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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mVEUnpplqLI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100) 유대인들의 거짓고소, 과연 이길 수 있었을까?(행24:1~23)_2023-01-26(목)

https://youtu.be/mVEUnpplqLI [또는 https://tv.naver.com/v/32647047]

 

1. 바울은 어떻게 되어서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는가?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된 것은 여러 이방 교회들이 모아서 건네준 구제헌금을 예루살렘교회에 전달하기 위함이었고, 성전에 예물을 드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에베소에서 바울을 보았던 유대인들이 그를 보고 흥분한 나머지 성전에 있는 바울을 붙잡아 죽이려고 시도한다. 그때 이것을 지켜 본 천부장이 막아섰고, 안토니오 요새의 층계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변명할 기회를 가진다. 하지만 바울의 간증을 듣던 유대인들은 다시 그를 없이하자고 외친다. 그러자 다시 천부장이 그를 보호하게 되는데, 이때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이라는 것을 밝힌다. 그러자 천부장은 유대인들의 공회에 그를 데리고 간다. 하지만 공회에서도 죽은 자의 부활 문제로 소요가 그치지 않게 되고, 그를 다시 공회로 부를 시점에 중간에서 그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천부장이 바울을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 총독 벨릭스에게 보내어 정식으로 재판을 받게 한다. 그리하여 바울은 총독 앞에 서게 된다. 

 

2. 바울을 고발한 자들은 누구였으며, 죄목은 무엇이었는가?

  바울을 로마 총독에게 고발한 이들은 산헤드린 공회였다. 그러므로 바울을 고발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104km 떨어진 가이사랴까지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인 아나니아와 장로들과 변사 더둘로와 몇몇의 유대인들이 찾아왔다. 

  이들이 바울을 기소한 이유는 3가지였다. 첫째, 소요죄로 고발했다. 바울이 세계에 온 유대인들을 소요하게 했다는 것이다. 둘째, 이단 괴수죄로 고발했다. 즉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셋째, 성전 모독죄로 고발했다. 즉 바울이 성전에 이방인을 데리고 들어감으로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이다. 

 

3. 바울은 어떻게 이들의 고발에 변명해야 했는가?

  바울은 로마 시민이었기에 자신의 죄목에 대해 변호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로마 총독 벨릭스의 허락에 따라 자신을 변호해야 했다. 첫째, '소요죄'에 대해서는 2가지 이유를 들어 그들의 거짓으로 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행24:11~13). 첫째로는 자신이 예루살렘에 온 지 12일 밖에 안 되었으니, 소요를 일으킬 만한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누구와 변론을 했다든지 혹은 회당이나 시 안에서 무리를 소동했다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느냐고 되물은 것이다. 그러므로 증거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둘째, '이단 괴수죄'에 대해서는 자신의 믿음이 유대인들의 믿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행24:14~16절). 즉 바울도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믿으며, 그들의 소망처럼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종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정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셋째, '성전 모독죄'에 대해서는 그러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행24:17~19절). 다만 바울은 예루살렘에 자신의 민족을 구제하기 위해 구제헌금과 제물을 가지고 왔으며, 성전 안에서는 결례를 행한 것 뿐, 거기에서 어떤 모임을 갖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소동도 없이 성전 안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 자신을 반대할 사건이 있었으면 당사자가 고소했어야 하는데 고소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단지, 예루살렘의 공회에서 사건이 마무리 되지 못한 것은 공회 석상에서 죽은 자의 부활을 이야기함에 따라 분열이 일어나서 어쩔 수 없이 총독 앞에 서게 되었다고 말했다. 

 

4. 총독 벨릭스는 어떤 선고를 내렸는가?

  이에 총독 벨릭스는 고발자의 고발과 피고인의 변호를 다 들은 후에 판결을 내리게 된다. 그것은 선고를 연기한다는 것이었다(행24:22). 하지만 바울은 무죄였다. 그러므로 총독도 바울을 감옥에 수감하도록 명령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를 지키되 그에게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바울을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만 말하였다(행24:23). 일종의 자유로운 구류를 지시한 것이다. 이는 바울이 무죄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독은 바울을 석방하지는 않았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자신이 통치하고 있는 유대 지역의 대표자들인 산헤드린 공회가 서로 마찰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총독 벨릭스는 자기와 유대 지역 대표자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선고를 무기한으로 연기한 것이다. 그런데 벨릭스는 무려 2년씩이나 그렇게 하고 있었다. 

 

5. 이 사건이 말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총독 벨릭스 앞에서는 재판 과정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게 된다. 첫째, 진리의 참된 복음을 전하려 하는 자에게는 한사코 시기와 모함, 핍박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그렇다. 바울도 역시 그랬다. 바울의 복음 전파를 가로막기 위해 유대인들은 그를 뒤따라 다니면서 방해했고, 그를 죽이려고까지 하였다. 또한 유대인들은 총독 앞에서 바울을 이단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교리와 바울이 전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진리의 참된 복음을 전하려 하는 자를 가리켜 이단이니, 삼단이니 말하면서 모함을 하게 되는 것이 상당히 많다. 왜냐하면 사탄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알지 못하도록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기 때문이다. 둘째, 거짓을 동원한 사탄의 계략은 아무리 치밀할지라도 성공을 거둘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닿아 있었던 로마 총독과 산헤드린 공회는 같은 편이었지만 둘은 바울을 결코 정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바울이 행한 일들이 결코 죄가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총독은 뒷일을 생각하여 바울을 구류해 두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거짓이 진리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불의가 의로움을 이길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정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거짓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법정 앞에 서서 심판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결코 불의한 일을 저질러서는 아니 될 것이라고 본다. 

 

 

2023년 01월 26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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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탄명성교회 2023.01.26 09:53

    1. 바울은 어떻게 되어서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는가?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된 것은 여러 이방 교회들이 모아서 건네준 구제헌금을 예루살렘교회에 전달하기 위함이었고, 성전에 예물을 드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에베소에서 바울을 보았던 유대인들이 그를 보고 흥분한 나머지 성전에 있는 바울을 붙잡아 죽이려고 시도한다. 그때 이것을 지켜 본 천부장이 막아섰고, 안토니오 요새의 층계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변명할 기회를 가진다. 하지만 바울의 간증을 듣던 유대인들은 다시 그를 없이하자고 외친다. 그러자 다시 천부장이 그를 보호하게 되는데, 이때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이라는 것을 밝힌다. 그러자 천부장은 유대인들의 공회에 그를 데리고 간다. 하지만 공회에서도 죽은 자의 부활 문제로 소요가 그치지 않게 되고, 그를 다시 공회로 부를 시점에 중간에서 그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천부장이 바울을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 총독 벨릭스에게 보내어 정식으로 재판을 받게 한다. 그리하여 바울은 총독 앞에 서게 된다. 

     

    2. 바울을 고발한 자들은 누구였으며, 죄목은 무엇이었는가?

      바울을 로마 총독에게 고발한 이들은 산헤드린 공회였다. 그러므로 바울을 고발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104km 떨어진 가이사랴까지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인 아나니아와 장로들과 변사 더둘로와 몇몇의 유대인들이 찾아왔다. 

      이들이 바울을 기소한 이유는 3가지였다. 첫째, 소요죄로 고발했다. 바울이 세계에 온 유대인들을 소요하게 했다는 것이다. 둘째, 이단 괴수죄로 고발했다. 즉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셋째, 성전 모독죄로 고발했다. 즉 바울이 성전에 이방인을 데리고 들어감으로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이다. 

     

    3. 바울은 어떻게 이들의 고발에 변명해야 했는가?

      바울은 로마 시민이었기에 자신의 죄목에 대해 변호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로마 총독 벨릭스의 허락에 따라 자신을 변호해야 했다. 첫째, '소요죄'에 대해서는 2가지 이유를 들어 그들의 거짓으로 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행24:11~13). 첫째로는 자신이 예루살렘에 온 지 12일 밖에 안 되었으니, 소요를 일으킬 만한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누구와 변론을 했다든지 혹은 회당이나 시 안에서 무리를 소동했다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느냐고 되물은 것이다. 그러므로 증거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둘째, '이단 괴수죄'에 대해서는 자신의 믿음이 유대인들의 믿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행24:14~16절). 즉 바울도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믿으며, 그들의 소망처럼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종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정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셋째, '성전 모독죄'에 대해서는 그러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행24:17~19절). 다만 바울은 예루살렘에 자신의 민족을 구제하기 위해 구제헌금과 제물을 가지고 왔으며, 성전 안에서는 결례를 행한 것 뿐, 거기에서 어떤 모임을 갖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소동도 없이 성전 안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 자신을 반대할 사건이 있었으면 당사자가 고소했어야 하는데 고소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단지, 예루살렘의 공회에서 사건이 마무리 되지 못한 것은 공회 석상에서 죽은 자의 부활을 이야기함에 따라 분열이 일어나서 어쩔 수 없이 총독 앞에 서게 되었다고 말했다. 

     

    4. 총독 벨릭스는 어떤 선고를 내렸는가?

      이에 총독 벨릭스는 고발자의 고발과 피고인의 변호를 다 들은 후에 판결을 내리게 된다. 그것은 선고를 연기한다는 것이었다(행24:22). 하지만 바울은 무죄였다. 그러므로 총독도 바울을 감옥에 수감하도록 명령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를 지키되 그에게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바울을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만 말하였다(행24:23). 일종의 자유로운 구류를 지시한 것이다. 이는 바울이 무죄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독은 바울을 석방하지는 않았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자신이 통치하고 있는 유대 지역의 대표자들인 산헤드린 공회가 서로 마찰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총독 벨릭스는 자기와 유대 지역 대표자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선고를 무기한으로 연기한 것이다. 그런데 벨릭스는 무려 2년씩이나 그렇게 하고 있었다. 

     

    5. 이 사건이 말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총독 벨릭스 앞에서는 재판 과정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게 된다. 첫째, 진리의 참된 복음을 전하려 하는 자에게는 한사코 시기와 모함, 핍박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그렇다. 바울도 역시 그랬다. 바울의 복음 전파를 가로막기 위해 유대인들은 그를 뒤따라 다니면서 방해했고, 그를 죽이려고까지 하였다. 또한 유대인들은 총독 앞에서 바울을 이단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교리와 바울이 전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진리의 참된 복음을 전하려 하는 자를 가리켜 이단이니, 삼단이니 말하면서 모함을 하게 되는 것이 상당히 많다. 왜냐하면 사탄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알지 못하도록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기 때문이다. 둘째, 거짓을 동원한 사탄의 계략은 아무리 치밀할지라도 성공을 거둘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닿아 있었던 로마 총독과 산헤드린 공회는 같은 편이었지만 둘은 바울을 결코 정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바울이 행한 일들이 결코 죄가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총독은 뒷일을 생각하여 바울을 구류해 두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거짓이 진리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불의가 의로움을 이길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정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거짓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법정 앞에 서서 심판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결코 불의한 일을 저질러서는 아니 될 것이라고 본다. 

     

     

    2023년 01월 26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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