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09)] 왜 사람들은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것일까?(01)(롬1:28~2: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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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인간은 누구나 죄의 유혹 앞에서 흔들리는 연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죄를 짓는 행위 그 자체보다,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완악함에 있다. 왜 사람들은 죄의 달콤함에 빠져 돌이키기를 주저하는가? 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죄악된 길을 담대히 걸어가는가? 그 근본적인 이유는 죄의 실체와 그로 인해 초래될 무서운 결과, 즉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많은 기독교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칭의)을 받았다는 사실에 안주하여, 이후의 삶에서 짓는 죄의 심각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구원의 감격은 점차 희미해지고, ‘이 정도 죄는 괜찮겠지’ 하는 안일함이 신앙의 중심에 자리 잡는다. 그러나 성경은 단호하게 경고한다. 우리의 모든 죄는 하늘의 책에 기록되고 있으며, 회개하지 않은 죄는 장차 임할 ‘진노의 날’에 쏟아질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쌓아가는 행위라고 말이다.
롬2:5 다만 네 고 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인간의 이 어리석고 완악한 마음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하나님께서 죄를 즉각적으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는 것을, 마치 죄를 용납하시거나 심판이 없는 것처럼 오해하는 인간의 교만을 지적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은 우리를 회개로 이끌기 위한 사랑의 손길이지만, 완악한 인간은 도리어 이를 죄를 지을 기회로 삼아 스스로에게 진노를 쌓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죄의 본질이 무엇이며, 왜 인간이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를 말씀을 통해 깊이 성찰하고자 한다. 이 말씀이 우리 안에 숨겨진 죄의 뿌리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멸시하는 어리석음에서 돌이켜, 진정한 회개를 통해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기를 소망한다.
2. 죄란 무엇인가? 단순히 과녁에서 빗나간 것인가 아니면 악한 영들을 불러들이는 치명적인 행위인가?
죄란 무엇인가? 사람들이 죄를 가볍게 여기는 이유 중 하나는 죄의 본질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 때문이다.
첫째, 죄에 대한 어원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죄는 헬라어 ‘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라는 단어에 근거하여 ‘과녁에서 빗나가다’라고 정의된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과녁을 맞추지 못하고 빗나간 모든 행위를 죄로 보는 개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죄의 파괴적인 실체와 그 영적인 심각성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둘째, 구약시대에 유대인들은 무엇을 죄로 여겼는가?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죄의 기준이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율법이란 도덕법인 십계명만을 의미하지 않고, 의식법 곧 할례법, 안식일법, 절기법, 정결법, 음식법, 제사법, 성막법 등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유대인들에게 율법은 거의 멜 수 없는 멍에요 끌고 다닐 수 없는 족쇄수준이었다.
셋째, 신약시대에 사도 바울은 어떻게 언급했는가? 신약 시대에 와서는 그 기준이 더욱 내면화되었다. 그러므로 행동으로만 지은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 마음으로 짓는 죄도 죄이며,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도 죄(롬14:23)가 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성령을 모독하는 것”(마12:31)도 용서받지 못할 죄로 추가되어 있다.
넷째, 영적인 세계를 밝히 알게 된 사람에게 죄는 무엇인가? 죄는 사실 단순히 윤리적인 실수나 도덕적인 과오의 차원을 넘어선다. 성경이 말하는 죄의 핵심은 훨씬 더 심각하고 실제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귀신과 뱀’으로 표현되는 악한 영들이 인간의 몸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그 사람을 통해 죄악된 생각과 행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죄를 짓는 순간, 우리 영혼의 문이 열리고 어둠의 세력들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우리의 생각과 감정, 의지를 장악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죄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 거하실 성전인 우리 몸을 더럽히고 동시에 악한 영들의 처소로 만드는 행위인 것이다. 우리가 죄를 짓는다는 것은 단순히 과녁을 빗 맞추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무서운 적군을 끌어들이는 것인 것이다.
3. 죄된 본성(원죄)의 뿌리는 무엇인가?
우리가 죄의 유혹에 끊임없이 넘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안에 이미 죄의 뿌리, 즉 원죄가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이 원죄의 실체에 대해 고백하며 처절하게 탄식하였다.
롬7:18-20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바울이 말하는 바 ‘내 속에 거하는 죄’는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신학적으로 정의된 '원죄'를 가리킨다. 이는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인류가 모태로부터 물려받는 죄의 본성을 가리키는 것인데, 그 실체는 우리 육체 속에 들어와 거하는 귀신들과 뱀들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리의 영은 깨끗하지만, 우리의 혼(생각, 감정, 의지)이 육체 속에 들어온 이 악한 영들의 유혹과 충동질에 넘어가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악을 행하게 되는 내면의 처절한 싸움은, 바로 이 원죄의 세력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원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결코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무리 결심하고 노력해도 ‘내 속에 거하는 죄’가 끊임없이 우리를 죄의 길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는 단순히 내가 지은 개별적인 죄(자범죄)를 용서받는 것을 넘어, 내 안에 깊이 뿌리내린 원죄의 실체, 즉 귀신과 뱀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혈의 능력으로 대적하고 축출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4.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처럼 무서운 죄의 실체와 결과를 알면서도 왜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죄지은 결과에 대한 심각성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을 하신단 사실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둘째, 죄가 무엇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각과 말과 행동이 지금 죄를 짓고 있는 것인지를 잘 모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예수께서 죄값을 담당한 이후에는 예수께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용서하셨기에,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더 이상 죄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율법 중에서 의식법들은 완성함으로 폐지했지만 도덕법으로서 십계명법은 엄연히 살아 있다. 그리고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죄나 성령을 거역하는 것도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셋째, 죄를 지어도 당장에 어떤 형벌이 그에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죄를 지을 때마다 즉각적인 심판이 임하고, 그 모든 죄가 기록되어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 이어진다면 사람들은 감히 죄를 짓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즉시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신다. 문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 ‘오래 참으심’을 오해한다는 데 있다.
롬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그러나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이유는 죄를 용납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죄인 된 우리가 돌이켜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 그분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은 우리를 회개로 이끄는 사랑의 초청이다. 그러나 완악한 인간은 이 하나님의 사랑을 멸시하고, 당장 벌이 없다는 사실에 안심하며 더욱 담대하게 죄를 짓는다. 이는 마치 부모의 사랑을 악용하여 계속해서 탈선하는 어리석은 자녀와 같다. 이렇게 회개하지 않고 쌓아둔 죄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에 차곡차곡 쌓여, 마지막 심판의 날에 한꺼번에 쏟아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회개의 기회로 삼지 않고 도리어 죄를 쌓는 기회로 삼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어리석음이며 비극이다.
5. 예수믿은 후에 지은 죄를 회개를 안 해도 구원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가?
많은 기독교인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에 기대어서 죄의 문제에 대해 안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죄와 싸워 ‘이기는 자’가 되지 못하면 그 구원이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여러 곳에서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특히 요한계시록은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약속을 반복해서 강조하며, 그 반대의 경우에 처할 위험성을 알려준다.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 말씀은 뒤집어 보라. 죄와 싸워 이기지 못하고 패배하는 자는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흐려지거나 지워질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믿고 회개함으로 시작된 구원이지만 구원의 완성은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는 날에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그날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거룩함을 지켜나가야 한다. 그래서 이미 받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고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요한계시록에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도 ‘거짓말하는 죄’에 대해 매우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 거짓말하는 자들은 크게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할 수 있으며(계21:8), 작게는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면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계22:15). 사도 바울 역시 그의 후기 서신인 디모데전서에서 율법이 필요한 대상 중 하나로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를 명확히 언급하고 있다(딤전1:10). 이는 그가 초기에는 깨닫지 못했던 죄의 심각성, 특히 거짓말이라는 죄가 구원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요소임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처럼 성경의 경고는 명확하다. 죄를 가볍게 여기고 회개하지 않는 삶의 끝에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비참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6. 나오며
죄는 단순히 과녁을 빗나간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영혼에 악한 영을 불러들이는 치명적인 행위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가는 어리석음의 극치이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것은 우리가 죄 가운데 더 머물러도 좋다는 허락이 아니라, 속히 돌이켜 회개하라는 애타는 사랑의 호소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자기 합리화와 영적 나태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죄를 지을 때마다 내 안에 어둠의 세력이 침투하고 있다는 영적인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죄의 뿌리가 되는 원죄의 세력, 즉 귀신과 뱀들을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혈의 권세로 대적하고 뽑아내야 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멸시하며 진노를 쌓는 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그분의 사랑에 감격하여 날마다 회개함으로 거룩함을 이루어가는 자가 될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부디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생명책의 엄중한 경고를 마음에 새기며, 날마다 눈물로 회개하여 흰 옷 입은 ‘이기는 자’로 주님 앞에 서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25년 05월 09일(금)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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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약]
이 설교는 사람들이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이유가 죄의 실체와 심판의 엄중함에 대한 무지 때문임을 지적한다. 죄는 단순히 과녁을 빗나가는 행위(하마르티아)가 아니라, 악한 영(귀신, 뱀)이 우리 몸에 들어오는 실제적인 사건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죄에 대한 용납으로 오해하고 회개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진노의 날’에 임할 진노를 스스로에게 쌓고 있다. 성경은 죄와 싸워 이기지 못하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므로, 우리는 날마다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여 거룩함을 이루어가는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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