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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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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Xkn5nNFICBQ

2025-10-03(금) 금요기도회

제목: [여호수아 강해(38)] 비느하스의 타결 곧 엣 제단의 보존은 과연 최상의 선택이었는가?(수22:30~3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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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아름다운 이별 뒤에 남겨진 의문

  모든 것이 아름답게 마무리되고 축복된 이별인 줄 알았다. 왜냐하면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가 가나안 정복 전쟁의 모든 임무를 마치고, 여호수아의 축복과 풍성한 전리품을 가지고 자신들의 기업인 요단 동편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민 22:1-9). 그러나 요단 동편으로 돌아가던 두 지파 반이 요단 언덕 가에 큰 제단을 쌓았다는 소식이 요단 서편의 아홉 지파 반에게 전해진다. 그러자 온 이스라엘 공동체는 격렬한 분노에 휩싸여 내전의 위기까지 치닫게 된다. 왜냐하면 요단 서편의 지파들은 동편 지파들이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유일한 성소인 실로의 회막 외에 ‘다른 제단’을 쌓아 우상숭배를 행하고 있다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아간의 범죄와 브올 사건의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나, 한 개인이나 한 지파의 죄악이 공동체 전체에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촉즉발의 위기 앞에서, 요단 서쪽 지파들은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열 명의 족장들을 진상조사단으로 보내 대화로 진상을 규명하려는 지혜를 발휘한다. 이때 요단 동편 지파들은 자신들이 제단을 쌓은 것이 우상숭배를 위한 것이 아니라, 훗날 요단강 때문에 서편 지파들로부터 언약 백성으로 인정받지 못할까 봐 염려하여 ‘증거의 제단’을 세운 것이라고 해명한다(수 22:21-29). 이 진실한 해명을 들은 비느하스와 사절단은 기뻐하며 돌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고했고, 백성들은 싸우러 가려 했던 말을 다시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제단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는 뜻의 ‘엣’이라 이름 붙여졌다(수 22:30-34).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내전을 피하고 공동체의 하나 됨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장면까지만 본다면 당시 이러한 결정은 최상의 선택이었던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엣 제단’의 보존은 정말 최상의 선택이었을까? 그래서 이번 말씀은 성경 전체의 역사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냉철한 답을 제시하며, 그 결정이 훗날 요단 동편 두 지파 반에게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밝혀보고자 한다.

 

2. 엣 제단을 존속케 하는 비느하스의 타결, 과연 온전한 것이었는가?

  비느하스와 진상조사단은 요단 동편 지파들의 해명을 듣고 기뻐했다(수 22:31).

수 22:31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오늘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 줄을 아노니 이는 너희가 이 죄를 여호와께 범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너희가 이제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비느하스가 동편 지파들이 반역죄나 우상숭배의 죄를 범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서편 지파들도 진상조사단의 보고를 듣고 즐거워하며, 더 이상 싸우러 가지 않았다(수 22:33). 그러므로 당시의 상황과 여호수아서 22장 본문만을 볼 때, 이 타결은 오해를 풀고 내전을 막은 최상의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볼 때, 비느하스의 이 타결, 곧 엣 제단의 보존은 미흡한 영적 분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동편 지파들의 의도는 순수했고, 후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것을 염려한 마음은 칭찬받을 만했다. 그러나 ‘증거의 제단’이라는 형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유일한 중앙 성소 외에 다른 제단을 세운 것은 훗날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영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비느하스는 당시에 이 ‘증거의 제단’이 훗날 어떻게 변질될지 정확히 바라보지 못했다. 눈앞의 오해를 해소하고 전쟁을 막는 것은 성공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적 순수성과 통일성을 유지하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당장의 갈등 해결에 만족하여 영적인 근본 문제를 간과했던 비느하스의 결정은, 훗날 요단 동편 지파들에게 비극적인 파멸로 이어지는 씨앗이 된 것이다.

 

3. 요단 동쪽의 2지파 반은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가?

  비느하스가 엣 제단의 존속을 허락한 결과는 훗날에 어떻게 되었을까? 결론적으로 볼 때 이것으로 인하여 요단 동편 두 지파 반은 점차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영적 타락과 파멸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첫째, 이들은 지리적 거리로 볼 때 늘 소외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요단 동편 지파들은 지리적으로 요단강이라는 거대한 장애물로 인해 서편의 중앙 성소(실로)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실로의 회막에서 드려지는 중앙 절기 예배에 참여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결국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류에서 소외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멀어진 지리적 거리는 곧 영적인 거리감으로 이어졌다. 역대상 5장 25절은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 범죄하여 …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멸하신 그 땅 백성의 신들을 간음하듯 섬기며”라고 기록하며, 요단 동편 지파들이 점차 우상숭배에 빠졌음을 증언한다.

  둘째, 이들은 이방 문화와 교류하면서 혼합주의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요단 동편 지역은 암몬, 모압, 아람 등 수많은 이방 민족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엣 제단은 본래 하나님께 대한 증거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요단 서쪽의 지파들은 이방 지역 사람과 교류하였다. 그러자 이러한 교류 속에서 요단 서쪽 지파들은 이방 신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사사기 10장 6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려 그를 섬기지 아니하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요단 동편 지파들이 이방 신들을 섬기며 혼합주의에 빠졌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스스로 방비해야 하는 변방 지역에 살면서 이방인들과 접촉하다가 그만 그들의 우상까지 받아들여 하나님도 섬기고 이방 신도 섬기는 영적 간음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셋째, 수시로 닥치는 위기상황 속에서 본토의 보호와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단 동편 지파들은 본토 이스라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외세의 침략이 있을 때 본토의 보호와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사사 시대를 보면, 암몬 자손이 자주 침략해왔고, 사울 왕 시대에는 암몬 왕 나아스가 침략했다. 그러자 그때는 사울 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싸워주기도 했다(삼상 11장). 다윗 왕 시대에는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윗이 피난했을 때 요단 동편 지파들이 식량을 제공하며 돕기도 했다(삼하 17:27-29). 그러나 열왕기 시대로 넘어가면서 요단 동편 지파들은 완전히 소외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면서,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왕이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우자, 요단 동편 지파들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지 못하고 결국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요단 동편 지파들은 그들의 혼합주의 신앙과 영적 소외로 인해 가장 먼저 이방 민족에게 멸망을 당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역대상 5장 26절은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이 앗수르 왕 불의 마음을 일으키시며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의 마음을 일으키시매 곧 르우벤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를 사로잡아 할라와 하볼과 하라와 고산 강가로 옮긴지라 그들이 오늘까지 거기에 있으니라”고 증언하고 있다. 북이스라엘의 본토가 멸망하기 약 10년 전인 BC 732년에, 요단 동편 지파들은 앗수르에 의해 가장 먼저 멸망하고 포로로 잡혀간 것이다. 엣 제단의 보존은 그들을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지키려던 의도였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혼합주의에 빠지고 멸망하는 통로가 되고 만 것이다.

 

4. 요단 동편지파가 우리의 삶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요단 동편의 2지파 반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교훈을 안겨준다. 그건 세 가지다. 

  첫째, 중앙 성소로부터 멀어질수록 영적으로 타락하기 쉽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중앙 성소는 말씀이 선포되고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 공동체이다. 교회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 점차 신앙생활에 소홀해지고 세상 문화에 동화되어 영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온라인 예배가 확산되면서 지리적 거리는 좁아졌지만, 영적인 거리는 오히려 멀어진 경우가 많다. 온라인 예배는 목숨 걸고 참여해야 하며, 더욱 경각심을 가지고 스스로를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야 한다.

  둘째, 세상 문화와의 혼합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단 동편 지파들이 이방 문화에 동화되어 혼합주의 신앙에 빠졌듯이, 오늘날 많은 성도가 세상 문화와 타협하여 하나님도 섬기고 점쟁이나 우상숭배적 행위에 참여하는 영적 간음을 저지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당신의 백성이 세상과 짝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세상 문화의 즐거움보다 하나님 말씀의 회개와 기름부음의 즐거움을 더 추구해야 할 것이다.

  셋째, 영적 보호와 지원을 주는 공동체에 붙어있어야 한다. 요단 동편 지파들은 본토 이스라엘의 보호와 지원을 받지 못해 쉽게 외세에 멸망당했다. 오늘날 우리의 영혼이 사탄의 공격을 받을 때, 우리를 지켜주고 보호하며 영적인 양식을 공급해 줄 수 있는 공동체, 곧 말씀과 성령의 능력이 살아있는 교회에 우리는 반드시 붙어있어야 한다. 교회를 떠나 홀로 신앙생활 하는 것은 영적 고아와 같아서 악한 영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5. 나오며: 과감한 결단으로 영적 중심을 지키라

  비느하스의 타결, 곧 엣 제단의 보존은 당시에는 최상의 선택처럼 보였을지라도, 성경 전체의 역사를 통해 볼 때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 미흡한 결정이었다. 그것은 요단 동편 지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 멸망하는 씨앗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이 뼈아픈 역사의 교훈을 직시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볼 때 좋지 않은 것은, 당장의 평화를 위한다고 할지라도 용납해서는 아니 된다. 그때 비느하스는 엣 제단을 과감히 제거하고 철폐했어야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어정쩡한 혼합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적 중심을 지키고,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삶에 혹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엣 제단’은 없는가? 세상의 문화에 동화되게 만드는 ‘이방 신’은 없는가? 우리를 영적인 보호와 지원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거리와 같은 장벽’은 없는가? 이제 우리가 결단할 때다. 지금 당장 우리를 중심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들을 과감히 끊어내고, 하나님께서 계시는 중앙 성소로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는 공동체에 굳게 붙어있음으로써, 이 말세지말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백성으로 끝까지 살아남아,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2025년 10월 03일(금)

정보배 목사

 


[설교요약] 본 설교는 여호수아 22장 30-34절의 ‘엣 제단’ 보존 사건을 통해, 당시는 최상의 타결처럼 보였으나 훗날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 영적 교훈을 다룬다. 요단 동편 두 지파 반이 쌓은 ‘엣 제단’은 본래 언약 백성임을 증명하려는 의도였으나, 비느하스의 보존 결정은 결국 그들을 영적 타락과 멸망으로 이끌었다. 이는 첫째, 지리적 거리로 인한 중앙 성소(실로)로부터의 영적 소외, 둘째, 암몬, 모압 등 이방 민족과의 접촉으로 인한 우상숭배와 혼합주의, 셋째, 본토 이스라엘로부터의 보호와 지원 상실로 이어졌다. 그 결과 요단 동편 지파들은 북이스라엘 본토보다 10년 먼저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다(대상 5:26). 본 설교는 오늘날 성도들에게 교회로부터의 영적 소외, 세상 문화와의 혼합주의, 영적 보호의 상실을 경고하며, 중심을 지키고 구별된 삶을 살며 영적 공동체에 굳게 붙어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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