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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E2yBz1AKQQg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47) 죄사함과 구원은 실제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는가?(행11:12~18)_2022-09-28(수)

https://youtu.be/E2yBz1AKQQg  [혹은 https://tv.naver.com/v/29537939 ]

 

1. 고넬료 가정의 구원역사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 실제적인 구원의 척도는 무엇인가?

  이방인 고넬료 가정을 찾아갔던 베드로에 의해 고넬료 집에 있는 사람들은 진정한 복음을 듣게 된다. 그리고 베드로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에 성령께서 그들 위에 내려오셨다(행11:44, 12:15). 그러자 그들은 성령이 주시는 선물을 받아서 방언을 말하게 되고 방언찬양을 하게 된다(행11:46).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성령강림 과정을 통해서 한 사람이 구원을 받는 데에는 결정적으로 '성령의 내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 구원의 척도는 그 사람 안에 성령이 들어오시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일 구원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의 기준은 곧 성령께서 그 사람 속에 들어오셨느냐 아니면 아니면 아직 들어오지 않았느냐로 판가름할 수가 있는 것이다. 

 

2. 성령은 언제 어떻게 사람 속에 들어오시는가?

  그렇다면 성령은 언제 어떻게 사람 속에 들어오게 되는가? 그것은 복음을 들어서 믿게 되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할 때에 들어오신다(행11:43~44, 12:14~17). 그것은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에 고넬료 가정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베드로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성령을 받은 일로 증명이 된다. 그렇다면 고넬료 가정에 있던 사람들은 대체 베드로로부터 무엇을 들었는가? 그것은 예수님이 누구시며 우리 죄인을 위해 그분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들었다(행11:36~42). 그리고 그분을 믿는 자는 그분의 이름 안에서 죄들의 용서를 받는다는 것을 들었다(행11:43).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진정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때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 속에 들어오시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믿고 회개할 때에 들어오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처음 구원을 받을 때에 사람은 어떤 회개를 하게 되는가?

  사람은 사실 2가지 종류의 회개를 하게 된다. 하나는 복음을 듣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회개를 하게 된다. 이것을 가리켜 '회심의 회개'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베드로가 고기잡이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후에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한 것과 같은 회개(눅5:8)가 바로 '회심의 회개'이며,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가 아버지의 곁을 떠나갔다가 다시 돌이키는 회개를 할 때 했던 그 회개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기" 때문이다(눅5:32).  그리고 또 하나의 회개가 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 자신이 지은 낱낱의 죄를 하나씩 자백하는 회개가 있다. 이것은 '자백의 회개'라고 할 수 있다(요일1:9). 그러니까 사람은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을 때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회개하는 '회심의 회개'를 하고,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자신이 지은 죄들을 자백하는 '자백의 회개'를 하는 것이다. 한편 '회심의 회개'는 우리가 한 번 하는 회개라고 한다면, 자백하는 회개는 일평생 지속하는 회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회심의 회개를 통해 비로소 성령을 받고 거듭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영적으로 보면, 거듭난 그 사람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다. 이때 그는 구원을 받은 것이요, 구원의 여정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그러나 구원의 완성은 죽을 때에 가서야 비로소 이뤄진다. 

 

4.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한 번 회심의 회개와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았으면 그 사람의 구원은 영원한 것이며 안전한 것인가? 아니다.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한 번 사람 안에 성령께서 들어오셨다고 할지라도 성령께서 영원히 그를 떠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요14:16에서 주님께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말씀했으니, 한 번 사람 안에 들어오신 성령께서는 영원토록 떠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헬라어원문으로 보지 않고 한글성경으로만 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 문장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이렇다. "그리고 나도 역시 아버지께 [장차] 요청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같은 종류의] 다른 보혜사(돕는 자)를 여러분에게 [장차] 주실 것입니다. 이는 그분이 여러분들과 함께 그 시대까지 [계속] 있게 하시기 위함입니다(요14:16 헬라어 직역)". 그렇다. 예수께서 보혜사를 제자들에게 주신 목적은 '그 시대(세상)까지' 곧 오는 다음 시대(세상)까지 성령께서 제자들과 계속해서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한 번 들어오신 성령이 모든 사람에게 계속해서 함께 있지는 아니한다. 왜냐하면 '그 시대까지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하여'라는 보내어지기는 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문장은 가정법문장이기 때문이다. '가정법'이란 실제가 아닌 것을 추측하거나 있음직한 가능성이나 가상을 나타내는 문장 표현이다. 성령이 그 시대까지 함께 있겠다는 것은 그랬으면 좋겠다는 표현인 것이지 꼭 그렇게 된다는 표현은 아닌 것이다. 이는 마치 요3:16의 말씀에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와 같은 이치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도 '멸망하지 않고' 그리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문장이 다 가정법 문장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독생자를 믿는 것은 그로 하여금 계속해서 멸망하지 않고 또한 계속해서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지, 중간에 멸망을 당하거나 영생을 잃어버리도록 하기 위함은 결단코 아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가정법 문장으로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지 꼭 그렇게 된다는 문장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자들 중에서도 실제로 멸망을 당하거나 영생을 잃어버리는 자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5. 어떤 자가 구원을 잃어버리게 되는가?

  그렇다면 한 번 구원을 얻었으나 영생을 잃어버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것은 오늘 고넬료의 집의 경우에서 살펴보았듯이, 성령의 내주가 그것의 핵심이다. 한 번 들어오신 성령께서 그 사람 속에 계속 머물러 있다면, 그 사람은 결코 영생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믿다가 주님을 부인한다든지 아니면 믿은 자라 할지라도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결국 구원을 잃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그 사람이 살아있을 동안에는 그 사람을 떠나지 않고 그 사람과 함께 하겠지만 만약 그가 죽는 그날까지 회개하지 않는다면 죽는 그날에 성령께서 그 사람을 떠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지옥에까지 동행하는 분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사도 바울도 엡4:30에서 "너희는 하나님의 성령을 계속해서 근심하게(슬퍼하게) 하지 말고 있어라. 그분 안에서 너희가 구원(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성령께서는 구원의 날 곧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우리를 인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성령을 받았던 자라 할지라도 그가 성령의 계속적인 권면을 거부하고 성령을 근심하게 하거나 성령을 소멸시킨다면(꺼 버린다면), 그가 죽는 그날에 성령께서도 그를 떠나가신다는 뜻이다. 성령께서는 분명 이 다음 시대(세상)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도록 보내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이 시대(세상)에 있을 때에 그분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따라 성령께서도 계속적으로 그 사람과 함께 있을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을 떠나가실 것인지가 결정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이라면 그는 반드시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한다. 그러지만 만약 죄를 짓고도 성령의 책망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회개하지 않으면, 그는 결국 성령을 잃고 말 것이다. 그리고 성령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곧 그가 구원에서 탈락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받은 구원이지라도 잃어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잘 모르겠다면, 이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죽어보면 금방 알게 될 것이다. 

 

2022년 09월 28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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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탄명성교회 2022.10.04 06:05

    1. 고넬료 가정의 구원역사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 실제적인 구원의 척도는 무엇인가?

      이방인 고넬료 가정을 찾아갔던 베드로에 의해 고넬료 집에 있는 사람들은 진정한 복음을 듣게 된다. 그리고 베드로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에 성령께서 그들 위에 내려오셨다(행11:44, 12:15). 그러자 그들은 성령이 주시는 선물을 받아서 방언을 말하게 되고 방언찬양을 하게 된다(행11:46).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성령강림 과정을 통해서 한 사람이 구원을 받는 데에는 결정적으로 '성령의 내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 구원의 척도는 그 사람 안에 성령이 들어오시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 구원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의 기준은 곧 성령께서 그 사람 속에 들어오셨느냐 아니면 아니면 아직 들어오지 않았느냐로 판가름할 수가 있는 것이다. 

     

    2. 성령은 언제 어떻게 사람 속에 들어오시는가?

      그렇다면 성령은 언제 어떻게 사람 속에 들어오게 되는가? 그것은 복음을 들어서 믿게 되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할 때에 들어오신다(행11:43~44, 12:14~17). 그것은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에 고넬료 가정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베드로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성령을 받은 일로 증명이 된다. 그렇다면 고넬료 가정에 있던 사람들은 대체 베드로로부터 무엇을 들었는가? 그것은 예수님이 누구시며 우리 죄인을 위해 그분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들었다(행11:36~42). 그리고 그분을 믿는 자는 그분의 이름 안에서 죄들의 용서를 받는다는 것을 들었다(행11:43).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진정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때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 속에 들어오시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믿고 회개할 때에 들어오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처음 구원을 받을 때에 사람은 어떤 회개를 하게 되는가?

      사람은 사실 2가지 종류의 회개를 하게 된다. 하나는 복음을 듣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회개를 하게 된다. 이것을 가리켜 '회심의 회개'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베드로가 고기잡이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후에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한 것과 같은 회개(눅5:8)가 바로 '회심의 회개'이며,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가 아버지의 곁을 떠나갔다가 다시 돌이키는 회개를 할 때 했던 그 회개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기" 때문이다(눅5:32). 그리고 또 하나의 회개가 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 자신이 지은 낱낱의 죄를 하나씩 자백하는 회개가 있다. 이것은 '자백의 회개'라고 할 수 있다(요일1:9). 그러니까 사람은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을 때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회개하는 '회심의 회개'를 하고,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자신이 지은 죄들을 자백하는 '자백의 회개'를 하는 것이다. 한편 '회심의 회개'는 우리가 한 번 하는 회개라고 한다면, 자백하는 회개는 일평생 지속하는 회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회심의 회개를 통해 비로소 성령을 받고 거듭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영적으로 보면, 거듭난 그 사람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다. 이때 그는 구원을 받은 것이요, 구원의 여정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그러나 구원의 완성은 죽을 때에 가서야 비로소 이뤄진다. 

     

    4.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한 번 회심의 회개와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았으면 그 사람의 구원은 영원한 것이며 안전한 것인가? 아니다.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한 번 사람 안에 성령께서 들어오셨다고 할지라도 성령께서 영원히 그를 떠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요14:16에서 주님께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말씀했으니, 한 번 사람 안에 들어오신 성령께서는 영원토록 떠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지 않고 한글 성경으로만 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 문장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이렇다. "그리고 나도 역시 아버지께 [장차] 요청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같은 종류의] 다른 보혜사(돕는 자)를 여러분에게 [장차] 주실 것입니다. 이는 그분이 여러분들과 함께 그 시대까지 [계속] 있게 하시기 위함입니다(요14:16 헬라어 직역)". 그렇다. 예수께서 보혜사를 제자들에게 주신 목적은 '그 시대(세상)까지' 곧 오는 다음 시대(세상)까지 성령께서 제자들과 계속해서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한 번 들어오신 성령이 모든 사람에게 계속해서 함께 있지는 아니한다. 왜냐하면 '그 시대까지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하여'라는 보내어지기는 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문장은 가정법 문장이기 때문이다. '가정법'이란 실제가 아닌 것을 추측하거나 있음직한 가능성이나 가상을 나타내는 문장 표현이다. 성령이 그 시대까지 함께 있겠다는 것은 그랬으면 좋겠다는 표현인 것이지 꼭 그렇게 된다는 표현은 아닌 것이다. 이는 마치 요3:16의 말씀에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와 같은 이치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도 '멸망하지 않고' 그리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문장이 다 가정법 문장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독생자를 믿는 것은 그로 하여금 계속해서 멸망하지 않고 또한 계속해서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지, 중간에 멸망을 당하거나 영생을 잃어버리도록 하기 위함은 결단코 아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가정법 문장으로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지 꼭 그렇게 된다는 문장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자들 중에서도 실제로 멸망을 당하거나 영생을 잃어버리는 자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5. 어떤 자가 구원을 잃어버리게 되는가?

      그렇다면 한 번 구원을 얻었으나 영생을 잃어버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것은 오늘 고넬료의 집의 경우에서 살펴보았듯이, 성령의 내주가 그것의 핵심이다. 한 번 들어오신 성령께서 그 사람 속에 계속 머물러 있다면, 그 사람은 결코 영생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믿다가 주님을 부인한다든지 아니면 믿은 자라 할지라도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결국 구원을 잃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그 사람을 떠나지 않고 그 사람과 함께 하겠지만 만약 그가 죽는 그날까지 회개하지 않는다면 죽는 그날에 성령께서 그 사람을 떠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지옥에까지 동행하는 분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사도 바울도 엡4:30에서 "너희는 하나님의 성령을 계속해서 근심하게(슬퍼하게) 하지 말고 있어라. 그분 안에서 너희가 구원(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성령께서는 구원의 날 곧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우리를 인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성령을 받았던 자라 할지라도 그가 성령의 계속적인 권면을 거부하고 성령을 근심하게 하거나 성령을 소멸시킨다면(꺼 버린다면), 그가 죽는 그날에 성령께서도 그를 떠나가신다는 뜻이다. 성령께서는 분명 이 다음 시대(세상)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도록 보내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이 시대(세상)에 있을 때에 그분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따라 성령께서도 계속적으로 그 사람과 함께 있을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을 떠나가실 것인지 결정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이라면 그는 반드시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한다. 그러지만 만약 죄를 짓고도 성령의 책망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회개하지 않으면, 그는 결국 성령을 잃고 말 것이다. 그리고 성령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곧 그가 구원에서 탈락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받은 구원지라도 잃어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잘 모르겠다면, 이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죽어보면 금방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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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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