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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신약적인 회개란 무엇인가?(범죄에서 돌이키는 것인가 믿지 않은 것으로부터 돌이키는 것인가?(요16:1~14)
https://youtu.be/_iOB6DDRJH8

1. 회개란 무엇일까요? 구약성경에 보면 "회개하다"라는 직접적인 단어가 없습니다. 다만 여러가지 단어를 통해서 그것이 회개라는 것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특히 구약성경에서 회개라는 의미의 단어는가 약2가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는 "나함"이라는 단어인데요, 이 단어가 여러가지 뜻으로  쓰이지만 그중에서 "뉘우치다"는 뜻으로 5번 나옵니다(욥42:6 등). 그리고 "돌이키다"는 뜻으로 4번 나옵니다(출13:17, 32:12,14, 삿2:18). 또 하나는 "슈브"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 1,000번 이상 나오는데, 2가지 뜻으로 쓰였습니다. 첫째는 죄악된 행위로부터 돌아서는 것을 가리키며 둘째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다(돌아오다)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어 중에서 회개하다는 단어는 95%이상이 "슈브"라는 단어가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헬라어로 옮겨보면, "나함"중에서 "뉘우치다"의 단어는 "메타멜로마이"에 해당하며(마27:3), "돌이키다"는 "에피스트레포"에 해당합니다(행3:19). 그리고 "돌아서다,, 돌아오다, 돌아가"의 단어는 "메타노에오"입니다(마4:17). 그런데 뉘우치고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려면 선행조건은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히브리어로 "야다"). 그러므로 히브리어상으로 회개하려면, 첫째는 죄를 깨달아야 하며("야다"), 둘째는 뉘우침이 있어야 하고("나함"), 셋째는 돌아서고 돌아가야 합니다("슈브"). 그렇다면,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말씀들 가운데서, 죄를 깨달은 다음 뉘우친 후에 죄악된 길을 떠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말씀(이야기)에 있을까요?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눅15:11~24)

 

2. 신약성경에 사용된 헬라어로서 "회개하다"는 단어는 "메타노에오"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단어는 "메타(뒤에, 후이)"에다가 "노에오(깨닫다,알다)"는 단어가 합쳐진 것입니다. 고로 이 단어의 뜻은 "뒤에 생각해보니, 그것이 잘못되었구나"하고 인식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고로 "메타노에오"는 자기자신의 인식의 변화를 가리킵니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는 완전히 180도 달라진 인식과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적인 회개의 개념은 구약적인 회개하고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적인 회개의 개념이 주로 행동의 변화를 가리키고 있다고 한다면, 신약적인 회개는 마음의 변화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은 죄에 대해 깨닫고 애통하기만 하면 과연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신약성경에서는 "회개하다"는 단어를 "메타노에오"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요?(참고로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은 아람어였고, 신약성경을 기록한 언어는 헬라어였습니다)

 

3. 고로 신약성경에 나오는 "메타노에오"라는 예수님의 촉구는 단어는 범죄에 대한 단순한 인식의 변화차원을 뛰어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은 죄가 아닌 줄 알았는데 이런 것들도 죄였구만"하는 인식의 변화를 가리켜, 그것만이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회개라는 범주에 포함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눅15장의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범죄에 대한 회개는 분명 죄를 인식하고 뉘우치고 돌아서고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것이며, 그것은 반드시 어떤 행동의 변화를 수반하는 "슈브"인 것만큼은 분명하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신약에는 구약에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는, 회개에 대한 새로운 국면이 있는 것입니다. 그럼,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에 대해 사도요한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요16:3, 9)
요16: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요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4. 그렇습니다. 신약에서 회개는 단순히 죄로부터 돌이킴이라는 기본적인 의미에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반드시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 있던 사람이, 그분을 비로소 구원자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바라보게 된 것을 가리켜 회개했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질적인 의미의 회개인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예수님이 바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이라고 하는 인식의 대전환이 바로 회개라는 의미로 많이 승화발전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적인 회개라는 의미요, 넓은 의미의 회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예수님을 알지 못한 것과 아울러 그래서 그분을 믿지 못한 것이 죄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왔나요? 그렇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어디에 있었던 것 같나요?

 

5. 우리는 사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신분에 관한 놀라운 정보를 얻게 됩니다. 그분을 인자 내지는 하나님의 아들 혹은 메시야(그리스도)로 정도로 알고 있다가, 요한복음을 통해서 자신이 누군지를 계시하시는 예수님의 진짜 모습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을 위의 3가지 신분 외에 어떤 것으로 소개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우리의 믿음과 그리고 우리가 해야할 인식의 전환 곧 회개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입니까?(요8:23~25, 16:28, 14:24, 14:7, 10:30)
요8:23-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2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요16:28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요14: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요14: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율법을 어겨 죄를 밤한 것만 죄가 아닙니다. 신약시대에 가아 큰 죄는 예수님을 알지 못해 그분을 믿지 못한 죄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죄용서도 받지 못하고, 온갖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자녀도 될 수 없고, 천국에도 못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기왕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리고 했다면 힘써서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아야겠습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17:3)'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2018년 2월 14일(수)
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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