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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경을 보는 눈(40)] 성밖의 최악의 장소인 불못에는 누가 과연 들어가는가?(마25:31~46)_2024-10-18(금)

https://youtu.be/_HgtS4iUnuk

 

1. 들어가며

 사람의 죽으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이전에는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성경말씀은 성안과 성밖으로 간다는 것이다(계21:27, 22:15). 창세 이후로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는 성안으로 갈 것이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없거나 있었으나 지워진 자는 성밖으로 가는 것이다. 여기서 '성'이라는 새 예루살렘 성을 가리킨다(계21:2).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은 성안에 들어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럴려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그만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진 자들도 있다. 이들은 성밖으로 가거나 아니면 불못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성밖'이라는 곳도 단지 성 바깥쪽의 가까운 곳이 있는가 하면,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도 있다. 그러므로 성안에 못 들어간 자는 성밖(성바깥)과 성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과 불못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과 유황이 타는 못으로서 불못에는 과연 누가 들어가게 되는가?

 

2. 사람이 죽어서 들어가는 영혼의 거처는 무엇과 닮았는가?

  사람이 죽어서 영혼이 들어가는 거처는 크게 세 군데다. 그러네 그것이 마치 어떤 것과 많이 닮아 있다. 그것은 추수 때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추수 때에 알곡은 모아서 곳간에 들이듯, '알곡성도'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쭉정이는 바람에 밀려 더 바깥쪽으로 날아가듯, 성도들 중에서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진 자는 성밖으로 가게 된다. 그런데 자기 안에 생명의 분량이 적은 자일수록 더 바깥쪽 어두운 곳으로 간다. 그러니까 쭉정이는 성밖 바로 바깥쪽으로 가거나 혹은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라지가 있다. 가라지는 단으로 묶어서 불에 던진다. 마찬가지로 자기 안에 생명이 없어서 사탄마귀의 자식으로 살았던 자들은 불못에 던져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어서 가는 영혼의 거처는 새 예루살렘 성안이 있고 성밖이 있는데, 성밖은 다시 성밖의 가까운 곳과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불과 유황이 타는 불못이 있는 것이다. 

 

3.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3가지 비유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최후거처를 어디인가?

  예수께서 종말의 때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시면서 제자들에게 깨어있으라고 명령하셨다(마24:42). 왜냐하면 그 날과 그 시간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마24:36).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3가지 비유를 들려주셨다. 그 비유가 바로 '열 처녀의 비유'(마25:1~13)와 '달란트의 비유'(마25:14~30)이며 마지막으로 '양과 염소의 비유'(마25:31~46)이다. 이 비유들은 누가 성안으로 들어가는지 그리고 누가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성밖에 들어가는지와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못으로 들어가는지를 설명해주는 비유들이다. 

  먼저 첫째, '열 처녀의 비유'(마25:1~13)에 의하면, 사람의 최후거처는 성안이거나 아니면 성밖이다. 이 비유에서 성밖은 신랑집의 문밖을 가리키는데, 어린양이신 우리 주 예수님의 집이 큰 성인 것이니 그 집 문 밖을 가리켜 성밖이라고 하는 것이다. 

  둘째, '달란트의 비유'(마25:14~30)에 따르면, 사람의 최후거처는 성안이거나 아니면 성밖으로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이다. 특히 악하고 게으른 종은 성밖으로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간다. 

  마지막 셋째, '양과 염소의 비유'(마25:31~46)에 따르면, 사람의 최후거처는 영생을 누리는 성 안이든지 아니면 영벌을 받는 장소로서 불못이다.

 그렇다면 만약 지금 내가 죽는다면 나는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 성안으로 가게 될까 아니면 성밖으로 가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불못으로 가는 것은 아닐까?

 

4. 왜 미련한 처녀는 성밖에 남겨졌으며,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가게 되었는가?

  '열 처녀의 비유'(마25:1~13)에서, 왜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성밖에 남겨졌는가?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녀들은 처음부터 어리석어온 자들이었기 때문이다(마25:2). 그들은 처음 믿을 때에 가졌던 성령만 있으면 신부로서 갖춰야 할 모든 것이 다 완료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랑은 지체하였고 그들은 잠들었으며 한 밤중에 되서야 신랑이 왔다. 그들은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결국 성밖에 남겨지고 만다. 그리고 둘째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마25:3). 그런데 그 기름은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눠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서 채워야 할 기름이었다(마25:9). 그러므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지 않는다. 신랑이 언제 오시든지 상관없이 항상 주님을 맞이할 수 있게 해주는 어떤 것이 바로 기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댓가를 지불해야만 채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이 예수님을 믿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다고 말한다 할지라도 철저한 신부준비가 되지 못한 자는 그날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면서 성밖에 남겨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달란트의 비유'(마25:14~30)에서, 왜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성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가게 되었는가?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그가 악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주인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이 자신의 노동력이나 착취하는 악덕기업가나 악덕지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주인이 종들에게 자신을 달란트를 맡겼던 것은 작은 것을 맡겨보았을 때 충성하는 자들에게 더 큰 것을 맡겨주시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또 하나는 그가 게을렀다는 것이다. 일하기를 싫어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일을 하지 않은 이유가 다 주인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만약 자신을 악덕고리대금업자 정도로 생각했다면 그 달란트를 땅에 파묻어놓았다가 가져올 것이 아니라 은행에 맡겼다가 가져왔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도 하기 싫어했다. 그러므로 주인은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더 많이 남겼던 자에게 주고 그를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내쫓으라고 했다. 거기서 그는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이 모습은 훗날 그의 후회하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5. 누가 성밖의 최악의 장소인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들어가는가?

  그렇다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누가 성밖의 최악의 장소인 불과 유황이 타는 못 곧 불못에 들어가게 되는가? 그것은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불신자와 비겁한 자(나중에 배역하는 자)와 십계명을 어긴 자라고 나온다(계21:8).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이들이 불신자가 아니라 믿는 자들이라고 나온다. 즉 불못에 들어갈 자들 중에는 믿는 자들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심판주이자 왕이신 주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안에는 생명이 없었다. 겉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실제 그 사람 속에는 성령이 계시지 않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은 종교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훗날 주님께서 오실 때에 자기들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헬라어 단어가 매주 잘 소개해주고 있다. 왜냐하면 양과 염소의 비유에 나오는 헬라어 단어가 '양'은 다 자란 양을 의미하는 '프로바톤'인데, 염소는 새끼 염소를 뜻하는 '에리포스'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다 자란 양과 새끼 염소는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 그러므로 얼핏 보기에는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어린양('아르니온')과 어린염소를 비유에 등장시킨 것이 아니라 다 자란 어른 양과 새끼 염소를 등장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새끼염소는 결코 자신이 양이 아니라 염소인데도 자기의 모습이 다 자란 양과 비슷하게 생겼기에 결코 자신을 염소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6.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염소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가?

  그렇다면 우리 주 예수께서는 '양과 염소의 비유(마25:31~46)'에서 장차 불못에 던져질 자를 어떻게 표현하셨는가? 그것은 첫째, 주님께서 왕으로서 심판하실 때에 왼편에 서게 될 자들로서, 염소의 자리에 서게 될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다(마25:32~33, 41). 둘째 그들은 저주를 받은 채 있는 자들이라고 하셨다(마25:41). 셋째, 그들은 영벌에 들어갈 자들이라고 하셨다(마25:46).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주님께서는 오른편에 있는 자들로서 양의 자리에 서게 될 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누군지를 분명히 제시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왼편에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어떤 명칠을 사용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럼, 오른편에 서게 될 자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하셨는가? 그것은 그들이 '의인들'이라는 것이다(마25:37,46). 그러나 왼편에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악인들'이라든지 아니면 '죄인들'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왜 그러셨을까? 그것은 이들이 '의인들 중에 악인'이기 때문이다(마13:49). 자기들은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의인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의 실제는 악인들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양처럼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들으며 목자를 따라가는 자들을 가리키는데(요10:27), 이들은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도 않고 있었고 그분 따라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염소들은 그런 적이 없다고 잡아떼면서 말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거기에 있는 형제들을 가리키면서 "이 나의 형제들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예수님은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당신의 형제들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주님께 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랬었다. 그들은 지극히 작은 형제가 굶주렸을 때에 음식을 대접하지 않았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나그네되었을 때에 영접해주지 않았고, 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으며, 병들었을 때에도 돌아보지 않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가보지 않았던 것이다. 

 

7.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지극히 작은 자로 표현된 사람들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얼핏 보기에는 못 먹고 먹 입고 사는 자들 곧 가난한 자들을 가리키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오늘날에 어떤 이들은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하고는 가난한 자를 그렇게 잘 섬긴다. 물론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그것이 양과 염소의 비유에 나오는 지극히 작은 자들은 아닌 것이다. 사실 구약시대에는 가난한 자들 곧 객과 고아와 과부들을 섬기는 것이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신약에 들어와서 가난한 자들은 이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주와 복음을 위해 살다보니 가난하게 살아가는 방랑전도자들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자기의 제자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실 때에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굶주릴 수밖에 없고 목마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옷을 입지도 못할 수도 있다. 또한 나그네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병들어도 처방도 곧바로 받지 못하고, 복음전하다가 옥에 갇히기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 앞에 수식어를 붙였다. '이 나의 형제들 중에'라고 말이다. 이때 주님의 형제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가리킨다. 사도행전 9장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말씀하셨을 때에 비로소 교회가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과 스데반을 핍박하고 죽인 것이지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핍박하거나 죽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당신의 몸된 교회를 핍박하고 죽이는 것을 자신을 향하여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넓은 의미로 볼 때, '이 나의 형제들 중에 지극히 작은 자'는 복음을 전파하는 방랑전도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8.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 나오는 양은 누구며 염소는 누구인가?

  그런데 '지극히 작은 자'는 일반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방랑전도자들을 가리키지만,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보면 이들은 특별한 시대에 활동하는 주의 종들인 것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이 상황은 대환난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왜 왼편에 있는 염소들은 주님의 형제들을 보고도 본체만체한 것일까? 그것은 이때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 특수상황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의 심판을 하실 때에 그분 앞에 모인 자들은 특수상황에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는 대환난 때에 남겨진 그리스도인들을 심판하는 심판대이기 때문이다. 이미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알곡 성도는 이미 공중으로 휴거되어 올라가고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남겨진 그리스도인들은 쭉정이 성도들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대환난에 남겨진 자들을 위해 당신의 몇몇의 종들을 휴거시키지 않고 남겨놓으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이 이제 남겨진 쭉정이 성도들을 위해 복음을 전파하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세상과 교회는 이미 적그리스도에게 접수된 상황이 되었다. 그러므로 왠만한 교회의 지도자들은 다 종교통합에 가담하여서, 알라 신도 하나님이고 예수님도 하나님이라고 하는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남겨진 주의 종들이 그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자 대부분의 남겨진 교회의 성도들을 그들을 오히려 이단시하고 왕따를 시키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주의 종들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지만 그들은 곧이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러면 이러한 종들은 감옥에 잡혀갈 것이다. 그리고 어떤 종들은 병이 들어도 병원에 갈 수가 없다. 그래서 그냥 앓고 있는 것이다. 그때 쭉정이들 중에는 몇몇은 비로소 회개하고 정신차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기꺼이 주님의 종들을 가서 돌보고 섬기고 심방할 것이다. 그런 자들이 결국 양의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들을 가리켜 성경은 죄인들 중에 '의인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9. 나오며

  염소는 양이 아니다. 염소는 아직 하나님의 생명을 받지 못한 마귀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에 사실 마귀의 자녀들로 태어난다. 그러다가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서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양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교회 안에는 아직 하나님의 생명을 받지 못한 염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다 자란 양과 거의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기에 자신을 양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한 번도 자신을 염소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 이들은 대체 누군가? 그들은 자신이 받은 구원은 영원히 안전한 것이라고 여기는 자들이다. 회개를 안 해도 믿음만 있으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믿음의 행위들이 없어도 믿음만 있으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 속에 아직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참된 생명을 전하는 주의 종들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가짜 종을 주님의 종으로 알고 같이 멸망의 길을 걸어간다. 진짜 종은 천대하고 박대하고 이단시하며 밟아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연 이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여길 수 있을까? 우리는 이제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하여, 참된 주의 종들을 섬기는 것이 곧 주님을 섬기는 것임을 간접적으로 살펴보았다. 곧 교회가 참된 주의 종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정말 진리를 잘 전해주어야 한다.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복음을 가르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구원론을 전하는 종들을 하나님께서는 장차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그들을 끌어내서 불못에 던져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평신도들은 대부분 주의 종들이 자신에게 잘못된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된 구원론을 전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하나님께서 정말 크게 책임을 물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일반 평신도들이 잘못 살면 성밖으로 가겠지만 주의 종들은 더 바깥쪽의 어두운 데로 내던져버릴 뿐만 아니라 엄히 채찍질할 것이라고 하셨다(마24:51). 그만큼 주의 종들은 생명을 걸고 말씀을 전해야 한다.   

 

2024년 10월 18일(금)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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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탄명성교회 2024.10.18 16:47

    1. 들어가며

     사람 죽으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이전에는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성경 말씀은 성안과 성밖으로 간다는 것이다(계21:27, 22:15). 창세 이후로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는 성안으로 갈 것이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없거나 있었으나 지워진 자는 성밖으로 가는 것이다. 여기서 '성'이새 예루살렘 성을 가리킨다(계21:2).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은 성안에 들어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럴려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그만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진 자들도 있다. 이들은 성밖으로 가거나 아니면 불못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성밖'이라는 곳도 단지 성 바깥쪽의 가까운 곳이 있는가 하면,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도 있다. 그러므로 성안에 못 들어간 자는 성밖(성 바깥)과 성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과 불못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과 유황이 타는 못으로서 불못에는 과연 누가 들어가게 되는가?

     

    2. 사람이 죽어서 들어가는 영혼의 거처는 무엇과 닮았는가?

      사람이 죽어서 영혼이 들어가는 거처는 크게 세 군데다. 그런데 그것 마치 어떤 것과 많이 닮아 있다. 그것은 추수 때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추수 때에 알곡은 모아서 곳간에 들이듯, '알곡 성도'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쭉정이는 바람에 밀려 더 바깥쪽으로 날아가듯, 성도들 중에서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진 자는 성밖으로 가게 된다. 그런데 자기 안에 생명의 분량이 적은 자일수록 더 바깥쪽 어두운 곳으로 간다. 그러니까 쭉정이는 성밖 바로 바깥쪽으로 가거나 혹은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라지가 있다. 가라지는 단으로 묶어서 불에 던진다. 마찬가지로 자기 안에 생명이 없어서 사탄 마귀의 자식으로 살았던 자들은 불못에 던져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어서 가는 영혼의 거처는 새 예루살렘 성안이 있고 성밖이 있는데, 성밖은 다시 성밖의 가까운 곳과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불과 유황이 타는 불못이 있는 것이다. 

     

    3.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3가지 비유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최후 거 어디인가?

      예수께서 종말의 때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시면서 제자들에게 깨어있으라고 명령하셨다(마24:42). 왜냐하면 그 날과 그 시간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마24:36). 그고 나서 예수께서는 3가지 비유를 들려주셨다. 그 비유가 바로 '열 처녀의 비유'(마25:1~13)와 '달란트의 비유'(마25:14~30)이며 마지막으로 '양과 염소의 비유'(마25:31~46)이다. 이 비유들은 누가 성안으로 들어가는지 그리고 누가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성밖에 들어가는지와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못으로 들어가는지를 설명해 주는 비유들이다. 

      먼저 첫째, '열 처녀의 비유'(마25:1~13)에 의하면, 사람의 최후 거처는 성안이거나 아니면 성밖이다. 이 비유에서 성밖은 신랑집의 문밖을 가리키는데, 어린양이신 우리 주 예수님의 집이 큰 성인 것이니 그 집 문 밖을 가리켜 성밖이라고 하는 것이다. 

      둘째, '달란트의 비유'(마25:14~30)에 따르면, 사람의 최후 거처는 성안이거나 아니면 성밖으로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이다. 특히 악하고 게으른 종은 성밖으로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간다. 

      마지막 셋째, '양과 염소의 비유'(마25:31~46)에 따르면, 사람의 최후거처는 영생을 누리는 성 안이든지 아니면 영벌을 받는 장소로서 불못이다.

     그렇다면 만약 지금 내가 죽는다면 나는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 성안으로 가게 될까 아니면 성밖으로 가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불못으로 가는 것은 아닐까?

     

    4. 왜 미련한 처녀는 성밖에 남겨졌으며,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가게 되었는가?

      '열 처녀의 비유'(마25:1~13)에서, 왜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성밖에 남겨졌는가?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녀들은 처음부터 어리석어 온 자들이었기 때문이다(마25:2). 그들은 처음 믿을 때에 가졌던 성령만 있으면 신부로서 갖춰야 할 모든 것이 다 완료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랑은 지체하였고 그들은 잠들었으며 한밤 되서야 신랑이 왔다. 그들은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결국 성밖에 남겨지고 만다. 그리고 둘째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마25:3). 그런데 그 기름은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눠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서 채워야 할 기름이었다(마25:9). 그러므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지 않는다. 신랑이 언제 오시든지 상관없이 항상 주님을 맞이할 수 있게 해 주는 어떤 것이 바로 기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댓가를 지불해야만 채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이 예수님을 믿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다고 말한다 할지라도 철저한 신부 준비가 되지 못한 자는 그날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면서 성밖에 남겨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달란트의 비유'(마25:14~30)에서, 왜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성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가게 되었는가?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그가 악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주인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 자신의 노동력이나 착취하는 악덕 기업가나 악덕 지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주인이 종들에게 자신 달란트를 맡겼던 것은 작은 것을 맡겨 보았을 때 충성하는 자들에게 더 큰 것을 맡겨 주시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또 하나는 그가 게을렀다는 것이다. 일하기를 싫어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일을 하지 않은 이유가 다 주인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만약 자신을 악덕 고리대금업자 정도로 생각했다면 그 달란트를 땅에 파묻어 놓았다가 가져올 것이 아니라 은행에 맡겼다가 가져왔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도 하기 싫어했다. 그러므로 주인은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더 많이 남겼던 자에게 주고 그를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내쫓으라고 했다. 거기서 그는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이 모습은 훗날 그의 후회하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다. 

     

    5. 누가 성밖의 최악의 장소인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들어가는가?

      그렇다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누가 성밖의 최악의 장소인 불과 유황이 타는 못 곧 불못에 들어가게 되는가? 그것은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불신자와 비겁한 자(나중에 배역하는 자)와 십계명을 어긴 자라고 나온다(계21:8).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이들이 불신자가 아니라 믿는 자들이라고 나온다. 즉 불못에 들어갈 자들 중에는 믿는 자들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심판주이자 왕이신 주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안에는 생명이 없었다. 겉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실제 그 사람 속에는 성령이 계시지 않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은 종교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훗날 주님께서 오실 때에 자기들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헬라어 단어가 매 잘 소개해 주고 있다. 왜냐하면 양과 염소의 비유에 나오는 헬라어 단어가 '양'은 다 자란 양을 의미하는 '프로바톤'인데, 염소는 새끼 염소를 뜻하는 '에리포스'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다 자란 양과 새끼 염소는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 그러므로 얼핏 보기에는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어린양('아르니온')과 어린 염소를 비유에 등장시킨 것이 아니라 다 자란 어른 양과 새끼 염소를 등장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새끼 염소는 결코 자신이 양이 아니라 염소인데도 자기의 모습이 다 자란 양과 비슷하게 생겼기에 결코 자신을 염소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6.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염소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가?

      그렇다면 우리 주 예수께서는 '양과 염소의 비유(마25:31~46)'에서 장차 불못에 던져질 자를 어떻게 표현하셨는가? 그것은 첫째, 주님께서 왕으로서 심판하실 때에 왼편에 서게 될 자들로서, 염소의 자리에 서게 될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다(마25:32~33,41). 둘째 그들은 저주를 받은 채 있는 자들이라고 하셨다(마25:41). 셋째, 그들은 영벌에 들어갈 자들이라고 하셨다(마25:46).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주님께서는 오른편에 있는 자들로서 양의 자리에 서게 될 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누군지를 분명히 제시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왼편에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어떤 명을 사용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럼, 오른편에 서게 될 자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하셨는가? 그것은 그들이 '의인들'이라는 것이다(마25:37,46). 그러나 왼편에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악인들'이라든지 아니면 '죄인들'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왜 그러셨을까? 그것은 이들이 '의인들 중에 악인'이기 때문이다(마13:49). 자기들은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의인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의 실제는 악인들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양처럼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들으며 목자를 따라가는 자들을 가리키는데(요10:27), 이들은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도 않고 있었고 그분 따라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염소들은 그런 적이 없다고 잡아떼면서 말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거기에 있는 형제들을 가리키면서 "이 나의 형제들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예수님은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당신의 형제들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주님께 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랬었다. 그들은 지극히 작은 형제가 굶주렸을 때에 음식을 대접하지 않았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나그네되었을 때에 영접해 주지 않았고, 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으며, 병들었을 때에도 돌아보지 않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가 보지 않았던 것이다. 

     

    7.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지극히 작은 자로 표현된 사람들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얼핏 보기에는 못 먹고 입고 사는 자들 곧 가난한 자들을 가리키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오늘날에 어떤 이들은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하고는 가난한 자를 그렇게 잘 섬긴다. 물론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그것이 양과 염소의 비유에 나오는 지극히 작은 자들은 아닌 것이다. 사실 구약시대에는 가난한 자들 곧 객과 고아와 과부들을 섬기는 것이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신약에 들어와서 가난한 자들은 이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주와 복음을 위해 살다 보니 가난하게 살아가는 방랑 전도자들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자기의 제자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실 때에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굶주릴 수밖에 없고 목마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옷을 입지도 못할 수도 있다. 또한 나그네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병들어도 처방도 곧바로 받지 못하고, 복음 전하다가 옥에 갇히기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 앞에 수식어를 붙였다. '이 나의 형제들 중에'라고 말이다. 이때 주님의 형제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가리킨다. 사도행전 9장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말씀하셨을 때에 비로소 교회가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과 스데반을 핍박하고 죽인 것이지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핍박하거나 죽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당신의 몸된 교회를 핍박하고 죽이는 것을 자신을 향하여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넓은 의미로 볼 때, '이 나의 형제들 중에 지극히 작은 자'는 복음을 전파하는 방랑 전도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8.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 나오는 양은 누구며 염소는 누구인가?

      그런데 '지극히 작은 자'는 일반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방랑 전도자들을 가리키지만,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보면 이들은 특별한 시대에 활동하는 주의 종들인 것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이 상황은 대환난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왜 왼편에 있는 염소들은 주님의 형제들을 보고도 본체만체한 것일까? 그것은 이때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 특수 상황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의 심판을 하실 때에 그분 앞에 모인 자들은 특수 상황에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는 대환난 때에 남겨진 그리스도인들을 심판하는 심판대이기 때문이다. 이미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알곡 성도는 이미 공중으로 휴거되어 올라가고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남겨진 그리스도인들은 쭉정이 성도들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대환난에 남겨진 자들을 위해 당신의 몇몇의 종들을 휴거시키지 않고 남겨 놓으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이 이제 남겨진 쭉정이 성도들을 위해 복음을 전파하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세상과 교회는 이미 적그리스도에게 접수된 상황이 되었다. 그러므로 왠만한 교회의 지도자들은 다 종교통합에 가담하여서, 알라신도 하나님이고 예수님도 하나님이라고 하는 종교 다원주의를 수용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남겨진 주의 종들이 그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자 대부분의 남겨진 교회의 성도들 오히려 그들을 이단시하고 왕따를 시키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주의 종들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지만 그들은 곧이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러면 이러한 종들은 감옥에 잡혀갈 것이다. 그리고 어떤 종들은 병이 들어도 병원에 갈 수가 없다. 그래서 그냥 앓고 있는 것이다. 그때 쭉정이들 중 몇몇은 비로소 회개하고 정신차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기꺼이 가서 주님의 종들을 돌보고 섬기고 심방할 것이다. 그런 자들이 결국 양의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들을 가리켜 성경은 죄인들 중에 '의인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9. 나오며

      염소는 양이 아니다. 염소는 아직 하나님의 생명을 받지 못한 마귀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에 사실 마귀의 자녀들로 태어난다. 그러다가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서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양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교회 안에는 아직 하나님의 생명을 받지 못한 염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다 자란 양과 거의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기에 자신을 양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한 번도 자신을 염소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 이들은 대체 누군가? 그들은 자신이 받은 구원은 영원히 안전한 것이라고 여기는 자들이다. 회개를 안 해도 믿음만 있으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믿음의 행위들이 없어도 믿음만 있으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 속에 아직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참된 생명을 전하는 주의 종들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가짜 종을 주님의 종으로 알고 같이 멸망의 길을 걸어간다. 진짜 종은 천대하고 박대하고 이단시하며 밟아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연 이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여길 수 있을까? 우리는 이제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하여, 참된 주의 종들을 섬기는 것이 곧 주님을 섬기는 것임을 간접적으로 살펴보았다. 곧 교회가 참된 주의 종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정말 진리를 잘 전해 주어야 한다.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는 복음을 가르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구원론을 전하는 종들을 하나님께서는 장차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그들을 끌어내서 불못에 던져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평신도들은 대부분 주의 종들이 자신에게 잘못된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된 구원론을 전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하나님께서 정말 크게 책임을 물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일반 평신도들이 잘못 살면 성밖으로 가겠지만 주의 종들은 더 바깥쪽의 어두운 데로 내던져버릴 뿐만 아니라 엄히 채찍질할 것이라고 하셨다(마24:51). 그만큼 주의 종들은 생명을 걸고 말씀을 전해야 한다.  

     

    2024년 10월 18일(금)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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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경을 보는 눈(24)] 성경은 모형(그림자)와 실체(참형상)의 책이다(히8:5~6)_2024-09-25(수) https://youtu.be/n66f6iWGqNI 1. 들어가며 성경은 어떤 책인가? 성경은 예수님을 발견하게 하여 영생으로 인도하는 책이다. 그러므로 우리...
    Date2024.09.25 By갈렙 Views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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