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원망과 불평은 우리에게 반드시 무엇을 가져다 주는가?(민14:1~3)
1. 이스라엘민족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있을 때, 기록된 것만 해도 몇 번을 원망불평했을까요?(민14:22)
2. 이스라엘민족이 출애굽후 광야에 있을 때에 최소한 10번 이상을 원망불평했습니다(민14:22). 그 내용은 한 마디로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광야로 데리고 나와 죽게 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맨 처음에는 홍해앞에서 그랬고(출14:11~12), 둘째는 마라의 쓴 물 앞에서(출15:23~24), 셋째는 신광야에서 고기와 떡이 없다고(출16:2~3), 넷째는 시내산 앞 르비딤에서 물이 없다고(출17:3), 다섯째는 다베라에서 악한 말을 하여(민11:1~3), 여섯째는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고기를 먹게 해달라고(민11:4~6), 일곱째는 바란광야 가데스에서 정탐꾼을 보고를 받은 후에 처자식까지 다 죽이려고 하느냐고(민14:1~3), 여덟째는 광야에서 고라일당과 족장 250명이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민16:3,13), 아홉째는 출애굽후40년 첫째달에, 출애굽2세대들이 신광야 가데스에서 물도 없고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없다고(민20:4~5), 열째는 출애굽2세대들이 호르산에서 먹을 음식과 마실 물도 없다고 그리고 더이상 만나는 먹기가 싫다고(민21:5) 원망불평했습니다. 그런데 기록된 것만 그런 것이지, 이스라엘민족은 광야에서 40년간 살면서 무수히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민14:22). 그렇다면, 그들은 왜 문제가 생기기만 하면 이렇듯 거품을 물고 원망과 불평을 해야 했던 것인가요?
3. 출애굽한 이스라엘민족이 문제만 생기면 원망과 불평한 이유는 그들이 출애굽하고 홍해를 건너 자유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애굽에서의 노예의 근성이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종이라는 신분은 늘 짜증내고 불평해야 뭔가가 그들에게 더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출애굽후 홍해를 건넜던 이스라엘민족은 더이상 애굽의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마실 물이 없다, 먹을 것이 없다, 고기가 없다고 하면서 늘 원망과 불평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사람이 평소 때에 어떻게 해왔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종(노예)과 자유자(아들)의 차이가 선명하게 차이가 여기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민14장에 나오는 원망과 불평(민14:1~3)은 이전의 원망과 불평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4. 이스라엘민족은 가나안정탐꾼들의 보고(민13장)를 받은 후 민14장에 보면, 차원이 다른 원망과 불평을 했는데, 그전에는 당면한 그들의 필요 때문에 나오는 원망불평이었지만, 이번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겠다고 대드는(대적하는) 원망불평이었습니다. 그전에는 그들에게 당장 불편한 것들이 있어서 원망불평했었습니다. 즉 물이 없다, 양식이 없다, 대적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한다 등의 불평불만이었습니다. 하지만 민14장의 불평은 앞으로 하나님이 행하실 일에 대한 원망불평이었고, 그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원망불평이었습니다(민14:2~3). 그것은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주시겠다고 말씀에 대한 정면도전이자 거부였습니다(민14:22~23,33). 가나안 땅은 좋은 땅이기는 하지만 정복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부정적인 보고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악평했던 10명의 정탐꾼은 재앙으로 광야에서 죽게 되었으며, 악평한 자들의 보고를 듣고 하나님의 뜻과 축복을 거역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단 한 사람도 살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사람들 대부분은 징계로 광야에서 다 엎드려져 죽었습니다(민26:65~65). 여기서 우리는 원망과 불평의 습관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반드시 어떤 무언가를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무엇인지 좀 요약해서 말씀해 보십시오.
5. 원망과 불평이란 한 두 번은 괜찮을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종의 근성은 자유인(자녀)가 되었다면, 끊어야 할 죄입니다. 그러한 원망불평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때, 우상을 숭배하고 살았을 때에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종이나 할 일이지 자녀가 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문제가 발생하면 원망불평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구하면 됩니다. 혹 필요한 것이 있으면 공급자요 전능자이신 하나님께 기도하여 간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물이 떨어졌습니다. 물 좀 주십시오.", "하나님, 먹을 것이 떨어졌습니다. 식량 좀 주십시오." 광야에서는 물을 구할 수 없었고 먹을거리를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히 하나님께 요청할 사항이었습니다. 하지만 애굽에서의 노예로서 적어도 300년이상을 살아왔던 이스라엘백성들은 광야에 나왔어도 여전히 종처럼 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문제만 발생하면 광야에서 죽이려고 데려왔느냐,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민족을 광야로 데려온 목적을 거부한 그들을 이제 더이상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가나안땅을 그들의 기업으로 주시마고 한 약속마저 불신하고 거부하는 사태를 용납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믿고 자유인(자녀)가 되었으면, 원망과 불평은 조기에 차단하고 없애버려야 합니다. 이것을 가만히 계속 두었다가는 천국마저 못들어가는 죄를 지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평소 때의 지속적인 불만이 천국의 소망마저 빼앗아가는 놀라운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원망불평하지 맙시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정중히 하나님께 요청합시다. 그리고 그분의 응답을 기다립시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죽이려고 광야(교회)로 데리고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데려가시려고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광야는 과연 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지 선발하려고 데리고 나온 것임을 알고 여기서 감사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요청하고,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앞으로 전진해 나아갑시다.
2018년 10월 2일(화)
정병진목사