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구원(27)] 구원받으려면 예수님을 주(主)로 믿어야 한다는 고백의 진정한 의미는?(행16:30~31)_2024-06-21(금)
https://youtu.be/kjQclLm_nbo
1. 들어가며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마케도냐의 빌립보 성에 갔을 때, 그는 어떻게 구원을 얻는지를 물어보는 간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이 말씀은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말씀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면,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회개하고 믿어야 한다(막1:15). 그리고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은 자백함으로 용서받아야 한다(요일1:9, 계22:14). 그래야만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이 궁극적인 구원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입술로 시인한다면 모두가 다 구원을 받는 것일까? 사실 사도 바울도 처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라고 전했다(행9:20,22). 하지만 그가 복음을 전하면서 정리된 멘트로 복음을 전했을 때에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어야 한다는 고백의 진정한 의미는 대체 무엇인가?
2. 예수님이 주님이라고 고백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고 믿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해야 한다고 말했다(행16:31). 그렇다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시인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다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고 심각한 일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결코 두 주인을 섬기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두 분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한 분이시기(에하드=one) 때문이다(신6:4~5). 그리고 B.C.690년경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인 한 분이라는 것을 이렇게 말했다.
사44:6~8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 8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도마에게 나타나셨을 때, 주님은 자신이 바로 그들과 3년반을 동고동락했던 그 예수님이라는 것을 구멍 뚫린 채 있는 손과 발을 보여주시면서 확인시켜 주셨다. 그러자 도마는 예수님을 가리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했다(요20:28). 여기서 '나의'라는 말을 뺀다면 그가 그분을 '주 하나님'으로 고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대단히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은 한 분으로서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인 것이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마는 부활하시어 문들이 닫혔는데도 들어오셨고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한 분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이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이야말로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선포한 것이다. 특히 한 분 하나님께서 구원자로서 오신 것이 곧 예수님이라고 믿어야 한다고 외쳤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3. 하나님은 구약시대 자신을 어떻게 계시하셨는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 처음부터 자신의 이름이 '여호와'라고 계시하지는 않으셨다(출6:2~3).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계시한 때는 사실 창세기의 족장시대가 아니었다. 그때로부터 수 백 년이 흐른 뒤였던 B.C.1448년경 모세시대 때부터였다. 출애굽을 지시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보낸 분인지를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물어보았을 때, 하나님께는 이렇게 일러주셨다. "'스스로 있는 자'(에흐예 아쉐르 에흐예)가 나를 너희를 보내셨다고 하라"(출3:14). 그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기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에흐예 아쉐리 에흐예)"라고 했던 것이다. '예흐예'라는 단어를 3인칭 미완료형으로 표현하면 '여호와(혹은 야훼)'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스스로 계신 그분이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이라고 소개해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의 때만 해도 하나님은 자신을 스스로 계신 자라고 알려주시지는 않으셨다. 다만 '전능의 하나님' 곧 '엘샤다이'라고만 언급했던 것이다. 즉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말씀하셨고(창17:1), 이삭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으며(창28:3), 야곱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셨다(창35:11). 그러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은 사실 '스스로 있는 자'이신 그분이시다. 그분이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출애굽을 지시하신 것이다. 그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이미 약속하신 바를 이루시려고 그렇게 명령하신 것이다.
4.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누구라고 말씀하셨는가?
그런데 놀라지 말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신 분이 또 있다는 것이다. 먼저 구약시대에 여호와께서 자신을 그렇게 계시하셨다(출3:14~15). 그러나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도 한 분이 더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요8:24,28,58). 예수께서도 역시 유대인들과의 논쟁을 통해서 자신이 누군지를 계시하셨으니, 자신을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라고 말했다. 이는 출애굽기 3:14에서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소개했던 그분이 자신을 가리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신 것과 동일한 표현이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역시 스스로 있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을 믿고 따라오라고 하셨었다. 그런데 또한 스스로 계신 하나님께서 이제 신약시대에 유대인들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을 예수라고 말씀하고 있으셨던 것이다. 고로 우리는 예수님이야말로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구약시대에 한 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여호와라고 계시하셨다. 그런데 그분이 다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을 '예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만 알아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알아야 할 예수님의 칭호는 도마의 신앙고백처럼 '주 하나님'이신 것이다. 오직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이다.
5. 예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 하나님의 모습을 사람으로 모습으로 보았던 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아브라함이 최초였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봤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아브라함은 그렇게 보았다. 그것은 창세기 18장에 나온다. 아브라함 앞에 세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은 한 분은 '여호와'이셨고 다른 둘은 천사들(아마도 천사장인 미가엘이나 가브리엘 같은 자들이었을 것)이었다. 그때 아브라함은 얼른 나가서 그들을 위하여 음식을 준비하여 정성껏 대접을 해 드린다. 그러자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려고 두 명의 천사들은 떠나갔고 아브라함 앞에는 오직 홀로 한 분 하나님이신 여호와만 남으셨다. 그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그것은 2가지였다. 하나는 그때로부터 일 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찾아올 것인데 그러면 그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창18:10). 그리고 또 하나는 장차 아브라함이 장차 받을 복에 관한 것이었다(창18:18~19). 그런데 그때 사라가 장막에 있다가 아들을 낳게 되리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는 속으로 웃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창18:13~14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여기서 아브라함에 나타나신 분은 사실 스스로 계신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아직 자신의 이름을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시지는 않으셨다(출6:2~3). 여호와라는 이름은 주지하시다시피 모세에게 처음으로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는 그분의 이름을 소급하여 여호와라고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그때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제 삼자의 입장에서 소개하시면서 "내(나는 나라고 하는 나=스스로 있는 자)가 네게로 돌아올 것인데 그때에 아들을 얻게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때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은 분명히 '전능한 하나님'이셨다. 그분은 홀로 한 분이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때 그분은 자신을 '나'라고 말씀하셨다. 바로 나는 나이신 그분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분이 이제 때가 차자, 아들로서 이 땅에 들어오셨다. 사람이 되신 것은 피흘려 죽어서 속죄제물이 되시기 위함이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그것을 전혀 몰라보았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이제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아들 안에서(골1:14) 아들을 통하여(요3:17)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상속자게 되게 하기 위해 오셨던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것을 전혀 몰라본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자신을 몰라본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8:39~40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40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자신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났을 때만 해도 아브라함은 한 분이신 하나님을 융숭하게 대접했었는데, 이제 진짜로 바로 그 한 분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러 왔는데도, 전혀 몰라보고 예수님을 가리켜 귀신을 들렸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도 자신을 몰라보자, 예수께서는 "나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다(요8:58).
6. 도마의 신앙고백(요20:28)이나 사도바울의 복음선포(행16:31)는 무엇을 의미한 것이었는가?
그러므로 도마의 신앙고백 곧 예수님을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이나 바울이 빌립보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제 예수님으로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고 계심을 인지하고 그렇게 말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바울이 말한 예수님께서 주님이십니라고 표현한 것이 무슨 의미를 알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팔짱끼고 천국에서 구경만 하시고 이미 천국에서 활동하고 계시던 아들을 이 세상에 내려보내 인류를 구원하게 했다는 것은 잘못된 의미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구원에 있어서 '제삼자'라거나 '방관자'라는 의미는 잘못된 것이다. 둘째,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 아들이 이 땅에 당하는 고통을 이해한다는 의미도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즉 동변상련의 의미도 잘못된 것이다. 셋째,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직접 아들로 오셔서 그 일을 행하셨다는 뜻이다. 즉 인류구원에 있어서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당사자의 의미인 것이다. 그렇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이 되어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고 언급했다(딤전3:16). 그리고 예수께서 피흘리신 것은 아버지께서 피 흘리신 것이라고 말씀한 것이다(행20:28).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이 아들에게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그 일을 행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7. 나오며
오늘날 과연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서 그 아들로 하여금 십자가에 죽게 하여 인류를 구원하셨다고만 알고 있다. 이것은 틀린 표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도 이와 같은 말씀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요3:16, 요일4:10).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서 인류를 구원하려하신 것은 맞는 말이어도 보다 더 정확한 것은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신 것이다.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한 분이신 주 하나님께서 이제 이 세상에 아들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치르셨음을 믿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2024년 06월 21일(금)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마케도냐의 빌립보 성에 갔을 때, 그는 어떻게 구원을 얻는지를 물어보는 간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이 말씀은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가장 확실한 말씀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면,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회개하고 믿어야 한다(막1:15). 그리고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은 자백함으로 용서받아야 한다(요일1:9, 계22:14). 그래야만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이 궁극적인 구원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입술로 시인한다면 모두가 다 구원을 받는 것일까? 사실 사도 바울도 처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라고 전했다(행9:20,22). 하지만 그가 복음을 전하면서 정리된 멘트로 복음을 전했을 때에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어야 한다는 고백의 진정한 의미는 대체 무엇인가?
2. 예수님이 주님이라고 고백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고 믿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해야 한다고 말했다(행16:31). 그렇다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시인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다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고 심각한 일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결코 두 주인을 섬기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두 분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한 분이시기(에하드=one) 때문이다(신6:4~5). 그리고 B.C.690년경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이렇게 말했다.
사44:6~8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 8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도마에게 나타나셨을 때, 주님은 자신이 바로 그들과 3년 반을 동고동락했던 그 예수님이라는 것을 구멍 뚫린 채 있는 손과 발을 보여 주시면서 확인시켜 주셨다. 그러자 도마는 예수님을 가리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했다(요20:28). 여기서 '나의'라는 말을 뺀다면 그가 그분을 '주 하나님'으로 고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대단히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은 한 분으로서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인 것이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마는 부활하시어 문들이 닫혔는데도 들어오셨고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한 분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이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이야말로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선포한 것이다. 특히 한 분 하나님께서 구원자로서 오신 것이 곧 예수님이라고 믿어야 한다고 외쳤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3.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자신을 어떻게 계시하셨는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 처음부터 자신의 이름이 '여호와'라고 계시하지는 않으셨다(출6:2~3).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계시한 때는 사실 창세기의 족장시대가 아니었다. 그때로부터 수백 년이 흐른 뒤였던 B.C.1448년경 모세시대 때부터였다. 출애굽을 지시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보낸 분인지를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물어보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일러 주셨다. "'스스로 있는 자'(에흐예 아쉐르 에흐예)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하라"(출3:14). 그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기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에흐예 아쉐리 에흐예)"라고 했던 것이다. '예흐예'라는 단어를 3인칭 미완료형으로 표현하면 '여호와(혹은 야훼)'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스스로 계신 그분이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이라고 소개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의 때만 해도 하나님은 자신을 스스로 계신 자라고 알려 주시지는 않으셨다. 다만 '전능의 하나님' 곧 '엘샤다이'라고만 언급했던 것이다. 즉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말씀하셨고(창17:1), 이삭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으며(창28:3), 야곱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셨다(창35:11). 그러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은 사실 '스스로 있는 자'이신 그분이시다. 그분이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출애굽을 지시하신 것이다. 그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이미 약속하신 바를 이루시려고 그렇게 명령하신 것이다.
4.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누구라고 말씀하셨는가?
그런데 놀라지 말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신 분이 또 있다는 것이다. 먼저 구약시대에 여호와께서 자신을 그렇게 계시하셨다(출3:14~15). 그러나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도 한 분이 더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요8:24,28,58). 예수께서도 역시 유대인들과의 논쟁을 통해서 자신이 누군지를 계시하셨으니, 자신을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라고 말했다. 이는 출애굽기 3:14에서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소개했던 그분이 자신을 가리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말씀하신 것과 동일한 표현이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역시 스스로 있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을 믿고 따라오라고 하셨었다. 그런데 또한 스스로 계신 하나님께서 이제 신약시대에 유대인들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을 예수라고 말씀하고 있으셨던 것이다. 고로 우리는 예수님이야말로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구약시대에 한 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여호와라고 계시하셨다. 그런데 그분이 다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을 '예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만 알아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알아야 할 예수님의 칭호는 도마의 신앙고백처럼 '주 하나님'이신 것이다. 오직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이다.
5. 예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 하나님의 모습을 사람의 모습으로 보았던 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아브라함이 최초였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봤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아브라함은 그렇게 보았다. 그것은 창세기 18장에 나온다. 아브라함 앞에 세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 중 한 분은 '여호와'이셨고 다른 둘은 천사들(아마도 천사장인 미가엘이나 가브리엘 같은 자들이었을 것)이었다. 그때 아브라함은 얼른 나가서 그들을 위하여 음식을 준비하여 정성껏 대접을 해 드린다. 그러자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려고 두 명의 천사들은 떠나갔고 아브라함 앞에는 오직 홀로 한 분 하나님이신 여호와만 남으셨다. 그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그것은 2가지였다. 하나는 그때로부터 일 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찾아올 것인데 그러면 그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창18:10). 그리고 또 하나는 아브라함이 장차 받을 복에 관한 것이었다(창18:18~19). 그런데 그때 사라가 장막에 있다가 아들을 낳게 되리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는 속으로 웃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창18:13~14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여기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분은 사실 스스로 계신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아직 자신의 이름을 아브라함에게 알려 주시지는 않으셨다(출6:2~3). 여호와라는 이름은 주지하시다시피 모세에게 처음으로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는 그분의 이름을 소급하여 여호와라고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그때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제 삼자의 입장에서 소개하시면서 "내(나는 나라고 하는 나=스스로 있는 자)가 네게로 돌아올 것인데 그때에 아들을 얻게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때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은 분명히 '전능한 하나님'이셨다. 그분은 홀로 한 분이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때 그분은 자신을 '나'라고 말씀하셨다. 바로 나는 나이신 그분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분이 이제 때가 차자, 아들로서 이 땅에 들어오셨다. 사람이 되신 것은 피흘려 죽어서 속죄제물이 되시기 위함이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그것을 전혀 몰라보았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이제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아들 안에서(골1:14) 아들을 통하여(요3:17)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상속자가 되게 하기 위해 오셨던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것을 전혀 몰라본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자신을 몰라본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8:39~40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40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자신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났을 때만 해도 아브라함은 한 분이신 하나님을 융숭하게 대접했었는데, 이제 진짜로 바로 그 한 분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러 왔는데도, 전혀 몰라보고 예수님을 가리켜 귀신이 들렸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도 자신을 몰라보자, 예수께서는 "나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다(요8:58).
6. 도마의 신앙고백(요20:28)이나 사도 바울의 복음 선포(행16:31)는 무엇을 의미한 것이었는가?
그러므로 도마의 신앙고백 곧 예수님을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이나 바울이 빌립보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제 예수님으로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고 계심을 인지하고 그렇게 말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한 예수님께서 주님이십니다라고 표현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팔짱끼고 천국에서 구경만 하시고 이미 천국에서 활동하고 계시던 아들을 이 세상에 내려보내 인류를 구원하게 했다는 것은 잘못된 의미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구원에 있어서 '제 삼자'라거나 '방관자'라는 의미는 잘못된 것이다. 둘째,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 아들이 이 땅에서 당하는 고통을 이해한다는 의미도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즉 동변상련의 의미도 잘못된 것이다. 셋째,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직접 아들로 오셔서 그 일을 행하셨다는 뜻이다. 즉 인류 구원에 있어서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당사자의 의미인 것이다. 그렇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이 되어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고 언급했다(딤전3:16). 그리고 예수께서 피흘리신 것은 아버지께서 피흘리신 것이라고 말씀한 것이다(행20:28).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이 아들에게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그 일을 행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7. 나오며
오늘날 과연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서 그 아들로 하여금 십자가에서 죽게 하여 인류를 구원하셨다고만 알고 있다. 이것은 틀린 표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도 이와 같은 말씀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요3:16, 요일4:10).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서 인류를 구원하려 하신 것은 맞는 말이어도 보다 더 정확한 것은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신 것이다.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한 분이신 주 하나님께서 이제 이 세상에 아들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치르셨음을 믿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2024년 06월 21일(금)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