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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6IszWb5P8OI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07) 구약시대에 회복이 불가능한 2가지 죄는 무엇이었는가?(렘2:1~3:5)_2023-02-14(화)

https://youtu.be/6IszWb5P8OI [또는 https://tv.naver.com/v/33254108]

 

1. 예레미야 선지자는 구약시대의 인물인데 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가?

  예레미야는 구약시대의 인물이다. 그는 B.C.627년(요시야 13년)~B.C.586년(시드기야 11년)에 활동한 남유다 선지자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를 주목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가? 그것은 그가 예수님 당시에 메시야를 예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례 요한과 엘리야의 뒤를 이어 메시야의 예표자로 불려졌기 때문이다(마16:14). 그는 예루살렘 성이 망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려야 했으며,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 엄청난 책망을 쏟아냈던 인물이었다. 또한 그는 예수님처럼 홀로 어쩌면 외로이 자신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해야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레미야를 메시야의 예표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우리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2. 예레미야 2:1~3:5의 말씀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예레미야서는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은 1장으로서 예레미야의 소명과 사명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결론은 맨 마지막 52장으로서, 예루살렘이 정말 멸망하는 과정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여호여긴왕이 어느 정도 회복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 남유다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중간이 본론 부분인데, 본론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눠진다. 첫째로, 먼저 유다의 심판에 관한 12가지 단편 예언들이 나온다(2~25장). 그리고 둘째로 예루살렘 멸망 전후에 있었던 이야기와 심판 예언이 나온다(26~45장). 그리고 셋째로, 남유다 주변에 있는 10개국에 대한 미래와 운명 예언이 나온다(45~51장). 그중에서도 예레미야 2:1~3:5의 말씀은 본론의 유다의 심판에 관한 단편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는 2~25장의 맨 첫 부분으로서, 12가지 단편 예언들 중에 첫째 예언에 해당한다. 그리고 학자들은 이때를 예레미야가 부름받은 직후(B.C.627)의 어느 시점으로 적어도 요시야왕이 종교개혁(B.C.622)을 아직 시작하지 않는 시점에 받은 것으로 본다. 

 

3. 남유다에 관한 제1예언의 핵심 사항으로서, 구약시대에 회복이 불가능한 2가지 죄는 대체 무엇인가?

  남유다에 관한 제1예언(2:1~3:5)의 핵심 사항은 예레미야 2:13에 나와 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저수조)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저수조들)이니라(렘2:13)" 그렇다. 남유다 백성이 두 가지의 악을 행한 것이다. 하나는 그들이 생수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을 버린 것이요 또 하나는 물을 가두어 놓기 위해 스스로 웅덩이(저수조)를 팠지만 그 웅덩이는 물을 저장할 수 없는 터진 웅덩이를 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배은망덕하여 하나님을 저버렸다는 것인데 이같은 사실은 2:1~2:12에 나오며, 또 하나로 터진 웅덩이를 팠다는 것인데, 이것은 2:14~3:5에 그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 죄가 회복이 불가능한 죄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심판의 불가피성을 언급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는 더이상 죄를 그냥 묵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오직 심판으로서만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유다의 멸망은 이미 결정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다만 죄가 조금 덜 차서 그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죄가 가득 차야(관영해야)만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노아의 홍수 때를 보라. 그때 죄가 관영했다고 했다. 즉 그때도 역시 죄악이 가득찼기에, 하나님께서도 홍수를 통해 전 인류에게 심판을 행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무슨 죄를 저질렀길래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었는가? 그것은 좀 전에 렘2:13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첫째는 하나님을 버린 죄요, 또 하나는 터진 웅덩이를 판 죄인 것이다. 

 

4. 회복 불가능한 2가지 죄는 구체적으로 어떤 죄를 가리키는가?

  남유다가 심판을 피해 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은 무슨 죄 때문인가? 그것은 첫째, 그들이 하나님을 버린 죄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망각하고 은혜를 저버린 죄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어 하나님을 버리게 되었는지를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민족의 태동기 때 곧 출애굽 하여 광야에 있을 때에는 그들이 하나님을 따랐지만(렘2:1~3) 그들이 기름진 가나안 땅에 정착하자 그만 하나님을 저버렸다는 것이다(렘2:4~8). 왜 그랬는가? 그것은 그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있을 때에는 그곳 사막에서는 농사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이 주신 양식(만나, 메추라기, 반석에서 생수)만을 바라고 먹었으며, 또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기름진 땅, 과목이 있고 농사를 할 수 있는 땅에 이르자 금새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 살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도 살 만했기 때문이다. 이는 남유다가 가나안 정착 때부터 배도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렘2:4~8).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방 지역의 사람들 곧 서쪽의 깃딤의 사람들이나 동쪽으로 게달 민족을 보더라도, 그들이 비록 하나님을 섬기지는 않는다 해도 자신의 신들만큼은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유다는 자신의 신을 무익한 것들과 바꾸어 버렸다는 것이다(렘2:10~11).

  둘째, 그들이 스스로 웅덩이를 팠는데 터진 웅덩이를 판 죄 때문이다. 이스라엘 나라는 물이 귀한 나라다. 그래서 물이 생명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와 천국의 모든 땅을 적시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이치다. 그런데 그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있을 때에는 물을 저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광야는 물을 흡수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 도착하니 물을 가둬놓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저마나 농사를 위해 웅덩이(저수조)를 만들어 농사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것은 다 터진 저수조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의지했던 가나안의 신들 및 우상들, 그리고 주변 민족들(애굽과 앗수르)은 생수를 계속해서 공급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고로 남유다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섬기기 시작한 신들 및 우상들 그리고 주변 민족들은 다 가짜였던 것이다. 일시적으로 그들에게 물을 공급해 줄 수는 있지만 그들은 결코 하늘에서 단비와 늦은 비를 제공해 줄 수는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이 생수의 근원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하늘에서 단비와 늦은비를 공급해 줄 수 있는데, 남유다 백성들은 터진 웅덩이를 하나님으로 알고 그들을 섬기고 있다는 것이다.

 

5.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사항은 무엇인가?

  그러자 하나님께서 유다에 대한 심판의 불가피성을 신명기의 말씀을 들어서 언급하신다. 그것은 어떤 남자의 아내가 수치되는 일이 발견되어서 이혼증서를 써서 보내면 그 여자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갈 수 있으나 그 남자에게서 또다시 버려질 경우 다시 본 남편이 그 아내를 취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하다고 하셨다(신24:1~4). 그러므로 그 아내가 아무리 불쌍하다고 할지라도 전 남편은 그를 아내로 맞이하지 말라는 것이 율법 규정이었다. 그러므로 남유다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며 살고 있는데, 그들도 얼마 안 있으면 이방신들에게 버림을 당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또다시 받아 주겠느냐고 물으시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은 어리석어서, 하나님은 자기들의 소시적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자기들에게 노여움을 한없이 내지 않으실 것이고, 끝까지 노여움을 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렘3:4~5). 하지만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겠느냐면서 반문하신다. 그렇다. 이와 같은 상황은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복음이 들어왔던 초기에는 가난했고 병들었기에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눈물로 기도하여 잘사는 나라를 일구어 놓았는데, 이제 나라가 살만해지니까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가는 상황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이미 나를 구원하였으니 그분을 절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 한국 교회다. 그리고 그 이유는 한 번 구원을 받았으면 영원히 구원을 받은 것이요, 자신의 구원은 만세 전에 작정된 전적인 예정에 따른 것이니 자신은 절대 지옥에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과거에는 내 아내였지만 다른 남자에게 가서 그 남자에게서까지 버려진 아내를 다시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이다. 

 

2023년 02월 14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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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탄명성교회 2023.02.14 09:30

    1. 예레미야 선지자는 구약시대의 인물인데 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가?

      예레미야는 구약시대의 인물이다. 그는 B.C.627년(요시야 13년)~B.C.586년(시드기야 11년)에 활동한 남유다 선지자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를 주목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가? 그것은 그가 예수님 당시에 메시야를 예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례 요한과 엘리야의 뒤를 이어 메시야의 예표자로 불려졌기 때문이다(마16:14). 그는 예루살렘 성이 망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려야 했으며,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 엄청난 책망을 쏟아냈던 인물이었다. 또한 그는 예수님처럼 홀로 어쩌면 외로이 자신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해야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레미야를 메시야의 예표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우리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2. 예레미야 2:1~3:5의 말씀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예레미야서는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은 1장으로서 예레미야의 소명과 사명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결론은 맨 마지막 52장으로서, 예루살렘이 정말 멸망하는 과정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여호여긴왕이 어느 정도 회복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 남유다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중간이 본론 부분인데, 본론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눠진다. 첫째로, 먼저 유다의 심판에 관한 12가지 단편 예언들이 나온다(2~25장). 그리고 둘째로 예루살렘 멸망 전후에 있었던 이야기와 심판 예언이 나온다(26~45장). 그리고 셋째로, 남유다 주변에 있는 10개국에 대한 미래와 운명 예언이 나온다(45~51장). 그중에서도 예레미야 2:1~3:5의 말씀은 본론의 유다의 심판에 관한 단편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는 2~25장의 맨 첫 부분으로서, 12가지 단편 예언들 중에 첫째 예언에 해당한다. 그리고 학자들은 이때를 예레미야가 부름받은 직후(B.C.627)의 어느 시점으로 적어도 요시야왕이 종교개혁(B.C.622)을 아직 시작하지 않는 시점에 받은 것으로 본다. 

     

    3. 남유다에 관한 제1예언의 핵심 사항으로서, 구약시대에 회복이 불가능한 2가지 죄는 대체 무엇인가?

      남유다에 관한 제1예언(2:1~3:5)의 핵심 사항은 예레미야 2:13에 나와 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저수조)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저수조들)이니라(렘2:13)" 그렇다. 남유다 백성이 두 가지의 악을 행한 것이다. 하나는 그들이 생수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을 버린 것이요 또 하나는 물을 가두어 놓기 위해 스스로 웅덩이(저수조)를 팠지만 그 웅덩이는 물을 저장할 수 없는 터진 웅덩이를 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배은망덕하여 하나님을 저버렸다는 것인데 이같은 사실은 2:1~2:12에 나오며, 또 하나로 터진 웅덩이를 팠다는 것인데, 이것은 2:14~3:5에 그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 죄가 회복이 불가능한 죄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심판의 불가피성을 언급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는 더이상 죄를 그냥 묵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오직 심판으로서만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유다의 멸망은 이미 결정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다만 죄가 조금 덜 차서 그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죄가 가득 차야(관영해야)만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노아의 홍수 때를 보라. 그때 죄가 관영했다고 했다. 즉 그때도 역시 죄악이 가득찼기에, 하나님께서도 홍수를 통해 전 인류에게 심판을 행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무슨 죄를 저질렀길래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었는가? 그것은 좀 전에 렘2:13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첫째는 하나님을 버린 죄요, 또 하나는 터진 웅덩이를 판 죄인 것이다. 

     

    4. 회복 불가능한 2가지 죄는 구체적으로 어떤 죄를 가리키는가?

      남유다가 심판을 피해 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은 무슨 죄 때문인가? 그것은 첫째, 그들이 하나님을 버린 죄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망각하고 은혜를 저버린 죄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어 하나님을 버리게 되었는지를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민족의 태동기 때 곧 출애굽 하여 광야에 있을 때에는 그들이 하나님을 따랐지만(렘2:1~3) 그들이 기름진 가나안 땅에 정착하자 그만 하나님을 저버렸다는 것이다(렘2:4~8). 왜 그랬는가? 그것은 그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있을 때에는 그곳 사막에서는 농사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이 주신 양식(만나, 메추라기, 반석에서 생수)만을 바라고 먹었으며, 또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기름진 땅, 과목이 있고 농사를 할 수 있는 땅에 이르자 금새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 살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도 살 만했기 때문이다. 이는 남유다가 가나안 정착 때부터 배도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렘2:4~8).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방 지역의 사람들 곧 서쪽의 깃딤의 사람들이나 동쪽으로 게달 민족을 보더라도, 그들이 비록 하나님을 섬기지는 않는다 해도 자신의 신들만큼은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유다는 자신의 신을 무익한 것들과 바꾸어 버렸다는 것이다(렘2:10~11).

      둘째, 그들이 스스로 웅덩이를 팠는데 터진 웅덩이를 판 죄 때문이다. 이스라엘 나라는 물이 귀한 나라다. 그래서 물이 생명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와 천국의 모든 땅을 적시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이치다. 그런데 그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있을 때에는 물을 저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광야는 물을 흡수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 도착하니 물을 가둬놓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저마나 농사를 위해 웅덩이(저수조)를 만들어 농사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것은 다 터진 저수조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의지했던 가나안의 신들 및 우상들, 그리고 주변 민족들(애굽과 앗수르)은 생수를 계속해서 공급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고로 남유다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섬기기 시작한 신들 및 우상들 그리고 주변 민족들은 다 가짜였던 것이다. 일시적으로 그들에게 물을 공급해 줄 수는 있지만 그들은 결코 하늘에서 단비와 늦은 비를 제공해 줄 수는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이 생수의 근원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하늘에서 단비와 늦은비를 공급해 줄 수 있는데, 남유다 백성들은 터진 웅덩이를 하나님으로 알고 그들을 섬기고 있다는 것이다.

     

    5.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사항은 무엇인가?

      그러자 하나님께서 유다에 대한 심판의 불가피성을 신명기의 말씀을 들어서 언급하신다. 그것은 어떤 남자의 아내가 수치되는 일이 발견되어서 이혼증서를 써서 보내면 그 여자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갈 수 있으나 그 남자에게서 또다시 버려질 경우 다시 본 남편이 그 아내를 취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하다고 하셨다(신24:1~4). 그러므로 그 아내가 아무리 불쌍하다고 할지라도 전 남편은 그를 아내로 맞이하지 말라는 것이 율법 규정이었다. 그러므로 남유다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며 살고 있는데, 그들도 얼마 안 있으면 이방신들에게 버림을 당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또다시 받아 주겠느냐고 물으시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은 어리석어서, 하나님은 자기들의 소시적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자기들에게 노여움을 한없이 내지 않으실 것이고, 끝까지 노여움을 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렘3:4~5). 하지만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겠느냐면서 반문하신다. 그렇다. 이와 같은 상황은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복음이 들어왔던 초기에는 가난했고 병들었기에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눈물로 기도하여 잘사는 나라를 일구어 놓았는데, 이제 나라가 살만해지니까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가는 상황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이미 나를 구원하였으니 그분을 절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 한국 교회다. 그리고 그 이유는 한 번 구원을 받았으면 영원히 구원을 받은 것이요, 자신의 구원은 만세 전에 작정된 전적인 예정에 따른 것이니 자신은 절대 지옥에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과거에는 내 아내였지만 다른 남자에게 가서 그 남자에게서까지 버려진 아내를 다시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이다. 

     

    2023년 02월 14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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