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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47) 이긴 자의 예표인 요셉의 삶에서 배우는 소중한 교훈(창39:1~6)_2023-08-25(금)

https://youtu.be/8-e8KDUJIio

 

하나님께서 함께했던 요셉은 왜 형통의 축복을 받았을까? 그도 하나님의 사람이고 우리도 하나님의 사람인데 그리고 그도 성실하게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왜 그는 형통의 축복을 받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축복이 뒤따라오지 않는 것인가? 여기 2가지 다른 조건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삶 뿐만 아니라 신앙의 영역에 있어서도 성공과 실패의 중요한 잣대로 작용할 것이다.

 

1. 들어가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이야기를 읽을 때에 2가지 반응을 보인다. 하나는 "참으로 요셉은 좋겠다"고 하면서 그를 부러워하는 것이다. 즉 요셉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길래 하나님께서 요셉을 사랑하셔서 그와 함께 계시고 그로 하여금 형통의 축복이 따라다니게 했는지, 요셉은 참으로 좋겠다고 부러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는 이것의 반대적인 것으로서, 왜 하나님께서는 요셉과는 함께 해주시고 나와는 함께 안 해주셔서 내게는 요셉과 같은 형통한 축복이 따라오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성경을 잘못 이해한데서 오는 오해 중의 오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요셉은 그가 손대는 모든 일이 형통할 수밖에 없던 남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을 때에 요셉에게는 곧바로 어떤 결과물이 도출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을 때에 왜 그에게 형통함의 축복이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통전적으로 살펴보고, 또한 오늘 나도 요셉처럼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요셉이 누린 바 그러한 형통의 축복을 함께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하나님께서는 요셉만 편애하신 것인가?

  얼핏 보기에 하나님은 요셉만 편애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창세기 39:2~3의 말씀만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기에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만 냉정을 찾으면서, 성경을 보면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잘못 오해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신약시대 이후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같은 사람에게만 함께 하시고 보통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무엇을 약속하셨는가? 그것은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디 그뿐인가? 예수께서는 당신이 제자들의 곁을 떠나가시려 하자, 걱정하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무엇을 약속하셨는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다. 내가 떠나가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 줄 것이다. 그러면 그분이 내 대신 와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순절 성령강림이후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 성도들은 없다. 다 함께 하신다. 문제는 왜 요셉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을 때 형통함이 찾아왔는데, 우리도 똑같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데에도 우리에게서는 형통함의 축복이 나타나지 않느냐는 것이다. 

 

3. 요셉이 형통함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첫번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함께 했을 때에 그에게는 형통함의 축복이 나타났는데, 우리에게는 그것이 잘 나타나지 않는지 그 이유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선 알 것은 첫째로,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듯이, 심지 않고서 거둘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요셉을 위해 한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었던 것은 요셉이 잘 해서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그가 성실한 사람이었고 또한 충성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한편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다는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도 정말 요셉처럼 성실하고 충성된 성도가 많지만 형통한 삶을 살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성도들 중에 성실히 살았지만 요셉처럼 모두가 다 형통함의 축복을 누리고 사는 것은 아닌 것이다. 뭔가 다른 문제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요셉 이전 세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찾아보아야 한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하나님께서 "누구와 함께 할 것이다"는 표현이 특정한 사람에게만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는 장차 그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하시고 땅을 주시겠다고도 몇 번 씩이고 말씀하셨지만 단 한 번도 아브라함과는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었던 이삭과 그리고 그의 손자였던 야곱에게는 그와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을 처음부터 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는 당신이 그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던 것일까? 그것은 사실 알고 보면 쉽고 간단한데, 모를 때에는 매우 어렵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에게 아직 저주가 남아 있었기에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시겠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가 회개하여 진정 저주로부터 벗어나자 하나님께서는 그 후손들부터 그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은 결코 하지 않으셨다. 그를 복이 되게 하시겠다고만 약속하셨고, 땅의 모든 사람들이 장차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만 말씀하셨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장차 자손도 줄 것이고, 땅(기업)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너와 함께 할 것이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신 것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에게서 저주가 완전히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브라함에게는 가문의 저주가 흐르고 있었다. 그의 가문은 일찍 사람이 죽거나 임신을 못하는 저주가 있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조상들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할아버지도 일찍 죽었고 친 형도 일찍 죽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마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의 저주 가운데 놓여있었다. 그 집안이 우상숭배의 저주 가운데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역사는 저주에서 빠져나오는 사람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비로소 할례언약을 받으면서 회개하자, 그에게서 저주는 완전히 떠나가게 된다. 불임이었던 아내 사라가 곧바로 임신을 하게 되었고 1년 뒤에 이삭을 출산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아들과 손자는 달랐다. 아브라함의 아들이었던 이삭이나 아브라함의 손자였던 야곱에게는 처음부터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이삭과 야곱에게나 둘 다 이미 가문의 저주에서 벗어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나타나실 때부터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고 말씀하셨다(창26:2~3). 이는 이삭이 이미 저주에서 벗어난 상태에 있었으니,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이삭과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이삭에게는 곧바로 형통함의 축복이 뒤따라온 것이다. 다시 말해 저주를 벗어난 상태에서 이삭이 열심히 살았기에 그가 손대는 모든 일에 복이 임한 것이다. 성경은 그때에 이삭이 그랄 땅에서 농사를 지었더니 100배의 소출을 거두게 되었고,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었으며, 양과 소는 떼를 이루고 노비도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랄 목자들이 우물을 빼앗아 가면 그냥 넘겨주고 또 다시 우물을 팠는데 놀랍게도 판 곳마다 우물이 나왔던 것이다. 이삭은 이미 저주가 끝난 상태에서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또 어떠했는가? 야곱도 이삭과 마찬가지였다. 그의 할아버지가 이미 저주를 끝낸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야곱도 그가 손대는 모든 일에 형통의 축복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랬다. 야곱이 외삼촌의 양떼를 돌보니 외삼촌의 양떼는 금새 불어나 번성하여 떼를 이루게 되었다(창30:30). 그리고 자신도 외삼촌과 재계약을 맺은 후부터는 양떼와 가족들을 두 떼를 이루어 귀향할 수 있었던 것이다(창32:10). 왜 그럴 수 있었는가? 이는 그의 할아버지였던 아브라함이 이미 회개하여 저주를 끝낸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셉도 바로 그 가문에서 이삭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요셉은 기본적으로 저주를 벗어난 상태에 있었다. 그러므로 요셉도 역시 이삭과 야곱처럼 형통한 자가 되어 손대는 모든 일에 복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4. 요셉이 형통함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두번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요셉이 형통함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유 하나 뿐이었을까? 아니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요셉이 형통의 축복을 받게 된 두 번재 이유는 요셉이 항상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가슴에 품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셉이 그토록 어려운 시련과 고통과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그의 생애 가운데 단 한 번도 절망을 했다든지, 아니면 원망을 했다든지, 아니면 비관을 했다든지 하는 대목이 나오지 않는다. 그의 가슴 속에는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그가 붙든 것이다. 또한 요셉의 삶에 있어서 특별한 점 하나는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씀이 한 번도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요셉의 시대에 요셉에게 단 한 번도 나타나서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다만 꿈으로 환상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르쳐 주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요셉에게 하나님은 그분이 보여준 것들이었다. 그래서 요셉은 하나님께서 보여주고 들려준 것을 항상 가슴에 새겼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신 꿈이요 비전(환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꿈을 붙잡으면서 일평생 고난을 이겨냈던 것이다. 역경을 돌파하며 간 것이다. 고로 요셉이 형통함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두 번째 요소는 그가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끝까지 붙들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내가 여러가지 환경 속에서 마음이 흔들리게 되는 이유는 자신에게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이 없어서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꿈과 비전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소명을 가진 자는 결코 중간에 좌절하거나 낙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게 하실 줄로 믿기 때문이다. 요셉에게는 이렇듯 주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5. 요셉이 이긴 자로 보여주었던 5가지의 삶의 모범적인 모습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요셉이 형통함을 입을 수 있었던 이유는 위에서 말한 2가지 뿐인가? 아니다. 요셉은 사실 이긴 자의 전형적인 표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생애 가운데 그가 이긴 자로 살아갔던 이유들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음에 설명하는 것들이 비록 요셉이 형통하게 되는데 결정적인 이유가 되지는 않겠지만, 이런 것들도 역시 요셉이 이긴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알게 해준다. 그렇다면 요셉이 이긴 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었던 이유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것은 약 5가지 정도가 나오는데, 찬찬히 이것들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요한계시록 2~3장에 기록된 이긴 자들의 삶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소개되는 5가지 것들은 나중에 한 편의 설교도 다시 등장할 수 있지만 여기서 간략하게나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렇다. 요셉이 이긴 자였다는 것은 첫째, 그가 항상 부모나 권위를 가진 자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분들을 공경하였다는 것이다(창37:12~13). 그랬다. 아버지가 형들의 안부를 물으려고 세겜으로 보내고자 할 때  요셉이 하는 말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에베소 교회가 그랬다. 에베소 교회는 자기를 가르쳤던 사도들을 주님처럼 여기고 섬겼다. 먹을 것도 안 먹고 마실 것도 안 마시면서 사도들을 섬겼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가짜 사도가 찾아왔다. 그때부터 그들은 목회자를 대접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첫 사랑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자신은 못 먹으면서도 사도들을 대접했던 이기는 자들에게는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계2:2~4). 둘째, 요셉은 언제나 맡겨진 일에 충성했다는 것이다(창39:4, 21~22). 그런데 요한계시록 2장에서도 서머나교회 성도들을 충성스러운 교회의 성도들로 묘사하고 있다. 주님을 위해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성도들이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이었던 것이다. 셋째, 요셉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음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지위나 신분을 이용하여 세상의 즐거움이나 향락에 취한 일이 없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버가모교회와 두아디라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보면, 이기는 자가 되려면 이 세상이 주는 향락에 취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넷째, 요셉은 하나님 이외에 다른 어떤 신들이라도 그것을 자기의 마음에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계2:13., 3:8). 언제 어디에 있든지 요셉은 항상 주님만을 바라보고 살았던 것이다. 다섯째, 자기를 죽이려고 했으며 결국 자신을 노예로 팔아버렸던 형들이었지만 그들의 죄를 다 용서해주었다는 것이다.  형들에게 악한 감정을 계속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형들을 용서해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셉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그들의 가족들도 다 잘 돌보아주겠다고 그들을 위로하는 말까지 하였고 실천하였다(창50:19~21). 

 

6. 나오며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를 돌아볼 차례다. 나는 과연 이긴 자의 예표였던 요셉처럼 살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긴 자였던 요셉의 삶의 조건들 7가지 가운데 과연 내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첫째, 나도 과연 조상의 저주를 끊어냈는가? 둘째, 나도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 그리고 소명을 붙들고 있는가? 셋째, 나의 부모나 권위를 가진 자를 공경하고 그들의 말에 순종하고 있는가? 넷째, 맡겨진 일에 충성하고 있는가? 다섯째, 세상 즐거움과 향략을 즐기지 않고 있는가? 여섯째,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들을 혹시 마음에 두고 있지 아니한가? 일곱째,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혔거나 힘들게 했던 사람마저 다 용서해주었는가? 그렇다. 믿음이란 자신의 삶에서 요셉처럼 이긴 자의 삶 중에서 내게 무엇이 부족했는지 그리고 내게는 무엇이 없었는지를 살펴보고, 그것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아직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다면 그것부터 시작하라. 그 저주 때문에 축복의 첫 단추부터 꿰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주를 끊어낸 다음에 꿈과 비전과 소명을 붙잡고 낙심치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 그리고 웃어른을 공경하고 맡겨진 일에 충성하며, 세상 즐거움과 향락을 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마저 용서해주면서 앞으로 나아가자.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도 요셉처럼 형통의 축복으로 안내해 주실 것이다. 

 

2023년 08월 25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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