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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W46-N0DXnlQ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24) 끝났다고 해서 다 끝난 것으로 알 것인가?(렘24:1~10)_2023-03-07(화)

https://youtu.be/W46-N0DXnlQ [또는 https://tv.naver.com/v/34139594]

 

1. 남유다의 여호야긴왕이 바벨론 왕에게 포로로 잡혀간 후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보여 주신 환상은 무엇인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인 여고냐(여호야긴)와 유다의 고관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어떤 환상을 보여 주셨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의 두 광주리' 환상이었다(렘24:1). 그런데 한 광주리 안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들어 있었고, 한 광주리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가과 들어 있었다. 여기서 무화과가 성전 앞에 놓였다는 것은 이것들이 첫 열매로 하나님께 드려진 무화과라는 것을 말해 준다.

 

2. 하나님의 성전 앞에 드려진 무화과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주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 두 광주리 환상을 보여 주면서, 이 무화과의 두 광주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예레미야에게 설명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두 광주리 안에 들어 있는 그 무화과들은 남유다의 백성의 두 무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사람들은 무화과나무를 가리켜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4장에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말씀하셨던 바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싹을 내는 것'을 가리켜서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무화과는 처음 익은 듯한 것이었다. 고로 이스라엘 백성이야말로 모든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께 첫 열매로 드려진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윽고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좋은 무화과를 가리키는지, 그리고 무엇이 나쁜 무화과를 가리키는지를 알려 주셨다. 일반적으로 '나쁜 무화과'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남유다의 백성들을 가리킬 것이고, '좋은 무화과'는 붙잡혀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남유다의 백성들을 가리킬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왜냐하면 포로로 잡혀간 자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들로서 저주받은 자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와 정반대로 말씀하셨다. '좋은 무화과'는 오히려 '갈대아인의 땅에 붙들려 간 자들'이라는 것이다(렘24:5~7).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곳에서 잘 돌봐주셨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여 들이셔서 그들을 세우고는 헐지 않으실 것이며, 심고는 뽑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렘24:5~6). 그래서 그들이 다시 고토로 돌아오게 될 때에, 그들은 자신에게 이 모든 일을 행하신 분이 여호와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고, 전심으로 주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나쁜 무화과'가 누군지도 말씀해 주셨다. 그들은 바로 예루살렘에 남겨진 자들과 바벨론의 침략을 피해 애굽으로 달아난 자들이라고 말씀하셨다(렘24:8). 왜 그러한가? 하나님께서 진정 버린 자는 그때 붙잡혀 간 유다 백성이 아니라 오히려 남겨진 유다 백성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남겨진 유다 백성들은 장차 여러 나라들 가운데 흩트려뜨림을 받아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며, 그들이 사는 곳에서 수치와 웃음거리와 저주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아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치시되,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끝장날 때까지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렘24:9~10). 

 

4. 왜 하나님께서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를 반대로 말씀하신 것인가?

  사실 여호야긴왕 때 바벨론에 붙들려 간 자들은 '버림받은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하나님께서는 반대로 이야기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바벨론에 끌려간 자들이야말로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이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을 달게 받아들이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그곳에서 집을 짓고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며, 그곳에서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거기서 번성하여 줄어들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야말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이었던 것이다(렘29:5~6). 그러면 그들은 심판 중일지라도 살아남게 될 것이고, 회개할 기회가 주어지며,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삶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죄는 반드시 그 댓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죄지은 자는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심는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벨론으로 끌려간 자들은 자기와 자기 선조들이 지은 죄를 달게 받아들이겠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값을 치르겠다는 자들이 그들이다. 하지만 심판 중일지라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따라 그들은 바벨론에게 끌려갔으나 거기에서 죽지 않고 번성하다가 돌아와서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회복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그들이야말로 진짜 '좋은 무화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데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바벨론에 대항하여 싸웠다. 그리고 그중에 어떤 이들은 예루살렘을 등지고 애굽으로 떠나간 자들이 있었다. 주님은 이들을 '나쁜 무화과'라고 하셨다. 그들은 자신의 죄값을 자신이 치르지 않겠다고 대항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러한 무화과는 반드시 버리실 것이고 땅에서 뽑아 버리시고 파괴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달게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에도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오늘날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이들은 거듭난 자들로서 가나안 땅인 천국에 들어갈 자들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믿고도 계속해서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남유다의 경우와 같게 하실 것이다. 즉 그들의 죄악이 차기를 기다렸다가 그 죄가 차는 순간 그 땅에서 뽑아 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한 번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이들도 역시 하나님의 성전에 바쳐진 첫 열매들에 속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들은 결국 썩은 무화과로 분리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천국에서 뽑혀져 성밖으로 내던져지게 될 것이다. 

 

5. 오늘날 죄를 지은 자라도 그 벌을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날 우리 예수믿는 자들은 참으로 복된 시기에 태어난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남유다가 멸망당할 때만 해도 그들은 자기와 자기의 조상들이 지은 죄값을 자기들이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예수께서 오셔서 인류의 죄값을 대신 처리해 주셨기에, 예수믿는 지금의 성도들은 객관적으로는 그 죄값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실제로 예수믿는 자들이 그 죄값을 전혀 치르지 않고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예수믿는 자들이라도 가난에 허덕이며, 병들고, 자녀들의 앞길이 막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값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있다. 그것은 우리가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배려를 무시함으로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데 회개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벧후3:9). 곧 예수믿는 자라도 누구든지 회개하는 자가 되었을 때에 비로소 실제적으로 벌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 벌은 육체적으로는 가난과 질병과 저주가 임하는 것이요, 영적으로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열심히 회개한다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신 벌을 우리도 실제적으로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회개할 때에 우리에게 가난과 질병과 저주를 가져다 주는 귀신들이 떠나가기 때문이요, 행위책의 죄의 기록이 사라져 새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고로 열심히 회개하자. 회개가 진정 우리로 하여금 실제적으로 벌을 면제시켜 주는 가장 귀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2023년 03월 07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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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탄명성교회 2023.03.07 10:47

    1. 남유다의 여호야긴왕이 바벨론 왕에게 포로로 잡혀간 후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보여 주신 환상은 무엇인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인 여고냐(여호야긴)와 유다의 고관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어떤 환상을 보여 주셨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의 두 광주리' 환상이었다(렘24:1). 그런데 한 광주리 안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들어 있었고, 한 광주리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가과 들어 있었다. 여기서 무화과가 성전 앞에 놓였다는 것은 이것들이 첫 열매로 하나님께 드려진 무화과라는 것을 말해 준다.

     

    2. 하나님의 성전 앞에 드려진 무화과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주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 두 광주리 환상을 보여 주면서, 이 무화과의 두 광주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예레미야에게 설명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두 광주리 안에 들어 있는 그 무화과들은 남유다의 백성의 두 무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사람들은 무화과나무를 가리켜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4장에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말씀하셨던 바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싹을 내는 것'을 가리켜서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무화과는 처음 익은 듯한 것이었다. 고로 이스라엘 백성이야말로 모든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께 첫 열매로 드려진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윽고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좋은 무화과를 가리키는지, 그리고 무엇이 나쁜 무화과를 가리키는지를 알려 주셨다. 일반적으로 '나쁜 무화과'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남유다의 백성들을 가리킬 것이고, '좋은 무화과'는 붙잡혀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남유다의 백성들을 가리킬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왜냐하면 포로로 잡혀간 자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들로서 저주받은 자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와 정반대로 말씀하셨다. '좋은 무화과'는 오히려 '갈대아인의 땅에 붙들려 간 자들'이라는 것이다(렘24:5~7).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곳에서 잘 돌봐주셨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여 들이셔서 그들을 세우고는 헐지 않으실 것이며, 심고는 뽑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렘24:5~6). 그래서 그들이 다시 고토로 돌아오게 될 때에, 그들은 자신에게 이 모든 일을 행하신 분이 여호와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고, 전심으로 주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나쁜 무화과'가 누군지도 말씀해 주셨다. 그들은 바로 예루살렘에 남겨진 자들과 바벨론의 침략을 피해 애굽으로 달아난 자들이라고 말씀하셨다(렘24:8). 왜 그러한가? 하나님께서 진정 버린 자는 그때 붙잡혀 간 유다 백성이 아니라 오히려 남겨진 유다 백성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남겨진 유다 백성들은 장차 여러 나라들 가운데 흩트려뜨림을 받아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며, 그들이 사는 곳에서 수치와 웃음거리와 저주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아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치시되,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끝장날 때까지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렘24:9~10). 

     

    4. 왜 하나님께서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를 반대로 말씀하신 것인가?

      사실 여호야긴왕 때 바벨론에 붙들려 간 자들은 '버림받은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하나님께서는 반대로 이야기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바벨론에 끌려간 자들이야말로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이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을 달게 받아들이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그곳에서 집을 짓고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며, 그곳에서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거기서 번성하여 줄어들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야말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이었던 것이다(렘29:5~6). 그러면 그들은 심판 중일지라도 살아남게 될 것이고, 회개할 기회가 주어지며,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삶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죄는 반드시 그 댓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죄지은 자는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심는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벨론으로 끌려간 자들은 자기와 자기 선조들이 지은 죄를 달게 받아들이겠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값을 치르겠다는 자들이 그들이다. 하지만 심판 중일지라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따라 그들은 바벨론에게 끌려갔으나 거기에서 죽지 않고 번성하다가 돌아와서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회복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그들이야말로 진짜 '좋은 무화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데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바벨론에 대항하여 싸웠다. 그리고 그중에 어떤 이들은 예루살렘을 등지고 애굽으로 떠나간 자들이 있었다. 주님은 이들을 '나쁜 무화과'라고 하셨다. 그들은 자신의 죄값을 자신이 치르지 않겠다고 대항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러한 무화과는 반드시 버리실 것이고 땅에서 뽑아 버리시고 파괴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달게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에도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오늘날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이들은 거듭난 자들로서 가나안 땅인 천국에 들어갈 자들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믿고도 계속해서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남유다의 경우와 같게 하실 것이다. 즉 그들의 죄악이 차기를 기다렸다가 그 죄가 차는 순간 그 땅에서 뽑아 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한 번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이들도 역시 하나님의 성전에 바쳐진 첫 열매들에 속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들은 결국 썩은 무화과로 분리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천국에서 뽑혀져 성밖으로 내던져지게 될 것이다. 

     

    5. 오늘날 죄를 지은 자라도 그 벌을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날 우리 예수믿는 자들은 참으로 복된 시기에 태어난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남유다가 멸망당할 때만 해도 그들은 자기와 자기의 조상들이 지은 죄값을 자기들이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예수께서 오셔서 인류의 죄값을 대신 처리해 주셨기에, 예수믿는 지금의 성도들은 객관적으로는 그 죄값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실제로 예수믿는 자들이 그 죄값을 전혀 치르지 않고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예수믿는 자들이라도 가난에 허덕이며, 병들고, 자녀들의 앞길이 막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값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있다. 그것은 우리가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배려를 무시함으로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데 회개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벧후3:9). 곧 예수믿는 자라도 누구든지 회개하는 자가 되었을 때에 비로소 실제적으로 벌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 벌은 육체적으로는 가난과 질병과 저주가 임하는 것이요, 영적으로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열심히 회개한다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신 벌을 우리도 실제적으로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회개할 때에 우리에게 가난과 질병과 저주를 가져다 주는 귀신들이 떠나가기 때문이요, 행위책의 죄의 기록이 사라져 새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고로 열심히 회개하자. 회개가 진정 우리로 하여금 실제적으로 벌을 면제시켜 주는 가장 귀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2023년 03월 07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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