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 Form
동영상URL https://youtu.be/mfiM5t6E8kM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61)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들이 반드시 경험하는 일은?(행14:19~28)_2022-11-02(수)

https://youtu.be/mfiM5t6E8kM  [혹은 https://tv.naver.com/v/30436112 ]

 

1.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바울이 수리아의 안디옥교회에서 파송을 받아 1차 전도여행을 하던 중 바울 일행은 비시디아의 안디옥에 도착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많은 결신자들을 얻는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바울의 전도함을 시기하여 바울과 바울의 일행을 박해하고 그곳에서 쫓아 내버린다(행13:50). 그러자 이동한 이고니온에서 바울은 또 많은 결실을 얻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손으로 표적들과 기사들을 행하면서 주의 은혜의 말씀을 증언했기 때문이다(행14:3). 하지만 여기에서도 유대인들이 바울을 돌로 치려 하여 루스드라로 이동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진짜 놀라운 일이 일어났으니 그것은 나면서 걷지 못하는 장애인이 걷게 되었기 때문이다(행14:8~10). 그러자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사를 드리려고까지 했다. 그러자 바울은 이를 억지로 말리게 되는데, 유대인들이 또 여기에도 들이닥친다. 심지어 루스드라에서 약 170Km 떨어진 비시디아 안디옥과 45Km 떨어진 이고니온에서도 유대인들이 와서 무리를 충동하여 바울을 돌로 치게 된다(행14:19). 바울은 피를 흘리고 쓰러지면서 얼마나 많이 맞았을까? 그들은 바울이 이미 죽은 채 있는 줄로 단정하고 그를 메어다가 성밖에다가 던져버린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11장 25절에서 "한 번 돌로 맞고"라는 간증을 한 적이 있는데, 바로 루스드라에서 당한 이 일을 기록하고 있는 것 같다. 

 

2. 바울은 왜 이틀 만에 다시 일어나 전도할 수 있었는가?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돌에 맞아 죽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루스드라에서 얻은 제자들이 그를 둘러서 있을 때, 그는 일어났다. 원문에 보니, "아니스테미'라는 단어로서, '위로 일으켜 세워졌다"는 뜻이다. 그렇다. 그는 죽은 것이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다시 그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추측컨대 바울이 3층 천을 방문하고 왔다는데 이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다음 날 바울이 더베로 이동하여 거기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칼로 손을 베이어도 일주일은 아파서 손을 잘 움직일 수가 없는데, 무수한 돌에 맞아 머리가 깨져서 피를 많이 흘렸던 바울이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고 또한 이틀 만에 아무렇지도 않게 전도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과연 말이 되는 이야기일까?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치료하시면 이러한 일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치유 천사를 시켜서 천국에 있는 생명나무의 잎사귀를 발라버리기 때문이다(계22:2). 천국과 지옥은 부활체가 들어가는 장소다. 그런데 둘 다 부활체를 입은 사람이 다칠 수가 있다. 부활체는 현재 육체의 몸처럼 피를 흘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도 치료제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생명나무의 잎사귀'이다. 아마도 바울이 그걸로 치유받은 것 같다. 그러면 즉시 몸이 고쳐지고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 특히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 사명을 가지고 온 자는 쉽게 죽지 않는다. 그 사명이 끝날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이다. 

 

3. 왜 유대인들은 바울을 그토록 미워하고 핍박하고 죽이려 했는가?

  그렇다면 왜 유대인들은 그토록 바울을 핍박하고 죽이려고 한 것인가? 그 이유를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본다면, 그들이 바울을 그토록 미워하고 죽이려 했던 이유는 2가지 때문이다. 첫째, 구원론의 문제요 둘째는 신론의 문제 때문이다. 첫째, 바울이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다함을 받을 수가 없으며, 생명을 얻을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행13:39,48).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모세의 율법은 목숨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었다. 그런데 모세의 율법으로서는 칭의도 받지 못하고 영생도 얻지 못한다고 가르치니 바울이 그토록 미웠던 것이다. 그들은 바울이 율법을 무시하고 모세를 무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는 법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다 준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고, 또한 그렇게 지킬 수 없는 법이기에 그것을 지켜서 생명을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둘째, 바울이 전한 하나님은 두 분 하나님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한 분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보내셨다고 전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다(신6:4). 그러므로 바울이 전한 복음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아들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이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이 믿고 있는 신과는 다른 하나님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창세기만이라도 제대로 보았더라면 하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아들로 오실 것을 알았을텐데(창18:10,14), 그들은 하나님께서 장차 아들로 사람 가운데 오신다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경륜과 신적 경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의 무지와 오해가 바울을 돌로 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 대해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에 이렇게 말했다. 

살전2:14~16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4. 비시디아 안디옥에 다시 돌아온 바울의 권면은 대체 무엇인가?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은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치료해 주시고 살려주셔서 이틀 만에 일어나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파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도의 역순으로 되돌아가면서 교회의 상황을 살피고 각 지역 교회에 장로들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말씀 안에 머물러 있기를 권면했다. 그러던 중에 바울이 다시 비시디아의 안디옥에 이르렀다. 그리고 거기에서 바울은 모든 성도들이 반드시 꼭 알고 있어야 할 아주 중요한 말씀을 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많은 환난들을 통과하여야 한다"는 것이다(행14:22).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매우 좁은 길이기 때문이다. 

 

5. 바울이 언급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바울이 언급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하나님의 왕국'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예수께서 왕으로 다스리는 왕국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왕국은 예수님만이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라 성도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으로 전 우주를 통치하는 나라다(롬8:17). 왜냐하면 그때에 성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통치하는 공동상속자들이 되기 때문이다(롬8:17). 그렇다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모든 성도들이 다 통치자가 되는가? 그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천국에는 왕 같은 제사장도 있고, 종 같은 제사장도 있기 때문이다(벧전2:9). 여기서 '제사장'이라 함은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을 가리킨다. 그렇다. 천국에서는 모든 성도가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모두 다 제사장의 신분을 갖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천국에 들어간 모든 성도들이 다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말했다. 주와 복음을 위해서 핍박을 받고 조롱과 멸시 그리고 끝내는 죽음을 맞이하는 자들이 결국 천국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딤후2:10~12). 그것도 '많은 환난'을 통과하는 자들이 천국에서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 믿음 안에서 천국의 상속자가 되기 위해서 오늘도 복음을 전파할 때에 우리가 핍박를 받고 조롱과 멸시를 받는다면 그리고 죽는다면 그는 천국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 될 것이다. 그것도 같이 믿고 있는 이들로부터 그렇게 핍박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이유는 그들이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요, 한 분 하나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나 비슷한 것 같다. 

 

2022년 11월 02일(수)

정병진목사


  1. 창세기강해(76)순례자인 아브라함이 붙들었던 신앙의 2가지 중심 축(창12:5~9)_2022-11-14(월)

  2. 사도행전강해(66) 바울과 바나바, 누가 양보했어야 했을까?(행15:36~41)_2022-11-10(목)

  3. 사도행전강해(67) 바울은 어떻게 디모데와 의사 누가를 동역자로 얻을 수 있었을까?(행16:1~10)_2022-11-11(금)

  4. 사도행전강해(65) 사역자에게 있어서 제일 큰 축복은 무엇인가?(행15:22~35)_2022-11-09(수)

  5. 사도행전강해(64) 배려의 마음이 돋보인 야고보 장로의 결정(행15:12~12)_2022-11-08(화)

  6. 창세기강해(75) 아브라함이 받은 복과 받을 복(창12:1~4)_2022-11-07(월)

  7. 사도행전강해(63) 할례의 멍에에서 회개와 예수의 흔적으로(행15:10~11, 갈6:11~18)_2022-11-04(금)

  8. 사도행전강해(62) 사람 특히 이방인의 경우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는가?(행15:1~11)_2022-11-03(목)

  9. 창세기강해(74) 아브라함이 이미 받은 저주와 아브라함이 앞으로 받을 복(창12:1~4)_2022-11-02(수)

  10. 사도행전강해(61)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들이 반드시 경험하는 일은?(행14:19~28)_2022-11-02(수)

  11. 창세기강해(73) 아브라함의 순종은 저주로부터의 탈출이었다(창24:1~9)_2022-11-01(화)

  12. 창세기강해(71) 아브라함의 조상과 그 가문에 왜 저주가 들어왔을까?(창11:27~32)_2022-10-31(월)

  13. 창세기강해(70) 셈의 하나님, 에벨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창11:10~26)_2022-10-28(금)

  14. 창세기강해(68) 한국인과 한국인의 조상은 과연 천손민족인가?(창10:24~30)_2022-10-27(목)

  15. 사도행전강해(60)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살아온 이방인들도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행14:8~18)_2022-10-26(수)

  16. 사도행전강해(59) 복음과 예수님을 모르게 되면 일어나게 되는 일들(행14:1~7,19)_2022-10-25(화)

  17. 창세기강해(67) 한국인의 선조는 욕단족의 후예인가?(창10:21~32)_2022-10-24(월)

  18. 창세기강해(66) 태양신 종교의 본산지가 된 바벨탑과 니므롯(창11:1~9)_2022-10-21(금)

  19. 창세기강해(64) 노아의 세 아들들의 족보가 들려주는 인류역사의 이야기(2)(창10:21~32)_2022-10-20(목)

  20. 사도행전강해(58) 바울의 설교를 듣고 왜 유대인들은 거부했지만 이방인들은 환영했는가(행13:44~52)_2022-10-19(수)

Board Pagination Prev 1 ...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98 Next
/ 98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