행하고 있는 일을 착실하게 고백한 것이지, 미래에 그렇게 하겠다는 포부를 고백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본문은 다 현재진행형이다.

 

7. 예수께서는 삭개오에게 왜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말씀하신 것인가?

  그렇다면, 이 말을 듣고 왜 예수께서는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으며, 이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언하신 것인가? 그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당시 회당에서는 멋지게 입고 찬송부르며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겉다르고 속다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거기에 있었다. 그들은 겉으로는 번지르하였으며 율법말씀을 잘 지키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삭개오의 집은 이와 반대였다. 죄인의 집이라 일컬어지고 있었고 재수없는 집이라 불리고 있었지만 사실은 삭개오의 눈물어린 회개로 인하여 그의 집 땅바닦은 눈물로 점철되어 있었고, 자신의 거의 잘못된 행위를 반성하기 위해 실천적인 회개를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직접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서 그가 흘린 눈물의 흔적을 손으로 만져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가 진짜 회개를 실천하고 있는지를 확인해보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돌무화과나무 위에서 본 삭개오의 과거모습은 실제였던 것이다. 그러자 주님은 이제 이렇게 선포하셨다. "보라.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으니, 이제 이이도 아브라함의 떳떳한 자손이로다" 그랬다. 회당에는 거짓으로 점철된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거기에는 진정 회개가 없었다. 하지만 삭개오의 집은 비록 회당도 아니었고 죄인들이라 불리던 자들이 있는 곳이지만, 삭개오의 회개의 눈물로 인하여 또한 실천하고 있는 회개의 열매들로 인하여 그곳은 하나님의 거룩한 장소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8. 나오며

  사실 그날 예수께서는 여리고성을 통과할 예정이었다(1절). 이제 속히 예루살렘에 올라가 속죄의 피를 흘려야 할 중요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바쁜 와중에서도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삭개오의 시선이었다. 그러자 주님은 가시려던 길을 멈추시고는 그의 집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손으로 땅바닦을 쓰다듬으시면서 그의 눈물을 닦아주셨다. 그리고 그가 실천적인 회개의 삶을 들으신 다음에는 그에게 이렇게 선포하였다. "누가 과연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말인가? 이 사람이 아니면 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 "온 집안 사람들이 다 함께 한 마음으로 회개를 실천하는 이 집안이야말로 구원이 임한 집이 아니면 또 어느 집이겠는가?" 주님은 그때 재물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새 출발을 하려는 삭개오의 마음을 보셨다. 그리 그의 집에 가고 싶어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선포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진실한 회개를 받아주시며, 우리에게도 하늘의 위로를 선포하시며, 구원을 선포하신다. 코로나로 인하여 비록 성전에 나가서 예배드리지는 못해도 하나님께 진실한 기도와 회개를 하는 자를 하나님을 다 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가는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내가 너의 마음을 다 안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 세상 사람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왜 그렇게 예배를 목숨처럼 소중이 여기는지를 지금은 모를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들도 다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혹 그날이 오지 않아도 오늘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가자. 

 

2020년 09월 13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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