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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람들은 왜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일까?

특히 신앙생활을 수십년을 했다는 분들조차도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생각에는 하나님은 항상 세 분이시다. 즉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서 그 세 위가 세 분이지만 한 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게 과연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일까?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크게 2가지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첫째, 그것은 교리 때문이다.

즉 그동안 들어왔고 배워왔던 교리가 하나님은 한 분이 아니라 삼위일체 즉 "하나님은 세 분이신데 이 세 분은 하나다"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유일신 즉 한 분 하나님은 유대교의 신앙이거나 여호와증인들이 그렇게 잘못 믿고 있는 것이고, 우리 개신교에서 믿고 있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그동안 계속해서 배워왔기 때문이다. 사실 삼위일체 하나님 신앙은 A.D.381년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에서 최종적으로 결정된 사항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 전에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모르고 죽었던 자들은 다 구원받지 못했던 것일까? 그들은 오직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이요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가 사자의 밥이 되어갔고 불에 타서 순고했다. 그들은 과연 교리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잘 몰랐으니 그들은 이단에 속하며, 그들은 죽어서 다 지옥에 간 것일까? 아니다. 소위 교리나 교회 회의가 성경보다 앞설 수는 없는 것이다. 한편 A.D.325년 6월, 니케아종교회에서는 예수님도 하나님이시다고 결정한 바 있다. 그러면 그전에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었던 것일까? 아니다. 그런데 이제 벌써 이러한 교리가 생겨난지 거의 1700년 가까이 흘러갔다. 그러니 삼위일체 하나님이 틀렸다고 주장했다가는 바로 이단으로 몰리게 된다. 그런데 한 번 곰곰히 생각해보라. 4세기 이전에도 사람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정통으로 알고 믿고 있었는지를 말이다. 그들은 한 분 하나님을 믿었고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을 믿었었다. 하지만 한 번 삼위일체 신앙이 정통교리라는 생각들이 자라잡게 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삼위일체신앙만이 정통인 줄 안다. 아니다. 그것이 정통이 아니라 교리적인 선언이었음을 알라.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도 않는데, "교리가 맞는 것이니 교리를 따르지 않으면 전부 다 이단이다"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 번 교리로 선언되어 버리면 그것을 바꾼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다 잘 알고 있다. 중세시대에 오늘과 같이 한 분 하나님 신앙을 주장했다가는 어떻게 되었을른지 당신은 한 번 생각해보았는가? 아마도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라고 했었다가는 즉시 끌려가서 마녀로 심판받아 화형당해 죽었을 것이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톨릭교회에서 선언한 교리가 더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톨릭교리가 말하는 것을 부정한다는 것을 즉시 사형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삼위일체하나님 신앙은 실제로 삼신론 신앙이 아닌가? 그들은 말한다. "성부도 하나님이고, 성자도 하나님이고 성령도 하나님이다. 또한 성부는 성자와 같지 않고, 성자는 성부와 같지 않으며, 성령도 성부와 같지 않지만 하나님으로서 같다" 이것이 어찌 한 분 하나님을 말하는 것인가? 북한의 경우를 보라. 한 번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해 우상화작업을 딱 해놓으니까 거거에 거스를 수가 없다. 또한 그의 아들이 아니고서는 그 나라의 수장이 될 수 없으며, 정통성을 가질 수가 없다. 백두혈통을 따르지 않는 자가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교리대로 믿지 말고 성경에 나와있는 대로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통교리를 따를 것이 아니라 성경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둘째, 그것은 성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그렇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손에는 66권이라는 성경책이 들려 있다. 하지만 평신도가 이 성경 66권을 다 읽어보고 그 안에 있는 내용을 다 꿰뚫는 성도들이 있다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러니 성도들은 일반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성경이란 목사님들이나 신학자들이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연구한 것이니까, 그들의 말하는 것이 아마 맞을 것이다. 그러니 나같은 평신도는 그런 것에 대해서 다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하고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으나 당시 성경에 정통하고 성경을 달달달 암송하고 있던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오히려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을 알아보았는지를 말이다(요1:12). 그들은 그들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에게 사람들을 인도했었는가? 아니다. 성경에 대해 박식하게 알고 있다는 사람들조차도 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나름대로의 관점에서만 보고 있었기에, 성경에 나와있는 하나님을 잘 알고 못했던 것이다. 이마 이사야서에 나오는 하나님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를 읽어보았더라면, 그들도 처녀의 몸에서 탄생할 메시야를 금새 알아보았을 것이다(사7:14).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선배가 만들어놓은 교리에 입각하여 성경을 읽다보니 성경에는 이미 기록되어 있었지만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실 것이라고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어떤 청년이 나타나,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니까, 신성모독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는가!(요8:52~59) 그리고 그들은 결국에 그러한 주장을 트집잡아 저주의 사형틀인 십자가에 예수님을 매달여 죽여버리지 않았던가! 그렇다. 오늘날 우리들도 당시 유대종교지도자들이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몰라볼 수 있음을 알라. 교리의 눈에 가려서 말이다. 그렇다면 당시 누가 사탄의 앞잡이였는가를 생각해보라. 당시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으로부터 독사의 자식 즉 사탄의 자식으로 책망받았던 자들이 누구였는지 생각해보라(마23:29,33). 우리도 이제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인 고전8:4~6을 보자.

고전8:4-6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그렇다. 성경에서는 줄기차게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구약성경에서도 그렇고(신6:4, 신32:39, 삼하7:22, 대상17:20, 사434:10~11, 44:6), 신약성경에서도 그렇다(막12:29~30, 롬3:30, 고전8:4,6, 갈3:20, 엡4:6, 딤전2:5, 약2:19). 그리고 하늘의 광경을 소개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계4:2).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하나님이라 일컬어지는 자들이 많이 있으나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라는 것이다(고전8:4~5).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 구약시대 남유다의 13대왕이었던 히스기야(B.C.715~686)도 하나님을 뵈었다(왕하19:15,19). 그런데 그가 본 하나님은 하나님이 있고 그분 옆에 아들이 있었던 것일까?

왕하19:15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왕하19:19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하나님과는 별개의 아들 하나님인가가 문제가 된다. 요한복음을 읽어보면, 예수님은 한사코 당신을 아들이라고 표현하며, 자신은 아버지로부터 나왔으며, 그분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간혹 예수께서는 당신이 아버지라고 말씀하신다. 즉 아버지를 보여달라는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고 말씀하신다(요14:9). 뿐만 아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신다(요11:30). 또한 유대인들과 변증하실 때에 자신을 "내가 그"라고 말씀하신다(요8:24,28,58). 이 말의 헬라어원문을 찾아보면, "나는 ~이다"라고 하는 여호와를 지칭하는 표현인 것을 알 수 있다(출3:14).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그분은 또한 하나님이자 아버지라고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만약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만 되시고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시다면 그는 호로자식이 되고 말 것이다. 아들은 주제에 아버지를 참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한 방에 해결하주는 성경책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요한계시록이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나님이 계신 하늘에 대한 환상이 나온다. 사도요한이 성령에 감동하여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뵈었기 때문이다(계4~5장). 그때 사도요한이 본 환상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보좌에 앉아 계셨는데, 보좌는 단 한 개밖에 없었다(계4:2, 5:1). 일반적으로 성도들이 생각하는 그림은 천국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2개 내지는 3개 있는데, 그 보좌들 한 가운데 있는 보좌에는 성부 하나님이 앉아계시고, 오른쪽에는 성자 예수님이 앉아 계시는 줄로 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보좌 왼편에는 성령님의 보좌가 있는 줄로 안다. 하지만 천국환상에서 하나님은 단 한 개의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계신다. 이사야도 그렇게 보았고(사6:1~5, 에스겔도 그렇게 보았으며(겔1:26~28), 다니엘도 그렇게 보았고(단7:9~10), 히스기야왕도 그렇게 보았다. 신약에 들어와서는 스데반집사가 죽어갈 때에 그렇게 보았고(행7:55~56), A.D.95년경에 사도요한도 그렇게 보았다(계4~5장). 그렇다. 하나님의 보좌는 단 한 개 뿐이다. 그런데 그 보좌에는 어린양 예수님께서 앉아 계신다(계3:21, 7:17~19, 22:1,3).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단수)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7:15-17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단수)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계22: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단수)로부터 나와서
계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단수)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렇다. 천국에 있는 보좌는 단 한 개 뿐이다. 그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한 때 인성을 취하신 다음에 올라가셨기에 그 보좌는 어린양을 기념하여, 하나님의 보좌이면서 어린양의 보좌가 되는 것이다(계22:1,3). 하나님의 보좌에 어린양되신 우리 주 예수님이 앉아계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부활승천후에 하나님의 우편 내지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상징적인 표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아들의 보좌가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오른쪽 혹은 오른편은 '능력'을 상징하거나 '승리'를 상징한다. 다시 말해 이 말은 예수께서 인성을 취하시고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시고 승리하시어 능력의 보좌에 좌정하셨다는 뜻이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한 분 하나님이 계시다. 만약에 하나님이 두 분이거나 세 분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구약성경의 기록들을 전부 찢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여러 기록들과 요한계시록을 아예 찢어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계속해서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을 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자신을 아들의 신분으로 낮추어 오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그분이 볼 수 있도록 나타나신 하나님이신 것을 안다(요1:18). 그리고 아버지의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임마누엘하여 장막을 치신 것임을 안다(요1:14). 그분이 바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 아들의 신분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는 오직 우리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값을 대신하여 피흘려 죽으시기 위함이다(막10:45). 하나님은 영이시니까 피흘릴 수가 없다(요4:24). 그래서 피흘려 죽기 위해서 하나님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으로 낮아지신 것이다(히9:22, 레17:11, 빌2:6~8). 우리 주 하나님, 우리 주 예수님께 영원히 찬양과 경배를 올려 드리자.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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